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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5년(2015)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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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 도주님(道主任) 탄강(誕降) 120주년을 기리며

도주님(道主任) 탄강(誕降) 120주년을 기리며
 
 
글 교무부
 
 
 
 
  2015년 1월 23일[陽]은 대순진리회의 창도주(創道主)이신 도주님께서 탄강하신 날이다. 도주님께서는 지금으로부터 120년 전인 을미(1895)년 12월 4일 경상남도 함안군 칠서면 회문리(會文里)01에서 인간의 몸으로 탄강하셨다. 함안 조(趙)씨 29대손이신 도주님의 존휘는 철제(哲濟)이시고 자함은 정보(定普)이며, 존호는 정산(鼎山)이시다. 2015년은 도주님께서 탄강하신 후 두 갑자(甲子)를 지나 다시 맞이하는 을미년(乙未年)이다. 그래서 금년은 도주님께서 탄강하신 지 120주년이 되는 해이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도주님의 종통계승과 행적 등을 살펴보며 도주님께서 이 땅에 탄강하신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보고자 한다.
 
 

  대순진리회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님께서는 천도(天道)와 인사(人事)의 상도(常道)가 무너져 삼계가 진멸할 지경에 이르자 삼계대권을 가지고 천하(天下)를 대순(大巡)하시다가 인세(人世)에 대강(大降)하셨다. 상제님께서는 비겁(否劫)에 쌓인 신명(神明)과 재겁(災劫)에 빠진 세계 창생을 널리 건져 상서(祥瑞)가 무르녹는 지상선경을 건설하시고자 천지도수(天地度數)를 바로잡고 천·지·인 삼계를 개벽(開闢)하기 위해 천지공사(天地公事)라는 대역사를 단행하셨다. 상제님께서 천하를 대순하신 유지(遺志)는 계시(啓示)에 의해 종통(宗統)을 계승하신 도주님께 고스란히 이어졌다.02 이러한 사실은 『전경』에 “12월 26일 재생신(十二月二十六日再生身)”03이란 구절에서 보듯이, 도주님의 탄강일인 “12월 4일”이 1년 운회의 만도(滿度: 12월 26일+4일=12월 30일)를 채우실 분을 뜻한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도전님께서는 이것을 여합부절(如合符節)한 천부적인 종통계승이라고 하셨는데,04 도주님의 종통계승이 천부적인 것임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들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도주님께서는 진주(眞主)로 15세가 되시던 해인 기유(1909)년 4월 28일, 창원역에서 신의주로 가는 기차를 타고 모든 가족과 함께 고국을 떠나 만주 봉천(奉天)으로 망명길에 오르셨다. 이 기차가 대전 부근에 이르렀을 때 상제님의 계시에 의한 천명(天命)을 받드시고 상제님의 대업(大業)을 계승하기 위한 공부를 시작하셨다. 만주 봉천에서 도주님께서는 동지들과 구국(救國)을 위한 독립운동에 힘쓰시다가 도력(道力)으로 구세제민(救世濟民)할 큰 뜻을 가슴에 품고 입산공부(入山工夫)에 진력하셨다. 그러다가 9년의 공부 끝인 정사(1917)년에 상제님의 삼계대순(三界大巡)의 진리를 감오(感悟)하시고 종통계승(宗統繼承)의 계시(啓示)를 받으셨다. 이때 도주님께서 태을주(太乙呪)로 본령합리(本領合理)를 이루며 23세에 득도(得道)하신 것은 태을주 23자(字)의 수(數)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도주님의 종통계승이 천부적인 것임을 엿볼 수 있는 사례이다.
  그 후 만주를 떠나 수로(水路)를 이용해 귀국하신 도주님께서는 상제님께서 9년 동안 이룩하신 공사(公事)의 자취를 찾으셨다. 도주님께서 전주 모악산(母岳山) 대원사(大願寺)에 이르셨을 때 종도들에게 “개벽 후 후천(後天) 五만 년의 도수를 나는 펴고 너는 득도하니 그 아니 좋을시구”05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후천 오만 년의 도수(度數)를 풀어나가며 천지공사를 계승하실 수 있는 분이 도주님 당신임을 직접 밝히신 것이다. 그리고 기미(1919)년 정월 보름에는 선돌부인으로부터 상제님의 유지(遺志)가 담긴 봉서(封書)를 받으셨다. 이때 선돌부인은 특히 도주님을 반기며 “상제께서 재세 시에 늘 을미생이 정월 보름에 찾을 것이로다.”06라고 하셨다며 상제님께서 봉서의 주인을 예시해 놓으셨음을 밝혔다. 그리고 도주님께서는 선돌부인의 권유에 따라 상제님께서 동곡 약방에 비치하셨던 조화둔궤를 보천교(普天敎) 본부에서 통사동(通士洞) 재실로 옮기셨다.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셨음을 알 수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사례가 있다. 그것은 신유(1921)년 9월 5일에 동곡약방의 뒷산(구성산) 기슭에 초빈(草殯)07되어 있던 상제님의 성골(聖骨)을 통사동 재실로 모셔와 상제님께서 화천하신 지 13년 만에 장례(葬禮)를 치르고 강세일인 9월 19일에 치성을 모신 일이다. 상제님께서는 화천하시기 전에 “…묶지도 말고 널 속에 그대로 넣어두는 것이 옳으니라.”08라는 유언을 남기셨다. 