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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0년(2010)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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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40) : 상제님에 대한 믿음으로 걱정을 없애다

상제님에 대한 믿음으로 걱정을 없애다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4[甲辰]년 11월에 상제님께서는 전주에 가셨다. 그 무렵 전주에서는 민요(民擾)가 일어나 인심이 매우 흉흉하였다. 상제님께서는 김보경(金甫京, 1860~1934)을 김병욱(金秉旭, 1874∼1938)에게 보내시어 김병욱이 어떻게 이 소란을 다스릴 것인지 알아보게 하셨다. 당시 병욱은 전주의 질서를 유지하는 육군 진위대01 장교였으므로 이 소란을 수습해야 하는 임무를 맡고 있던 터였다. 물 끓듯 하던 민요를 다스릴 방책이 없었던 병욱은 보경을 반겨 맞으면서 상제님께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십사하고 간청을 드리도록 부탁하였다.

  병욱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이 다만 웃기만 하실 뿐이셨다. 그런데 그날 밤, 별안간 날씨가 추워지고 진눈깨비가 마구 내리기 시작하였다. 길가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추위와 눈비를 피해 모두 흩어졌고, 사흘 동안이나 계속해서 날씨가 춥고 진눈깨비가 내리자 다시 모일 수가 없었다. 결국 민요는 자연스럽게 진정되었다. 11월 하순이 되자 상제님께서는 원평에 이르셨다. 그때 전주에는 순찰사(巡察使) 박제빈(朴齊斌)이 전주 감영(監營)에 출두하여 전주 군수 권직상(權稷相)을 파면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미 박제빈은 10월에 정읍에 출두하여 정읍 군수 윤익병이 어리석어 제대로 정사를 처리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어 그를 파직시키고 있었다.02 병욱은 권직상의 수하였으므로 자신의 상관이 파면되면 자신에게도 해가 미치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원평에 계신 상제님을 찾아뵙고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여쭈었다. 상제님께서는 병욱에게 특별한 방책을 가르쳐 주지 않으시고 다만 “근심하지 말라. 무사하리라.”고 말씀하실 뿐이셨다.

  며칠 뒤 묘하게도 의정부 참정(議政府 參政) 김성근(金聲根)이 고종(高宗)에게 “각도에 순찰사를 파견한 것은 일처리를 살피고 백성들의 고통을 알아내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인데, 제대로 받들어 집행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폐단을 많이 빚어내고 있다고 합니다. 경기도 순찰사 이용구, 충청도 순찰사 이시재, 경상북도 순찰사 홍우석, 경상남도 순찰사 김연식, 전라북도 순찰사 박제빈, 전라남도 순찰사 안종덕, 강원도 순찰사 김성규, 황해도 순찰사 정규회를 모두 즉시 소환(召還)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하고 주청을 올리는 일이 있었다. 고종은 김성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즉시 그렇게 하도록 하였다.03

  박제빈은 권직상을 파면하기 위해서 전주로 들어왔으나, ‘박제빈은 관찰사 직책 수행을 멈추고 즉시 서울로 돌아오라’는 임금의 명령이 적힌 면관비훈(免官秘訓)도 때를 맞춘 듯이 전주로 내려왔다. 이에 따라 권직상은 파면 당하지 않고 무사하게 되었다.

  대개 이와 같이 종도들이 걱정하는 일을 상제님께 고하면, 그 걱정은 항상 무위이화(無爲而化)로 풀려 나갔다. 그러나 고하여 놓고도 걱정을 계속 하고 있으면 상제님께서 “내가 이미 알았으니 무슨 염려가 있느냐.”고 깨우쳐주시곤 하셨다.

 

 

 

  12월이 되자 상제님께서는 종도들을 데리고 모악산 용안대(龍眼台)에 올라가시어 여러 날 머무셨다. 금산사에서 용안대로 오르는 길은 매우 좁고 험했는데 그때 눈이 내려 길이 끊겨 버렸다. 마침 들고 온 양식도 떨어져 단지 두 끼니의 분량만이 남아 있었다. 이에 종도들은 엄동설한의 추운 날씨에 산에 갇혀 굶어죽게 되었다고 크게 걱정하였다. 그 걱정을 들으신 상제님께서는 남은 양식을 모두 털어서 식혜를 지으라고 명하셨다. 종도들은 양식도 부족한데 식혜를 지으면 어쩌냐고 걱정하면서도 상제님을 믿었기에 식혜를 만들어 올렸다. 상제님께서 종도들과 더불어 식혜를 나누어 드시자, 내리던 눈이 멈추고 해가 떠 날씨가 청명해지더니 쌓여있던 눈이 순식간에 녹아버렸다. 두절되었던 길도 뚫려 종도들은 상제님을 모시고 무사히 용안대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 이런 일들을 누차 겪어본 종도들은 상제님에 대한 믿음이 모든 걱정을 없애준다는 것을 더욱 깨닫게 되었다.

 

 

 

 


01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1895년(고종 32) 9월 지방의 질서유지와 변경수비를 목적으로 설치된 근대적 지방 군대.

02 『조선왕조실록』 음력 갑진년 10월 26일(고종 41년, 양력 1904년 12월 3일) 4번째 기사, “삼가 방금 계하된 전라북도 순찰사 박제빈의 주본(奏本)을 보니, 정읍 군수 윤익병(尹益炳)은 품성이 어리석고 일의 체모에 전매(全昧)하며 염치와 예방(禮防)이 없고 정사를 훼손시키므로 우선 봉고 파직(封庫罷職)하였다고 합니다”

03 『조선왕조실록』 음력 갑진년 11월 27일(고종 42년, 양력 1905년 1월 2일) 3번째 기사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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