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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5년(2015)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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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수기외 부분 금상 : 빈들에 서다(2)

연재소설
 
빈들에 서다(2)
 
 
 

울주 방면 정리 박종식

 
 
 
4
   미술을 전공한 전서열 선무는 1994년 대학 4학년 초 봄에 한 50대 중년의 여인으로부터 도(道)를 듣고 입도하여 포덕소 생활을 한 지 일 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도에 뜻을 둔 터라 사회적 진로의 고민은 없었지만 그러한 자신의 모습을 늘 걱정하시는 부모님의 시선은 여전히 마음 한구석 부담이었다. 중국무술이나 중국문화를 좋아하던 남동생은 중국으로 유학을 갔고, 결국 집에는 부모님만 계시고 손에 잡히지 않는 자식들 걱정은 늘어만 갔다.
  선각이 그를 포덕할 당시 방면에 나이 많은 아주머니 일색이었고 방면의 성격 탓인지 외수나 젊은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을 찾기가 전무해서 배움이 많고 풍부한 학식을 갖추어 방면을 키우고 나아가 도를 받들 수 있는 총명한 외수를 포덕하게 해달라고 끊임없는 심고 속에 전서열 선무를 만난 것이라 선각은 전서열 선무를 만난 인연의 시작을 그렇게 말하곤 하였다.
  나이 많은 선각분들이 다 중년 이상의 여성이라 그런지 사소한 것까지 챙겨주고 아껴주는 마음은 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연배의 차이가 어머니 정도 되는 분들이고 또래 외수가 없어 늘 터놓고 얘기하는 상대가 없는 것은 아쉬움이었다. 더욱 근원적인 문제는 자신이 왜? 포덕을 해야 하는지 마음으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무엇인지 모를 이끌림과 명확하게 해석하기 힘든 도통(道通)을 꼭 받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다.
  선각 분들에게 도(道)와 관련한 의문점을 묻고 그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원했지만 스스로의 이해력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선각의 앎이 부족해서인지 매번 속 시원한 답을 듣지 못했다. 그때마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여 들춰낼 수 없는 불만이 된 지도 오래다. 처음에는 불만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물음’이었다. 그러나 ‘물음’은 명쾌한 답변 없이 외면당한 느낌을 떨쳐내지 못했고 외면당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물음’에 대한 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라고 자신을 억지로 위로하고 자족했다. 실은 그에게도 학문적 목마름이나 이론적 근거의 타당성은 합리적 사고로 자란 세대의 자연스러운 행태일 뿐, 그 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그 무엇은 아니었다.
 
 
1995년
  선각에 대한 부침과 도의 공덕을 쌓으려는 열정이 환경의 터닝 포인트(turing point)를 필요로 했다. 혹은 도에서 말하는 그 신도(神道)를 체험하기 위해 전서열 선무는 금강산 수련도장 작업장으로 향했다. 작업을 들어 온 지도 두 달….
  처음에는 설렘에 흥분되고 깊은 밤중에도 꺼지지 않은 산 중의 불빛이 옛 이야기 속 신선의 세계로 느낄 만큼 신천지(新天地)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상상했던 기대와 사뭇 달랐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추운 겨울 외수동 지하실에는 처음 온 30여 명의 도인들이 숙식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지낼 숙소에다 작업장에 널려있던 삼성각이나 투바이 합판 등을 이용해서 임시 숙소를 만들고 인원 수에 비해 누가 봐도 부족한 이불을 서로 선점하려고 우왕좌왕하였다. 그 틈에서 상황만 관망하다 낯선 곳에서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못했던 전서열 선무는 마치 패잔병처럼 누구도 갖고 싶지 않은 이불이 자신의 몫이 되었다.
  더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겨울이라는 점과 몸이 움츠려지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이 지역의 특성이 경험이 부족한 그에게는 모든 것이 버거움이었다. 온 몸에 한기를 느끼며 5시에 기상해서 아직 풀리지도 않은 몸으로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종무원 앞에 서서 20여 분 정도 조회를 마치고 힘에 버거운 현장으로 나서야만 했다. 물이 귀해서 씻는 데도 곤혹스러움이 많았다. 이런 모든 것들이 훗날에는 여담 내지는 도담이 되겠지만, 이런 일을 처음 접하는 전서열 선무에게는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정리하고 싶을 뿐이다.
  ‘집에는 언제쯤 갈 수 있지….’
  도장 골조 공사는 이미 끝이 난 지 오래되었고 기와 또한 다 얹혀 그 웅장함의 규모가 완연해져 보인다. 이제 도장에서는 단청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그 첫 작업으로 그림조를 만드는 것인데 여기서 그림조란 용(龍)과 신장(神將), 살아있는 생화(生花)를 그리는 작업조를 말한다. 이것은 외수들이 담당하는 분야다. 내수 그림조는 봉황(鳳凰)이나 동양화(東洋畵) 같은 그림을 담당한다. 그 외에 내수 임원이나 내수 분들은 나머지 단청을 담당한다. 이 밖에 단청물감을 다루는 조가 있고 단청을 할 자리에 밑그림을 타분으로 쳐서 그려 넣는 조가 있다.
