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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7년(1997)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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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 아버지의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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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환생

 

 

아버지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 싸늘하게

식어가는 손을 잡고 무아지경속에 태을주 봉송.

한참 뒤 실로 엄청난 기적이 일었났다...    

 

     

   김애순 <교무ㆍ잠실17방면>

 

  2월 1일 토요일 새벽 다섯시경 되었을까. 광주 집에서 급한 전화가 왔다.

  전날 저녁 4시경에 부모님과 막내 동생이 복어요리를 하여 식사를 했는데 식중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병원으로 옮겼지만 동생은 거의 회복이 되었는데 부모님은 밤새 혼수상태 였다는 것이다.

  다행히 어머니는 의식이 조금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계속 혼수상태라고 하면서 빨리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일단 전화를 끊고 생각해 보았다.

  “….복어 독은 8시간 내에 완전 해독이 되지 않으면 어렵다는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응급실로 전화를 했더니 갑자기 아버지의 건강상태가 더 악화되었다고 하면서 동생이 막 울음을 터뜨렸다.

  곧 바로 대강 짐을 꾸려 가지고 광주행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입춘을 지난 날씨는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포근하고 조용해 보였다.

  차 안에 전화기가 설치되어 있어서 조마조마 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었다.

  다시 남강병원 응급실로 전화를 했더니 중환자실로 다시 하라고 한다. 갑자기 몸에서 기운이 쭉 빠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며칠전의 전화 내용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곧 구정이 다가오므로 아버지 외투를 하나 사서 구정 때 가지고 내려가겠다고 했더니 빨리 입어보고 싶다고 하시면서 설날 전에 도착 하도록 소포로 보내달라고 하셨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까 아마 그 때 소포를 보냈었더라면 지금쯤은 도착해서 입어보셨으리라는 회한이 들었다.

  다시 한 가닥의 희망들 가지고 중환자실로 전화를 했더니 새벽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그냥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자식 된 도리로 부모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것이 무엇보다도 죄스러웠다.

  유난히 차창 밖으로 보이는 무덤들이 여기저기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중환자실에 들어섰을 때의 광경은 정말 썸짓했다.

  병실 내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병실 한 가운데에 서서 웅성거리던 사람들 몇몇이 문 앞에서 머뭇거리는 나를 불러서 가보니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가운데 침상에는 TV 로만 보아왔던 의료기기들의 선이 몸 여기저기 꽂혀 있고 아버지가 짙은 잿빛 얼굴로 누워 게셨다.

  내가 다가가자 모두 자리를 비켜주었다. 얼굴을 만져보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차가왔으며 형언할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손목을 만져보니 체온이 조금 느껴졌다. 주위 사람들한테 물어보니 이미 새벽에 돌아가셨는데 임종을 지켜보지 못한 자식들한테 마지막이 될 아버지의 체온을 느껴 보게 하려고 어머니의 고집으로 의료기기에 의해 심장을 뛰게 해 놓았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중환자실 한쪽에 어머니도 누워 계셨다.

  어머니는 의식은 회복되었지만 의사들은 아직 안심할 수 없는 상태라고 했다. 내가 도착한 지 얼마나 지나자 가족들이 다 온 것을 확인한 담당의사가 가족들을 모두 불렀다. 이제 영안실로 옮기라는 것이다.

  눈앞이 깜깜했다. 우리 가족들은 기적도 있을 수 있다고 우기면서 조금만 시간을 더 달라고 했다. 무엇보다도 아직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시는 어머니께서 이 사실을 아시면 그 충격으로 인한 결과는 너무나도 뻔했기 때문이다.

  의사들도 이 사실을 알았는지 앞으로 여섯 시간 후에 영안실로 옮길 테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배려를 해 주었다. 난 가족들한테 아버지하고 둘만 있게 시간 좀 달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 옆에 무릎을 꿇고 앉아서 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금방 내 손은 흥건하게 땀이 고였다.

  빙 둘러있는 환자들과 보호자들 그리고 병원 관계자들의 시선이 나에게 집중되어 있었지만 이미 내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지난 날들이 화면처럼 머리 속을 스쳐 내려갔다. 처음에는 부모님이 입도식을 무사히 끝냈을 때의 기쁨 그리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주시면서 가끔씩 집에 내려갈 때마다 같이 기도를 모셨던 모습들이 눈 앞에 선한데….

  얼마나 지났을까 갑자기 머리가 어지러워서 눈을 떴더니 아버지의 콧잔등에 작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그러나 내부의 기온이 높으므로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이라 생각하고 잠시 바람 좀 쏘일 겸 밖으로 나와 방면에 연락을 했다. 연락소에서도 뜻밖의 소식에 놀라면서 영안실로 옮기기 전에 다시 한 번 연락을 해달라고 했다.

  십여 분쯤 밖에 있다가 안으로 들어갔더니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나 있었다. 입술과 눈 주위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의사들도 몰려 있었고 주위의 환자 보호자들도 모두 모여 있었다.

  그러나 잠시 후 이것저것 살펴보던 의사가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다고 하면서 좀 더 지켜보자고 하였다.

  약속된 시간이 다 될 무렵 발끝이 움직이기 시작하더니 굳었던 몸이 조금씩 풀리기 시작하고 나중에는 희미하게 의식이 돌아왔다.

  가장 먼저 어머니한테 이 사실을 알리고 연락소에 연락했더니 선감께서 지극정성으로 상제님께 기원하면 회생하실 줄 모르니 꼭 아버지 곁에서 지키라고 말씀하셨다.

  내가 들어가서 이 사실을 전하자 모두 놀라면서도 반신반의 하는 기색이었다.

  선감께서 말씀하신대로 날이 밝아 올 때까지 난 아버지 곁을 떠나지 않고 서서히 깨어나시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일요일 아침 시력과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기적처럼 아버지는 깨어나셨다. 병원측에서도 기적이라고 하면서도 11시간동안 죽어 있었으므로 신체일부분의 마비 등은 각오하라고 했다.

  3일 째 되는 날에 정상적인 모습으로 회복되어서 3개월 정도의 입원을 해야 된다는 병원측의 진단을 깨고 부모님은 그 주 안에 퇴원하셔서 설날을 맞이하게 되었으며 지금은 아주 건강하게 생활하고 계신다.

  연락 받은 사람들로부터 조문이 오는 등의 에피소드도 있었지만 내게는 또 한 번 도심을 갖는 큰 계기가 되었다. 아울러 이 기회에 비록 지면을 통해서지만 관심을 가지고 염려해 주셨던 분들게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큰 용기를 주신 선감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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