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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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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코너 : 나의 선각자는 호랑이띠

나의 선각자는 호랑이띠

 

 

백암1 방면 교감 백경언

 

 

 

  만나면 언제나 먼저 웃으며 반기시는 분이 계시다. 젊은 사람이 도 닦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는 게 단 하나의 이유다. 우연한 기회에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거기서 들은 이야기만을 가지고 재구성하였다. 

 

  주인장~ 계신 겨?

 

  문을 열고 호령을 하신다. 요즘 세상에도 이렇게 호령하며 식당에 들어가는 분이 계신다. 연세는 76세, 무인년(1938) 호랑이띠 우리 어머니 같은 선각이시다. 좌정한 선각께서는 주인 할매를 부르시더니 “요즘 왜 그리 얼굴이 이뻐졌냐? 사랑에 빠졌나 보다~” 하며 한바탕 웃음꽃을 피운다.
  지그시 감은 듯한 눈이 한 번 번쩍일 때마다 일상에 빠져 무기력했던 사람들의 정신을 바루어 주고 두려운듯하면서도 하루를 같이 보내면 수천 권의 책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가슴 가득 주시는 분. 나의 사랑스러운 어머니 같은 선각과 하루에 겪은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점심에 식당에서 한바탕 주인의 혼을 빼놓으신 선각과 택시를 탔다. 기사분이 “어서 오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와 그리 힘이 없소?” “힘든 교?”
  “예, 손님이 통 없어서요.”
  “손님이 없는데 와 힘이 드노? 놀고 좋지 않나?”
  “예?”
  잠깐 어찔한 표정의 기사분이 범상치 않은 손님임을 인식하고 어렵게 한마디 한다. 조금은 도전적이다.
  “돈을 벌어야지요.”
  “돈은 주인이 따로 있데이.”
  “번 사람이 주인 아닙니까?”
  “아, 누구 도장 찍혔는지 보소 마. 한국은행 도장이 딱하니 찍혀있지 않소? 그러니 기사 양반 것 아닌기라.”
  “예?”
  “그리고 벌어서 꼭 쥐고 있어도 기사 양반 손에 몇 시간이나 붙어 있던가?”
  “예, 그야 그날 저녁도 되지 않아 다 나가요.”
  “보소 마, 내끼 아닌기라.”
  “예~에, 헛 그 참. 딱 맞는 말씀입니다.”
  “내 끼 없네예. 딱 맞는 말씀입니다.”
  거듭 맞다는 말을 들으시고는
  “보소 마 기분이나 좋게 사소.”하고는 차비를 주고 내린다. 기사분이 차에서 내려 인사까지 한다. 운전하느라 그으른 얼굴에 여름 햇살 보다 밝은 미소가 번진다.
  입도한지 얼마 안 된 외수를 만나러 나선 길이다. 포덕 사업을 하려는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는 외수다. 선각은 포덕하라는 말은 않고 엉뚱한 옛날이야기를 큰 소리로 실감나게 시작한다. 호랑이 담배 피우는 시절의 이야기를 호랑이띠가 한다는 설정부터 외수를 편하게 만드는 것 같다.
  옛날 어느 집에 아들이 하나 있어 낮잠을 자고 있는데, 마침 집 앞을 지나가던 스님이 그 부모에게 말하기를 “저 아이는 천하의 거지 팔자입니다. 집에 있으면 일가가 망하고 말 것입니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이는 어수선한 분위기에 마침 잠이 깨어 있어 자신의 운명에 대한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집에 있으면 집안이 망한다는 사실에 마음을 정하고 집을 나가기로 하였다. 아무도 몰래 집을 나서려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할머니가 애처롭게 붙들고 새 옷 한 벌을 입히려 했다. 아이는 할머니의 마음을 알지만, 자신은 이미 천하에 둘도 없는 거지 팔자. “새 옷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고 옷을 갈아입지 않고 집을 나섰다.
