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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4년(2014)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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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종교윤리 실천과 도덕

종교윤리 실천과 도덕
 
 
 
연구원 강남규
 
 
 
  현대는 종교 다원주의 사회이고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는 사회다. 지구상에는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그러나 종교를 믿는 사람도 있지만 믿지않는 사람도 많다. 그러므로 종교 윤리의 실천은 더 이상 종교 안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라, 타 종교인, 비종교인과의 소통의 문제이다. 종교를 믿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 믿음으로 인하여 타인의 권리나 도덕 감정을 해치게 된다면 사이비 종교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사이비 종교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서는 그 종교의 교리가 보편적 도덕법칙에 위배 되어서는 안 될 것이고, 도덕법칙에 맞게 해석하려는 노력과 실천이 필요할 것이다.
 종교윤리 실천은 특정 종교의 교리가 믿음을 매개로 하여 신앙의 마음속에서 나타나는 실천에 대한 당위성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우 다양한 교리의 실현과 이를 통한 구원이나 깨달음을 목표로 이타행이나 선행을 지향한다. 그러나 고전적 직관주의에 속하는 칸트에 의하면 일반인의 윤리 도덕의 실천은  선(善)의지라는 개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하여 발원된 것만이 도덕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한다.01 칸트에 의하면 인간은 감성에 좌우되지 않는 순수한 이성만이 초감각적인 실재인 도덕 법칙을 인식할 수 있다. 그러나 도덕의 실천 여부는 인간의 자유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오로지 선의지에 달려 있다. 이 선을 향한 의지는 결과나 목적과 관계없이 오로지 도덕 법칙에 대한 존경심02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 선의지는 곧 실천이성으로 순수이성이 인식한 초월적 도덕 법칙이 자신에게 내리는 명령을 현실적인 자아가 도덕에 대한 존중감에 의무감을 느끼고 이를 실행하려는 의지를 말한다. 칸트에 의하면 도덕 의무감에서 오는 동기가 아닌 경향성03에서 유래한 행위는 도덕성과 무관하다고 한다. 예를 들어 연예인이나 정치인이 인기에 영합하려고 기부금을 내고 선행을 하는 것은 도덕과 무관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잣대로 보면, 종교인이 천국에 가기 위하거나 도교에서 신선이 되기 위해 선행을 하고 공덕을 쌓는 행위는 어떨까? 종교인은 일반인보다 더 도덕적·인격적인 완성을 위해 정진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자칫 도덕의 실천이 일반인보다 순수성이 떨어진다면 그들이 소망하는 목표에서 오히려 멀어지는 우를 범할 소지가 있다. 이타행이나 선행이 순수하지 못하고 다른 목적이나 동기에서 비롯한 경우에는 선행의 대상인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게 되기 때문에 더욱 그 폐해가 심할 수 있다.
  선교(宣敎)하는 행위가 자신의 공덕을 쌓기 위하여 물불을 가리지 않게 되면 상대방의 입장이나 인륜 도덕을 무시하는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무릇 선행은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것이라야 진정한 것으로 그 속에 인간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순수하지 않은 동기에 의한 선행으로부터는 실적주의, 결과주의라고 하는 폐해가 나타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종교적 교리에 근거한 윤리가 보편적 도덕 법칙에 어긋나는 경우이다. 이 경우 그 종교는 인륜 도덕을 무시하는 사이비 종교라는 사회의 지탄을 받게 될 것이다. 종교의 윤리는 사회의 평균적 도덕 법칙에 합치되거나 그 이상이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면 일반인의 도덕 감정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가정·돈·성(性)·생명 윤리 등과 관련한 윤리적 측면에서 지금까지 드러난 사이비 종교에서 보았던 것처럼 보편적 도덕기준에 미달하는 경우가 있다. 자신의 구원이나 종교적 성공만을 목표로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것은 보편적인 도덕 규칙이나 양심에 비추어 봐도 있을 수 없는 것으로 닫힌 종교의 폐해라 할 것이다.
