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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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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대순진리회 : 증산종단의 선도적 위치에 선 대순

증산종단의 선도적 위치에 선 大巡

 

          

김재완
한국 사회사상연구원 원장
한국 자유기고가협회 회장

    

  필자가 처가의 덕으로 증산(甑山)의 사상을 접한지도 어느덧 30여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무렵 우리 사회에는 증산사상에 대한 이해(理解)가 널리 확산되지 않았고 또한 증산사상에 대한 사회적ㆍ종교적 위상(位相)이 그다지 높게 평가되고 있지 않았다. 이는 그만큼 증산사상을 믿는 교역자들의 역할과 종교문화적 활동이 미흡했음을 입증해준다. 살펴보건대 증산사상은 조선조 말엽과 일본제국주의의 폭정하에서도 일반 대중 속에 깊숙히 스며들어 수백 수십만 명의 신도를 포용하기에 이르렀고 그 교의가 점차 은은히 포교ㆍ포덕 되어 민중적인 구원사상, 혹은 민족적인 사회사상의 뿌리가 되어 왔다.

  그러나 8.15광복 이후 물밀듯이 범람하는 외래사상과 외래문물에 밀려 우리의 전통사상과 민족종교는 자존(自存)과 자긍(自矜)의 나래를 마음대로 펴지 못했다. 그와같은 사회 현실 속에서 증산교인들의 활동도 적지않게 위축되어 있었다.

  단기 4298(1965년)을사년 봄. 그 무렵 필자는 모 대학의 전임 강사직과 우리나라 굴지의 모재벌회사 연구실장직을 맡고 있을 때이다. 마침 필자의 장인께서 이정립(李正立)씨와 함께 오셔서 「대순전경(大巡典經)」의 6판 발간을 위한 의논을 해왔다. 그 내용인즉 신도들이 해독하기 어려운 구판(舊版)을 한자현역국문본(漢字顯譯國文本)으로 또 다시 새롭게 편제하는 작업이었다.

  「대순전경」이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되기 까지 필자와 필자의 처는 이 작업(편집ㆍ교정 등)에 시종일관 물심양면으로 일조(一助)를 해드렸다.

  바로 이런 일이 계기가 되어 필자는 증산사상(甑山思想)과 대순진리(大巡眞理)에 대한 관심이 깊어지게 되었다. 그 후 필자는 그 동안 전공해왔던 「법철학」이나 「사회정책」분야 외에도 「세계종교」「외래종교」「신흥종교」「민족종교」등에 심취되어 비교 연구하면서 우리나라가 다 종교사회임을 더욱 감지했고 또한 증산교계의 교단이 숱하게 분파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난립ㆍ분열현상이오, 어떻게 보면 통합의 힘을 향한 나눔의 현상 일는지도 모른다. 흩어지면 또 다른 구심점에 의해 다시 모아지는 힘의 원리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증산교계인 대순진리회(大巡眞理會)의 발전하는 모습을 눈여겨 살펴보면 그야말로 세인(世人)을 놀라게 한다.

  대순진리회는 증산(甑山)의 교맥을 순수하게 계승하여 창교(1969년 4월)한지 불과 23년밖에 안 되는 종교단체 이다. 대순진리회는 교의(敎義)가 정립된 전경(典經)이 있고 그 교의에 따른 신도(약 4백여만명)가 있으며, 따라서 교의에 기초한 신도들의 신앙의식과 행위규범이 설정되어 있고, 거기에 종교적 시설과 문화적 교육시설이 구비되어 있다. 즉 네가지의 종교단체 구성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는 셈이다. 실로 증산종단의 선도적 역할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순진리회는 「음양합덕(陰陽合德)ㆍ신인조화(神人調化)ㆍ해원상생(解冤相生)ㆍ도통진경(道通眞境)」의 대순진리(大巡眞理)를 종지(宗旨)로 하여 성(誠)ㆍ경(敬)ㆍ신(信)의 3법언으로 수도의 요체를 삼고 안심(安心)ㆍ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의 훈전(訓典)을 삼아 윤리 도덕을 숭상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으로 하여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포덕천하(布德天下)ㆍ구제창생(救濟蒼生)ㆍ보국안민(輔國安民)ㆍ지상천국(地上天國)을 이룩한다는 교리를 갖고 있다.

