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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3년(1993)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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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마음의 문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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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문을 열자

 

                  

김기웅 <평도인ㆍ공주방면>

     

  나는 전통적인 유교집안에서 태어나 엄격하면서도 비교적 자유스러운 가정환경에서 자랐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린시절의 가난이 지긋지긋하여 비교적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안해 본 거 없이 다해 보았으나 고통과 절망이 있었는가 하면 때로는 기쁨도 있었지만 어느 시기인가 도저히 헤어날 수 없는 궁지에 몰리게 되었을때는 차라리 죽어서 이 고비를 넘겨볼 양으로 한강 인도교를 서성거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대로 죽기는 너무나도 억울하고 못난이 같은 생각이 들어 죽을 수 있는 용기를 재기의 밑천으로 삼자하고 마음을 바꾸곤 했다.

  그때마다 그 무엇인가에 의지하고 깊이 빠져들고 실은 생각에 당시로써는 불교 천주교 기독교 중 한가지를 선택해야만 할 만큼 선택의 폭이 좁아 절에도 가보고 교회도 가 보았으나 가슴에 와 닿는 것은 없고 오히려 불신과 거부감만이 팽배해져 모든걸 포기하고 나는 무신론자임네하고 지냈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늦봄 고향 친구로부터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만나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던 중 그 친구가 입도를 권유하는 것이었다. 그 당시로써는 대순진리회가 무엇하는 곳이며 사상과 교리가 어떤 것인지를 모르는 상태였지만 직감적으로 가슴에 와 닿는 것도 있었고 친구를 믿었으므로 선뜻 응락하고 며칠 후에 입도를 했다.

  이 무렵 나는 양쪽 엄지 발가락이 썩어 문드러지는 버거스란 희귀한 불치병에 걸려 구두도 못 신고 운동화를 질질 끌고 다니던 때였다. 때문에 여주도장과 포천 수도장을 참배할 때에도 송구스럽게도 운동화를 끌며 참배해야만 됐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천병(千病)에 만약(萬藥)」이라는 말처럼 좋다는 특효약은 다 써보고 병원에 6개월 통원치료를 했어도 호전기미가 없이 진물만 줄줄 흐르던 발가락이 꼬들꼬들 해지기 시작하면서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이 아닌가. 얼마 후에는 구두도 신게 되고 다리도 절뚝거리지 않고 예전의 발가락을 되찾은 것이다. 

  그 뿐인가 입도전에는 밤마다 꿈자리에 소복 입은 여자가 나타나서 재수도 없고 가정불화가 생기고 식구중 한사람이 아프다거나 했던 일이 부지기수(不知其數)… 

  그런데 입도식 후부터 꿈속의 여자는 다시 볼 수 없게 되고 꿈조차도 꾸지 않고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되었다.  정말로 참으로 신기하고 불가사의한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이 상제님의 덕화때문임을 알고 더욱 열심히 수련하고 받들어 모시기를 지극히 하지 않을 수 없었으며 지금은 생활의 전부가 되었다.

  또 어디 그 뿐인가. 지난번 4월에는 서울 중곡동 도장(道場)에 기도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까지도 나는 회사원으로서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바쁜 생활을 하다보니 기도를 자주 모실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항시 지극한 정성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시고 가르쳐 주시는 정무와 나를 입도시킨 선각이 걱정이 되어 도장내까지 찾아와 격려겸 걱정을 해 주시기까지 하였다.

  그런데 3인 1조가 되어 공부방(工夫房)에 들어가니 첫날 첫시간에는 주문(呪文)이 술술 잘도 외워지며 호흡이 척척 잘맞아 얼마나 신기했었는지 모른다.

  반면 두번째 시간에는 기도방에 올라가 막 눈을 감고 기도를 드리고 주문을 봉송하기 시작하는데 갑자기 눈앞에 수영복 입은 예쁜 아가씨가 보이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눈을 부릅뜨고「에이」하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주문을 봉송하기 시작하는데 계속 틀리면서 옆사람과 호흡이 맞지 않아 애를 먹다가 가까스로 시간을 채우고 공부를 마쳤다.

  저녁기도를 마친후에는 깨끗하게 손질한 한복을 정선무한테 빌렸었는데 옷에 피가 묻어 있는 것이 아닌가.

  중학교 시절부터 치질로 남모르게 고생을 하였으나 치료할 만한 시간적 경제적 여유가 없어 수십년간 참고 견뎌왔는데 치질이 다시 터졌던 것이었다. 할 수 없이 전전긍긍하다 누가 볼세라 옷을 돌돌말아 가방에 넣어 둘 수 밖에 없었다. 며칠 후 도저히 죄송스러워 정선무께 전화로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사과말씀을 드렸다.

  그로부터 며칠 후 신기하게도 거의 매일같이 나를 괴롭히던 치질이 흔적도 없이 완전히 사라진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며칠후 다시 재발하겠지 아니면 일시적 현상이겠지 하고 일부러 술도 마셔보고 하였으나 그로부터 4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유혈현상이 한번도 없는 것이다.

  나는 하도 신기하여 자랑겸 윗분들에게 지금까지 겪은 일들을 고백하였더니 마음의 문을 열었기에 시료를 받지 않았어도 수련이나 공부를 통해 덕화를 입을 수가 있었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다. 나 자신이 생각을 해봐도 내가 덕화를 입을 만큼 한 일도 별로 없고 포덕(布德)도 못한 내가 어떻게 병들이 나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윗분들의 말씀대로 마음의 문을 활짝 열었다는 것 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 마음의 문을 얼마만큼 여느냐가 수도인의 구도(求道)에 절대적 가치가 된다는 사실을 나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답답한 일 괴로운 일 또는 몸이 불편하기만 하여도 언제라도 포천수도장이나 연락소를 찾아 혼자서라도 염원하고 나면 기분이 가볍고 가슴이 후련하며 마음의 평화(平和)를 느끼곤 한다.

  나는 입도한지 겨우 1년쯤되는 풋내기지만 나보다 훨씬앞서 입도한 수도인이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해 마음에 갈등을 느끼고 있는 사람을 몇명 만날 수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자신있게 강조한다.『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보라』고.

  그리고 나는 입도 후에 배운 수도인의 훈회 수칙 중 무자기(無自欺)란 단어와 남을 잘되게 하라는 가르침에 흥미와 감명을 받았다.

  이 말씀은 불교나 기독교에서도 비슷하게 가르치고 있는 줄 안다. 하지만 말과 행동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무자기와 남을 잘되게 하라는 말씀은 진정한 도인이 아니고서는 실천에 옮기기란 보통 사람들로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가족들을 모아 놓고 훈회수칙을 설명하고 가난하지만 정직하고 깨끗하게 살자고 강조한다. 그 덕분인가 우리가족은 내가 보기에 도인다운 모습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일인가.

  그 동안의 일들로 인해 나는 알게 되었다. 도통의 길이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들 일상생활의 행동과 마음이 수도의 길이요 도통으로 가는 길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을… 마음과 행동이 도인다울 때 그것이 바로 수도의 길이요 도인의 길일 것이다.

  나를 처음 이 수도의 길로 인도해 주신 선각자(先覺者) 여러분께 한 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즐거운 마음으로 수도에 전념하고 있다. 끝으로 갈길을 못 찾아 방황하고 병으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수도자가 되고자 다시 한번 각오를 단단히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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