  도장 안에 있는 모든 작업부서에서 사회에서 그림이나 그런 분야에 있었던 사람을 찾았다. 작은 경력만 있어도 그림조로 부서를 이동하는 상황에서 미술을 전공한 전서열선무가 그리로 가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부서를 이동했고 전서열 선무에게도 천만 다행한 일이었다. 그간의 일은 너무나 힘에 부쳤고 추위에다가 긴장되는 상황에서 일머리를 몰라 항상 꾸중을 듣기 일쑤였다. 그림조는 자신과 잘 맞는 분야이고 한 달이 넘도록 방에서 실전에 쓰일 그림을 연습하는 게 작업의 전부였다. 흥미로운 점은 벽에 그림을 그리거나 천정에 그리는 작업 형태였다. 사회에서는 그런 경험이 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전의 일을 생각하면 정말 호강이 아닐 수 없었다. 한 마디로 살 것 같았다. 밖에 나가서는 이런 속내를 다른 도인에게 들킬까 봐 표정관리하며 조심스럽게 다니기도 했다. 편하게 지내는 것 같아 작업장의 다른 도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그의 일상을 즐겁게 하는 건 동서방면에서 온 박정호 교령을 만난 일이다. 그를 만난 건 전서열 선무에게는 무슨 운명 같은 일이었다. 나이는 서른 둘, 180 정도 되는 키에 하얀 피부, 수려한 얼굴, 정돈된 말솜씨, 점잖은 행동거지, 누구보다도 부지런하고 흔들림 없는 자세, 도에 관련한 해박한 지식, 단청 작업의 풍부한 경험 등 박정호 교령은 장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전서열 선무가 선무라고는 하지만 입도한 지 얼마 되지 않고 도의 전반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교화를 듣지 않아 다듬어지지 않은 중에 도장 공사에 참여 한 것을 일정한 도의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알 수 있었다. 박정호 교령은 그런 그를 가르쳐 주고 챙겨주는 등 남 다른 정을 주며 전서열 선무를 가까이 두고 아꼈다.
  “상제님을 상제님이라고 받아들이는 건 오히려 쉬운 일 일지도 모릅니다. 이 시대의 문제는 바로 종통(宗統)이지요. 대순진리회의 시작과 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교(儒敎)적인 입장에서 종갓(宗家)집 이라는 의미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데 제사를 지낼 때 첫 번째 드리는 초헌은 반드시 종손이 올립니다. 문중(門中)에 큰 어른이 되는 사람을 문장(門長)이라고 하지요. 그 문중의 우러러봄이 이만저만 한 게 아닙니다. 하지만 그 문장이라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아무리 직이 높고 문중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아도 문중의 모든 대소사에 종손과 나란히 서지 못해요. 종손의 나이가 손자뻘이라 해도 말입니다. 그래서 문중이 바라보는 종손(宗孫)은 특별한 것입니다. 비유하면 뿌리는 조상이요. 나무는 종손이요. 가지는 문중(門中)이 되는 것인데, 가지에서 뛰어남이 있다 한들 기둥에 속한 일이며 종손과는 그 분별이 다른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종통(宗統)은 그런 것입니다.”
  사려있고 격조 있는 말솜씨와 철학과 사색으로 가득 차 있는 듯한 품위 있는 자세는 전서열 선무를 품에 안는 듯했다. 선각 분들에게 던진 질문들의 답을 이 사람은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박정호 교령은 자신이 포덕한 수반처럼 처음부터 세세하게 정을 쏟으며 다듬어 주었고, 그가 받아들이는 정도에 따라 물러서기도 하고 나아가기도 하며 시기적절하게 그를 가르쳤다. 특히 박정호 교령의 주된 교화는 종통(宗統)에 관련한 것이었다.
  “내가 신명을 시켜 진인(眞人)을 찾아보았더니 이제 겨우 아홉 살밖에 되지 않은지라 시유기시(時有其時) 인유기시(人有其人) 때에도 그 때가 있고 사람 중에도 그 사람이 있노라.”
  “서운했을 겁니다. 진인(眞人)이 달리 따로 있다는 말에…. 권능과 이적을 보고 도통이 있다는 말에 누군들 갖고 싶지 않았을까요.”
늘 조용히 듣고 있는 전서열 선무도 무언가 의문스러운 듯 “왜 상제님은 종통을 말씀하시고 상제님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죄를 짓도록 놔두신 겁니까? 상제님께서 가지고 계시는 권능으로 다하셨으면 그들은 죄를 짓지 않고 도통도 받았을 텐데요?”
  악의 없고 순수한 질문에 박정호 교령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말을 이어갔다.
  “전 선무, 상제님은 그들에게 죄를 짓게 한 일이 없어요. 그렇게 될까 봐 수 없이 진인(眞人)이 달리 있다고 말씀하셨지요.”
