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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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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 돈황의 역사가 가슴을 뛰게 하다

돈황의 역사가 가슴을 뛰게 하다

 

 

대순진리회 중앙종의회 의장 鄭 大 珍

 

▲ 이화원

 

 

  2007년 9월 10일 김해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들녘의 황금 물결이 여행에 대한 기대를 크게 했다. 어느새 가을을 맞아 결실을 뽐내는 너른 평야와 조림이 잘된 산림, 그리고 700리 줄기를 잇는 낙동강이 어우러져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말로만 듣던 돈황(敦煌), 중국의 수도 북경에서도 네 시간 동안이나 비행기를 타야 갈 수 있는 돈황으로 간다는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북경에 도착한 뒤 먼저 이화원(和園)에 들렀다. 이화원은 중국에서 보존이 가장 잘 되어있는 옛 정원으로 황실 원림과 행궁이었다. 전당, 누각, 정자가 도합 3,000여 칸으로 황제와 황후가 정치 활동을 하며 휴식, 유람하던 곳이다. 인공으로 만들었다는 드넓은 곤명호(昆明湖)는 둘레가 8km나 된다고 한다.

  특히 장랑(長廊)은 동쪽의 요월문에서 서쪽의 석장정까지 총 길이가 728m, 도합 273칸으로서 중국 회랑 건축 중 가장 크고, 제일 길며, 명성 또한 최고로 높다. 장랑의 한 칸 넓이가 8척쯤 되는데 100개쯤 헤어보다가 그만두고 말았다. 회랑이 끝나는 장랑 자락에서 산을 보니 대 위에 5층 불향각(佛香閣)이란 건물이 보였다. 불향각은 돌로 쌓은 20미터 높이의 기석 위에 건축된 것으로 8개 벽면으로 설계되었다. 옛날에 서태후(西太后)가 이곳에서 불공을 드렸다고 한다. 서태후를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녀는 청나라 제9대 황제 함풍제(咸豊帝)의 귀비로서 함풍이 죽은 후 ‘수렴청정’을 하며 48년 동안이나 조정의 대권을 독점하였다.

  곤명호 가운데에 위치한 남호도(南湖島)에 있는 건물은 황제가 독서하던 곳이라고 한다. 이화원을 둘러보고 나오는 도중에 황제의 집무실인 인수전(仁壽殿)의 거창한 건물과 서태후의 전용 극장이었던 덕화원(德和園)을 구경하고 징두(晶都)국제호텔로 왔다.

  9월 11일 아침에 짐을 챙긴 후 버스를 타고 비행장으로 갔다. 비행기를 타고 다시 4시간 가까이 중국 대륙을 내려다보며 우루무치를 향해 하늘을 날았다. 하늘에서 보니 드넓은 땅의 규모를 새삼 실감할 수 있는지라 부러운 마음이 더했다. 어느 순간 천산(天山)의 설봉(雪峰)들이 눈에 들어왔지만 사막(沙漠)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지평선(地平線)과 천평선(天平線)이 다 보일 만큼 넓은 땅이 눈앞을 압도하여 도대체 대륙의 끝이 어디인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목적지 근처의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니 얼마 전 가보았던 카자흐스탄국과 똑 같은 산야의 황무지였다. 초목마저도 카자흐스탄과 똑같은 형국이었다. 아마도 이곳 우루무치에도 카자흐스탄족들이 와서 머무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 “중국은 대국이다.” 하는 말들을 들었다. 나 자신이 북경, 상해, 계림, 항주, 소주, 안중근 의사가 일본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사살한 흑룡강성 하얼빈역과 시내, 운남성의 곤명, 장가계(張家界), 원가계(袁家界), 무이산(武夷山), 주자의 본산지 하문시, 황학루(黃鶴樓), 장강, 삼협(三峽), 신농계(神農溪), 유비와 제갈공명 및 관운장과 장비를 모신 백제성(白帝城) 등등 중국 여러 곳을 여행해 보았건만 우루무치에서 중국 대륙을 보면서 정말 대국이라는 걸 비로소 실감했다.

  고비 사막의 버려진 땅, 풀도 나무도 자라지 않는 불모의 땅들을 보면서 중국이 왜 그렇게 국토를 넓히려고 욕심을 부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과학이 발달된 오늘에야 그 수수께끼가 풀리고 있는 셈인데, 황무지인 줄 알았던 그 불모의 땅에 지하자원이 무한히 매장되어 있다고 한다.

  비행기에서 내린 뒤 천산(天山)의 대자연을 일부나마 보기 위해 관광에 나섰다. 고속버스로 1시간 40분을 올라간 뒤 공중의 리프트를 타고 올라 다시 소형 버스로 이동하니 과연 천산 산봉에 천지(天池) 큰 연못이 눈 안에 들어왔다.