  부모가 있으나 집으로 돌아가면 멸문을 일으킬 운명. 멀쩡하던 아이는 집을 나와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 보니 이제 정말로 상거지가 되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 가뭄에 개울물이 마르고 천지는 타는 듯하였다. 아이가 피곤함에 쓰러져 잠이 들려는 순간, 괴로움에 헐떡이는 고통의 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둘러봐도 인적이 없는 들판, 그 소리는 말라가는 연못의 돌 밑에서 나는 물고기들의 살려달라는 아우성이었다. 아이는 “어차피 나는 천하의 거지, 바쁠 것도 기다려줄 사람도 없는 내가 너희를 구해 줄게.” 하고는 밤새 고기를 퍼 날라 강에 놓아 주었다.
  세월이 흘러 아이는 청년이 되었다. 비바람에도 모진 목숨은 끊어지지 않고 거지의 생활은 이어졌다. 어느 날 대궐 같은 집에 문이 열려 있었다. 동냥을 청하는 청년에게 음식을 내 준 것은 이 집의 막내딸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언제부턴가 일 년의 정월 보름만 되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이 집에 출입하지 않고 있었다. 청년은 일 년 만에 동냥을 청해 문을 연 유일한 사람이었다. 딸은 수저를 한 움큼 내 보이며 “모두 임자 있던 수저 입니다. 이 집에 있던 사람은 모두 죽고 오늘은 제 차례입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거지 청년은 “어차피 나는 천하의 거지팔자, 이제는 세상의 고통도 맛볼 만큼 보았고 미련이 없습니다. 제가 오늘 밤 이 집에서 당신 대신 죽어주겠소.”라고 하였다.
  밤이 이슥해지고 자시(子時)가 되자 마을은 고요해지고 커다란 집에는 적막감만이 감돌았다. 청년은 두려움보다 자신의 인생을 생각하니 만감이 교차했다. 운명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 밤에 죽기 위해 이렇게 앉아 있나 생각하니 허탈한 웃음도 나왔다. 그 순간 짙은 안개가 일더니 꽝하고 벼락 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열렸다. 거지로 평생을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났다 생각했던 청년에게 두려움은 없었다. “귀신이라면 물러가고 사람이라면 사연을 말하라.” 대청에 앉은 청년은 처연하게 물었다. “귀신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람도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기에 무고히 사람을 다 죽이는가?” “저희는 이 집안 연못 속에 잠겨있는 재물의 정령입니다. 우리를 건져 달라고 부탁하러 나타나면 사람들은 그 소리에 놀라 명을 달리했습니다. 부디 저희가 쓰일 수 있도록 건져 주시기 바랍니다.”하고는 바람과 같이 사라졌다.
  다음날 초상을 치를 준비를 하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두려운 마음으로 대문을 열고 그들이 본 것은 멀쩡히 앉아 있는 거지였다. 순간 “모두 집에 가서 대야나 그릇을 가져오세요.”라는 거지의 음성이 하늘의 소리처럼 들렸다. 모두 귀신의 소리인지 사람의 소리인지 구별이 안 되는 놀란 마음으로 그릇을 들고 모여 들었다. “이제 모두 이 연못의 물을 퍼내 주세요.” 사람들이 청년의 말대로 물을 퍼내자 연못에는 금은보화가 그득히 쌓여 있었다. 두려워하는 마을 사람들을 돌아보면서 청년은 “모두 가지고 온 그릇에 저 보화를 담아가시면 됩니다.” 그러나 아무도 선뜻 담아가려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죽어 나가던 집의 물건이려니와 너무 놀란 탓이다. 막내딸이 청년의 말을 듣고 사람들 앞에 나서서 “이 재물은 여러 사람이 써 주셔야 원이 풀린다 합니다. 부디 좋은 곳에 써 주세요.”라고 말하자 사람들이 그들을 칭송하며 담아갔다.