  “『전경』에 상제께서 내가 삼계대권을 주재….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라는 구절이 있어요. 여기서 말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가 중요합니다.『전경』의 내용은 매우 정제되어 있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신 내용이 흔하지 않지만 실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지요. 종통(宗統)에 대해서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 하셨어요. 그때는 도통을 내는 때가 아니고 상제님 혼자서 다하실 수 없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우리가 인지할 수 있는 범주는….”
  “상제님께서 한 나라의 일이면 쉬우나 세계를 아우르는 일어여서 시간이 오래 걸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내일 당장에 전 선무와 나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뜻밖에 질문에 전서열 선무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지만 내일의 일을 알 수 없는 것은 너무 자명한 일이어서 말문을 잇지 못했다.
  “내일 한 사람의 운명조차 모르는 게 우리입니다. 하물며 한 국가도 아니고 이 세계 이 우주를 고치는 일입니다. 누구의 원망과 원한도 받지 않고 하셔야 하니 하느님이신 상제님도 시간이 오래 걸리신다고 스스로 고백하셨고 그 시간에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인간의 수명 그 이상의 시간이 걸리므로 누군가 이어서 뜻을 받을 분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알 수 없는 종통의 이치까지는 다 헤아리지 못한다 해도 이렇게 이해하고 찾아 들어간다면 이해가 되지 않을까요? 그럼 누가 그 뒤를 이어갈 것인가가 문제인데, 그것은 상제님께서 지목한 분이라야 논란의 소지가 없는 거지요.”
  “박 교령은 상제님께서 지목한 분이라야 논란의 소지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서로가 종통을 이어받았다고 한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 자체로 논란의 소지가 아닌가요.”
  “전 선무의 말이 그럴듯하군요. 그렇게까지 말을 전개하면 이언령 비언령 됩니다. 그들이 받았다는 상제님의 말씀과 더하여 이 세상에 그들이 종통을 받았다는 이치가 존재하지 않아요. 그들은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난법을 세우신 범주에 속한다고 해석하면 될 것입니다. 그들이 적통자로서 이 세상에 종통을 낼 수 있는 무엇을 준비했고 상제님의 뜻을 받들어 냈지요.”
  “수교자와 종통계승을 받은 분의 구분을 정확하게 해야합니다. 수교자들 중에 지혜가 많은 사람들도 없지 않아 있을 겁니다. 거기다가 달변(達辯)의 재주까지 있다면 정말 많은 사람을 따르게 할 수 있는 평범함을 넘는 사람일 겁니다.”
  “박 교령은 상제님께서 종통에 대해 말씀하신 말 중에 어느 부분이 와 닿던가요.”
  “음…. 말씀으로 전하신 경우는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여러 글이 있지만 하나의 경우를 들면 도주님께서 15세시 가족들과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을 가실 때 상제께서 이치복과 김보경 그리고 종도들을 데리고 대전 신탄진(新灘津) 들판에 가셔서 도주님이 타신 기차가 오는 것을 보시고 이제 나의 일을 다 이루었도다. 남아(男兒)15세면 호패를 찬다 하느니 무슨 일을 못 하리오 라고 말씀하신 일화가 있습니다. 우리에겐 종통(宗統)의 중요한 한 시점이지요.”
  “그리고 여기서 15라는 숫자는 이치가 숨은 것으로 호패라는 것은 당시의 제도로 어른이 되어 일을 맡겨도 좋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겠지만, 좀 더 따져보면 음양오행(陰陽 五行)의 역술분야에 다양한 분야가 있는데 15라는 숫자를 가지고 쓰는 분야가 있어요. 기문둔갑(奇門遁甲) 구성학(九星學)이 있고 해마다 나오는 택일력(擇日曆)은 민간인이 쉽게 볼 수 있는 15를 사용하는 구성학을 인사(人事)에 도움을 주기 위해 쉽게 풀어놓은 책이지요. 현공풍수(玄空風水)라는 풍수분야에서 그러하고 그 분야들의 목적은 서로 다르지만 9궁에 숫자를 배열하여 사방팔방으로 어느 쪽으로 보아도 15가 이루어지는 기본 조판으로 숫자의 변화에 따라 길흉화복(吉凶禍福)이 정해지는 역술이에요. 기문둔갑 같은 경우는 옛날에 제갈공명 같은 뛰어난 군사들이 점을 치거나 군사학에 쓰던 법이고 지금은 그것이 변이되어 인사(人事)에 쓰이고 있지만, 다시 말해서 하늘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땅 위에서 펼쳐지는 것으로 15가 24방위 모두를 담고 있죠. 그래서 15라는 숫자는 그것으로 완벽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남아 15세의 15는 이런 이치를 담고 있다고 풀이되고 이런 이치의 주인이라야 상제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15라는 뜻은 남아 15세 그 의미를 넘어 상제님의 종통을 잇는 주인이라는 뜻을 담고 있어요. 15세에 도주님(道主任)께서 만주(滿洲) 봉천(奉天)에 망명하신 건 한자의 뜻이 말해주듯 천명(天命)을 받들러 가신 거고 상제님께서 화천 하신 이후 한 번도 서로 일면식이 없었던 도주님(道主任)께서는 상제님께서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이심을 밝혀주셨습니다. 그 천부(天賦)의 종통(宗統)을 계승한 분임을 드러내는 대목입니다.”
