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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소식 : 건강과 웰빙을 위한 도교적 실천 담론: 양생 그리고 상생

건강과 웰빙을 위한 도교적 실천 담론:
 
양생 그리고 상생
 
 
 
  이글은 대진대 대순사상학술원과 종단의 대순종교문화연구소 일행 6명(단장 김욱)이 중국도교협회의 초청으로 2014년 11월 25일부터 26일까지 양일간 중국 장시성(江西省) 잉탄시(鹰潭市)에서 개최된 ‘제3회 국제도교포럼’에 참가하여 ‘건강과 웰빙을 위한 도교적 실천 담론: 양생 그리고 상생’이라는 주제로 발표한 논문이다.
  중국도교협회에서 주최한 국제도교포럼은 문화혁명(1966∼1976년) 이후 중국정부에서 처음 개최한 국제적인 종교행사이다. 지난 2011년 10월 23일 첫 시작으로 2014년 3회째를 맞아 세계 각지의 27개국에서 2,000여 명의 도교 관계자가 찾았다고 전한다.
 중국도교협회는 종단과 지난 몇 년간 상호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 대순진리회와 도교의 비교 연구 활성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이번 국제도교포럼 발표를 통해 중국내 대순사상의 전파와 세계 종교 지도자 및 석학과의 신규 교류가 증진될 것으로 보인다.
 
 

1. 21세기의 화두, 건강과 웰빙
  근대 이후 과학의 발전에 따른 급속한 문명화에 힘입어 인류는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놀라운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과학문명의 이면에는 어두운 그림자 역시 존재한다. 분배 문제와 계층 간 갈등과 같이 자본주의의 폐단으로 나타나는 사회 구조적 병폐, 세계화와 지역화 문제, 인간성 말살, 지구 온난화와 환경 파괴, 이윤만을 추구하는 극단적 상업화 병폐 등 그 종류는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 가운데 인간 개체의 생명을 가장 직접 위협하고 있는 것은 환경 파괴와 상업적 이익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잘못된 음식, 사회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겪을 수밖에 없는 스트레스이다.
  한 예로, 지난 2월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센터(IARC)가 발표한 ‘세계 암 보고서 2014"에 의하면, 현재 전 세계 남성 5명 중 1명, 여성 6명 중 1명이 암에 걸리고 있다고 한다. 그 비율은 꾸준히 증가하여 2030년이 되면 암 발병률이 50% 이상 더 높아질 것으로 예측되었다. 암의 발병 원인에 유전적 요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3%일 뿐이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오염된 환경, 화학첨가물이 가미된 가공음식이야말로 암 발병의 가장 중요한 원인인 것으로 지목되고 있다. 이들이 인체의 면역 체계에 이상을 일으키면 나타나는 것이 바로 암이다. 암은 현대 첨단의학에만 의존할 경우 완치될 확률이 불과 2%에 지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암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원인이 되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잘못된 환경과 가공음식을 피하지 않으면 안 된다. 최근 미국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경우, 가까운 장래에 암 발병은 더욱 증가하여 전체 미국인 남성의 2명 중 1명, 여성의 3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하게 될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과학기술문명은 인간에게 풍요로움을 제공해주었지만, 반면 스트레스와 잘못된 환경 및 음식에 둘러싸이게 함으로써 인간의 건강을 크게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21세기 이후 동아시아에는 우리의 소중한 정신적·육체적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심신의 정화와 행복을 도모하는 웰빙(Well-beng)이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인식이 널리 확산되어 왔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웰빙문화가 상업적으로 왜곡되어 나타난다는 데에 그 문제점이 있다.
