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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8년(2008)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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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테마기획 : 가을은 독서의 계절 Ⅱ 당신은 ‘내일’입니까? -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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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 Ⅱ

당신은 ‘내일’입니까?

- 『꽃들에게 희망을』을 읽고 -

 

고성2 방면 선무 국미란

 

  마치 손짓마냥 ‘살랑살랑’ 날아가는 나비, 그런 나비를 보면 나도 모르게 절로 ‘예쁘다!’라는 감탄사가 나온다. 그리고 서른이 넘은 지금도 나비를 마냥 따라가고 싶은 충동이 느껴진다. 그러나 그 나비는 본래 애벌레였다.

  이 생물학적인 사실을 누구나 알면서도 나비를 보면서 바닥을 꿈틀꿈틀 기어 다니는 애벌레와 연관 짓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줄무늬 애벌레가 있었다. 그는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싫증을 느끼고 더 큰 의미를 찾아 나서게 된다. 드디어 끝이 보이지 않는 기둥으로 기어오르는 무수히 많은 애벌레 탑을 발견하고는 그 기둥을 기어오르게 된다. 그렇게 서로를 짓밟으며 올라가다 노랑 애벌레를 만난다. 서로를 사랑하게 된 둘은 기둥에서 내려와 사랑을 나누지만 줄무늬 애벌레는 다시 길을 떠난다. 그리움과 줄무늬 애벌레에 대한 걱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던 노랑 애벌레는 한 애벌레의 도움으로 나비가 되는 방법을 전해 듣고 나비가 된다. 먼저 나비가 된 노랑 애벌레, 아니 노랑나비는 기둥을 기어오르고 있는 줄무늬 애벌레를 날개 짓으로 인도하여 자기가 나비로 변한 그 나뭇가지로 데려가 드디어 함께 나비가 된다.

  내가 스무 살에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작가의 말처럼 희망의 메시지 정도로 생각했다. 현재의 내가 기대할 것 하나 없는 애벌레 같은 모습으로 여겨지더라도 내 안에는, 아니 우리 모두의 안에는 나비의 꿈이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말이다. 지금의 고난은 나비가 되는 과정일 뿐이라고….

  하지만 나는 여기서 애벌레의 마음에 좀 더 관심을 두고 이야기하고 싶다.

  줄무늬 애벌레는 왜 처음에 길을 떠났을까? 그리고 노랑 애벌레와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살다가도 왜 다시 홀로 길을 떠났을까?

  그것은 마음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이유가 살찐 몸뚱이 하나 거두기 힘들어 뭉그적거리며 살기 위함인가? 지금의 내 모습이 나의 전부인가? 무언가 나에게도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 것인데…, 하늘이 나를 이 땅에 내어 놓은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텐데….

  줄무늬 애벌레의 이런 텅 빈 마음은 사랑하는 노랑 애벌레의 품으로도 채워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두 번째 길을 다시 떠난다. 이렇게 길을 찾아 떠나는 줄무늬 애벌레에게는 달콤한 풀 향기도 시원한 나무그늘도 편안히 낮잠을 즐기는 다른 애벌레들도 아무런 유혹이 되지 않았으리라. 무릇 큰 뜻을 품은 자는 작은 일에 기뻐하지도 노여워하지도 서운해 하지도 않는 법이라는 말처럼 말이다.

  홀로 남겨진 노랑 애벌레는 한 애벌레를 만나게 된다. 그 애벌레로부터 나뭇가지에 올라가 스스로 애벌레임을 버려야만 비로소 나비가 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된다. 그 애벌레 참 신통하다! 애벌레가 시키는 대로 따라한 노랑 애벌레도 참 신통하다!

  그 뒤 노랑 애벌레의 정성으로 나뭇가지에 오르는 줄무늬 애벌레의 마음은 또한 어떠했을까? 나뭇가지를 오르는 순간은 떨리고 흥분되었을지 모른다.

  ‘그래 바로 이 길이야’

  ‘내가 이 길을 찾기 위해 그 동안 방황했구나’

  모진 세월에 대한 보상이라도 받은 듯 감격했을 것이다.

  그러나 힘겹게 자기 몸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만드는 순간 줄무늬 애벌레는 첨예한 갈등에 휩싸였을지 모른다.

  ‘근데 저 노랑나비가 내가 알고 있는 노랑 애벌레가 맞나?’

  ‘이러다… 정말 죽는 거 아냐?’

  ‘나비가 되고 싶기는 하지만 꼭 이렇게 답답한 고치 안에 갇혀야 하나? 더 쉬운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지만 나비가 되는 길은 오직 그 길 하나다! 여기까지 걸어온 시간이 아까워서,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게만 여겨져 고치 만드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고 해도 좋다. 그리고 자기를 응원하듯 날갯질 하는 노랑 애벌레라고 믿는 나비에게 부끄러워서 고치 만들기를 멈출 수 없었다고 해도 좋다. 그 길뿐이니까!

  고치 안에서는 어떠했을까? 처음에는 숨이 막히고 정말 죽을 것만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자기가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라 나비라고 믿는 순간 편안함을 느끼게 되었을 것이다. 자기가 그동안 고독이니 외로움이니 그리움이니 하며 채우려고 했던 마음은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었음을 알고 마음은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우는 것임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마음은 다 긁어내어 텅 비웠을 때 비로소 가득 차는 것임을….

  그런데 제목이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이유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본다. 책 마지막에 나오는 꽃 그림 말고는 꽃이라고는 등장하지도 않는데 말이다. 애벌레가 인고의 과정을 거쳐 나비가 되면 그 자체만으로도 축복이긴 하나 꽃들에게도 또한 희망이 된다.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히고, 또 씨가 되고….

  줄무늬 애벌레가 혹시 나비가 되기를 포기했다 하더라도 모든 꽃들에게 희망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세상에 나비는 줄무늬 나비 한 마리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줄무늬 나비만의 꽃은 없겠지, 나로 인해 맺힌 열매도 없을 것이며, 나를 날려 스쳐가는 바람의 숨결도 느끼지 못하겠지. (나비가 되어 보지 못한 나로서는 더 이상 상상하기 힘들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줄무늬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는 그리 어렵고 힘들지만은 않았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나비를 보았기 때문이다. 차마 자기가 그렇게 되리라고 꿈에도 생각 못했겠지만 그래도 두 눈으로 직접 나비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비’라고는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애벌레들이 있다면, 그 애벌레들에게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기 위해 저 나뭇가지로 기어 올라가 고치는 만들어야 한다고 가르치는 애벌레가 있다면… 참으로 위대하지 아니한가?

  다른 애벌레들이 차라리 계란을 보고 봉황이 되는 법을 가르치라며 비웃는 소리를 뒤로 한 채 혼자서만 나비가 되어 날아오르지 아니하고 함께 가자고 외치는 애벌레들이 있다면….

  그는 더 이상 애벌레가 아니다. 이미 ‘나비’인 것이다.

  꽃들은 벌써 바람에 향기를 실어 날려 보내며 그 애벌레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미 꽃들의 희망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들이 함께 열어야 할 그들은 이미 모든 이들의 ‘내일’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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