  박정호 교령은 도주님(道主任)으로 이어지는 종통에 대해서『전경』에 나타난 상제님 말씀과 기록이 없이 야사(野史)로 내려오는 이야기를 통해서 전해 주었다. 금산사(金山寺)를 설명하며 도전님(都典任)으로 이어지는 종통(宗統)에 대해서도 다양한 비유를 들어 설명해 주었다.
  “천부(天賦)는 인위적일 수 없어요. 좀 더 쉽게 비유하자면 대순진리회는 처음부터 없었어도 천부(天賦)는 존재했던 겁니다. 대순진리회 이전에 금산사(金山寺)에 천부의 이치가 담겨 있었고 여기서 주는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종통의 분별이 없어 조금이나마 앎이 깊어지면 너도나도 교주(敎主)가 되고 싶어 하는 거지요.”
  “도적놈이 되는 겁니다.”
  “이번 단청작업에서 전 선무는 놀라운 신도(神道)를 보게 될 겁니다. 그때 전 선무 스스로 느낌이 오거든 우리 도(道)가 맞고 도전님(都典任)께서 진정으로 종통계승(宗統繼承)을 한 분임을 알고 탄복하게 될 겁니다. 그런 연후에 전 선무가 무엇을 해야 할지도 알게 될 거고요.”
  입도한 지 1 년 정도 되는 전서열 선무의 지식체계에서 전혀 들어 보지 못한 말과 들었어도 산만하게 들은 도의 지식을 박정호 교령은 모든 것을 한 줄로 정립시켜 주었다. 동양과 서양을 아우르는 관점에서의 세계가 당면한 현실, 선천이라는 부정적 현실 앞에서 상제님의 사상과 대순진리회가 유일한 대안일 수밖에 없는 이유, 해원상생의 이전과 이후의 변화, 실로 방면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내용의 일색이고 도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神奇)할 뿐이다. 그가 어떻게 도를 바라보고 스스로 공부를 해나가야 하는지 지금까지는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거부할 수 없는 어떤 힘에 의해 왔다면, 지금부터는 자신의 인생에서 선택과 용단을 내려야 하는 중요한 시점이며, 지금까지 이끌어 왔던 어떤 힘이나 이끌림이 그의 자아(自我)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거기까지가 자신의 소임인 것처럼 처음에는 이곳이 일 분도 견디어 내기 어려운 원망스러웠던 곳이었다. 박정호 교령의 만남으로 수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신적 성장을 이루었다. 최소한 그는 그렇게 생각했고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그와의 인연을 최대한 그의 곁에서 자신을 다듬어 보고 싶어 했다.
  드디어 한 달 넘게 20여 명의 인원이 방 안에서 목석처럼 앉아서 생화(生畵)와 용(龍), 신장(神將)을 그리는 연습을 마치고 실전에 들어간다. 생화(生畵)는 간간이 현장에서 그려왔으나 용(龍)은 처음이다. 도장에 용을 그려야 하는 곳은 많지만 그 첫 작업으로는 영대(靈臺)에 있는 대들보에 그리는 것이다. 대들보에는 총 36마리의 용을 그린다. 20여 명에 가까운 외수 그림조 전원이 투입되어 아침에 들어가 밤늦게까지 걸리는 고된 작업이다. 방에 틀어 앉아 끊임없이 연마했던 실력을 오늘 하루에 다 쏟아 내기를 작정하고 몰두하였다. 정말 쉴 틈도 눈썹 한번 깜박일 여가를 두지 않고 모두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러한 열의 속에 하루라는 시간이 경각에 지나가고 드디어 36마리의 용을 다 그렸다. 하나의 여의주를 두고 청룡과 황룡이 서로 팽팽하게 맞서는 화려하고 웅장한 그림, 마음속 깊이 성취감이 피어올랐다. 모두 수고했다며 서로를 격려해주며 영대를 나서고 박정호 교령과 전서열 선무도 함께 영대 밖으로 나왔다. 깊은 한밤중에 전등불만이 시야를 간간이 비추었다. 허공을 바라보던 박정호 교령이 알아들을 수 없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이상해….”
  전서열 선무는 말을 들을 수는 있었지만 그 말의 뜻을 몰라 되물었다.
  “뭐가 이상 한데요?”
  박정호 교령은 여전히 뜻 모를 말을 중얼거렸다.
  “왜? 비가 안 오시지!”