상제님 재세시에 따르던 종도나 외인들 중에는 상제님의 성골을 범하려는 불순한 무리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천둥 번개가 무섭게 쳐서 함부로 접근하지 못했다고 한다.09 그래서 도주님이 아닌 어느 누구도 상제님의 성골을 모시고 와서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이것 또한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실 도주님에 대한 안배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서 우리는 도주님께서 상제님의 종통을 계승하셔서 천지공사를 이으실 분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 후, 도주님께서는 1925년에 전북 구태인 도창현(道昌峴)에 도장을 마련하시고 무극도(无極道)를 창도하셨다. 이때 상제님을 ‘구천응원뇌성보화천존상제(九天應元雷聲普化天尊上帝)’로 봉안하고 이를 천하에 공표하셨으며, 종지(宗旨)와 신조(信條) 및 목적(目的)도 밝혀주셨다.10 여기서 종지는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의 핵심적인 원리를 나타낸 것이고, 신조는 이러한 진리를 실천하고 수행(修行)하기 위한 조목이며, 목적은 대순진리를 통해 추구하는 궁극적인 이상(理想)을 나타낸 것이다. 이처럼 도주님께서는 신앙의 대상이신 구천상제님의 신격(神格)을 처음으로 천명(闡明)하셨고, 종단(宗團) 창설과 함께 많은 사람이 상제님께서 대순하신 진리를 신봉하고 수행할 수 있는 교리체계의 구체적인 모습을 밝혀주셨다. 이로써 도인들은 도주님의 가르침과 법방(法方)에 따라 상제님의 해원상생(解冤相生) 대도(大道)의 진리를 실천 수행할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편, 도주님께서는 봉천명(奉天命) 이후 많은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전국 각지를 다니며 수도를 하시고 공사를 보셨다. 종단 건립 후에는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度數)에 의한 공부와 포교에 힘을 기울이심으로써 도세(道勢)가 일가(日加) 월증(月增)하였지만, 1941년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의 종교단체해산령으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겪기도 하셨다. 해방 후인 1948년에는 도본부(道本部)를 부산으로 옮기셨고, 그 후 도명(道名)을 태극도(太極道)로 바꾸신 뒤에도 포덕(布德)과 교육 및 구호자선 사업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 정유(1957)년 11월에는 도인들의 각종 수도방법과 의식행사 및 준칙 등을 마련하셨는데, 도인들의 생명보다 소중한 시학·시법공부를 처음으로 시행케 하신 것도 이때의 일이다. 이처럼 도주님께서는 15세에 봉천명하신 이후 64세에 화천(化天)하실 때까지 50년 동안 상제님께서 짜놓으신 도수(度數)를 지극한 정성과 한결같은 마음으로 풀어나가며 모든 공부를 마치셨다. 또한 도인들이 상제님의 천지대도(天地大道)를 신봉하며 수행할 수 있는 교리체계와 모든 도법(道法)을 확고하게 정립해 놓으셨다.
  이러한 도주님의 진법(眞法)과 법방(法方)은 유명(遺命)으로 종통을 계승하신 박우당(朴牛堂) 도전(都典)님께 고스란히 이어져 오늘날 대순진리회의 조직체계와 수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도전님께서는 “본도의 연원(淵源)은 상제님의 계시(봉서)를 받으셔서 종통을 세우신 도주님으로부터 이어 내려왔다.”11고 하셨고, 우리 도의 연원도통(淵源道通)은 상제님, 도주님 두 분의 진리 그 이치를 받아야 통(通)하는 것임을 명시하신 바 있다.12 이와 같이 도주님께서는 이 땅에 탄강하셔서 상제님의 유지(遺志)에 의한 종통을 계승하셨고, 구세제민(救世濟民)하시고자 50년간 필설로는 형언할 수 없는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도수에 의한 공부와 포교에 힘을 기울이셨다. 그 과정에서 종단을 창설하고 교리체계를 정립하셨으며, 대순진리회의 모든 수도와 의식(儀式)체계 및 법방을 마련해 놓으셨다. 대순진리회에 동귀하는 도인들이 후천 오만 년의 극락(極樂)을 누릴 수 있게 된 것도 도주님의 이러한 노고와 헌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모든 도인은 도주님의 은혜를 가슴속 깊이 새겨야 하며, 포유문(布喩文)에서 “기뻐하라 나의 도우들이여! 힘쓰고 힘쓸지어다(喜吾道友勖哉勉哉).”라고 하신 도주님의 말씀처럼, 대도(大道)의 진법(眞法)을 지키고 실천함에 있어서 한 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지극한 정성과 공경을 다해야 할 것이다.
 
 

01 현재의 경남 함안군 칠서면 회산리(會山里) 회문(會文)마을.
02 ‘종통’에 대해 도전님께서는 “이것은 일반 사람들이 주고받는 상속이 아니라 하늘에서 천부적으로 이어져 오는 신성성이며 연속성인 것입니다. 이러한 천부적인 연속성을 종통이라고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신 바 있다.(《대순회보》 10호(1988. 10. 10) 훈시)
03 공사 3장 41절.
04 《대순회보》 5호(1986. 10. 28), 훈시 참조.
05 교운 2장 11절.
06 교운 2장 13절.
07 어떤 사정으로 장사(葬事)를 속히 치르지 못하고 송장을 방 안에 둘 수 없을 때, 임시로 한데나 의지간(依支間)에 관(棺)을 놓고 이엉 따위로 그 위를 이어 눈ㆍ비를 가릴 수 있도록 덮어 두는 일. 또는 그렇게 덮어 둔 것.(국립국어원 : http://www.korean.go.kr)
08 행록 5장 35절.
09 신상미, 「상제님의 성골(聖骨)」, 《대순회보》 139호 (2012), p.45 참조.
10 교운 2장 32절.
11 『대순지침』, p.4.
12 도전님 훈시(1989년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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