  천산은 우루무치 최고의 관광지라고 할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시내에서 북동쪽으로 불과 100여 km만 가면 되는 천산산맥의 고지대에 있는 천지는 몽골어로 성스러운 산을 의미하는 보그다봉(博格達峰·5445m)의 중턱에 있다. 해발 약 2,000m 지점에 있는 이 호수의 수심은 100m 가까이 되고 아름다운 풍경이 관광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름에는 눈이 쌓인 천산산맥을 보며 호수 위에 떠있는 유람선을 타고 산바람을 쐬는 피서지가 된다. 저절로 만들어진 둑이 물을 가두고 이런 저수지가 점점 커져 커다란 호수를 이루었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만든 호수가 아니고 무엇인가. 호수의 뚝 앞은 산이 가로 막아 신비한 풍경을 더한다. 게다가 한쪽 산기슭에 7미터 정도의 물너울이 있어 홍수 때면 넘쳐 흐르도록 되어 있고, 물이 빠지는 수구와 수로는 천지의 중심에서 밑으로 흐른다는 설명을 듣고 보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부근 일대는 사막 지대와 다름이 없으니 천지의 물이 없으면 어찌할까. 이곳 우루무치는 연중 강우량이 250mm밖에 안 되는데, 다행히 천산의 설빙(雪氷)이 녹아 흐르는 물이 있어 우루무치 시민들이 식수로 쓸 수 있었다. 하늘이 만들어준 자연의 저수지에서 흐르는 물을 먹고 사니 자연의 수로가 대지의 중심에서 솟아난 격이다. 실제로 물은 호수에 머물다가 호수 물이 정수가 되어 흐른다는 사실을 알고 하느님께서는 정말로 공평하신 호생덕(好生德)을 지니신 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본 카자흐스탄, 우루무치, 투르판, 돈황은 비행기를 타고 여러 시간, 아니 3일 내내 가도 황무지뿐인 땅이어서 몽골 용어로 버려진 땅이라고 하였다. 중국 최대의 자치구인 신강 위구르 자치구의 수도인 우루무치는 천산산맥 기슭에 있으며 남쪽으로는 타클라마칸 사막, 나아가 파키스탄과 카자흐스탄으로 이어진다. 우리가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실크로드(Silk Road:비단길)는 여기서 두 갈래 길로 나뉜다. 먼 옛날 각각 천산산맥 북쪽을 가는 천산북로(天山北路), 그리고 남쪽을 가는 천산남로(天山南路)라고 이름 붙여진 두 갈래의 실크로드가 그것이다. 서역(西域)의 큰 도시로서 파란만장한 역사의 변천을 지켜본 우루무치는 이제 철도가 개통되어 국제열차로 어디든 갈 수 있을 정도로 교통이 편리해졌다.

  더 이상 예전의 궁벽한 시골이 아닌 우루무치의 새로운 모습은 노천시장에서 팔리는 현대식 옷이나 액세서리를 봐도 실감할 수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우루무치 사람들은 양고기를 먹는다고 하는데 노천시장 곳곳에서 양고기 냄새가 나는 듯했다.

  우루무치는 산도, 풀 한 포기도 없는 헐벗은 황야로 돌과 모래만 있는 버려진 땅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땅 안에 황금의 보고라고 할 수 있는 석유와 광물질이 잔뜩 매장돼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으니 그야말로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9월 12일에는 버스를 타고 몇 시간인지 가서 남산목장(南山牧場)이라는 곳을 찾았다. 카자흐족의 터전이라고 하는 남산목장은 우루무치에서 남쪽 교외로 약 75km 떨어져 있다. 현지인들이 사는 집인 파오가 푸른 산록의 목초지에 점점이 흩어져 있는 것도 이국적이지만, 풍경이 뛰어나다. 천산산맥 북쪽 자락에 펼쳐진 목장지대로서 푸른 산록이 펼쳐져 있어 색다른 멋을 더한다. 계곡에는 20m 높이의 작은 폭포도 흐르고 있어 이전의 황무지와는 완연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양과 말이 떼 지어 풀을 뜯는 천연목장에서 말을 타보기도 하며 아름다운 자연을 즐겼다.

 

 

 

  9월 13일 투르판에서 여기저기 차를 타고 다녔지만 풀 한 포기 없는 산과 물줄기 하나 없는 들판의 모습은 그곳이 그곳인 듯 변함이 없었다. 몸살이 오려는 듯 몸이 안 좋아 고비 지역만 보고 이동을 자제하였다. 투르판은 오아시스 안에 형성된 도시여서 규모가 크지 않다. 분지 도시인 투르판거리에서 멀리 하늘을 보면 천산의 주봉이 만년설에 덮여 굽어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투르판에는 이란계의 민족이 세운 차사전국(車師戰國)의 수도였다는 교하고성이 있어 관광을 나섰다. 교하고성(交河故城)은 물줄기가 흘러와 두 가닥으로 나누어져서 그 안에는 육지가 이루어지고 그 육지 끝에서 물이 합수가 되어 흐르는 형태이기에 교하(交河)라고 하였다. 교하고성은 토산과 같이 이루어진 곳에 땅을 파고 굴을 파고 해서 만든 성(城)이다. 옛날에 살던 사람들이 외침을 방지하기 위해 자연적인 지형을 슬기롭게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투르판의 서쪽에 넓게 펼쳐진 이 고성(故城)은 지금은 폐허만이 남아 세월의 무상함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 일행은 그곳에서 시내로 나와 박물관을 구경했다. 사막의 무덤에서 발굴한 1500년 전 사람의 미이라를 포함해 투르판 지역에서 고대로부터 살아온 여러 민족들의 모습을 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다.