  그림조의 조원들이 모두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있다. 불안감이 고조되어있는 침묵 속에 그림조를 책임지는 이정명 교감은 과격한 어조로 침묵을 깨며 흥분된 목소리로 조원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한다.
  “지금! 사무실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어떻게 용(龍)을 그렸는데 비가 안 오시냐는 겁니다! 용은 비를 몰고 다니는 영물인데 용을 그렸으면 당연히 비가 와야 하죠! 사무실에서 여러분들이 정성이 부족해서 용이 오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어요! 그래서 결정했습니다.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기로…. 내일 일찍 다시 올라가서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립니다. 이번에는 여러분들에 재조를 믿지 말고 정성으로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우리 도는 정성으로 하는 겁니다! 내일 다시 그려 비가 오시면 정성이 들어가 용이 응감한 것이고, 비가 안 오시면 정성이 부족한 겁니다!”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내용의 말을 당연한 듯이 말하는 저 말이 전서열 선무에게는 놀랍기만 할 뿐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자신이 닦고 있는 도를 증명하는 하나의 일화가 될 것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물끄러미 박정호 교령을 바라본다. 아까 그 말은 경험이 있는 자의 말이고 이것을 뜻하는 말임을….
  용 그림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이들의 마음은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어떻게 다른가? 일이 잘못된 데에서 오는 무게감이 이들을 짓누루고 있고, 표정은 굳어 있었다. 굳은 얼굴에 눈빛만이 전의를 불태우고 있었다. 전서열 선무도 주변의 무거운 분위기에 압도되었다. 그래서 오늘 일은 굉장히 중요하면서도 한편으로 흥분되는 일이기도 했다.
  어제와 같이 거의 비슷한 시간에 용 그림이 마무리되었다. 영대 안에서는 밖의 날씨를 한 치도 가름할 수 없다. 이제 확인만 남았다. 영대를 내려가는 이들의 마음엔 설레 임도 있겠지만 어제의 과오에 대한 두려움과 또 다시 비가 오지 않으면 만수도인 앞에 부끄러움으로 남기에 영대를 내려가는 길은 참으로 생사의 외길을 걷는 듯 할 것이다. 이제 영대 본전 문만 열면 모든 것은 백일하에 드러난다. 모두가 두렵다. 걸어가는 속도의 순서에 따라 자연히 문을 연다. 전등불 사이로 비치는 밝음 속에 부슬부슬 무언가가 모두의 시야에 들어온다. 그것은 ‘비’였다.
  비가 내리는 것을 확인한 순간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환호성과 탄성을 자아냈다. 전서열 선무에게는 환희에 가까운 일이다. ‘이럴 수가….’ 부슬부슬 내리는 빗물은 어느새 굵은 빗물이 되어 강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전서열 선무나 그림 조 모두는 추운 날씨임에도 이 비를 온 몸으로 맞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는 갈증이 일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비가 오시는 것을 보고 “용을 그렸나보네”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지나가기도 했고 그런 말들이 갈증을 해소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도인들이 보수적인 편이라 칭찬에 대해서는 인색한데 사무실에서도 이정명 교감도 수고했다며 흐뭇해 하니 좋은 게 좋은 잔치 집 분위기다. 전서열 선무는 무심결에 박정호 교령을 쳐다보며 박 교령을 만난 건 정말 인연이라는 생각을 했다. 전서열 선무는 박정호 교령과의 만남을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었다.
  전서열 선무의 도장작업 생활은 처음 들어 왔을 때와는 전혀 달라졌다. 힘든 것은 여전히 남아있지만 알 수 없는 신비한 체험은 그를 매료 시켰다. 인위적으로 불가능한 일이기에 그러했고, 박정호 교령을 만나 전보다 도심이 한층 깊어졌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방면으로 돌아가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알 수 있었다. 신비한 체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장을 처음 그리는 날 사무실에서는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이외에는 누구도 나오지 말라고 지시했다. 이유는 신명이 응감할 때 바람이 분다는 것이다. 작업이 불가능할 정도의 바람! 도장은 미시령을 접하고 있어 평소에도 바람이 많으나 사무실에서 작업을 멈출 정도면 뭔가 대단한 바람일 거라 전서열 선무도 의례 짐작했다. 그것은 사실이었고 신장을 그리는 그 순간 사람이 서 있을 수 없을 정도로 바람이 불었다. 아시바가 휘어지고 천이 찢겨 날리는 아주 강한 바람이었다. 용이나 신장을 처음 그릴 때는 이런 신비한 현상이 있었으나 그 다음 부터는 신장이나 용을 그려도 비나 바람이 때를 맞추어 내리거나 불지는 않았다.
 
 
 5   
  원주 기독병원에 계시는 도전님(都典任)의 용안(龍顔)을 시봉(侍奉)과 수 임원들이 뵙는 날이었다. 그들은 그간의 오랜 경험에서 도전님의 화천(化天)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김민철 선감도 이런 기류들을 부정하지 못해 초조해 하고 있었다. 병실에 아무도 들지 말라는 지엄(至嚴)한 분부에 모두 물러나며 의사에게 일러 화천(化天)을 모시지 못할 불충불효(不忠不孝)를 저지를 수 없으니 화천하실 것 같은 두어 시간 전에 반드시 연락을 취해달라며 무겁게 뒤로 물러났다.