  원래 웰빙은 물질문명 병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구에서 나타난 하나의 공익 문화운동이었다. 근대 이전 서구에서 행복하고 좋은 삶이란 영혼과 믿음, 금욕을 강조하여 얻는 것이었으나, 근대 이후가 되면 물질적 풍요를 희구하는 욕구충족적인 삶을 의미하게 되었다. 그러나 삶이 자본에 종속되고 물질에 파묻힌 생활이 공허함으로 귀결되자,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자연주의와 뉴에이지 운동을 접목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모색하게 되었고, 그 결과 등장한 문화가 바로 웰빙이었다.01
  이렇게 서구 문화 토양에서 발아한 웰빙문화는 21세기 초엽 동아시아에도 이식되었다.02 허나 그 문화는 민중의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아니라, 일부 부유층의 소비문화를 포장하는 쪽으로 흐르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이윤만을 추구하는 회사들은 음식, 주택, 각종 실생활 필수품들에 웰빙이라는 이름을 붙여 고급 브랜드화하였으며, 부유층들은 이를 과시의 수단으로 이용하였다. 그들은 웰빙을 문화의 헤게모니쯤으로 인식하고 자신들의 소비 습관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전락시켰다.03 이러한 점 때문에 최근에는 웰빙 대신 심신의 건강을 모두 도모하는 원래의 취지를 살리자는 의미에서 ‘웰니스(Wellness)’라는 말을 선호하기도 한다.
  웰빙이 상업적으로 왜곡되어 물질주의적 사고, 잘못된 소비, 계층 간 갈등을 조장시키고 있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본래 지닌 긍정적 가치를 고려할 때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주제이다. 더군다나 앞서 언급했듯이 물질문명과 억압적 사회구조 탓에 받아야 하는 스트레스, 잘못된 환경과 음식으로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해결책으로 여겨지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렇다면 서구 문화를 배경으로 하는 웰빙을 동아시아에 맞게 정착시키려면 어떠한 담론과 방법들이 마련되어야 하는가?
  본 발표자는 그것을 양생과 상생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양생은 개인적 차원에서, 상생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인간 웰빙을 가능하게 해 줄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2. 웰빙과 양생
  동양에 맞는 웰빙문화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동양의 전통사상들을 살피고, 그로부터 웰빙의 의미에 부합되는 개념들을 추출한 후,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실천 모델을 만들어내는 일련의 작업들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동양의 대표 종교전통들인 유불도(儒佛道)를 들여다보자.
  유불도의 이상은 각각 성성(成聖), 성불(成佛), 성선(成仙)이다. 즉, 유교는 성인(聖人)의 학을 수양함으로써 성인의 인격을 성취하고 그것을 발판으로 사회적 교화를 실현하는[內聖外王] 성인군자가 되려고 하였다. 불교는 각고의 수행을 통하여 위대한 깨달음을 얻어 성불하고자 하였으며, 도교는 정기신(精氣神)의 단련과 도(道)와의 합일을 통해 불로불사의 신선이 되고자 하였다.04
  웰빙의 실천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 가운데 도교가 동양적 웰빙 담론에 가장 잘 부합할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도교는 생명을 기르는 데 초점을 두고 오랜 기간에 걸쳐 다양한 양생법을 개발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소동파나 한국의 퇴계(이황), 율곡(이이)과 같은 많은 유학자도 자신들의 건강을 돌보고 삶의 여유를 찾음에 있어서 도교 양생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 현대 중국에서도 영어 ‘Well-being’은 ‘安康’ 또는 ‘心身健康’으로 번역되는데, 이것은 ‘Well-being’이 장수를 목적으로 심신을 편안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양생과 동일한 개념으로 인정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양생이라는 말은 이미 전국시대부터 널리 사용되었던 것인데, 처음에는 양성(養性)이나 양신(養神)같은 내면적 정신 고양에 초점을 두었지만, 후대로 가면서 토납(吐納), 도인(導引), 벽곡(辟穀), 존사(存思), 식기(食氣), 과의(科儀), 오금희(五禽戲), 태극권, 자연 약물 복용까지 모두 포괄하게 된다.05
  이러한 것들을 그 내용으로 하는 도교 양생은 다음과 같은 담론들을 지니고 있다. 그것은 첫째, 도교 양생은 도(道)와의 합일을 추구한다. 원래 인간과 하늘[天=道]은 통일적 관계에 있으며 서로 소통하면서 우주의 생성·변화·발전·소멸을 공통으로 경험하도록 만들어졌다. 그러므로 인간은 도와의 합일을 지향함으로써 유한한 자신의 삶을 무한한 도와 접목할 수 있게 되고 결국 그 무한함을 영원히 간직할 수 있게 된다고 보는 것이다.
