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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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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대하여(4) : 팔조목에 관련된 논쟁 _ 격물치지(格物致知) 논쟁

대학에 대하여④

 

팔조목에 관련된 논쟁 _ 격물치지(格物致知) 논쟁

 

 

글 교무부 차장 차선근

 

1. 『대학』 상장(上章)과 주자(朱子)
2. 『대학』 상장(上章)의 주 내용 : 삼강령과 팔조목
3. 삼강령에 관련된 하나의 논쟁 : 친민(親民)·신민(新民) 논쟁
4. 팔조목에 관련된 논쟁 : 격물치지(格物致知) 논쟁

 

 

  『대학』 상장의 삼강령에 친민·신민 논쟁이 있다면, 팔조목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 논쟁이 있다. 격물치지는 『대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실천 수단인 팔조목의 최초 단계 공부로서, 수양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해석은 중요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주자학파와 양명학파는 친민·신민 논쟁과 마찬가지로 격물치지에 대해서도 맹렬히 논쟁을 벌였다.

  원래 격물치지의 해석에 대해서는, 후한(後漢) 말기의 대표적인 유학자 정현(鄭玄, 127~200)이 ‘길흉을 가져다주는 것은 선악(善惡)이며 격물치지란 바로 이 선악을 아는 것’이라고 설명한 것이 거의 800 년 동안 별 이견 없이 통용되어 오고 있었다. 그런데 주자는 『대학』을 개정하여 『대학장구』를 편찬하면서 격물치지를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추구하여 그 앎을 극치에까지 이르도록 하는 것’이라는, 그때까지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해석을 내어 놓았다. 주자의 이 주장은 다음의 「격물치지보망장(格物致知補亡章)」01에 잘 나타나 있는데, 이로써 격물치지 논쟁의 불씨가 생기게 되었다.

 

  ‘치지(致知)는 격물(格物)에 달려있다’ 함은 지식[知]를 온전히 추구하려면 사물[物]을 마주하고 거기에 담긴 이치[理]를 깊이 연구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의 마음은 영명하여 모든 지식[知]이 그 안에 구비되어 있고, 천하의 사물에는 다 리[理]가 내재해 있다. 다만 리[理]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한 까닭에 지[知]가 온전치 못한 상태에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은 첫 가르침에서 반드시 공부하는 이들로 하여금 천하의 물[物]에 나아가 이미 알고 있는 리[理]를 바탕으로 더욱 깊이 연구하여 그 극치까지 도달하도록 추구하라고 가르친다. 그리하여 오랫동안 노력하여 어느 시기에 ‘활연관통(豁然貫通)’하면 온갖 사물의 모든 면모가 파악되고, 내 마음의 전체대용(全體大用: 온전한 본체와 광대한 작용)도 전부 밝아진다. 이것이 바로 ‘물격(物格)’이며, 바로 ‘앎의 극치(知之至)’이다.02

 

  주자는 인간의 마음이 영묘하여 각자의 앎이 존재하지만 그 앎은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앎이므로 불완전하다고 보았다. 따라서 주자는 외부 사물에 대한 끊임없는 공부를 통하여 지식을 쌓아나가야 앎이 완전해지며 이것이 『대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첫 단계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러한 관점에 따라 진리를 단번에 깨닫는다는 불교의 돈오설(頓悟設)도 집중 비판하였다.