  도전님을 모신 구급차 한 대가 여주본부도장을 향해 달리고, 내정(內政)에 오신 도전님께서는 시봉들과 임원들을 모이게 하신 후 홀연히 화천(化天)하시니 세수는 80세요. 음력 1995년(乙亥年) 12월 4일 미시(未時)가 된다. 오고 감의 음양(陰陽)의 이치(理致)를 인위적 사도로서는 불가능한 천부(天賦)의 명(命)을 세상 사람들이여 알아서 깨달으라. “도전님! 도전님!”하고 그 화천을 곡소리로 천지의 허공에 공표(公表)하고, 이런 괴로운 날을 경험하지 못했던 이들에게 있어 이성적 판단은 흐려지고 몸은 오열하고 있었다.      
  김민철 선감은 어지러운 심정 속에서 만감(萬感)이 희비를 교차하고 눈도 뜨지 못한 채  눈물만 하염없이 흘리고 있었다. 백지장처럼 하얀 머릿속에 생각의 파편들이 물고기가 물속을 유영하듯 자신의 뇌리를 스쳐지나갔다. 그런 것 들은 슬픔을 이기지 못한 회환(回還)때문이리라 생각되어도 그런 기억의 잔상들이 순간 하나의 이미지에 머무른 듯 ‘이럴 수가’하며 그는 무지 속에서 앎을 발견한 듯 뇌리 속에서 탄성을 자아냈다. 무엇인가 알아낸 듯 놀랍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몸 아래서 타고 서서히 몸 전체를 휘어 감는다. 그것이 무엇이든 오늘 도전님의 화천 앞에 그 무엇으로도 위로가 되지 않음을, 도전님 살아생전에 도통(道通)이 나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도통을 믿고 도전님 살아생전에 도통을 받으리라 따라왔던 수많은 수도인들의 흔들리는 믿음을 어떻게 다잡아야 하는지 일선에서 말씀을 모시던 수 임원들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6
  방면에 돌아온 전서열 선무의 수도생활은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작업 이전과 이후로 구분해야 할 만큼 같은 몸으로 전혀 다른 수도생활을 해 나갔다. 누가 봐도 안정적이며 스스로 깊어지고 영글어 갔다. 더하여 그에게 다시 찾아온 도의 작업이 있었다. 열흘 일정으로 분당제생병원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램프 거푸집 공사에 참여하게 되었고 금강산 토성수련도장 작업의 경험으로 현장생활이 제법 익숙해져 경험자의 풍모마저 보였다.
  현장 사무실에서 사람이 나와서 전서열 선무가 누구냐며 찾고 다녔다. 전서열 선무는 자신을 찾는 모습에 의아스러운데 그도 그럴 것이 임원도 아니고 공사에 특별한 일을 담당하는 것도 아니고, 체계상 보이지 않는 곳에 있는 자신을 찾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었다. 사무실에서 찾는 이유에 대해 들어보니 빨리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으로 가라는 지시다. 이유는 도장에 단청작업을 해야 할 일이 있어 단청에 참여했던 모든 조원을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실에서는 속초 갈 차비는 있느냐며 차비를 챙겨주고 어서 가보라고 그를 보내 주었다.
  봄에 작업을 마치고 엄동설한인 1월에 다시 찾은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은 완연한 도장의 면모를 갖추어 그 감회가 새롭다. 사무실에 신고하고 찬찬히 자신의 손때가 묻은 도장을 둘러보며 외수동 2층 숙소에 들어가 보니 양탄자가 깔려있어 포근하고 깔끔해 보였다. 상당히 안전감 있게 다가왔고 함께 작업했던 조원들 10여 명이 먼저와 그를 반겨 주었다. 그 감회 또한 또 다른 느낌의 인연으로 다가왔다. 박정호 교령이 있는가 살펴보았지만 그는 끝내 오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서로의 안부를 얘기하며 시간은 자정을 향해있고 밖은 고요한 어둠 속에 달빛과 별빛이 도장을 비추고 있었다. 이때 어느 임원이 들어와 진지하고 숙연한 표정으로 조원들을 모이라 하며 지금부터 하는 얘기를 놀래지도 말고 동요하지도 말고 잘 들으라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오늘 도전님(都典任)께서 화천(化天)하셨다.”
  이 말을 누구인들 상상이나 했으며 들었어도 어이가 없을 일이다. 도전님께서 화천 하시다니 지금 하늘에 소리 없이 번개가 친 것이다. 이성이 금이 가고 생각이 뒤틀리고 있다. 도전님의 화천을 전하는 이의 신뢰도를 보아 믿지 않을 수도 없었다. 모든 것이 어그러지는 느낌이었다.
