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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3년(1993)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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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작은 나의 수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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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나의 修道記

 

                

안미선 <선무ㆍ강남방면>

 

  저는 제가 언제 입도한지 제대로 생각이 안 납니다. 저희 어머니 말을 들어보니 우리 둘째 언니 현재는 선각이지만 그분이 몹시 아파 병원에서도 가망이 없다고 진단이 나와 어머니가 고심 끝에 종교에 의지하려고 마음을 먹고 가려고 하니 옆집아줌마(선각)가 대순진리회를 믿으라 하고 또 우리 외숙모는 순복음교회를 나오라고 권유를 해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어머니가 꿈을 꾸셨는데 꿈속에서 어머니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데 손에 무엇이 잡혀 그것을 잡고 올라왔더니 바고 그것이 어떤 할아버지 턱수염이었데요.

  그 꿈을 꾸고 나서 우리 어머니는 살길이 대순진리회에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우리식구 전체를 이끌고 한꺼번에 입도식을 드렸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그때가 제가 국민학교 1학년 때였습니다. 지금 제가 21살이니 벌써 만 13년이나 되었지요.

  제가 입도식을 했다는 것도 고2때 언니한테 들어서 알았습니다. 왜냐하면 하도 어렸을 때에 해서 생각이 안 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대순진리회에 대한 진리나 여러 체계들을 잘 모르지만 우리 옆집 아줌마를 따라서 중곡도장이나 회실 등을 다녔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너무 좋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작은 저에게 반말이나 말을 놓는 것이 아니라 존대말을 해주며 친근하게 얘기해주며 무슨 일이 있으면 자기 얘기처럼 걱정해주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너무너무 좋았고 가족 같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니기 시작해서 점차 도에 대해 알게 되어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렸을 때 어머니께서 기도상자 안에 제 봉투를 넣어주시면서 심부름 하고 남은 돈이나, 용돈을 조금씩 모아 이 봉투 안에 넣으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것이 이웃 친구들이 자기네들 저금통에 돈을 모으듯 별 느낌 없이 당연히 그 봉투 안에 돈을 모았습니다. 저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마땅히 해야 하는 것이라 믿고 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월성(月誠)이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월성의 중요성을 알게 하려고 하신 어머니가 참 고맙습니다.

  제가 고1때부터 우리 회관을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둘째 언니는 병이 나서 연락소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언니가 회관공사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어떻게 여자가 힘든 공사 일을 할 수 있을까?」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때는 제가 공을 쌓는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고2 여름방학을 맞이했습니다. 언니가 방학이니 놀러 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오게 되었는데 그때는 마음에서 우러나와 온 것이 아니고 의무감이나 언니의 말 때문에 가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저한테 온김에 공을 쌓고 가라면서 회관 일을 하라고 했습니다.

  저는 회관 일을 하는 것과 공을 쌓는 것이 상관이 없다고 느꼈지만 그냥 아무런 말없이 언니가 하라는 대로 했습니다. 제가 그때 왜 잘 모르면서 아무런 말없이 했는지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이라고 느껴집니다.

  그렇게 회관공사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방학동안 자주와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도심(道心)이 길러지고 막연히만 알고 있던 대순진리회에 대해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지내다가 고3이 되었습니다. 회관에서 요번 해에 대진대학교가 생기니 거기로 가라고 하시며 대학교 조감도를 보여주셨는데 『아! 바로 이 학교다』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딴 학교는 생각도 안 해보고 대진대학교를 목표로 공부를 했습니다.

  바로 전기시험 하루 전날 두렵고 떨렸습니다. 그런데 한쪽으로는 자만감이 생겼습니다. 제가 안 붙으면 누가 붙어 이런 등등의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회관에서 나와 시험고사장에 우리방면 학생들과 같이 차를 타고 가서 시험을 봤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무척 잘 보았다고 생각이 들어서 당연히 붙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자만감이 넘쳐선지 신명께서 『너 한번 정신 차려라』하시는 듯 그만 시험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제가 부족하니 잘 좀 보게 도와주세요.』이런 마음을 왜 안 가졌었는지 그때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어리숙한 사람에 불과했던가 봅니다. 너무 창피하고 죄송해서 회관에 가기가 꺼려졌을 때 언니한테 전화가 왔습니다.

  『너 그릇이 그것밖에 되지 않니 후기도 있으니 더 열심히 공부해 붙으면 되니까 빨리 가방 챙겨 가지고 와서 후기시험 볼 동안 회관에 와서 기도도 모시고 회관 일도 하면서 공부하라』며 빨리 오라고 꾸짖었습니다.

  저는 그때 제자신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며 부랴부랴 전화 받은 즉시 가방을 챙겨 회관으로 달려왔습니다. 오는데 그렇게 마음이 가벼운지 무엇이라도 탄 느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회관에서 지내면서 개관치성, 납향치성, 기도공부 등등 무엇인지 하라는 대로 하며 시간이 나는 대로 4층 기도모시는 곳에서 틈틈이 공부를 하며 하루하루 지내다 보니 벌써 후기시험이 다 되어 한편 걱정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공부를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시험 보는 날 아침이 되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가 대학에 가건 못 가건 그것은 하늘에 뜻이니 너무 연연해 하지말고 최선을 다하면 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덤덤한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습니다. 그래서 붙으리라고 생각도 안하고 있었는데 붙었다고 연락이 오니 꿈인지 생시인지 너무 좋았습니다. 이렇게 붙었으니 제가 학교에 가서 할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에게 맡겨진대로 활동한 결과로 대진회 부회장, 회장을 걸쳐 전국대진연합회 6대 회장이라는 자리까지 맡게 되었습니다. 이 부족한 저에게 이렇게 큰 것을 주시니 고마울 뿐입니다. 늘 저에게 맡겨진 일에 끝까지 회선을 다하는 수도인이 되겠습니다. 지금까지 대진연합회 활동에 많이 도와주신 수선감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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