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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3년(1993)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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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일대기 : 동학난(2)

동학난(2)

 

천하 匡救위해 周遊하심

    

 

<甑山의 생애와 사상에서 요약> 

 

▲ 전봉준 장군 동상

 

 

■ 종도를 안심시킴

  『자아, 우리가 먼저 떠나는 것이 옳겠다. 잠시 후에 다시 동학군이 쫓겨서 올 터이니 속히 이곳을 떠나자. 어서 일어나 가자』하고 상제님께서 앞질러 산을 내려가니 그 뒤를 두 사람이 따랐다.

  진잠에까지 도달했다. 문득 생각이 난 듯이 상제님께서는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네셨다. 『참으로 불쌍하다. 이곳에서 또다시 동학군이 많은 목숨을 잃게 되었으니 안타깝기 한이 없다. 그들이 미워서가 아니라, 사태가 기묘하게 움직이기에 말이다. 너희는 듣기 싫을 것이다. 과히 불쾌하게 생각지 말라. 사람이란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어서 흘리지 않아도 될 피를 흘리기도 한다. 어서 나를 따르라』고 말하고, 다시 으슥한 산길을 따라 이곳저곳을 가다가 아주 깊숙한 곳에 이르러 쉬셨다.

  얼마 지나더니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관군과 동학군이 접전을 벌인 것이다. 좀처럼 총소리가 멈추지 않았다. 세 사람은 깊숙이 산길을 타기 시작했다. 그러나 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무거운 발길을 질질 끌기 시작했다. 상제님께서는 그들의 발길을 재촉하듯이 앞장서서 조금도 속도를 늦추지 않으셨다.

  드디어 갑사가 있는 계룡산에 들어섰다. 멀리서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나 총소리가 멀리서 들린다. 총소리와 목탁소리가 뒤범벅이 되며 들려왔다.

  날은 아직 저물지 않았다. 계속 필성과 형렬은 무거운 발을 끌면서도 길을 재촉하여 총소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더 가다가는 해를 입을 것이 분명하니, 이 산 속에서 자고 가자』고 두 사람에게 이르고, 쉬도록 하셨다.

  시간이 한참 흘렀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한 중이 나타나더니 동학군이 노성(魯城)에 진을 치고, 도망치는 군사들을 붙들어 처단한다고 말을 던지고는 총총걸음으로 지나가버렸다. 이 말을 듣고 필성과 형렬은 겁을 먹고 떠날 생각을 했다. 그 기미를 알아차리시고 상제님께서는 『이 곳에서 쉬자는 것이 바로 그런 화를 피하자는 것이니, 오늘밤은 이곳에서 쉬고, 내일 아침에 떠나면 아무런 화를 입지 않을 것이다. 조금도 겁을 먹지 말고 염려를 놓으라』고 이르고 두 사람을 안심시켰다.

       

       

■ 주민들이 동학군에게 보복함

  다음 날 아침 일찍이 그 곳을 떠났다. 그들은 이제 화가 없으리니 갈라서 가도 좋다는 상제님의 말에 그래도 두려움을 느끼고 동행하기를 청했다. 함께 여산(礪山)에 와서 읍내를 피하고 샛길로 고산(高山) 읍내 장터로 향하셨다. 이것은 여산 읍내 사람들이 도주하는 동학 군사들의 옷을 벗겨 보복하려 하였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전주(全州)에까지 갔다. 상제님께서는 두 사람을 돌려보내셨다. 상제님과 작별하고 형렬은 구리골로, 필성은 닥뱀이 자기 고향으로 찾아갔다. 동학군은 우너평과 태인의 싸움에서 잇달아 패했다.

  동학군이 혁명에 실패한 후에 동학들은 기세를 펴지 못하고 잠복하였다. 이 틈을 타서 서교(기독교ㆍ천주교)는 그 세력을 신장하는데 힘을 쏟았다. 반면에 민중은 곤궁에 빠져 버렸고 의지할 곳을 잃었다. 사회는 불안과 위구(危懼)에 첩첩히 싸였다.

  그것은 관헌의 포학과 토색질이 전보다 더욱 심했고, 패주하여 잠복한 동학군의 잔병(殘兵)을 색출 소탕하는 작전이 펴졌기 때문이었다.

  이 소탕 작전은 관군의 협정 위반 행위였다. 조정은 동학에 대한 탄압을 중지한다는 동학군과의 협정을 지키지 않고, 관군은 협정에서 정한대로 군대를 해산하지 않고, 도리어 협정한 즉시에 군대를 전라도로 보내서 국부적으로 동학군의 잔병을 소탕하는 작전을 전개하였던 것이다. 더욱이 조정은 그 소탕에서 일본의 군대 세력을 빌려고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동학군 사이에 북접파와 남접파의 내분이 생겨, 전라도와 충청도는 그 파쟁의 도가니 속에 들어갔다. 이래저래 도탄에 빠진 것은 생민들이었다. 그래서 동학군에 대한 생민들의 최초의 동조가 식어져갔다.

  을미년은 상제님께서 나이 스물다섯 살이 되는 해이다. 고부 지방의 유생들은 동학란이 관군에 의해서 진압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 두승산(斗升山)에 모여서 시회(詩會)를 열었다.

  상제님께서는 거기에 나가셨다. 그 자리에 한 노인이 끼어 있었다. 잠시 후에 남몰래 상제님께 다가와서 조용한 곳으로 안내하고, 숨겨 두었던 책 한권을 정중히 넘겨주면서 읽어 보시라고 권유하였다. 그것을 받아 보셨다.

  그 후 상제님께서는 세상을 널리 구할 뜻을 품으시고, 직접 세정을 살피시기 위하여 주유의 길에 오를 것을 마음속에 정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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