  “아아 도전님….”
  온갖 허망한 생각과 집중되지 않는 상황에 이말 저말을 하며 서로를 위로하거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갖가지 논리를 펼치며 이 칠흑 같은 밤을 뜬 눈으로 이기고 있었다. 날이 밝고 하루가 지나가는 중에도 도전님의 화천만이 사실일 뿐 도장은 고요했다. 또 다시 찾아온 밤에 이십 여명의 젊은 임원들이 날이 새도록 상여 매는 연습을 군대의 훈련처럼 진행했다. 새벽녘에 도장의 모든 도인은 명심당(明心堂) 2층에 마련된 병풍 앞으로 도전님 용안이 모셔져 있는 사진을 보며 4배로써 문상의 예를 다하고 상여에 단청을 채색하기 시작했다.
  ‘내가 상여에 단청하기 위해 여기 온 것이구나….’
  전서열 선무는 자신이 분당 제생병원에서 작업하다가 여기에 온 이유를 스스로 그렇게 미루어 짐작했다. 도전님 가시는 마지막 길에 상여에 단청을 채색하는 인연을 숭고하게 생각하니 자연스럽게 손 끝에 정성이 찾아들었다. 여기 있는 누구인들 그 마음이 없었겠는가.
 
 
 7
  새벽 인시(寅時) 도전님을 모신 운구 차량이 여주본부도장 내정을 나왔다. 금강산 토성수련도장으로 떠나는 수없이 많은 차량이 모심에 있어 소홀함이 없어 보였다. 놀람과 흥분으로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상제님께서 정한 공사는 물 샐 틈이 없어 의심할 바 없지만 도전님의 화천하신 모습 앞에 불안감을 숨길 수 없었다. 어둠을 뚫고 달리는 새벽녘 운구 차량 뒤로 수없이 즐비하게 늘어선 차량이 함께 달려가고 있다. 미시령고개를 넘어서 금강산 토성 수련도장이 내려다보이는 아래에 운구 차량 뒤로 끝이 보이지 않는 수많은 차량 행렬의 불빛이 위엄이 서려 있듯 긴 꼬리를 물며 가는 모습이 장관(壯觀)을 이루기까지 하였다. 새벽녘 하늘의 별들은 유달리 청명한 어둠 속에서 빛나고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도장 안으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수 만 명의 사람들이 도장을 빽빽하게 감싸며 도전님 마지막 가시는 길을 모셨다. 수 만 명이 모인 역사적인 현장! 얼마나 많은 사람이 모였는지 보이는 건 사람 뿐이고 걸으면서도 사람에 치일 정도로 인산인해(人山人海)를 이루었다. 세인들에게 있어 이런 장례식 자체가 기묘한 일로 기억될 정도였다. 도장 안내실 밖 주차장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며 상여의 뒤 끝을 물끄러미 전서열 선무는 바라보고 있었다. 전서열 선무 바로 옆에 두 살 정도 되는 어린 아기를 배에 안고 있는 정민수 교감과 부인 박민영 선사가 떠나가는 상여를 바라보고 있었다. 정민수 교감이 상여의 만장(萬丈)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덕포어세인기어인(德布於世人起於寅) 복중팔십년신명(腹中八十年神明)”
  “덕이 세상에 펼쳐지는 때는 사람이 일어나는 인시이고 뱃속에서 팔십 년 신명이다.”
  상여 뒤로 이어지는 많은 만장(萬丈)속에 글귀들을 천천히 읽어본다. 정민수 교감은 등골이 송연해짐을 느끼며 섬광처럼 스치는 자각을 느꼈다.
  “이 말의 뜻이 저 말 이었구나! 저 글의 해석은 상제님을 추종하는 어느 교단에서나 통일된 해석이었는데…. 그런데 그게 아니었어! 오늘에야 비로소 그 뜻이 완연하게 드러났어! 소름이 돋는다!”
  부인인 박민영 선사는 딱히 기존의 해석과 특별하지 않는데 소름이 돋는다는 말에 궁금증을 자아내었다.
  “뭐가 소름이 돋는다는 거예요?”
  “뱃속에서 80년 신명(神明)이라는 말은 직역으로 그 뜻을 달리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도전님께서 화천 하신 연세가 80세 이신데, 이것은 도전님에 대한 것을 예시한 것이고 누구도 그 진의를 파악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도주님(道主任)도 알지 못하는데 이들이 언제 그 뜻이 도전님(都典任)까지 미치겠어요. 상제님을 따른다 하나 뜻을 받들 수는 없는 거지요.”
  “도전어야천개어자(道傳於夜天開於子) 철환천하허령(轍環天下虛靈)”
  “도가 전하는 때는 밤에 하늘이 열리는 자시이고 마차를 타고 천하를 돌아다녀도 다 허령이다. 이것은 공자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보았습니다”
  “교봉어신지벽어축(敎奉於晨地闢於丑) 불신간아족지각(不信看我足知覺)”
  “교가 받들어지는 때는 새벽 땅이 열리는 축시이고 믿지 못하겠거든 나의 발을 보고 깨달으라. 석가모니의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여기까지만 보았습니다.”
