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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8년(2008)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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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 : <특별기고> 도가의 순자연 (順自然) 사상과 반이화 (反異化) 사상

도가의 순자연 (順自然) 사상과 반이화 (反異化) 사상

 

 

뤄워레(樓宇烈)(중국 북경대학 교수/ 현 북경대학 종교연구소장 )

 

  인간이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려는 노력과 활동 그리고 목적은 보다 많은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이다. 그러나 결과는 그와 반대일 경우가 많다. 인류가 갖은 노력과 활동으로 창조해 낸 성과는 인류에게 많은 자유를 부여함과 동시에 더 많은 제약과 번뇌를 짐 지운다. 혹은 제한된 사람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부여하지만 또 다른 사람들이 부자유를 감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창출시킨다. 이러한 인류의 창조활동과 그에 대한 반대적 결과의 창출을 철학적인 말로 표현한다면 이화현상(異化現象, alienation)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며 또한 자연의 일부분이다. 그러나 인류가 자연을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은 갈수록 커져가고 있으며 그에 대한 성과도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이렇게 됨으로써 인류는 갈수록 자연과 멀어지고 있으며 인간의 자연적 본성도 갈수록 상실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같은 의미로 개인이 사회에서 얻게 되는 권리와 보장이 많아질수록 더 많은 사회적 구속과 제약에 얽매이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대면할 수밖에 없는 모순적 현실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의미에서 자연과 인류의 발전 과정 자체가 자아(自我)가 이화(異化)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으며, 자신과 대립되는 부분들을 생산해 내고 자신을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아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노자는 이에 대해 매우 심오한 체득을 한 바가 있는 듯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반자, 도지동(反者,道之動).”(40장), “반대쪽으로의 변화는 우주변화의 근본 규율이며 법칙이다, 그러므로 반면(反面)으로 발전하는 것을 도의 특징으로 본다.”

  이러한 자연과 인류의 자아이화(自我異化)의 필연성에 대해 역사상의 서로 다른 학파들은 서로 다른 인식을 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해결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도가의 노장 사상은 인간과 자연의 이화와 인간과 사회의 이화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들은 인순자연(因循自然) 사상이 이화를 방지하고 극복하는 최고의 방법이라 여기고 있으므로 자연주의 철학을 제창하고 있는데 이것은 어떤 의미에서 반이화(反異化)의 철학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노장의 인순자연(因循自然) 학설이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루어 일체가 되는 것이다. 그들은 인간을 단지 자연계의 보편적 생물이라 생각하며, 만약 인간이 자신을 다른 자연물과 동일시하지 않거나, 자연을 초월하려 한다면 자연이 그들을 상서롭지 못한 존재로 여기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01 노장은 인류가 자신의 의지를 자연에게 강요하는 것을 반대하며 자연의 규율을 어기거나 자연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을 반대한다.

  장자는 이러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남해왕 ‘숙’과 북해왕 ‘홀’이 중앙왕인 혼돈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에 혼돈이 그들을 매우 환대하였다. 떠날 날이 가까워오자, 남해왕과 북해왕은 혼돈에게 보답을 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의논하여 정하길 사람은 누구나 칠규(七竅)가 있어 보고 듣고 먹기와 숨쉬기를 할 수 있는데 혼돈은 없으니 혼돈에게 일곱 개의 구멍을 개통하여 주기로 하였다. 그러하여 그들은 하루에 한 개씩 혼돈에게 규(竅)를 선물하였다. 칠 일째에 이르러, 일곱 개의 규(竅)가 개통되었으나 혼돈은 이로 인해 그만 죽고 말았다.02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을 변화시키려 하는 것은 무익한 일일 뿐 아니라 자연지물을 소멸시킬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러므로 노자는 인류는 마땅히 “보만물지자연, 이불감위(輔萬物之自然,而不敢爲)”,즉 “만물이 스스로 존재할 수 있도록 도우며 결코 자연의 섭리를 위배하지 않아야 한다.(64장)”고 말한다.

  노장의 ‘순자연이무위(順自然而無爲)’ 학설은 고래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순자가 장자의 사상을 비판할 때 말하길 “장자는 하늘은 숭배하지만 인간의 능력을 믿지는 않는다.”(「해폐(解蔽)」)고 하였다. 즉 장자가 인간의 능동적인 면을 중시하지 않으며 자연 앞에서 매우 소극적이며 피동적이라 비판하였다. 노장의 무위자연 사상이 소극적인 면이 있으므로, 무소작위(無所作爲)하며 환경에 복종한다는 오해를 받기 쉽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러나 노장의 무위자연사상은 매우 합리적인 사상도 많이 포함하고 있으므로 중시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여겨진다.

