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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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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③ 만식이 용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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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식이 용 됐다!
 
 

금릉5-8 방면 평도인 김만식

 
 
 
  내 나이 22살 건장한 대한민국 남아, 제대로 수도를 시작한 지 이제 열 달쯤 되어간다. 아직 평도인이고 닦을 것도 너무 많아서 이 글을 보더라도 수도인으로서 배울 점은 그다지 없을 것 같다는 우려와 함께 남들과는 조금은 다른 내 얘기가 도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부족한 글을 시작한다.
  태어나 자란 곳은 공주 시골 마을이다. 천지분간도 못 하던 3살 때 부모님의 이혼을 시작으로 내 업보의 역사(?)는 시작된다. 아버지의 재혼에 짐이 되었을 나는 조부모님 밑에서 자라게 되고 서울에서 새 가정을 꾸린 아버지는 가끔 내려와서 챙겨준 기억이 난다. 그렇게 시작된 내 유년시절은 의외로 재미있었고 부족한 게 없었다. 하지만 가끔 또래 엄마보다 훨씬 나이 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비교될 때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친엄마가 많이 원망스럽고 많이 보고 싶어졌다. 그런 생각이 나는 날은 조금 외로웠지만, 그 외엔 친구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즐거운 생활이 계속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겐 아버지 같았던 할아버지께서 위암에 걸리시게 되고 다행히 초기에 발견되어 수술만 잘하면 가능성이 있었지만, 가족들의 권유에도 할아버지는 끝내 수술을 거부하셨다. 돈이 없어서고 돈이 많이 들어서다. 뒷날 할머니께서 말해주시길 수술을 하지 않는 것이 만식이를 키우는데 더 도움이 될 거라는 판단에 그랬다고 하신다. 그 후 할아버지는 평소처럼 지내시다 말기쯤에는 급격히 몸이 쇠약해 지셨다. 약을 삼키시지도 못하고 물만 드셔도 구토가 날 때쯤 결국 뼈만 앙상히 남은 채 내 곁을 떠나셨다.  
  시간이 약이라고 한 달, 두 달, 1년이 지나면서 내 감정은 아물었고 평소와 다름없이 지낼 수 있었다. 오히려 할아버지 생각을 하면서 더 열심히 공부했고 결과도 나쁘지 않았다. 고통 속에 가신 할아버지 같은 사람을 치료해주고 싶어 의사라는 꿈을 짧게 품기도 했다. 열심히 공부한 끝에 시험에서 한 문제도 틀리지 않는 결과를 내기도 했는데 새옹지마라고 그 시험 이후로 내게 조금 이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바로 강박증이라는 병마가 찾아온 것이다.
  강박증이란 예를 들면 손을 씻었는데도 더 씻어야 한다는 생각과 씻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불안한 감정이 계속해서 느껴지는 병이다. 남들은 모르는 나만의 정신과 마음의 병이다.
  치료하려고 오랜 노력을 했지만, 친구들과 즐겁게 얘기할 때 외엔 생활 전체가 강박증으로 도배되어 버렸었다. 병원도 다니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쓰며 견디고 버텼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의 호전은 있었지만 공부할 때 3초 이상은 집중할 수 없게 된 것이 오랜 치료의 결과였다. 정말로 힘들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서서히 말라죽어 가는 느낌’이었다. 집중이 되질 않으니 성적이 잘 나올 턱이 없었고 고3때 수시에 모두 떨어지고 결국 공부를 포기하기에 이르렀다. 하고 싶은 공부를 아무리 해도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었다.
  수능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나니 그 점수로 갈 수 있는 4년제 대학이 없었다. 비참했다. 나름 열심히 해보겠다고 아버지가 있는 서울까지 전학도 왔었는데…. 그러던 차에 다행히 내신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이 있어 지원했고 합격했다. 나는 그렇게 운 좋게 대진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왔지만, 강박증이 있는 상태로 즐거운 대학생활을 할 수 없었다. 이야기할 집중력이 부족해 정상적인 대화조차 힘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지독한 병마와 함께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그러던 어느 날. 2학년 때 진주에서 올라온 나(163cm)보다 더 조그마한 룸메이트를 통해 지금의 선각을 만나게 되었다. 강의실에서 교화를 듣는데 워낙 생각이 많은 나인지라 고분고분 들을 리 없었고 1시간쯤 지나서야 겨우 차분하게 듣고 있는데 선각의 목소리는 점점 힘이 들어 갔고 눈빛은 날 잡아 먹을 듯이 강하게 빛나는 그 순간 몸이 확 맑아지는 느낌과 가슴과 배가 뻥 뚫리는 듯한 시원함을 맛보게 되었다. 교화를 듣고서야 내 병이 겁액이고 그것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공부가 상제님의 법이라는 말에 강박증이 나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치성을 모시기로 결심했다. 입도한 계기는 조금 불순한(?) 의도도 있었지만, 그날부터 수도가 시작되었고 병 고치기 위해 시작한 수도는 진리 보다는 몸으로 느껴지는 게 더 와 닿고 너무 신기했다. 회관만 가도 몸이 맑아졌고 선각들만 봐도 마음이 밝아졌다. 그렇게 시작된 내 수도는 올해 초부터 본격적으로 기도, 수련, 교화, 성지순례, 포덕, 회관작업, 식당조 등을 거쳐 열 달새 만식이는 그야말로 ‘용’ 됐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왜냐면 세상에 태어나 상제님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예전의 병자 같았던 얼굴이 이제는 조금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거울을 보며 인상을 바꾸고 기운을 바꾸는 성형을 하고 싶었는데 상제님께서 공짜로 시켜주시니 정말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가끔 생각나던 친엄마에 대한 미움도 이제 이해가 되니 더 이상 날 괴롭히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 교화를 듣고 절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나보다 더 힘드셨겠구나! 나중에 만나면 어엿하게 자란 모습 보여드려야지.’라고 생각한다. 태어나자마자 고아도 많은데 3년이라는 기간 동안 같이 지내고 또 사랑받았으니 그것만 해도 감사하지. 내가 봐도 참 철든 것 같다.
  강박증은 약을 먹지 않았는데도 정말 많이 좋아졌고 집중력도 거의 정상까지 와있다. 집중해서 1시간이라도 제대로 공부하고 싶다는 것이 강박증 속에 살던 6년간의 소원이었는데 그 원 맘껏 풀면서 생활하고 있으니 정말, 진짜, 완전 대박!
  아직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자연이 그렇듯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변했고, 지금도 나아지는 중이다. 생각해보니 어쩌면 강박증 덕에 수도하게 되었고 수도과정에서도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닫게 되니 오히려 감사하다. 강박증이 수시로 드러나 주니 그럴 때마다 상제님을 찾고 매달리게 되는 더 좋은 계기가 되는 것 같다.
  지금 도장에서 식당일을 하는 중인데 짬을 내어 글을 쓴다. 써놓고 보니 좀 더 확실히 내가 많이 변해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다. 솔직히 강박증은 많이 좋아졌지만 성격은 거의 그대로여서 변화를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방면에 돌아가서는 좀 더 많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진정한 일꾼이 되기 위해 독하게 맘먹고 수도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마지막으로 이런 글 쓰면 꼭 하고 싶었던 말, 지금까지 절 바꿔주신 상제님, 선각들, 조상님들 그리고 지금도 수도하고 있는 전국의 도우들! 여기 같이 있어줘 정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까지 함께해서 다 같이 상제님의 마음과 하나(도통군자)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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