  둘째, ‘나의 생명은 나에게 달려 있다[我命在我]’는 도교의 기본 명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도교 양생은 자력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도교는 기본적으로 숙명론이나 절대자에 대한 종속적인 태도를 거부하고, 오로지 자기의 주관적인 노력에 따라서 자신의 명을 결정짓는다고 본다. 그러므로 생명 역시 스스로의 수련으로써 능동적으로 개조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셋째, 도교 양생은 심신의 동시 단련을 추구한다. 이를 성명쌍수(性命雙修)라 하는데, 인간 생명의 본질은 정신이지만, 그 정신은 육체에 의탁하기 때문에 육체 역시 저버릴 수 없고 단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도교 양생에 있어서 핵심적인 것은 기(氣)이다. 도교는 우주 만물이 기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천지만물 역시 기로써 이루어져 있다고 본다. 인간 개체의 생명을 구성하는 3대 인자는 정기신(精氣神)인데, 도교 양생은 정을 체내에 순환시켜 기로 변환시키고 다시 그것을 신으로 바꾼 뒤 허(虛)로 되돌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기는 정과 신의 중간자적 매개체로서 양생의 주된 대상이 된다.06
  이상의 담론들을 바탕으로 삼는 도교 양생은 흔히 ‘잘 하면 신선이 되고, 못 해도 건강은 챙길 수 있다’는 말로 그 효능이 표현된다. 이러한 양생이 실제 생활에 적용될 수 있는 모델을 찾기 위해서, 실제 양생이 실천된 두 사례를 간단히 살펴보자.
  첫 번째 사례는 장자의 소요유(逍遙遊)이다. 장자는 속세를 떠나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세속인과 함께 삶을 살아가면서도 조물주 및 지인(至人)과 더불어 노닐고자 하였다: “혼자 천지 정신과 왕래하고 만물에 대해 거만하지 않으며,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아 세속 사람들과 함께 살았다. 위로는 조물주와 함께 놀고 아래로는 생사를 잊은 지인(至人)과 짝한다.”07 즉 그는 끝없이 광활하고 비할 데 없이 드넓은 내면세계에서, 어떤 세속적 가치에도 구애 받지 않는 대자유의 삶을 누리고자 하였으니, 그것이 바로 소요유이다. 그의 소요유는 무위(無爲)에 따르는 삶을 사는 것으로서 외물로부터 자신의 독립성을 지키면서 나아가 시공과 생사를 초월한 지인이 됨을 목표로 한다.08 장자의 소요유는 달관(達觀), 한적(閑適), 망아(忘我)라는 세 가지 뜻을 함축하고 있는 것으로서,09 정신적 스트레스를 물리치고 마음의 평안함을 목표로 하는 양생법이다.
  두 번째 사례는 북송의 소동파이다. 그는 뛰어난 글재주와 정치 감각, 애민(愛民) 정신을 지녔고 지방관으로서도 많은 선정을 베풀었지만 정적(政敵)의 공격으로 인생 후반 상당 기간은 극심한 곤경을 겪게 되는데, 대략 황주로 유배되었을 때부터(43세) 죽을 때까지 20여 년 간 도교 양생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무너져가던 자신의 건강을 적극적으로 챙기게 된다. 그는 무엇보다 집착하지 않는 도교의 무위 개념을 양생의 근간으로 삼았다: “첫째는 아무 일도 없이 지내는 생활을 귀하게 여기며, 둘째는 일찍 잠자리에 드는 일을 행복하게 생각하며, 셋째는 편히 걸어 다니는 것을 좋은 수레를 타는 것으로 여기고, 넷째는 천천히 식사하는 것을 맛난 고기 먹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는 명상호흡, 소식과 절식, 산책, 욕망의 자제, 천연물질을 이용한 건강 약품의 제조와 복용, 초월과 달관의 긍정적 정신으로 세상을 거시적으로 바라보기, 웃음의 생활화를 실천하였다. 이러한 그의 생활은 잘 짜인 하나의 웰빙 프로그램을 연상시킨다.
