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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9년(2009)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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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탑 : 정(情)을 나누는 4가지 유형

정(情)을 나누는 4가지 유형

 

 

글 교무부

 

  우리 속담에는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이 있다. 서양에서는 “Give and Take”라고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남에게 받은 혜택이 있을 때 그것을 갚고자 하는 보은지심(報恩之心)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자신과 관계가 깊고 사랑스러운 것을 사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관계의 친밀도나 받은 은혜에 관련 없이 남을 무조건적으로 잘 되게 하려는 마음을 지니는 것은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이곳이 수도와 수행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지점이다.

  수도란 인륜을 바로 행하고 도덕을 밝혀나가는 일이며, 수행이란 언어, 행동, 처사를 도리에 알맞게 행하여 나가는 것이다. 이런 일을 자신의 생활신조로 삼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우리는 수도인이라고 한다.

  『전경』에 “비인정(非人情)이면 불가근(不可近)”(교법 3장 47절)이라 하였으니 인간세상을 살아가면서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정이 없다면 이 세상은 적막강산이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주고받는 정(情)의 유형을 분별하여 수도인의 바람직한 인간상은 어떠한 것인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재 수도인들의 모습을 보면 다음 4가지 유형이 있다고 생각된다. ‘오는 정 오는 정’, ‘오는 정 가는 정’, ‘가는 정 오는 정’, ‘가는 정 가는 정’으로 수행하는 4가지 유형이다. 이것은 하나의 정서적 경향성이지 경계선이 분명한 절대적 기준은 될 수 없다. 이 기준으로 다른 사람을 단정하고 재단하여서도 안 된다. 오직 자기 자신에게 적용하여 자신을 뒤돌아보며 성찰해 보자는 데에 이 글의 목적이 있다.

 

 

오는 정 오는 정(Take and Take)

 

  ‘오는 정 오는 정’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임을 알지 못하고 오직 받기만을 원하여 항상 욕구불만에 차 있는 사람이다. 예부터 이런 사람이 군주의 자리에 있으면 뜻있는 선비는 다 떠나고 아첨하는 자들만 남으며, 백성은 사리사욕을 탐하는 벼슬아치들의 횡포로 도탄에 빠져 신음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어릴 때부터 부족한 것 없이 오직 받기만 하고 자라온 아이가 나중에 커서 자기만 아는 이기적인 사람이 되어 사회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사회성’이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자신의 정신적 물질적 재부를 나누고자 하는 의지적 능력’이라 볼 수 있다.

  최근에는 사람이 성공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지능지수(IQ)와 감성지수(EQ)를 갖춰야 한다는 것에 이어 사회적 지능지수(SQ, Social Intelligence Quotient)를 추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10년 전 EQ에 관한 책을 펴내면서 세계적 신드롬을 일으킨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골먼(Daniel Goleman)’은 워싱턴 포스트가 발행하는 잡지 『퍼레이드』에서 SQ가 성공 요인으로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기적인 연관관계 속에 있고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삼라만상이 상호연관 속에서 생활요소를 주고받는 수수법칙(授受法則)은 가장 근원적인 우주의 법칙이다. 수수법칙은 대립되는 두 측면의 통일체이므로 주는 것이 곧 받는 것이요, 받는 것이 바로 주는 것이다. 오직 받기만 하거나 전적으로 주기만 하는 존재는 생명활동을 유지할 수 없다. 그러니 ‘오는 정 오는 정’은 ‘오는 정 가는 정’으로 전환하게 된다.

 

 

오는 정 가는 정(Take and Give)

 

  ‘오는 정 가는 정’으로 수행하는 사람은 먼저 주기보다는 받아야만 주는 사람이다. 인간관계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와 같은 양상으로 처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예부터 속담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보통 속담과 격언은 인생의 지혜와 처세훈을 나타낸다. 사람은 누구나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받아야만 자신도 그 사람에게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갖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를 지양하고자 “가는 정이 있어야 오는 정이 있다.”는 말로 처세의 교훈을 삼은 것이다.

  만일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으면서도 “저 사람은 나에게 먼저 인사도 하지 않고 말도 하지 않는데 내가 먼저 인사하고 말을 건넬 필요가 있나.” 하고 몇날 며칠이 지나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한다면 이는 ‘오는 정 가는 정’으로 수도하는 것이다. 물론 예의란 도의 체계와 장유유서의 법도를 따르지만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대하면 상대도 마음을 열고 대하게 된다. 나에 대한 상대방의 태도는 오직 내 마음의 거울일 뿐이다. ‘오는 정 가는 정’이 ‘가는 정 오는 정’으로 전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가는 정 오는 정(Give and Take)

 

  ‘가는 정 오는 정’은 먼저 주기는 하지만 보상에 대한 기대감이 내재되어 있다. 그러므로 주면서도 받지 못하면 서운한 마음이 들기 마련이다. 바라는 마음이 있는 데 이루지 못하면 원이 생기게 된다. 필요하다거나 바라는 마음이 없이 살면서 주어진 여건과 환경에 안분(安分)하며 조그만 친절과 덕(德)에도 깊은 감사를 느끼는 것이 마음이 풍요로운 자의 처세이다.