  또한 교리가 도덕법칙에 위배되는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교리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부족하고 맹목적인 신앙으로 가는 경우 사이비 종교로 오해 받을 소지가 있다. 홉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는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이를 억제하고 양심의 회복이나 구원 또는 깨달음을 지향하도록 하는 것이 종교나 도덕의 기능이다. 이렇듯 인간은 불완전하기에 교리가 아무리 훌륭한 종교라 할지라도 자기위주의 해석을 하게 되거나 실천 행위에서는 교리에 부합되지 못하는 수가 있다. 이 경우 특정 종교윤리의 실천은 일반인의 도덕 감정과 어긋나게 된다.
  무릇 종교를 신앙한다는 것은 마음으로 귀의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실 된 믿음에는 반드시 양심이 개입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종교 윤리의 실천은 종교적 이념과 자신의 양심의 대면(對面)과정에서 충분히 상호합치 여부를 순수이성으로 검토한 상태에서 실천이성의 지도 아래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은 칸트가 일찍이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 설파한 바가 있다. 역사적 종교로서의 계시종교와 이성에 의한 도덕종교가 있는데, 실제의 계시종교 안에서 분쟁과 반목이 있을 때 최고의 해석자 역할은 도덕종교가 맡았다. 우리가 종교라고 알고 있는 것은 계시종교이지만 실제로는 도덕종교만이 본래의 종교라는 것이다.
  비교 종교윤리 학자인 데이비드 리틀과 섬너 트위스트가 제시한 ‘종교 윤리 실천의 정당화 구조이론’에서 보면, 인간의 상식에 입각한 정당화 절차로 ‘인식론적 호소’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종교 윤리 실천이 사회적으로 정당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하여 인식론적으로 명백하거나 자명함의 증명이나 추론 행위를 통하여 상식적인 수준에서 종교가 제시하는 행위지침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이다. 한 예(例)로 국내에서 배아줄기 세포에 관한 각 종단(宗團)의 “종교 윤리 정당화 구조”에 의하면 경전과 교리에 의한 호소가 부족함을 느낀 각 종단은 인간의 상식과 이성에 호소하는 방식을 취하게 된다. 이때 호소하는 논거는 윤리적, 인간적인 정서에 의지한다. 또한 선·악이라는 윤리적 판단의 기준으로도 결과가 아닌 의지의 선·악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다.04 이를 보면 결국 종교 교리 실천의 문제에 와서는 궁극적인 기준이 보편적 윤리 도덕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 윤리의 실천은 개인 혼자의 신앙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사회 이웃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의 문제다. 이 과정에서 특수한 종교 윤리와 일반인의 도덕 윤리와의 관계가 문제되는데, 이는 특수와 일반 혹은 보편의 관계로 보면 될 것이다. 보편은 어디에나 적용되는 것이므로 종교인과 일반인 모두에서 작용한다. 그 종교가 보편 종교로 열린 종교, 세계 종교가 되기 위해서는 교리와 보편적 도덕 법칙의 합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 종교 교리를 부단히 연구하여 보편 도덕 법칙으로 설명하는 작업이 꾸준히 일어나야 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종교 윤리의 실천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종교 윤리의 올바른 실천을 위해서 필요한 전제 조건은 종교적 교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자각을 통한 확신이다. 이를 위해서는 종교적 윤리가 마음속에 내면화되어 양심의 거울에 비추어 보편적 도덕적 실천 규범으로 확인이 되는 절차를 거쳐야 할 것이다. 그런 절차가 없이 막연히 믿거나 맹신하는 경우는 윤리적 실천은 순수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닫힌 종교가 아닌 열린 종교가 되는 길이기도 하다.
 
 

01 이는 『대순지침』에 나오는 “성은 남의 간여도 증감도 견제도 할 수 없고 오직 스스로의 심정한 바에 따라 이루어진다.”라는 말씀과 비교해 볼 만 하다.
02 대순진리회 교리개요에 의하면 ‘…윤리도덕을 숭상(崇尙)하고…’라고 하였고, 칠성주(七星呪)에 의하면  ‘…속거소인(俗居小人) 호도구령(好道救靈)…’라 하여 ‘도를 좋아 하고 영을 구하는’ 이라 하였는데, 이와 비교해 볼 만하다.
03 자기애에 근거한 감성적 욕망에서 나오는 것으로 도덕법칙의 무조건적 정언 명법에 대하여 조건적인 자기애를 덧씌워 규칙의 전도를 일으켜 악으로 흐르게 하는 경향이 있다.
04 『종교문화 연구 제18호』,「배아줄기 세포 연구의 생명윤리담론 분석」, 박상언, 2012,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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