  예를 들면, 사물의 본성과 객관적 법칙을 중시하고 사물과 환경의 변화에 근거하여 자신의 행동원칙을 규정하는 것을 강조하는 것 등은 매우 의의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사마담이 『논육가요지(論六家要旨)』에서 도가의 무위사상을 “이인순위용(以因循爲用)”, 즉 “자연의 규율에 준하여 행한다.”는 말로 개괄한 것은 매우 옳다.

  ‘인순(因循)’의 뜻은 부정적인 방면으로 이해할 수 있지만 긍정적인 면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관자(管子)·심술상(心術上)』에서 ‘인(因)’에 대한 정의를 내리길 ‘인(因)이라 하는 것은 유익과 손해가 없으며’, ‘자신을 잊고 자연의 규율을 법칙으로 삼는다. 즉 자연의 객관적인 규율을 준수한다’고 하였다. 이러한 내용은 도가의 무위자연 사상 중에 포함된 객관적 사물 본성과 법칙을 존중하는 정신이 충분히 표현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한대(漢代)의 도가 학자들 또한 무위자연 사상을 보다 긍정적인 방면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무위자연이 무소작위(無所作爲),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며, 인간의 의지를 공공의 원칙 속에 몰아넣거나, 사욕으로 정확한 방법을 왜곡시키지 말 것을 주지시키고 있다. 무위자연은 바로 객관적 규율에 따라 일을 행하는 것을 말한다.03 그러므로 ‘무위(無爲)’의 함의는 사물이 발전하기 전에 행동치 않음을 말함인데, 이는 즉 자연의 발전규율을 위배하지 않고 객관적인 규율에 따라 행동함을 말한다. 다시 말해 객관적 규율을 변화시키지 않고 자연의 규율에 근거하며 자연의 이치에 순응함을 말한다.04

  예를 들어 우(禹)가 치수를 함에 있어 “순수지성이소도지(順水之性而疏導之), 즉 물의 성질에 순응하여 하류(河流)를 준설하였다.”라는 말이 곧 ‘무위(無爲)’에 해당되는 말이다. 이를 볼 때, 이러한 ‘무위(無爲)’는 맹목적이며 사물의 성질을 위배하고, 결과를 고려하지 않는, 인류의 이기심으로 표현되는 ‘유위(有爲)’에 비해 훨씬 합리적이며 긍정적이지 않은가? 또한 인류의 자아이화(自我異化)를 방지하고 극복하는 작용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말할 것도 없이 도가노장의 자연주의는 인류가 자연과의 투쟁 중에 힘이 저약(低弱)한 시기를 반영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자연을 개조하고 지배하는 능력이 있으며, 그 강대한 능력이 가히 의지에 따라 어떤 일도 해낼 수 있는 정도에까지 이르렀다. 그러나 식견이 있는 자들은 자연을 지배하고 개조하는 ‘수인의지(隨人意志)’가 자연계의 반항과 보복을 받음은 물론, 자신의 생존환경을 끊임없이 악화시키고, 인류가 갈수록 자신이 창조한 ‘인공 자연환경’의 제약을 받고 그것의 노예가 됨을 간파하고 있다.

  지금의 인류는 심지어 때로 ‘인공 자연환경’을 떠나서 원래의 자연 환경 속에서 살아갈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이런 것을 볼 때, 인간과 자연의 자아이화(自我異化)가 얼마나 위험한 수위에까지 이르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인류의 자연에 대한 ‘자유의지(自由意志)’가 앞으로 얼마나 더 커질 수 있는지에 대한 부분은 매우 기대할 만한 연구명제이다.

  오늘날 인류는 자연을 존중하는 것을 새로이 배울 필요가 있으며 자연과 자신의 일체 관계를 다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아래에 기술할 도가의 자연주의 중에는 많은 합리적 사상이 포함되어 있으며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주고 있다.

