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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3년(1993)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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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 전국대학대진연합회 주체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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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대진연합회 主催

聖地巡禮를 다녀와서

 

                

김영선 <평도인ㆍ전주방면>

 

  대순진리회 버스를 타고 우리가 처음으로 간 곳은 충남에 있는「안면도」였다. 도주님께서 「태인에 가서 나를 찾으라」라는 상제님의 명을 받고 처음 고국에 도착하신 곳이「태안」이고 그 뒤 옮기신 곳이 안면도이다.

  안면도는 무극도의 진업단 활동과도 관계 깊은 곳이라고 한다. 안면도의 농지와 원산도의 염전은 두 곳의 마을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두 번째로 간 곳은「창기리 우일재」였다. 이곳에는 83세 된 한 노인이 살고 계셨다. 도주님께서 안면도 창기리에 있는 재실 홍일우에서 주문공부, 주역, 대학 등을 공부하실 때 이동만이라는 분이 도주님을 가까이 모셨다고 한다. 이곳에 살고 계신 할아버지께선 15세때 도주님께서 공부하시는 모습을 직접 보셨다고 한다.

  할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 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은「학생이니 만큼 공부 열심히 하고 남을 잘 되게 하는 사람이 큰 인물이다」라는 말씀이었다. 참고로 재실 홍일우는 용봉산 아래에 있는데 이곳은 용의 허리에 해당한다고 한다.

  이곳을 나와서 우리는 전주시 평화동 평화회관으로 가서 1박을 했다.

  평화회관에 신세를 진 후 우리는 전라북도 완주군 구의면 항기리에 있는「대원사」로 갔다.

  대원사는 모악산 동쪽 기슭 해발 420m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는 2.7Km를 등반해야 했다. 나는 너무 힘이 들어 주위의 수려한 경관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다.

  대원사는 상제님께서 신축년(辛丑年)에 49일간 불음불식하며 공부하신 곳이다. 우리는 그 자리를 찾아 세 장소를 돌아보았는데 그 중에서도 마지막에 본 곳이 제일 유력한 곳이었다. 왜냐하면 다른 두 곳은 새로 지은 건물이었고, 마지막에 본 곳은 터만 남아 있고 주위엔 기와장과 썩은 나무조각만이 있었다. 그리고 이곳이 산의 정기와 제일 가까운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대원사에는 진묵대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성지순례하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신비로움이 더해 갔다.

  대원사를 뒤로하고 다음으로 우리가 간 곳은 전북 김제군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금산사였다.

  금산사는 진표율사가 출가하기 이전, 경덕왕 때에 이미 사찰이 창건되어 있었으며, 대찰(大刹)의 면모를 갖춘 시기는 진표율사가 중창을 이룩한 이후로 보여진다.

  여러 차례의 소실과 보수를 거듭해 오던 중 1934년 3월 9일 밤 원인 모를 불로 미륵전의 주불(主佛)이 소실되어 당시 주지 성열스님에 의해 미륵전이 보수되었고, 1986년 12월에 대적광전이 소실된 상태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미륵불은 세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은 39자 높이의 석고불로 조성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동곡약방은 전북 김제군 금산면 청도리 동곡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한 가옥집이었다.

  동곡약방이 설치되었던 집 뒤엔 상제님께서 직접 식수하셨다는 대나무 밭이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었고, 천계탑도 있었다. 동곡약방에서 보니 번개가 쳤던 제비봉과 수리개봉이 보였다.

  동곡약방을 바삐 나와 우리가 찾아간 곳은「무극도장터」였다. 전라북도 정읍군 태인면 구태인 도창현 치마바위 부근에 자리하고 있는 무극도장 터는 진보된 현대적 의미의 교단 시설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무극도장 뒷편에는 깎아놓은 듯한 바위가 마치 치마처럼 놓여져 있어 그것을 치마바위라고 부르고 있었다. 또한 도장 앞마당 가운데에 보면 상제님께서 이것이 젖샘이라고 말씀하신 우물자리가 있는데 지금은 시멘트에 묻혀 옛 모습을 찾기 어려웠다. 아쉬웠다.

  다음으로 우리는「시루산」을 관람하러 갔다.

  시루산은 전라북도 고부군 덕천면 신월리 손바래기와 우덕면 배장골에 걸쳐있는데 상제님께서는 탄생하시기를 바라는 봉우리, 즉 망제봉과 시루산의 이치로 오신 것이다. 우리는 시루산 주위의 객망리, 유왕골, 연촌 등의 지명이 모두 관련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내려와서 상제님의 생가를 차 안에서 보며 황토현으로 갔다.

  우리가「황토현」에 도착하니 관람시간이 지났었다. 하지만 우리가 대순진리회에서 온 것을 아셨는지 그곳에 계신 분이 이내 관람을 허락해 주셨다. 이곳에서 우린 동학혁명의 역사를 대략은 알게 되었다. 또 상제님과 동학이 어떤 관계인지도 약간이나마 알게 되었다.