 

 


  일을 마치고 집을 나서는 청년을 붙잡으며 막내딸은 천애 고아가 돼버린 자신과 살아주기를 애원했다. 청년은 “저는 천하에 거지 팔자입니다. 제 인생에 누구를 얹혀 또 고생시키며 살겠습니까?”고 거절하는데 “어차피 죽었을 목숨. 거지로 살아도 덤입니다. 이젠 저 또한 거지나 다를 바 없으니 시집이나 가게 해 주세요.” 하며 고집을 부렸다. “그렇다면 부모께 알리기나 하고 삽시다.” 하고 길을 나섰는데 사람들이 축하하며 좋아했다. 어느 주막에서 밥을 먹는데 스님 하나가 들어와 놀라는 표정으로 청년을 보며 하는 말이 “세상의 관상 중에 당신같이 부귀한 사람은 보지를 못했소. 수백 목숨 살린 천하의 길상이오.”라고 하였다. 청년은 웃으며 “문전걸식으로 남의 신세만 진 제게, 거 무슨 말씀입니까? 스님은 농담도 잘하십니다.”라고 하니 스님은 더욱 놀라며 혹 어느 고을 김 진사댁 아들이 아니냐고 묻는다. 오랜만에 고향 이름과 아버님 이야기를 들으니 울적한 마음이 한없이 솟구치는데 스님은 바짝 다가와 심각하게 다시 묻는다. “전에 누워있는 모습은 평생 빌어먹어야 할 거지상이더니 오늘 당신의 모습은 모든 액운이 물러가고 부귀함이 겹겹이 쌓였으니 어찌 된 일이요?” 청년은 자신의 운명이 바뀌었다는 말에 그동안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모든 사연을 듣고 난 스님이 무릎을 치며 말하길 “그대의 운명이 바뀐 것이 그날 바위 밑에서 죽어가던 수백 마리 물고기를 살려준 덕이요!”라 하였다. “사람 목숨이나 미물의 목숨이 그 중함에서는 다를 바가 없는데 그리 많이 살려줬으니 당신 길이 열리고 운명이 바뀐 것이요. 게다가 저 목숨 버리고 처자를 구하고자 했으니 하늘이 복을 주신게지. 다시는 거지로 살일 없으니 예쁜 처자와 혼인하여 행복하게 사시구려.” 하며 사라졌다 한다.
  이야기를 다 마친 선각은 또다시 호쾌하게 웃는다. “마, 김 외수, 내는 가요. 잘 살아 보소. 담에 봅시다.” 작은 눈이 다시 번쩍이자 외수는 정신이 교체된 듯 자세가 달라졌다. 문 열고 씩씩하게 나오는 선각자보다 더 빨리 뛰어 나와 차 문을 여는 김 외수 얼굴엔 감사함과 자신감이 충만해 있었다. 덕분에 내게도 감사의 인사를 꾸벅한다. “포덕하면 꼭 좀 챙겨 주이소” 하는 말과 함께. 
  마지막으로 우리 집에 들르셨다. 남편이 요즘 심기가 안 좋아 한번 챙겨주시라고 부탁해서다. 집에 들어서자 나한테 쌩한 얼굴이던 남편이 선각을 보자 인사를 한다. 그래도 선각은 자신의 답답함을 토로해 볼 만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 달력에 표시한 똥그라미가 마누라가 집을 비운 날입니더, 이번 달만 열다섯 개라 예.” 남편이 내가 집을 비운 날을 표시한 것은 몇 년 전부터다. 요즘은 내 얼굴보다 똥그라미 보는 날이 많단다. 남편은 나를 정말 사랑한다. 집에 없는 날은 무척 서운한 마음이 있는지 달력에 표시하며 숫자 좀 줄이라고 타박을 해 오던 터이다. 도장에 들어가고 사업을 하다 보니 보름 정도 집을 비우는 것은 예삿일이 되었는데, 외수인 남편은 못내 아쉬웠던 것 같다. 아니 그런데 우리 선각하시는 말씀을 좀 보자. “야~ 정외수 정말 도인이네 보름씩이나 집을 비우는 마누라 데리고 어찌 살고 있노. 나 같으면 벌써 뻥 차 삐렀다. 대~단하네. 어디에 이런 멋진 남편이 다 있노?” “정외수가 정말 도인이오.” 라며 남편을 띄워준다. “잘 허래이~ 남편한테 잘 허래이. 도 닦는다고 돌아다니는 마누라를 요즘 세상에 누가 좋아 하겠노? 전생에 닦은 바가 커서 자네를 데리고 사는 게야.”하며 남편만 칭송한다. 기분 좋아진 남편이 선감 드시라고 수박을 자른다. “내 사마 이제 마누라 없이도 밥 잘 해 먹습니다. 지나 다니면서 잘 먹고 다녔음 염려나 안 되겠심더.” 선각의 호랑이 눈빛이 안경 속에 촉촉하시다. “아 정외수 잘 먹었씨요. 행복하소. 나 갈라오.” 벌떡 일어나시더니 “담에 봅시다. 정외수가 더 큰 수도를 하고 있어요”하며 문을 나선다. “자네도 오늘은 남편 잘 모시래이”, “내는 간다.” 하고는 찡긋 윙크를 한다. 총총히 사라지는 뒷모습이 숲으로 사라지는 산군(山君) 같이 커 보인다. 선각의 하루는 언제나 오늘같이 늦은 시간에 사람을 울리는 일로 마무리 된다.
  조그마한 몸매에 호랑이 같은 목소리. 미소에 가려 보이지 않다가도 번쩍하며 빛을 발하는 눈. 난 이분을 만나 하루를 살면 가슴이 벅차다. 가슴에 먹먹함이 밀려온다. 저 가슴 속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제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감사합니다. 저같이 부족한 인간을 불러주셔서” 하며 어린애 같은 웃으시는 분. 상제님도 좋아하시리라. 저런 분이라면 상제님도 행복하실 것 같다. 도에 들어와서 가슴에 헛헛함이 사라졌다. 그것은 부채 하나, 조그만 손가방, 누군가 그려준 그림이 있는 구식 핸드폰 하나를 들고 “누군교? 감~사합니다. 웬일로 늙은이에게 전화를 다 주셨는교?” 하며 외쳐대는 호랑이띠 선각이 불어준 따스한 바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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