  노장의 인순자연학설(因循自然學說)에서 또 다른 중요한 내용이라 할 만한 것은 바로 인류 사회와 개인의 자아이화(自我異化)를 반대하고 방지하는 것이다. 노장이 생각하기에는 사회의 각종제도와 도덕규범 그리고 인간의 지혜조차도 자아이화(自我異化)의 산물이다. 예를 들면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도를 잃고 난 뒤에 덕이 있게 되었으며, 덕을 잃고 난 후에 비로소 인(仁)이 있게 되었다. 인을 잃고 난 후에 의(義)가 있게 되었고 의를 잃고 난 후에 예(禮)가 있게 되었다. 무릇 예란 충(忠)이 쇠락해짐으로써 나타난 것이며 모든 혼란의 시작이므로, 예를 발명한 자가 말하는 것은 도의 외식(外飾)일 뿐이며, 사람을 우매하게 만드는 시작일 뿐이다.”(38장) 그가 또 말하기를, “대덕(大德)이 쇠잔했기에 인의(仁義)가 있고, 허위가 있기에 지혜가 출현한다. 부자 형제 부부와 육친 간에 화목하지 않기에 효(孝)와 자(慈) 같은 윤리가 있다. 국가가 혼란에 빠졌을 때 충신이 있게 된다.(18장) 인간의 기교가 많아질수록 각종의 기괴한 사물이 흥기한다, 법률이 강성할수록 강도와 도둑의 수가 늘어난다.”(57장)

  이에 장자는 ‘인의(仁義)’와 ‘시비(是非)’를 가리켜 인간의 자연 본성을 속박하는 가혹한 형벌이라 더욱 강조하여 말했다.05 그는 소와 말의 예를 들어 말하길 소와 말이 자유롭게 달리는 것은 그들의 천성인데, 소와 말에게 굴레를 씌워 그들의 행동에 제재를 가하는 것은 소와 말의 천성을 위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인의(仁義) 등의 도덕규범은 사람의 자연 본성에 굴레를 씌우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06

  그러므로 노자는 “성(聖)과 지혜를 버리고, 인의(仁義)를 버리고, 기교와 이익을 버리라.”고 말했다. 노자가 이어 말하길 “그렇게 해야만 백성이 많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며, 효(孝)와 자(慈)를 회복케 될 것이며, 도적이 사라질 것.”(19장)이라고 하였다. 그는 인간이 사회를 통치해 나감에 있어서도 자연이 만물을 생양(生養)하는 것과 같이 무위자연의 태도와 방법을 취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즉 노자는 통치자가 무위에 가까울수록 백성들 또한 순박해져 통치하기가 용이해질 것이라 여겼다. 그가 또 말하길 “통치자가 현명한 자를 숭배하지 않으면 백성이 서로 다투지 않으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으며, 통치자가 욕망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07 하였다. 그러므로 “무위로써 국가를 다스려야만 백성이 자연히 발전케 될 것이며, 통치자가 청정함을 가까이 하여야만 백성들이 자연히 안정을 얻게 될 것이며, 통치자가 민생의 일을 교란시키지 않아야 백성들이 자연히 부유케 될 것이며, 통치자가 욕망이 없어야 백성들이 자연히 소박하게 될 것이다.”(57장)라 하였다. 장자는 인의와 예악을 능히 잊는 자를 가리켜 지고무상한 ‘지인(至人)’, ‘진인(眞人)’이라 하였다.08 장자가 바랐던 것은 “시비(是非)앞에서 마음의 동요가 없으며”(『덕충부(德充符)』) 명실과 시비(是非)로써 “생각에 몰두하여 사물을 인식”(『제물론(齊物論)』)하지 않는 인생의 경지를 추구했던 것이다.

  노장의 이러한 인간의 자연 본성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역사상 사회의 압박을 받은 많은 지식인들의 찬양을 받아왔고, 그러한 지식인들이 노장사상으로써 자신의 사상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상가들이 그 속에 함유된 반도덕(反道德)과 반이지(反理智)의 경향을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하였다.