  장자의 양생은 초기 도교에서 유행했던 것으로 주로 인간 내면에 치중한 것이나, 그 후대에 등장한 소동파의 도교 양생은 다양한 기법들이 가미되어 심신의 균형 잡힌 조화와 평안을 동시에 추구하는 것이었다. 소동파의 양생법은 현대의 도교 양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서, 동양에 맞는 건전한 웰빙문화를 위한 하나의 모범 사례로 제시해 봄 직한 것이라 하겠다.
 
 
3. 웰빙과 상생
  대체로 도교 양생은 개인적 차원에 국한되고 있다. 하지만 웰빙은 안녕과 행복, 복지를 포함하기 때문에 개인적 차원에 머물지 않는다. 웰빙은 개인적 노력만으로는 성취되는 것이 아니며, 타인과 사회, 더 나아가 세계와 우주만물까지 연관되는 개념인 것이다.10 따라서 진정한 웰빙을 위해서는 인간 개체를 둘러싼 여러 환경적 요소들과의 관계까지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웰빙이라는 목적에 부합하는 이러한 관계 담론은 상생으로 정립할 수 있다고 본다.
  전통적인 도교에도 가난과 환란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해주며 덕을 쌓는 진행(眞行)이라는 외적 수련이 있고, 또한 적선(積善)을 강조하는 공과격(功過格)이나 권선신앙(勸善信仰)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이 담론들은 주로 인간들 사이에 적용되는 일방향적 개념이다. 이에 비해 상생은 인간 개체들뿐만 아니라 집단과 집단, 망자(亡者)와 생자(生者), 더 나아가 자연과 만물 등, 모든 관계에 다 적용 가능한 폭넓은 양방향적 개념이다.
  원래 동양철학에서 상생은 오행 사이의 관계를 말하는 우주론적 용어였으나, 이것을 종교적 진리체계의 축으로 삼아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분은 대순진리회의 신앙의 대상인 강증산(姜甑山, 1871-1909)상제이시다. 2014년 현재 한국에서 200만 가구의 신자를 두고 있는 대순진리회는 경기도 여주의 본부도장을 비롯하여 전국 각 지역에 5개의 도장과 2,500여 곳의 종교 집회 시설물들을 갖추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인 민족종교이다. 한국의 종교학자들도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와 함께 대순진리회를 한국의 5대 종교로 꼽는다.
  상생은 이러한 대순진리회의 핵심적 가치이다. 오행의 상생은 두 대상 사이에 일방향으로 작용하는 것이지만, 대순진리회의 상생은 쌍방향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그 의미는 ‘서로 같이 더불어 사는 것’,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는다. 상생은 이보다 더욱 적극적인 사상이다. 내가 살기 위해서는 남을 살리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 그러므로 서로가 서로를 살려야만 모두의 생존이 가능하다는 것이 상생의 진정한 본뜻이다. 쉽게 말해서 공생(共生)이 ‘같이 사는 것’이라면, 상생은 ‘같이 살리는 것’이다.
  대순진리회는 이러한 상생을 구현하기 위해서 해원(解冤)과 보은(報恩)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본다. 즉 해원상생(解冤相生)이요, 보은상생(報恩相生)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해원(解冤)이란 무엇인가? 이제까지의 세상은 상극이라는 원리 아래 움직여왔으므로 반목과 투쟁 때문에 원한이 끊임없이 생겼고, 그 원한들이 풀리지 못한 채 가득 차서 세상은 망하게 되었다. 따라서 평화로운 새 시대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모든 원한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즉 해원이 없이는 상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해원은 분풀이나 보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증산께서 ‘악(惡)을 악(惡)으로 갚는 것은 피를 피로 씻는 것과 같다’, ‘악(惡)을 선(善)으로 갚아야 한다’고 하신 바와 같이, 해원의 길은 상대를 용서하며, 이타의 정신으로 남에게 원망 받을 일을 하지 말고 오직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에 힘씀에 있다. 