  여러 곳을 돌아보게 되자 차츰 어떤 기운이 존재함을 느끼게 되었고 그 동안 내가 확신하지 못하고 있었던 사실들이 위대한 진실임을 깨달았다.

  우리는 여러 곳을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진 몸을 이끌고 계룡산으로 가서 숙소에서 식사를 했다. 어느 정도 기운을 차린 우리는 교화위원들과 질의응답 및 토론 시간을 가졌고, 조별 토론회도 열었다.

  젊음 때문인지 기운을 받아서인지 모두들 토론시간에는 피곤한 기색이 전혀 없었다. 아마 후자 때문이 아닐는지…

  다음날 날이 밝자 우리는 동학사로 갔다.

  동학사는 충남 공주군 반포면 학암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계룡산으로 1.8Km를 올라간 곳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동학사의 의의는 충신들의 혼이 깃든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예부터 이 사찰은 충신들의 은신처이며 한(恨)의 응집처였고 유ㆍ불이 함께 공존하는 특징을 지녔는데 지금은 비구니들이 수도를 하고 있었다.

  동학사는 조선의 오악(五岳)중의 하나인 계룡산에 위치한 탓인지 공기도 맑고 깨끗했다. 동학사를 내려와서 점심을 먹고 우리는 개태사로 향했다. 산장의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학생들이 식성이 좋다며 내년에 또 오라고 말씀하셨다. 기분이 너무 좋았다. 도인들이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받는 사람들이 되는 것이 너무 좋았다.

  충남 논산군 연산면 천호리 108천호산 서쪽 밑에 위치한 개태사는 왕건 때 건립된 사찰이다. 사찰로 들어가면서 먼저 눈에 띈 것이 감나무인데, 보통 감나무가 아니라 감나무에 엄나무가 기생하여 둘 다 죽어가고 있었다. 

  개태사는 관운장의 신위를 모셔 놓았으며, 나반존자도 모셔 놓았는데 나반존자는 홀로 도를 닦아 독성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또 13개의 방석 위에 모셔져 있고 화장도 되어 있었다.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은 이미 현세에 미륵이 출세하였음을 말한다고 한다.

  개태사에는 미륵 삼존불이 모셔져 있고,「철확」이라는 큰 쇠솥(500명의 승려가 먹을 수 있는 밥을 지을 솥)도 있었다.

  다음날의 날씨가 심상치 않아 일기예보를 듣고 우리는 다음날 예정이었던 법주사까지 돌아 보기로 했다.

  그래서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 함내리, 속리산 서쪽 기슭의 법주사로 갔다. 법주사는 해원상생, 보은상생의 상제님의 진리가 있으며 속리산은 속세의 사람들이 증산, 정산의 산을 떠나지 결코 산은 사람을 버리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있다. 법주사는 법이 머물러 상주하는 곳이니 구천상제님의 종통을 이어받으신 도주님께 구천 상제님의 유지를 받들어 50년 공부 종필로서 후천선경의 모든 법을 짜 나가시는 모든 진리가 담겨있다.

  한가지 주목할 일은 최근에 청동미륵불을 세울 때 오색서광이 세 차례나 일어나 미륵불의 영험을 보여준 일이다. 청동미륵불의 후광에는 10개의 애기불이 있었다. 청동미륵불의 크기는 어마어마했다.(귀의 길이만2m)

  미륵불 내에는 108계단과 미륵반가사유상이 모셔져 있었다.

  성지순례 마지막 날은 비가 보슬보슬 내렸다.

  우리는 화양구곡의 만동묘로 갔다. 예정에는 없던 곳을 간 것이다. 비는 맞았지만 정말 행운이었다.

  이곳은 상제님께서 중국의 황극신을 우리나라에 옮겨오는 공사를 보신 곳이다. 도주님께서 이곳에 오셨을 때에는 비가 아주 많이 내렸었다며 교화위원께서 우리가 온 날도 도주님께서 오셨던 날과 비슷한 환경이라고 하셨다. 그리고 비가 더 많이 내려야지 더욱 비슷한 환경이 될 것이라는 말씀도 하셔서 나는 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용암방면 청주회관으로 가서 점심과 저녁을 맛있게 먹고 서울로 올라왔다. 성지순례의 4막이 내렸다.

  3박 4일 동안 느낀 점이 많다. 전혀 모르고 있었던 사실들, 약간은 오해하고 있던 일들을 자세히 알고 나니 기쁘기까지 했다. 그리고 모든 도인들이 너무도 착하다는 것을 새삼 또 깨달았다. 모두 힘들었지만 한번도 눈살을 찌푸리지도, 인상 쓰지도 않고 잘 견디어 주고, 서로를 위해 주었던 그 마음씨.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도인(道人)같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성지순례를 통해 나의 단점을 알았고, 인격수양에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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