  “결국 도가 이루어지는 과정을 설명한 글로 많은 사람이 여기까지만 보았을 뿐, 이글이 종통(宗統)을 담고 있는지 누군들 알았겠어요. 무극계열의 태극도 사람들도 모르는 내용이고 이제야 오직 우리만 아는 내용이 되었어요. 그것도 하늘이 열어 주었기에 알 수 있는 내용입니다. 문자(文字) 좀 한다 하는 사람들이 우습군요.”
  박민영 선사나 옆에서 귀동냥으로 듣고 있던 전서열 선무도 그의 해석에 놀랍고 이미 예시되어 있던 화천이라는 생각에 무게를 싣게 되어 마음의 위안이 되고 있었다. 여전히 말을 이어가려는 그의 표정에 내심 기대가 일어났다.
“  도주님은 12월 4일에 탄강하시고 도전님은 12월 4일에 화천 하시니 이것은 음양(陰陽)을 맞춘 것이고 인위적으로는 도저히 삶과 죽음을 맞출 수 없어요.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최소한 우리에게는 흔들리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거와 같아요. 금강산토성수련도장 영대 뒤 신선봉의 높이가 1,204m입니다! 우연일 수 없어…. 우리 도(道)가 맞는 겁니다.”
  전서열 선무는 홀연히 머릿속이 맑아짐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신선봉이 1,204m라는 교화는 도주님 탄강일과 일치하는 숫자로 토성도장을 창건하는 시점에 새롭게 등장한 교화로 많은 수도인의 가슴을 뭉클하게 한 그 천부(天賦)성에 탄성을 자아내던 샘물 같은 교화였다. 그런데 지금 귀동냥으로 재해석되는 그 천부의 완벽한 확장에 전서열 선무는 살아있는 도(道)의 생동감과 숙연함을 동시에 받아들이고 있었다. 눈앞에 보이는 장엄한 신선봉을 바라보며 ‘얼마나 놀라야 하고 어디가 끝인가요?’ 정민수 교감을 바라보며 옆에서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인연인가? 명쾌하고 시원하게 해석을 해 준 그에게 마음으로 감사하며 마치 “성현은 지나가는 말로 가르치지 바로 일러주지 않는다.”라는 말을 재현한 느낌이었다.
  박정호 교령 이후에 보는 눈이 범상치 않은 사람 같았다. 이 역사적인 현장에 자신의 힘으로는 도장에 찾아오기 어려운 일인데 도장에 와 있을 수 있음은 어쩌면 도전님께서 찾아 주셨음이 아닐까…. 그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멀어지는 상여(喪輿)와 뒤를 따르는 『전경』 밖으로 나온 의미심장한 만장(萬丈). 그 뒤를 슬픔을 이겨내며 촘촘히 따르고 있는 수많은 수도인들, 이런 것들이 아우러져 한 장의 이미지처럼 역사의 그림으로 가슴에 그려지고 있었다.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은 도주님(道主任)을 상징하는 글귀임을 천하가 다 아는 얘기인데, 도전님(都典任)께서 31세에 입도하시고 화천하신 80세까지도 50년인데…. 이 50년은 오십 년 공부와 연관성이 있을 듯한데 해석이 조심스럽군요. 『전경』에 오십년공부종필(五十年工夫終畢)이 있고, 오십 년 공부가 있는데 오십 년 공부는 도전님을 말씀하신 게 아닌가 의문이 드네요. 종필(終畢)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을 듯한데?”
  정민수 교감은 상여를 보며 자신의 속내에서 버무려지는 그림 하나가 만들어질 듯한 모자이크를 완성하려 하는 듯 미완의 느낌을 입으로 토해내고 있었다. 그런 느낌 하나하나까지 듣고 있던 박민영 선사가 정민수 교감을 애틋한 마음으로 쓰다듬듯 격려해주는 목소리로 말을 꺼낸다.
  “당신이 문장을 좀 안다 하는 사람들이 우습다면서 정 교감이 문장에 빠지는 게 아닌가요? 너무 멀리 가지 마세요. 도통(道通)이 문장에 있는 게 아니잖아요.”
  “그렇긴 한데 인간만이 의문을 던지고 그 의문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넘치는 사람들을 보아 왔어요. 그렇게 될까 봐 그래요. 당신은 똑똑하다는 소리도 많이 듣는 편이고 해서요.”
  “하하하 내가 그런 모습을 보였나? 나는 끝까지 따라가는 공으로 도통할 사람이지 문장으로 도통할 사람이 아닙니다.”
  정민수 교감의 완벽하지 않은 말에 전서열 선무의 마음에도 의문의 기억으로 남는 50년 공부종필과 50년 공부라는 문장의 분리로 구분되어져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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