  해원이라는 말은 예로부터 있어왔으나 대순진리회는 그 개념을 우주론적 영역으로 확장시켜 새로운 생명을 주입시켰다는 데에 그 중요한 특징이 있다. 그것은 첫째, 기존의 해원이 망자의 원(冤)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면, 대순진리회의 해원은 원을 가지는 주체가 망자를 넘어서 살아 있는 사람, 민족, 국가, 심지어 동물과 신명 등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들에게까지 확대된다는 점이다. 둘째는 기존의 해원이 전염병이나 재해(災害) 같은 부분적인 혼란 해결을 도모하는 차원이라면, 대순진리회의 해원은 인간계의 혼란을 넘어 신명계를 포함한 전 우주를 혼란에 빠뜨리는 근본적인 원인 제거를 도모하는 차원이라는 점이다. 셋째는 기존의 해원이 망자를 위안시키는 차원이라면, 대순진리회의 해원은 그 차원을 포함하면서도 동시에 남을 잘 되게 하라는 상생 관념과 결합하여 윤리도덕의 차원으로까지 나아간다는 점이다. 넷째는 기존의 해원이 원혼을 위무하고 현세의 안녕을 지향하는 차원이라면, 대순진리회의 해원은 상극과 원이 없는 새로운 신세계를 지향한다는 점이다.11
  이러한 해원으로써 서로가 서로를 살리는 것에 힘쓰는 것을 해원상생이라고 하니, 이 사상은 개인과 개인 간의 관계뿐만 아니라 전 사회와 국가, 더 나아가서 자연과 만물의 관계까지 적용될 수 있는 보편적인 것이다.
  또 보은이란 무엇인가? 사람이 삶을 영유함은 천지의 은혜이니 하늘을 공경함으로써 갚아야 하고, 사람이 각자의 지위와 가치를 갖게 되는 것은 사회의 은혜이니 사회의 복지를 위하여 헌신 봉사함으로써 갚아야 하고, 편안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음은 국가의 은혜이니 국가에 대한 성충(誠忠)으로써 갚아야 하고, 태어나고 자람은 부모로부터 받은 은혜이니 효로써 보답해야 하고, 가르침을 받아 성공을 이룸은 스승의 은혜이니 그 받은 학식으로써 국가사회에 헌신·봉사하여 갚아야 하고, 생활의 여유로움은 직업의 은혜이니 충실·근면으로 직무에 복무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은을 생활화함이 곧 보은상생의 실천이다.
  인간은 살아가면서 사회와 자연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웰빙을 추구한다면, 개인적 차원을 넘어서 사회·자연과의 관계 역시 바르게 정립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인간 개체를 뛰어넘어 보다 거시적인 차원에서의 웰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과 인간의 상생, 사회와 사회의 상생, 국가와 국가의 상생, 민족과 민족의 상생, 더 나아가 대자연과 인간의 상생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더 이상의 설명이 불필요할 정도로 명확한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해원상생과 보은상생은 진정한 동양의 웰빙문화를 정립케 해주는 중요한 바탕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물질문명의 폐해로 인간 개체의 생존을 위협받는 현실에서 탈피하고 소중한 건강과 생명을 지키게 하는 목적에서, 양생과 상생을 간략히 살펴보았다. 비록 그 개요만 훑었을 뿐이지만, 이것만으로도 양생이 인간 개인적 차원에서, 상생이 인간 공동체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까지 포괄하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의 웰빙을 가능하게 해 줄 수 있는 담론이라는 점은 충분히 인정되리라 본다.