  “내가 자기한테 어떻게 했는데 나에게 이럴 수가 있어.”하는 마음을 먹는다면 그것은 ‘가는 정 오는 정’으로 수도하는 것이다. 덕을 베풀고 혜택을 주면서도 바라는 마음이 없어야 한다. 들에 핀 꽃이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존재의 향기를 풍기며 그곳에 있듯이 하늘의 우로지택(雨露之澤), 땅의 수토지혜(水土之惠)처럼 주변에 덕화를 펴는 것은 인간존재의 근본 도리이다. 그러므로 『전경』에 상제께서 “하늘이 우로(雨露)를 박하게 쓰면 만방(萬方)에 원이 맺히고 땅이 수토(水土)를 박하게 쓰면 만물(萬物)에 원이 맺히며 인간이 덕화(德化)를 박하게 쓰면 만사(萬事)에 원이 맺힌다.”고 하시며 “이 모든 것이 다 마음을 어떻게 쓰는가에 달렸다.”(행록 3장 44절)고 하신 것이다.

  또한 상제께서 타인에게 도움을 베푸셔도 그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을 늘 못마땅하게 여기던 김형렬 종도의 질문에 “내가 할 일을 할 뿐이고 타인이 알아주는 것과는 관계가 없느니라. 타인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은 소인이 하는 일이니라.”(교법 3장 11절)고 말씀하신 상제님의 가르침은 바라는 바 없이 덕을 펴라는 대인의 마음가짐을 밝혀주신 것이다.

 

 

가는 정 가는 정(Give and Give)

 

  ‘가는 정 가는 정’으로 수도하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조건 없는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 이것이 ‘가는 정 가는 정’이다. 수도인이 모든 인간과 사사물물에 대하여 조건 없는 사랑과 정성을 쏟을 수 있을 때, 그것이 진정 수행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도(道)가 모든 것을 낳고 기르며 쓰임이 되면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것처럼, 인간이 그렇게 마음을 쓰고 행동한다면 사사로운 욕심으로 천지만물에 누를 끼치지 않고 남용하는 법이 없을 것이며, 존재하는 모든 것이 제 위치에서 존재의 빛을 발할 수 있게 하는 데 일정한 기여를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을 『대순진리회요람』에서는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심령(心靈)을 통일(統一)하여 만화도제(萬化度濟)에 이바지할지니…”라는 구절로 표현하고 있다.

  남에게 덕을 베푸는 데는 4가지의 도구가 있다. 물질과 언어, 행동, 생각이 그것이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덕을 베푼다고 했을 때 돈과 물건 같은 물질적인 요소를 떠올리기 쉽지만 덕화는 이것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말과 행동은 남을 잘 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말은 손쉽게 하는 것이지만 인간사 화복(禍福)은 언제나 언덕에 의하여 일어나는 것이니, 말을 할 때는 늘 덕(德)을 붙일 것을 생각하고 신중을 기하여야 하며, 남을 위해서는 행동으로 수고를 아끼지 말고 도와주어야 한다. 말과 행동 못지않게 마음씀이나 생각 역시 남을 잘 되게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말은 마음의 소리요 행동은 마음의 자취인 만큼 남에게 덕을 베푸는 근본은 마음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전경』에 상제께서는 “나는 오직 마음을 볼 뿐이로다. 머리와 무슨 상관하리요.”(교법 2장 10절)라고 하시고 전봉준은 남을 잘되게 하고자 하는 마음을 두었으므로 죽어 잘 되어 조선명부가 되었다고 하시었으며(교법 1장 2절), “… 너희는 시장판에나 집회에 가서 내 말을 믿으면 살 길이 열릴 터인데 하고 생각만 가져도 그들은 모르나 그들의 신명은 알 것이니 덕은 너희에게 돌아가리라.”(예시 43절)는 말씀도 하셨다. 이것은 모두 남에게 덕을 베푸는 근본요소가 마음에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가르침이다.

  상제님의 상생대도(相生大道)를 실천수행하고 있는 우리 도인들은 조건 없이 남을 잘 되게 하려는 마음으로 ‘가는 정 가는 정’의 수도생활이 되게 하여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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