 

▲ 명사산

 

 

  투르판 기차역에서 밤 10시 43분 돈황행 열차를 타고 침대차에 잠이 들었다가 9월 14일 아침 6시 45분 돈황에서 가까운 유원역에 도착하였다. 조반을 먹고 옛날 서역(西域)으로 가던 길인 실크로드의 황무지 고속도로로 약 두 시간 달려가니 고비의 사막 지역이 끝나고 내 눈 앞에 엄청나게 거대하고 높은 산이 펼쳐졌다. 바로 이곳이 돈황의 명사산(鳴沙山)이었다. 월아천(月牙泉)은 그 명사산 안에 있는 작은 오아시스이다. 사막의 황량한 지역에서 어떻게 이처럼 많은 물이 어디에서 흘러 솟아오르는 것인지 신기하기만 했다. 그 수량도 많아 큰 호수를 이룰 정도였다.

  낙타를 타고 가다가 내려 도보로 사막의 길을 걷자니 너무나도 힘들었다. 월아천이 내려다 보이는 월천각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이 건물은 과거에 스님들이 수도하는 곳이라고 하였다. 문화혁명 시절 마구잡이로 문화유적들이 파괴됐는데, 파괴된 건물을 그 후에 새로이 단장을 했다고 하였다.

  말만 들은 고비사막을 보고 이런 곳도 있는가 하는 기이한 생각이 다 들었다. 왜 명사산이라고 하는가. 몇 천 년이 되어도 이동이 없는 산 위로 자연의 바람이 조화를 이뤄 모래를 불어 올리는데 그 모래산의 높이가 언제나 똑같고 바람결에 모래가 날아가면서 마찰을 하니 전자파가 일어나 모래가 우는 듯한 소리를 낸다. 즉 모래산이 운다 하여서 명사산이라고 명명한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 일행은 거기서 휴식과 관광을 마치고 다시 낙타를 타고 정문 앞까지 와서 점심 식사를 했다.

  오후에는 막고굴(莫高窟)을 둘러보았다. 735개의 2층으로 된 막고굴 토굴에는 지금으로부터 1400년 전에 불교의 석가모니와 그 외의 많은 부처 보살들이 수도 없이 많이 모셔져 있었다. 2층으로 된 그 토굴의 길이는 적어도 4킬로미터는 넘을 듯 웅대하고 거대했다. 돈황 막고굴은 4세기경에 형성되기 시작하여 여러 대에 걸쳐 만들어졌는데, 7세기 당나라 때에 와서는 천여 개가 되었다 한다. 이 때문에 막고굴은 일명 천불동(千佛洞)이라고도 불린다. 그러나 이 걸작들은 중국의 문화혁명시기에 문화유적, 불상들을 파괴하는 바람에 현재는 그 숫자가 크게 줄었다. 광대한 대국이라서 사람들의 계획과 포부도 컸던 것일까? 그들이 남긴 걸작품이 막고굴 작품이었다.

 

▲ 막고굴

 

 

  인도에서 유입되는 불교의 첫 관문이 된 돈황이 과거 서역과 중국을 잇는 첫 시발점이었을 때는 크고 빛나는 왕성한 도시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불교는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까지 전파되었다.

  동양으로 불교가 처음 유입된 곳인 돈황을 찾은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오후에는 우리나라 배우들이 출연했던 ‘해신’(海神)이란 드라마를 촬영했던 돈황 고성을 찾아보고 왔다. 이 고성은 일본의 텔레비전방송국이 촬영용으로 만들어 놓았던 것이며 역사적 유적은 아니다.

  9월 15일 아침 식사를 마치고 돈황의 박물관을 둘러본 뒤 11시 45분 북경을 향해 다시 비행기를 탔다. 이튿날 아침 북경에서 한국으로 오는 길에 육지를 보니 육지의 지평선은 보이건만 끝은 보이지 않고 어느덧 해상의 바다 위에 오니 바다와 하늘이 맞닿은 수평선이 보였고 조금 후에 해상의 운해와 하늘이 맞닿은 천평선이 보였다. 아무리 보아도 육지는 보이지 않는데 비행기는 한가롭게 한국의 도시 부산을 향해 날고 있다. 그렇게 무심한 듯 떠 있는 공중에서 돈황에서 느꼈던 환희에 벅찬 가슴을 억눌러 보려고 애를 썼다.

 

▲ 막고굴 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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