  구천상제(九天上帝)께서 인간으로 강세(降世)하셨다는 증산(姜一淳ㆍ1871.9.19 ~ 1909.6.24)께서는 20세기 개벽벽두에서 천하광구(天下匡救)의 공사(公事)를 시작하여 9년 동안을 계속하시다가 39세에 화천(化天)을 하셨다. 다시 말하자면 9년간 대순사상을 제창하신 천지공사(天地公事)를 역사한 것이다.

  대순진리라 함은 간단히 말해서 막힌 곳을 뚫어놓는다는 뜻으로 통한다. 서양과 동양의 가로막힘 그리고 북과 남의 차단, 서학과 동학의 대립, 정신계와 물질계의 혼란, 상(上)과 하(下)의 차단, 신명세계의 갈등 등, 모든 막힘을 뚫으려는 것이 대순의 진리이다.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종교라는 것은 신(神)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의식(儀式)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 함은 물론이오, 고통과 아픔과 가난과 위험과 불안에서 구제 받고자 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이다. 대순진리회도 이러한 신앙체계를 갖추고 있다고 자부하기에 충분하다.

  대순진리회는 1958년 3월 6일(음) 도주(道主) 조정산(趙鼎山)의 유명에 의하여 현재의 박한경(朴漢慶) 도전(都典)이 종통(宗統)을 계승하여 1969년 6월에 서울 성동구 중곡동에 중앙 본부도장을 창건했다.

  그리고 1972년 3월부터 대순진리의 포덕ㆍ교화ㆍ수도사업과 구호자선ㆍ사회복지ㆍ교육사업을 종단 기본사업으로 삼아 왔다.

  그리하여 그 후 대순장학회의 발족(1976. 4.)과 학교법인 대진학원의 설립(1984. 2),대진고등학교 설립(1984. 6), 여주도장 준공(1986.12), 대진여자고등학교 설립(1988.2), 제주수련도장 준공(1989.7)여주도장 본전 증축 및 도장 내 회관 건립(1990.12) 등의 사업을 달성했으며, 또한 1992년 3월에는 대진대학교를 개교하기에 이르렀다.

  솔직히 말해서 하나의 새 종교가 불과 20여년 만에 이처럼 장족의 발전을 했다는 것에 그 누구도 놀라지 않을 수 없으며 그토록 대세의 교단으로 형성되기까지 노력을 아끼지 않은 교역자(敎役者)들에게는 치하(致賀)와 함께 높은 평가를 해 줄 만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1988년의 초가을, 필자가 각 대학교의 종교학 교수 등 11명과 함께 대순진리회를 방문하여 그곳의 영대를 비롯한 각종 종교시설과 각급 육영사업 시설을 두루두루 살펴 보았을 때보다 지금의 대순진리회의 모습이 보다 더 밝은 내일을 기대하게 해준다.

  여기에 꼭 부연(敷衍)코자 하는 것은 일부 교역자들의 타 종교에 대한 비하적 자세 시정(是正)등을 요구하는 사회적 시각에 소홀하지 않기를 외람되지만 당부하고 싶다. 극소수 신도의 실수나 오류가 자칫 잘못하면 그 종교 전체의 위상을 욕되게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때는 바야흐로 국제화 개방화의 물결이 넘실거리는 차제에 아무쪼록 대순진리회의 교의에 따른 모든 공사(公事)가 하루 빨리 세계화 되고 인류화 되어 인간개조와 정신개벽으로 지상선경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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