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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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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속 역사인물 소개 : 요(堯)임금 이어 태평정치 폈던 순(舜) 임금

요(堯)임금 이어 태평정치 폈던

순(舜) 임금

 

                

姜相年 <硏究委員>

           

▲ 아황·여영의 무덤 뒷편으로 소상반죽이 나있다.

 

 

  동양에서 이상정치와 태평시대를 이야기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요임금이다. 여기에서 대효자인 순임금에 대하여 알아보자.

  순(舜)임금의 성은 요(姚)이고, 다른 이름은 중화(中華)라고 했다. 부친은 고수(장님이라는 뜻, 순의 아버지는 매우 우매한 사람이기 때문에 장님이라는 뜻으로 고수라고 불렸다.)이고 전욱(箭頊)의 6대손이었다. 순의 생모가 죽자 곧 후처를 얻어 후처에게서 이복 동생인 상(象)이 태어났는데 양친 모두는 온화한 순을 학대하고 상만을 귀여워했으나, 순은 참으면서 효도를 다했다.

 「전경」에는 순의 효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세상에서 우순(虞舜)을 대효라 일렀으되 그 부친 고수의 이름을 벗기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리오.』 (교법 1장 44절)

  순은 효도를 잘했던 반면에 부친의 허물을 벗기지 못하였으니 어찌 한스럽지 아니하겠는가.

  그는 집을 떠나 여러 가지 일에 종사했으나 무슨 일에든지 성실하고 동료들의 모범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흠모하는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순이 역산(歷山:西山省(서산성))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지방의 백성은 모두 순의 높은 덕에 감화되어, 서로 밭둑을 양보할 만큼 겸양해졌다. 또 연못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에는 그 지방 사람들은 낚시터를 서로 사양하여, 한 사람이 좋은 자리를 독차지하는 일이 없게 되었다.

  또 황하 부근에서 그릇을 굽고 있을 때에도 순에게 나쁜 물건을 만들어 내지 않게 되었다. 이리하여 순이 살고 있는 이 곳에는 그의 덕을 사모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어 1년이 되면 마을을 이루고, 2년이 지나면 읍이 되고, 3년이 지나면 도시가 되었다.

  이러한 소문은 드이어 요임금의 귀에 들어가 요임금이 순을 불러놓고 살펴본즉 과연 뛰어난 인재임을 알 수 있었다. 요임금은 우선 순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딸인 아황(蛾黃), 여영(女英)을 순에게 시집 보내 이들 부부사이를 관찰하였다. 그녀들은 부도(婦道)를 다하여 부부의 사이에 흠잡을 것 없이 원만하였다.

  『군자의 도는 부부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 있듯이 이들 부부 사이를 본 요임금은 순의 능력을 인정하여 비로소 안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순의 가정에선 문제가 생겼다. 이복동생인 상은 어머니와 짜고 그의 아버지인 고수를 꾀어 순을 죽이려 한 것이었다.

  하루는 광의 지붕을 수리케 하여 순을 지붕에 올라가게 한 후 사다리를 치우고 불을 질러 태워 죽이려 하였다. 순은 미리 준비해 간 두 개의 삿갓을 펴 날 듯이 내려와 위기를 모면하였고, 또 한번은 우물을 파게 한 후 순이 나오려 하자 흙을 덮어 생매장하려 하였으나, 순은 위험을 예측하고 옆으로 빠지는 통로를 미리 마련해 두었다가 그곳으로 빠져나와 죽음을 모면하였다. 우물에서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온 순은 평상 위에서 거문고를 타고 있었다. 순의 동생인 상은 『이번에야 말로 순이 꼭 죽었을 것이다. 두 형수들로 하여금 나의 잠자리 시중을 들게 하리라.』하고 뽐내면서 집에 돌아와 보니 순이 태연한 모습으로 거문고를 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은 계면쩍은 표정을 지으며

  『형님을 걱정하느라 몹시 속을 태웠습니다.』라고 하였다. 그런 일이 있은 후에도 순은 전과 다름없이 부모를 극진히 받들어서 동생을 한결같이 사랑하였다. 부모와 아우는 차차 선도되어 간악한 길에 빠지지 않았다.

  요임금은 순을 여러 요직에 등용하여 시험해 본 결과 모두 훌륭하였다. 그래서 요임금은 천하사(天下事)를 그의 아들 단주에게 물려주지 않고 순에게 물려주었다.

