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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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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지신(溫故知新) : 뒷집에 신영감

뒷집에 신영감

 

 

글 교무부

 

  옛날에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며느리가 있었다.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집에 오자 시어머니가 시주를 하면서 스님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극락에 갈 수 있나요?”

  “할머니, 나무아미타불을 하루에 세 번씩만 하십시오. 그러면 극락에 갑니다.”

  “스님, 참 쉽소. 나무아미타불이 뭐가 어렵습니까. 하루에 세 번 아니라 삼백 번이라도 하겠습니다. 여기 두둑하게 시주를 하오리다.”

  이렇게 말을 하자 며느리는 속으로 비웃었다.

  ‘노인네가 죽으면 극락은 가고 싶은지 곡식 한 톨, 밥풀 하나에도 인색하던 분이 저리 마구 인심을 쓰는구나.’ 이러면서 ‘나무아미타불이나 제대로 외웠을까.’ 하는데 어머니가 묻는다.

  “아까 스님이 뭐라고 하면 극락에 간다고 했냐?”

  “나무아미타불요.”

  퉁명스럽게 말하였다. 그런데 몇 발자국도 못 가서 또 시어머니가 묻는다.

  “아까 스님이 뭐라고 하면 극락에 간다고 했냐? 원, 내가 총기가 없어서…”

  “아니 시주도 그리 많이 하고 얻은 그 소중한 말을 잊으셨어요?”

  좀 가르쳐 달라고 하니까 며느리가 심술과 장난기가 생겨서 엉뚱하게 가르쳐 주었다.

  “뒷집에 신영감 그러지 않았습니까?”

  이러니까 시어머니가

  “아이구, 그리 쉬운데 내가 왜 잊어버렸을까? 아무려면 내가 뒷집 홀아비인 신영감을 모를까? 이제는 잊지 말고 하루에 세 번, 네 번, 백 번이라도 해야지.”

  이러면서 시간만 나면 불러대는 것이 뒷집 신영감이었다.

  “뒷집에 신영감, 뒷집에 신영감, 뒷집에 신영감…”

  이런 시어머니를 며느리는 내버려 두었다. 제대로 나무아미타불이라고 하면 또 잊어버릴 테니 그냥 둔 것이다. 그런데 시어머니는 뒷집에 신영감을 잘도 외웠다.

  그러나 아들은 이런 내용을 모르고 어머니가 뒷집에 신영감만 찾으니 ‘우리 어머니가 평소에 뒷집 신영감을 맘에 두고 저러시나 보다. 죽은 사람 원도 풀어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풀어주지 않으랴.’ 하고 어머니에게 가서 조용히 물었다.

  “어머니, 뒷집에 사는 신영감을 불러오리까? 왜 진작 말씀을 아니 하셨습니까?”

  아들이 이러거나 말거나 어머니는 여전히 뒷집에 신영감만 찾으니 아들은 어머니 골수에 맺힌 소원이라고 여기고 뒷집에 갔다.

  “신영감님, 우리 어머니가 영감님을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는 줄을 몰랐는데 저리 영감님만 찾고 있으니 이제 우리 어머니와 함께 계시지요.”

  이러니 신영감이라고 어찌 마다할 것인가? 다시 생각할 것도 없이 응낙하였다. 영감은 목욕을 한 뒤 새 옷을 입고 할머니가 있는 방에 들어갔다. 들어가니 본 척도 않고 “뒷집에 신영감, 뒷집에 신영감, 뒷집에 신영감” 한다. 신영감은 그토록 자기를 찾으니 기쁘기도 하고, 정작 찾아왔는데도 거들떠보지 않고 자기 이름만 불러대니까 의아스럽기도 하였다.

  “내가 왔소이다. 왔단 말입니다.”

  이러자 이 시어머니는 잠깐 신영감을 보고,

  “아, 오셨습니까?”

  이러더니 또 연이어 뒷집에 신영감만 찾는다. 곁에 와 있는데도 찾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인가? 아직 초저녁이라서 여러 사람 이목이 있으니 한밤이 되기까지 기다리자는 꾀인가? 그런데 그것이 다 아니었다. 한밤중에도 쉬지 않고 뒷집에 신영감을 불렀다. 분명 자기와 한방에 손만 뻗치면 만질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데, 거들떠보지도 않고 말로만 찾는다. 그렇게 꼬박 밤을 새웠다.

