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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6년(1986)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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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생애와 사상(4) : 싸움터에서 보여주신 예지

싸움터에서 보여주신 예지



  상제님께서는 필성을 뒤따르게 하시어 임실의 마구단에 이르셔서 『날이 차니 주막에서 쉬었다가 가자. 남원에서 만나기로 한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되리라.』고 말씀을 건네셨다. 이 말씀에 필성은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자기의 가는 길과 최 두연을 만나기로 한 것은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었기 때문이었다. 당황하며 궁색하게 변명하는 필성에게 『글쎄 굶을 걱정은 말라. 두서너시간 지나면 만날 사람이 이곳에 온다는데……』하고 말씀하시고 함께 주막에 들리셨다. 과연 말씀하신대로 얼마 후 군마 소리와 함께 최 두연이 수 많은 군병을 거느리고 나타나, 『남원으로 가지말고 전주로 급히 오라』고 소리치고는 먼저 떠나갔다. 최두연의 뒤를 쫒으려고 서두르는 필성을 보시고 상제님께서 다시 『군마를 쫓는 것은 어리석고 불리한 처사이니 천천히 가는 것이 옳다』고 이르시고 함께 천천히 전주를 향해 걸음을 옮기셨다.
  전주 가까이에 이르러 상제님께서 필성에게 『오늘 전주에 소란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살상될 것이다. 그러니 이곳에 머물고 내일 전주로 들어가기로 하자.』고 말씀하시면서 수통목에서 쉬셨다.

  밤을 새우시고 이튿날 아침 필성을 데리고 전주성 내에 들어가 조용한 곳에 자리를 정하셨다. 저녁 때에 필성을 데리고 길에 나가시어 세 사람의 머리가 길바닥에 굴러다니는 것을 보여주시며, 위험한 때이니 조심토록 하라고 이르셨으나 필성은 상제님의 권유를 듣지 않고 동학군에 종사하였다. 필성이 여산에 도착하였을 때 상제님께서 또 한번 모습을 보이시어 청주 가까이에서는 다시는 종군하지 말도록 권유하셨다. 필성은 상제님의 권유 말씀에 노발대발하며 화까지 내었다. 권유나 만류가 들릴 리가 없었다. 그곳에 김형렬도 끼어 있었다. 이 진군에서 관군 복병을 만나 동학군은 수 많은 시체를 남기고 흩어졌으며, 안 필성과 형렬은 솔 밭에 몸을 감추었다. 이때 상제님께서 나타나시어 두 사람을 이끌고 안전하게 피신시켜 여산, 고산, 인내 장터를 거쳐 전주에 오셨다. 여기서 두 사람은 상제님과 작별하고 필성은 담백이골로, 형렬은 구릿골로 갔다.
  동학군은 원평과 태인에서 잇달아 패했으며, 혁명의 실패로 기세를 펴지 못하니 이 틈을 타서 서교(천주교, 기독교 등)는 세력 신장에 온 힘을 기울였다. 관군은 협정을 위반하고 패주하는 동학군을 소탕했으며, 동학군 또한 북접파와 남접파로 갈라져 내분이 생기게 되니 생민들이 처음에 동조했던 그 기세가 식었다. 더우기 조정은 동학군 소탕작전에 일본의 군대 세력을 빌려고 했다. 이리하여 전라도와 충청도는 파쟁의 도가니 속에 들어갔다. 이래저래 도탄에 빠진 것은 생민들 뿐이었다. 특히 상인들이나 적은 재산의 소유층은 정부의 동학에 대한 비난 즉 거짓 종교란 주장에 찬동했던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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