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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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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① 나무와 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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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매미
 
 

잠실36 방면 선무 정정수

 
 

  사람들은 잘 모를 것이다. 나무가 얼마나 슬픈 식물인지. 나무는 일생을 살아가며 단 한걸음도 움직일 수가 없다. 두 팔과 다리로 전 세계 곳곳을 누비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나무의 고통을 절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한 걸음만 걸어봤으면, 단 한 걸음이라도, 그래서 나와 비슷한 저 나무가 있는 곳으로 한 걸음만 다가갔으면 그리고 만져보았으면, 느껴보았으면, 안아주었으면, 나무는 그런 마음뿐이다. 그러나 이런 아픔을 한가득 안고 있어도 나무는 절대 눈물을 흘릴 수가 없다. 나무에는 눈이 없으므로.
  원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 수 있는 인간들은 이런 상황이면 평생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이다. 그러나 나무는 단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릴 수 없다. 그래서 마음속 고통이 더해져만 간다.
  그러던 여름날 이런 나무의 고통을 덜어 주겠다는 듯 매미 한 마리가 나무의 몸에 안긴다. 그리고 여름 한 계절 동안 펑펑 울음을 터뜨린다. 매앰 맴. 사람들은 쉬는 시간도 없이 끝없이 울어대는 소리가 지겨워 짜증을 내지만 매미는 그런 것은 나 몰라라 온 동네가 떠나가도록 울음을 울어 젖힌다. 그동안의 나무의 고통에 비하면 사람들이 느끼는 짧은 소음공해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매미는 그렇게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사실 매미가 이처럼 나무의 고통을 느낄 수 있는 것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알에서 깨어나 성충이 될 때까지 거의 7년간을 땅속에서만 살아가야 하는 운명 때문이다. 그래서 매미는 나무의 고독함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움직일 수 없이 오로지 어둠 속에 몸을 맡기고 때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어야만 하는 매미는 움직이지 못하는 나무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매미는 기꺼이 나무의 친구가 되어준다.
  그러나 나무는 그런 매미를 보고 안달이 난다. 매미는 기껏해야 여름 한 철을 살아갈 것인데, 그 짧은 시간 동안 자신을 대신해 눈물을 흘려주다니 그런 모습이 못내 미안하다. 이제 됐으니 그만 떠나가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나 마음뿐이다. 나무는 그것을 도저히 전달할 수가 없다. 나무에는 입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매미는 그런 나무의 마음도 모르는 채 여름 내내 펑펑 울어 젖힌다. 울고, 울고 또 운다. 목청이 쉬어 가끔 찢어지는 소리가 길가에 흩뜨려질지라도 끝없이 울어 젖힌다. 그리고 여름이 지나고 죽게 된다.
  나무는 그 모습을 보고 퍼렇게 질린다. 하나뿐인 친구이자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는 매미, 그 친구가 대뜸 죽어버리니 나무는 퍼렇게 질려버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뿐인가 여름 내내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지 못했던 나무의 마음은 애가 타다 못해 새빨갛게 타버렸다. 또 그런 마음을 아무에게도 전달하지 못하다 보니 속병이 생겨 얼굴에 황달이 생겨버렸다. 그렇게 나무의 잎들이 빨갛고 노랗게 무르익는다. 나무는 기어코 단풍나무가 된다.
  가을이 오고 또 가을이 지나면, 어느새 말라 시들해진 나뭇잎들이 떨어져 바닥에서 잘게 으스러져 버린다. 그리고 겨울이 되면 나무는 긴 시간을 다시 한 번 외로움 속에 살게 되고 세상은 정말 춥고 어둡고 고독한 곳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무에게 희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차가운 겨울이 지나면 봄이 오고, 나무는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발판 삼아 다시금 아주 조금 힘을 쥐어짜 낸다. 그리고 그 힘으로 나무의 몸에서 작은 새싹들이 솟아오른다. 이것은 나무의 눈물이다. 나무는 태어나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눈물을 내게 된다. 사람처럼 눈으로 눈물을 낼 수는 없어도 나무는 잎으로써 눈물을 흘려낼 수가 있다. 그래서 그동안의 괴로움을 맘껏 표현할 수가 있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갈 때 나무는 수만 개의 나뭇잎을 펼쳐 그동안 괴로웠던 만큼 온 힘을 다해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여름의 끝에 다다랐을 때 나무는 자신이 피워낸 나뭇잎들이 사람들이 평생 흘릴 눈물 만큼 흘렸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도 실은 사람만큼 울 수 있다. 그러니 실로 나무로 태어난 것이 결코 불공평한 일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그때야 깨닫는다. 그 순간 나무는 너무 행복해진다. 어느샌가 확신하고 있던 세상의 불공평함이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무는 환희에 온 가지를 부르르 떤다. 그리고 그 행복한 감정을 몸 안팎으로 마구 표출해낸다. 꽃이 핀다. 흐드러지게 아름다운 꽃들이 나무의 몸에서 마구 피어난다. 나무는 기어코 행복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궁극적 행복을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꽃이 모두 피고 나면 다시 나무의 꽃들이 지는 시간이 다가온다. 나무는 정적의 시간을 맞는다. 한껏 감정을 발산하고 나니 일순간 멍한 상태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생각한다. 난 누구지? 나무는 다시 묻는다. 나는 누구지?
  세상의 모든 나무는 봄이 지나 여름이 끝나는 시기가 되면 한결같이 그렇게 되뇌인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 난 누구였더라. 나무는 기억상실증에 걸려버린다. 모든 고통과 행복한 감정이 응축된 꽃이라는 결실을 떨어뜨리고 나니, 나무는 그 충격으로 인해 모든 기억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역설적으로 가장 행복한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묻는다. 난 도대체 누구야. 그리고 멀찌감치 떨어진 자신과 같은 생명체를 바라본다. 앗 나와 비슷한 것이 저기 있네. 가서 한번 물어봐야겠어. 하지만 움직이기 위해 허공을 향해 한 걸음을 내디뎠을 때, 나무는 자신의 발이 땅에 꽁꽁 묶여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이 결코 그 장소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괴롭다. 본인이 누군지 알지도 못하는 나무는 이 알 수 없는 질문을 아무에게도 물어볼 수가 없으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다.
  하지만 나무는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나무를 대신해 울어주었던 그 매미의 유충들이 이제 막 어른이 되었기 때문이다. 곧 땅을 박차고 올라 자신들처럼 고독해 보이는 나무의 몸에 안겨 그 슬픈 마음을 힘차게 나눠 가질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이 되면 사람들은 알 수 있다. 나무는 일 년마다 기억상실증에 걸린다는 것을, 또한 매미는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아주 길고 아주 짧은 삶을 살아가는 나무와 매미는 그렇게 언제나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서로의 아픔을 깊게 공감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나무와 매미는 세상을 향해 자신들과 같이 살아가라고 이야기한다. 이것이 변하지 않는 법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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