  인류 사회의 현실을 놓고 볼 때, 어떤 사회라 하더라도 만약 일정한 제도와 도덕규범으로 사회성원들을 구속하지 않는다면 그 사회는 유지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또한 사회가 발전과 진보를 이룸으로써 인간과 인간간의 관계가 필연적으로 더욱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행동을 구속하는 제도와 규범 또한 갈수록 복잡하고 엄격해 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자가 구상했던 “작은 나라는 백성이 적어 이웃나라와 서로 마주보고 작은 일도 서로 알 수 있지만 결코 서로 간에 왕래하지 않는다.”(80장)는 시대는 이미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인간이 자연적인 천성으로 회귀(回歸)하기를 원했던 노장의 바램은 영원히 실현 불가능한 이상일 수밖에 없다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노장의 자연주의적 인생관이 합리적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노장은 사회의 각종 제도규범이 인성을 압제하는 것을 날카롭게 지적하였으므로 사회비판적 의의가 있다고 할 것이며, 이는 보다 합리적으로 사회제도를 개선하고, 합리적인 규범을 세우는데 긍정적인 의의를 가진다고 할 것이다. 그리고 또한 개인의 수양면으로 볼 때, 노장의 자연주의는 상당한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 “찬란하고 다양한 색채는 사람의 눈을 어지럽게 하고, 각종의 난잡한 소리들은 귀의 분별력을 잃게 하며, 잡다한 맛들은 위와 장을 망치고, 말을 달려 사냥을 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초조하게 불안케 한다. 또한 진귀한 것들은 사람을 규범에서 벗어난 행동을 하게 한다.”(12장) 이는 물질적 추구가 너무 강한 것은 외려 사람을 해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자연 그대로의 소박함을 볼 수 있게 해야 하며, 사심과 욕심을 줄여야 한다.”(19장)는 것이다. 인간의 청정한 자연적 본성을 지키는 것은 현대인들에게 필요한 생활적 태도이며 수양을 이룬 모습이나, 현대의 많은 지식인들은 인류의 이익을 위해 경제 동물이 될 수밖에 없으며, 물질적 노예가 되어 늘 근심어린 모습으로 살아간다. 경제와 물질의 강대한 압력은 사람이 자아를 상실하게 만들며 실망감과 미망의 고통 속에 빠지게 한다. 이런 점에서 인류는 소박과 진실의 본성으로 회귀(回歸)해야 하며 이것이야말로 도가의 자연주의가 현대의 세계 속에서 나날이 주목 받는 원인인 것이다.

 

 

강연을 마치며

  대순진리회의 지상신선실현은 위대한 사상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법은 예전에도 지금에도 없다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신선(神仙)이 되기를 열망합니다. 그렇지만 신선은 사실 현실 속에 있습니다. 선(仙)를 보면 인(人)+산(山)입니다. ‘산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한자를 풀이해 보면 ‘청정한 곳에서 생활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현실생활에 근거하여 봤을 때 해원상생과 지상신선실현의 말씀은 굉장히 의미가 깊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앞으로 대순진리회에 관한 말씀과 목적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전경』이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대순진리를 알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01 “今大冶鑄金,金躍曰 : 我且必爲, 大冶必以爲不祥之金? 今一犯人之形,而曰 : 人耳人耳,夫造化者必以爲不祥之人?”(『莊子』, 「大宗師」) 대장장이가 쇠를 주조(鑄造)할 때 쇠가 끊는 솥에서 펄쩍 뛰며 “나는 꼭 막야검()이 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대장장이는 그렇게 말하는 철이 상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였다. 조물주가 사람의 형상을 만든 후에 그 인간이 “내가 인간이 되었다. 내가 인간이 되었노라.”라고 자신을 내세운다면 조물주는 반드시 그를 불길한 자로 여길 것이다.(『장자』, 「대종사」)

02 “南海之帝爲, 北海之帝爲忽,中央之帝爲渾沌? 與忽時相遇於渾沌之地, 渾沌待之甚善,與忽謀報渾沌之德, 曰 : 人皆有七竅,以視聽食息,此獨無有, 嘗試鑿之,日鑿一竅, 七日而渾沌死”?(『莊子』, 「應帝王」)남해지왕은 숙이고 북해지왕은 홀이며 중앙지왕은 혼돈이었다. 숙과 홀이 혼돈을 방문하였는데 혼돈이 그들을 매우 환대하였다. 숙과 홀이 이에 보답하기 위하여 의논을 하여 말하길 : 인간은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을 쉴 수 있으나 혼돈은 없으니 그에게 일곱 개의 구멍을 선물하자 하였다. 그리하여 하루에 하나씩 혼돈에게 구멍을 만들어 주었으나 칠 일째 되는 날 혼돈은 죽고 말았다.(『장자』, 「응제왕」)

03 “若吾所謂無爲者,私志不得入公道,嗜欲不得枉正術,循理而事, 因資而立功, 推自然之熱,而曲故(巧詐也)不得容者? 故事成而身弗伐(自矜也),功立而名弗有, 非謂其感而不應, 攻而不動者?”(『淮南子』, 「修務訓」)무위라 하는 것은 개인의 사리를 추구하면 대도에 이를 수 없음을 말함이며, 개인의 욕망에 치우치면 정술(正術)을 얻을 수 없음을 말함이다. 자연에 근거하여 행동하고 자연에 근거하여 성공하며 자연을 받들고 숭배하되 속이는 자를 용서치 않는다.(『회남자』, 「수무훈」)

