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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3년(1993)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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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정심으로 수행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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正心으로 수행하라

 

                

홍은택 <평도인ㆍ공주2방면>

 

  예나 지금이나 도(道)를 구하는 사람들은 도는 어디에 있는가 와 같은 의문에 늘 부딪힌다. 도대체 도가 무엇이고 그 도는 어디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달마조사이후 중국의 선승들은 이러한 의문을 조사서래의여하(曺師西來意如何)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의 겉 뜻은 선종(禪宗)의 개조(開祖)인 달마조사가 인도에서 멀리 중국에까지 와서, 설법 한마디 하지 않고 구년간이나 숭산(嵩山)의 소림사에 면벽하고 들어앉아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이며, 그 속뜻은 도란 무엇입니까? 또는 도는 어디에 있습니까와 다르지 않다.

  한 중생이 선승(禪僧)을 찾아와 물었다. 달마조사(達磨祖師)가 동(東)쪽으로 온 까닭이 무엇입니까? 뜰앞의 전나무니라.예? 딱!

  그들이 선문답을 주고 받으며 앉아있는 산사(山寺)의 마당에는 희끗희끗한 전나무 한 그루가 솟아있고, 손가락을 들어 이를 가리키며 선승은 도란 곧 전나무이며, 그 대가 찾아 헤매는 도가 바로 저기 전나무 속에 깃들어 있다고 현답(賢答)한다.

  도라는 것은 세상 만물 하나하나에 깃들지 않은 곳이 없으므로 가까운 주변 사물에, 아니 자신의 마음 속에 들어앉아 있다는 말이다. 홀연대오(忽然大悟)할 큰 설법을 기대한 중생은 아연할 수 밖에 없다. 이게 무슨 뭉게구름 잡는 소리인가 하고 멍해 있는 찰나, 선승의 죽비는 중생의 어깻죽지를 사정없이 내려친다. 딱!!

  선승들은 깨우침의 한 방편으로 일갈(一喝) 혹은 주장자(柱杖子)를 즐겨 사용했다. 중생들이 미망에 사로잡혀 도를 눈 앞에 두고도 보지 못하고, 자신의 마음속에 지니고도 느끼지 못하며, 늘 바깥 세상에서 멀리 찾아 구하므로, 순간적 타격으로 그들의 정신을 불시에 기습함으로써 그들이 이미 지니고 있는 불성(佛性)을 마음의 감옥으로부터 일시에 해방시키려 했던 것이다.

  이렇게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을 안목으로 하는 선의 수도에도 십우도(十牛圖)는 자성(自性)을 탐구하고 마음을 닦는 과정을 소를 찾는(尋牛) 과정에 비유해 열 단계로 나누어 해설한 것이므로, 일견 선의 일반적 수도방식과 배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교리(敎理)와 계행(戒行)에 몰두함으로써 점진적으로 깨우침에 이르고자 하는 교종(敎宗)의 점수(漸修)와는 달리, 선종의 돈오(頓悟)는 참선을 통해 중생을 한번에 문득 깨우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도자의 근기에 따라 깨달음에 이르는 걸음걸이가 빠르고 더딘 차이가 있으므로, 깨우침의 인연을 만날 요행을 바라며 우리가 세월을 허송할 일은 아니다. 언젠가 다가올 그 인연의 끈을 좀더 가까이 끌어 당기기 위해서도, 가부좌 틀고 앉아 하세월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한걸음, 또 한 걸음 끊임없이 구하고, 또 구해야 할 것이다.

  이에 관해 선종의 육조(六祖) 혜능대사는 이렇게 설(說)한다.

  『법(法)은 본래 한 종(宗)이언만 사람이 남북을 두고, 법은 곧 한가지인데 보는데 더디고 빠름이 있을 뿐이니, 무엇을 돈점(頓漸)이라 이름하는가? 법에는 돈과 점이 없건만 사람에게 날카롭고 무딤이 있으므로 돈점이라 하느니라.』

  말씀인 즉, 경전을 끼고 앉아 자나깨나 자구해석을 일삼아 단계적 깨달음에 이르기를 바래서도 안될 것이요, 면벽하여 명상하고 염불이나 하면서 어느날 갑자기 깨달음이 내리기를 바래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이치는 둘이 아닌 하나요, 어느 한 쪽이기보다는 융합된 전체이므로, 도를 구하는 참된 수행방식은 참선 중에 틈틈이 『전경』을 읽어 참구(參究)할 것이요, 자구에 매달리지 말고 돌아 앉아 큰 뜻을 새기며, 때때로 주문을 외워 먼지 이는 마음을 다스릴 일이다.

  도를 닦는 방식과 관련하여 구천상제님께서 가장 두려운 것은 博覽博識이니라.고 하신 말씀은 짧은 어구에 깊은 함축적 의미를 담고 있다.

  상제님께서 김경학의 집에 대학교를 정하시고, 학교는 이 학교가 크니라. 이제 해원시대를 당하였으니 천한 사람에게 먼저 교를 전하리라하시며 널리 보고 듣고 체험할 것을 권하셨다.

  또한 서전(書傳) 서문(序文)을 많이 읽으면 도에 통하고 대학상장(大學上章)을 되풀이 읽으면 활연관통한다하셨으며, 천지조화로 풍우를 일으키려면 무한한 공력이 드니 모든 일에 공부하지 않고 아는 법은 없느니라고 이르셨다. 이렇듯 끊임없이 공부하라 이르셨으나, 한편으로 그 공부가 시비(是非)로써 성품을 기르려는… 웅패의 술이 될 것을 경계하셨다.

  갈고 닦음을 게을리 하지 않되, 그 배움이 웅패의 술에 빠지지 않으려면 공신에게 내리신 분부처럼 정심으로 수련하라 가르치셨다. 수도인에게 이 정심(正心)의 있고 없음은 박람박식을 긍정적 의미의 두려운것으로 만들기도 하며, 부정적 의미의 두려운것으로 만들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도인은 「도에 통하고」 「활연관통」하기 위해서 많이 읽고 되풀이 읽되, 명심하여 정심(正心)으로 수련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릇 도를 구하는 도인들은 박람박식을 얻기 전에 정심을 지녀야 한다. 아니다. 박람박식을 구하는 과정이 정심을 얻는 과정이다. 아니다. 정심은 이미 마음 속에 있으므로, 스스로 빛을 발하려고 할 때, 때가 긴 마음의 창을 닦아주기만 하면된다.

  모두 옳다. 정심 속에는 돈(頓)도 없고 점(漸)도 없다. 정심 속에는 선(禪)도 있고 교(敎)도 있다. 정심 속에는 시비분별이 없고 세상사람 모두를 한데 어우러져 살게 하는 큰 도가 있다.

  한 도인이 선감께 여쭌다.

  『상제님께서 서양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오셔서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이 동토에 그쳐 모악산 금산사 삼층전 미륵금불에 이르러 신미년에 강세하신 연유가 무엇입니까?』 『왕방산 자락의 진달래니라』 『예???』 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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