  주자로부터 300년이 지나 활동한 유학자인 왕양명은 주자가 말한 방법대로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보았으나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왕양명은 사물마다 이치가 있다면 우리는 사물의 이치만을 탐구하다가 모든 시간을 소비하고 말 것이므로 결국 격물치지는 평생을 걸려도 이루지 못할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사물에 나아가 이치를 깊이 연구한다는 것은 이치와 마음을 둘로 나누어 보는 것이므로 맞지 않는 것이며, 이치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므로 이는 사물을 끝까지 규명하지 않고도 스스로 체득할 수 있다고 하면서 주자의 격물치지 해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런 관점에서 왕양명은 격물이란 바르지 않은 사물이나 일을 바르게 하여 그 바른 데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라고 해설하였다. 또 사람에게는 ‘남의 불행을 슬피 여기는 순수하고 참된 마음’이 있는데, 이것은 ‘양지(良知)’라는 것으로서 사람마다 태어나면서부터 모두가 이미 가지고 있으며 생각하지 않아도 알 수 있고 배우지 않고도 능한 것이기 때문에, 결국 치지란 본체의 마음인 양지를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왕양명에게 있어서 치지(致知)는 곧 치양지(致良知)가 되며, 격물치지란 욕심과 사사로움을 제거하고 내 마음의 양지의 천리가 각각의 사물에 이르면 각각의 사물은 모두 그 이치를 얻는다는 뜻이 된다. 결론적으로 왕양명의 격물치지 해설은 악을 제거하고 선을 행하는 도덕적 수양을 말하는 것이므로 격물치지는 성의(誠意) 즉 정심(正心)과 같은 것이다.

  격물치지에 대한 주자의 해설과 왕양명의 해설 중 어느 것이 더 타당한 것이냐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다.03 사실 인격 수양을 함에 있어서 지식 습득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도덕 실천을 우선으로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어느 한쪽의 손을 쉽게 들어주기 힘든 것이다.

  각도문(覺道文)에서는 ‘성인의 마음을 밝혀서 도에 이르는 것이지, 조작된 소문이나 풍문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聖人明心達道而不求聞, 교운 2장 33절)’라고 하셨고, 포유문(布喩文)에서는 ‘다행히 이 세상에 한량없는 큰 도가 있으니 나의 심기를 바르게 하고, 나의 의리를 세우고, 나의 심령을 구하여 상제님의 임의에 맡기라(幸於此世有無量之大道正吾之心氣立吾之義理求吾之心靈任上宰之任意, 교운 2장 41절)’고 하신 데서 알 수 있듯이04 수행에 있어서 마음 공부, 즉 명심(明心), 정심(正心)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왕양명의 격물치지 해설이 나름대로 그 의의를 가진다고 할 수 있으나, 바른 이치를 모르면 결코 마음을 바르게 세울 수 없다는 점에서 주자의 이치를 궁구하는 격물치지 해설도 결코 버릴 수는 없는 것이라 하겠다.

 

 

 

 


01 주자는 예기속에 있었던 원래의 대학을 교정할 때, 삼강령과 팔조목을 요약 설명한 부분을 경문으로, 삼강령과 팔조목에 대한 해설 부분을 전문으로 구분하였다. 그런데 예기속의 대학에는 팔조목 가운데 격물치지에 대한 해설이 없었으므로 주자는 이에 대한 장을 하나 새로 지어 넣었으니, 이것이 바로 128글자로 이루어진 격물치지보망장이다.

02 所謂致知在格物者言欲致吾之知在卽物而窮其理也蓋人心之靈莫不有知而天下之物莫不有理惟於理有未窮故其知有不盡也是以大學始敎必使學者卽凡天下之物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以求至乎其極至於用力之久而一旦豁然貫通焉則衆物之表裏精粗無不到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此謂物格此謂知之至也 大學章句

03 이에 대한 입장 차이로 인해 주자학은 격물치지를 지식의 궁구를 위주로 하기 때문에 리학(理學)이라고 하고, 양명학은 격물치지를 도덕적 수양을 위주로 하기 때문에 심학(心學)이라고 한다.

04 교리개요(敎理槪要)에서도 ((()의 삼법언(三法言)으로 수도(修道)의 요체(要諦)를 삼고 안심(安心안신(安身) 이율령(二律令)으로 수행(修行)의 훈전(訓典)을 삼아 윤리도덕(倫理道德)을 숭상(崇尙)하고 무자기(無自欺)를 근본(根本)으로 하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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