  “허참, 이런 변이 다 있나?”

  마음이 상한 신영감이 소매를 떨치면서 일어서자 그때서야,

  “왜 가시오? 밥 좀 자시고 가시지 아니하고.”

  이러더니 이내 뒷집에 신영감만 또 찾는다. 왔을 때나 있을 때나 떠날 때나 어찌된 판인지 신영감만 찾는다. 다른 신영감은 분명 아니다. 뒷집에 사는 신영감은 자기 하나뿐인데, 본인이 왔는데도 찾으니 이를 어찌하랴? 아들도 고민이요, 신영감은 노발대발이었다.

  며칠 후에 아들이 사정사정하여서 다시 모셔왔는데 여전히 본인을 앉혀 두고서 뒷집에 신영감만 찾으니 보다 못한 신영감이 화가 나서 날이 새자 나가 버렸다. 이제는 어머니의 소원도 들어줄 수가 없게 되었다.

  세월은 흘러 이 시어머니가 저세상에 갔다. 저승에 온 이 노인을 염라대왕은 극락에 보냈다.

  “적어도 염불을 하는 동안에는 죄를 지을 수가 없지 않느냐? 마귀가 틈 탈 여유를 주지 아니하고 순수하게 오직 극락 가기를 염(念)하였으니 극락에 갈 만하다.”

  그리고 얼마 후에 아들이 죽어서 저승에 오자 염라대왕은

  “어머니가 엉터리 나무아미타불을 왼 줄 모르고, 그것이 신영감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인 줄 알고 신영감을 불러 한방에 들게 한 것은 효심이요 순수심이다. 그러니 극락에 가거라.” 하였다. 그런데 며느리가 저승에 오자 지옥으로 내치면서 염라대왕이 호통을 쳤다.

  “너는 시어머니를 속이고 남편을 속이고 신영감을 골탕 먹였다. 처음에 잘못된 것을 가르쳐주고 그것을 방치하여 여러 사람을 못살게 했으니 이것도 죄다. 사람이 한때 부모에게 잘못하기도 하지만 줄곧 회개하지 아니한 것은 용서할 수 없는 죄이니라. 신영감이 오죽 애가 터졌겠느냐? 남편이 오죽 민망하였겠느냐? 이러니 너는 지옥감이다.” 하였다.

  “그렇지만 지옥에 가는 것은 너무하지 않습니까?”

  “아니다. 지옥보다 더한 데가 있다면 나는 너를 그리로 보내고 싶구나. 부모를 속인 죄, 남편을 속인 죄, 이웃을 속인 죄를 아직도 모른다는 말이냐? 자기는 알면서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을 깨우쳐 주지 아니하는 것은 처음부터 잘못을 모르고서 잘못하는 것만 못하니라. 남의 실수를 즐기는 것, 이것이 어찌 지옥에 갈 죄가 아니라는 말이냐?”

  며느리는 이제 더 할 말이 없었다. 울면서 지옥으로 갔다. 가면서

  “염라대왕님, 왜 제가 이승에서 살고 있을 때에 저승사자를 시켜서라도 가르쳐 주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러면 제가 지옥에 안 갈 것인데….”

  이러자 염라대왕이 말하였다.

  “딱하기도 하구나. 너의 양심이, 상식이, 일상적인 사고방식이 바로 저승사자가 아니더냐? 네 자신도 뒷집에 신영감이 결코 나무아미타불이 아님을 알지 않았느냐? 꼭 죽어서만 저승사자가 가는 것이 아니다. 보통 상식이, 남에게 손가락질을 받지 아니할 처신이 바로 저승사자이니라. 그러니까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줄곧 저승사자와 함께 있었다는 말이다.”

  이 이야기를 읽고 “도인들은 항상 어디서나 신명의 수찰이 있음을 명심하고 속임과 거짓이 없는 도인의 본분을 바로 지켜야 한다(『대순지침』 p.39)”는 도전님 말씀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돌아본다면 도통으로 가는 길에 한 걸음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리라.

 

 

 

 

참고문헌

ㆍ최래옥 / 『되는 집안은 가지나무에 수박 열린다2』 / 1993 / 미투 / pp.88~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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