  『단주가 불초하다 하여 요가 순(舜)에게 두 딸을 주고 천하를 전하니 단주는 원을 품고 마침내 순을 창오(蒼梧)에서 붕(崩)케 하고, 왕비를 소상강(瀟湘江)에 빠져 죽게 하였도다.』 (공사 3장 4절) 단주는 원()을 품게 되었다. 그 원심이 순과 두 왕비를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로서 원의 종자가 퍼져 세상은 참혹하게 되었다고 상제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순은 20세에 효행으로 유명해졌고, 30세에 등용되고, 50세에 섭정 하였으며, 58세에 요임금이 죽고, 61세 때 정식으로 제위에 올라 39년 동안 재위하였다.

  순은 치세 때에도 요임금에 못지 않은 태평성대를 구가하였으며 여러 어진 신하들이 순임금을 도와 더욱 빛나는 정치를 실현하였다. 순은 섭정이 된 후 간신 환도(驩道)를 쫓아 버리고 공공을 귀양보내고, 곤(鯤)을 가두고 삼묘(三苗:나라이름 지금의 호남성일대에 있었던 묘족의 나라)의 제후들을 멀리 추방했다. 그리고 재주와 지혜가 뛰어난 팔원팔개(八元八愷:元은 善, 愷는 和, 여덟 사람의 선량한 신하, 온화한 인물)를 등용하고, 우(愚), 계(契), 후직(後稷), 백이(佰夷), 용(龍)등 아홉 사람을 등용하여 구관(九官)으로 삼아서 각각 한 부분의 우두머리에 임명하여 농경, 치수, 제사, 음악 등의 발전을 돕게 하여 문화를 발전시켰고 백성의 힘을 길렀다.

  한편 12목(牧:인민을 기르는 관원, 후세에는 태수, 윤, 자사라고 했다. 즉 고을의 장관)을 자문기관으로 삼아서 곤의 아들 우(愚)에게 맡긴 결과 그는 탁월한 지혜와 뼈를 깎는 노력으로 마침내 치수사업(治水事業)을 성공시켰다. 「사기(史記)」에는 다음과 같이 그의 공적을 소개하고 있다.

  『우가 몸을 돌보지 않고 애태우며 중국 천지를 13년 동안 헤매며 이룩한 그 굽힘 없는 치수 활동은 그대로 그의 인간 됨을 말해 주는 것이다. 그가 자기집 문 앞을 지날 갈 때 처자의 울음소리를 듣고도 그대로 지나쳐 동분서주 발걸음을 옮겼다. 마침내는 허벅지의 살이 쭉 빠지고 정강이의 털도 빠졌으며 등은 낙타처럼 굽어 절룩거리며 걸었다. 후에 이런 걸음걸이를 흉내내어 우의 발걸음(禹步)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우는 일의 성과를 순에게 보고했고 순은 그 공을 치하하여 우에게 상을 내렸으며 만천하에 치수의 성공을 고함으로써 그 후부터는 홍수의 피해를 면할 수 있게 되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순임금에게는 아황과 여영의 두 아내가 있었는데 아황에게서는 소생이 없고 여영에게서 아들 상균(商均)을 낳았는데 그도 또한 단주처럼 불초하여 천하를 맡길 수가 없었다. 순임금도 요임금과 마찬가지로 천하를 물려줄 사람을 찾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물망에 오른 사람이 치수 사업의 성공자이며 인망이 가장 높은 우였다. 여기 알 수 있는 것은 요, 순, 우왕이 천하사를 다스리고 백성을 위하는 그 마음은 상수심법(相受心法)으로 같다는 것이다.

  『요순우왕일체동(堯舜禹王一切同)』 (교운 2장 23절)

  순은 제위에 오른 지 39년 되던 해 남쪽 나라들을 순행하다가 창오(蒼梧)에서 병사하였다. 순임금을 따라 상수(湘水)부근까지 와 있던 두 왕비는 갑작스런 흉보에 비탄을 못 이겨 눈물을 흘렸는데 그 눈물이 옆에 있는 대나무에 떨어져 얼룩진 반점의 흔적을 남겼다. 그 후부터 소상강 부근에서는 반점이 있는 반죽(班竹)이 나는데 이것은 그녀들의 피눈물이 변한 것이라고 한다.

  눈물을 흘린 두 왕비는 이윽고 세상을 떠난 남편 순임금에 대한 흠모의 정을 누를 길이 없어 둘이서 얼싸안고 소상강 깊은 물에 몸을 던져 생애를 마쳤다.

  순임금의 이야기는 신화적 색채가 짙어 그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우나 어쨌든 순임금은 요임금과 함께 후세 제왕들의 이상적 군주, 이상적 정치의 실현자로 높이 숭앙되고 있다. 이러한 요순의 태평시대가 원시반본이 되어 다시 나타난다고 전경에 다음과 같이 적혀져 있다.

  『요, 순(堯, 舜)의 도가 다시 나타나리라 』 (교운 1장 4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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