  도교는 오래된 종교전통이다. 그러나 그 전통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의 유물도, 과학문명시대와 맞지 않는 미신적인 것도 아니다. 그 전통 속에 숨어 있는 담론들은 오히려 과학문명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에 대해 훌륭한 해결책으로 제시될 수 있기에, 도교 전통은 여전히 유용하고 위대한 보고(寶庫)이다. 그런 점에서 도교의 가치는 계속 발굴되고 현대에 맞게 재수용되어야 한다고 본다.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인 감각이 잘 어우러져서 자국과 민족의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세계화의 흐름에 유유히 동참하고 있는 사례를 우리는 도교와 대순진리회의 번창에서 잘 확인할 수 있다. 향후에도 도교인들이 모여 토론하는 이런 자리에서, 현대에 맞는 유용한 개념들을 추출하고 현대에 맞게 변용·확장하며, 실제 적용해 나갈 수 있는 구체적인 담론과 모델 개발을 지속적으로 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논평 (가이젠민 교수)
  한국 대순진리회의 교무부장 김욱 선생님께서는 「건강한 웰빙을 위한 도교적 실천 담론: 양생 그리고 상생」이라는 제목으로 논문을 발표하셨는데, 그 내용을 보면 아주 중요한 두 가지 개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는 논문에서 ‘양생’과 ‘상생’이라는 화두를 제시하면서, 대순사상과 도교의 양생에 대해 비교하고 분석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언급하였습니다.
  글에서 그는 아주 중요한 관점을 제시하였는데, 즉 도교의 양생은 개인에 입각한 개인적인 양생이라면, 상생은 사회적 측면을 포괄한다는 것입니다. 저 자신 역시 필자의 양생에 대한 견해를 동의합니다. 도교의 양생을 보면 그 특징 중 하나는 정해진 법(틀)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양생함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체질, 생활환경, 활동 시간, 타고난 기질에 따라 모두 다르게 진행되게 됩니다. 상생은 음양오행에 입각하여 양생을 사회의 전반적인 측면으로 확대했습니다. 즉, 개인의 사적인 행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 및 주변 환경에 의한 공통적인 노력으로 양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발표를 들으면서 저는 도교의 의세사상을 생각하게 되었는데, 명청시기 유명한 도사인 민일득(閔一得)은 양생을 할 때 의세를 근본으로 해야 한다는 이론을 펼쳤습니다. 그가 말하는 의세란 사회적인 측면에서 양생해야 하는 것을 말하는데, 다시 말해서 양생을 하려면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서가 따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이론은 현대 의학이나 양생에 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01 김석수, 「현대 웰빙문화의 발생 원인에 대한 분석과 미래의 새로운 방향에 대한 모색-몸, 이미지, 무의식개념을 중심으로」, 『동서사상』 1 (2006); 김용표, 「소동파의 양생 수련을 통해 본 ‘웰빙’ 정신-『동파림지』 분석을 중심으로」, 『중국학보』 62 (2010), pp.3-7 참조.
02 한국에서 ‘웰빙’이라는 단어는 대략 2002년에 출현하였다.
03 황갑연, 「유가의 조화지향적인 삶의 방식을 통해서 본 현대 웰빙문화의 반성-선진유학을 중심으로」, 『철학연구』 95 (2005), p.425; 김용표, 앞의 글, p.8.
04 김용수, 「도교 철학의 생명관과 생사」, 『한국종교사 연구』 10 (2002) 참조.
05 김용수, 「‘웰빙’과 도교 ‘양생’」, 『동서사상』 1 (2006), p.47.
06 김용수, 같은 글, pp.51-64 참조.
07 “獨與天地精神往來, 而不敖倪於萬物, 不譴是非, 以與世俗處. … 上與造物者遊, 而下與外死生无終始者爲友.” 『莊子』 「天下」.
08 吳小龍,『适性任情的审美的人生: 隐逸文化与休闲』, 昆明: 云南人民出版社 (2005), p.18.
09 조민환, 「도가적 隱士의 삶과 웰빙-장자의 은사적 삶의 태도를 중심으로」, 『동양철학연구』 53 (2008), pp.89-94.
10 유권종, 앞의 글, pp.114-115.
11 车瑄根, 「《太平经》的解冤结与大巡真理会的解冤相生之比较研究」, 金勋 主编,『道与东方文化』, 北京: 宗敎文化出版社, 2012, pp.4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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