04 “所謂無爲者, 不先物爲也;所謂無不爲者, 因物之所爲? 所謂無治者, 不易自然也;所謂無不治者, 因物之相然也?”(『淮南子』, 「原道訓」) 무위(無爲)라 함은 자연의 발전에 앞서 행동하지 않음을 말한다. 무불위(無不爲)라 함은 자연의 규율에 따라 행동하는 자를 말한다. 무치(無治)라 함은 자연을 변화시키지 않음을 말하며 무불치(無不治)라 함은 사물이 변화하는 규율과 치리(治理)에 순응하는 것을 말한다.(『회남자』, 「원도훈」)

05 “意而子見許由,許由曰:堯何以資汝? 意而子曰:堯謂我,汝必躬服仁義而明言是非? 許由曰:而奚來爲?…”(『莊子』, 「大宗師」) 의이자가 허유를 만나 허유에게 물었다: “요가 그대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었는가?” 의이자가 말하길, “요가 내게 말하길 당신은 반드시 인의를 실행하여 시비를 명확히 분별해야 한다.” 하였지요. 허유가 이렇게 말했다. “그럼 당신은 어찌 이곳에 왔소? 요가 이미 인의로써 당신의 얼굴에 자자(刺字,얼굴이나 팔뚝의 살을 따고 틈을 내어 죄명을 적어넣는 일. 옛날 중국의 형벌의 한 가지로 경형(刑)이라 했음)를 했고, 시비(是非)로써 코를 이미 잘라버렸음(의형(刑), 죄인의 코를 베는 것을 말함)에도 어찌 요원하고도 드넓은 길을 자유로이 나다닐 수 있는가?”(『장자』, 「대가사」)

06 “天在內,人在外? … 何謂天? 何謂人? 北海若曰:牛馬四足是謂天,絡馬首,穿牛鼻是謂人? 故曰:無以人滅天,…”(『莊子』, 「秋水」) 천연은 내재의 본질이며 인위는 외재한 물질을 추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하늘이라 하고 무엇을 인간이라 하는가? 북해지신이 이렇게 말했다. “소와 말의 다리가 네 개임은 천연이며 말에게 굴레를 씌우고 소에게 꼬뚜레를 만드는 것은 인위이다. 그러므로 인위로써 천연을 파괴하지 말라”.(『장자』, 「추수」)

07 “不尙賢,使民不爭;不貴難得之貨,使民不爲盜;不見可欲,使民心不亂”?(『老子』, 3章) 통치자가 현명한 자를 숭배하지 않으면 백성이 서로 다투지 않으며, 얻기 어려운 재화를 귀중히 여기지 않으면 백성들이 도적이 되지 않으며, 통치자가 욕망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면 백성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다.(『老子』, 3章)

08 “顔回曰:回益矣? 仲尼曰:何謂也? 曰:回忘仁義矣? 曰:可矣,猶來也? 日複見, 曰 : 回益矣? 曰 : 何謂也? 曰:回忘禮樂矣? 曰:可矣,猶未也? 日複見曰 : 回益矣? 曰 : 何謂也? 曰:回坐忘矣? 仲尼蹴然曰:何謂坐忘? 顔回曰:墮肢體,黜聰明,離形去知,同於大通比謂坐忘,仲尼曰:同則無好也,化則無常也,而果其賢乎! 丘也請從而後也?”(『莊子』, 「大宗師」) 안회가 말했다 : “저는 좀 진보하였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 “무슨 뜻이냐?” 안회가 이에 답하길 : “저는 인의(仁義)를 잊었습니다.” 공자가 말했다 : “잘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모자라는구나.” 며칠 후 그들이 다시 만났다. 안회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좀 진보하였습니다.” 공자가 이렇게 물었다. “무슨 뜻이냐?” 안회가 이에 대답하길 : “저는 앉아서 모든 것을 잊을 수 있습니다.” 이에 공자가 놀라는 눈으로 안회를 보며 되물었다 : “무엇이 앉아서 모든 것을 잊는다는 뜻인가?” 안회가 이에 답하여 말하였다 : “사지가 마비된 채 총명함을 버리고 육신을 떠나 마음속의 지혜를 버리고 만물과 상통하며 일체와 동등해지는 것을 가리켜 앉아서 모든 것을 잊는다고 합니다.” 이에 공자가 말하였다 : “일체가 동등해지며 편벽함에 치우지지 않고 변화가 무상(無常)하며 집착함이 없구나, 그대는 과연 현능하도다. 내가 그대를 본받아야 하겠다.”(『장자』, 「대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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