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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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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 상제님의 덕화 (德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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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덕화 (德化)

 

 

안평방면 교감 고점심

 

  저는 입도한 후 포덕사업, 도장공사 등 수많은 일들을 통해 상제님의 덕화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저와 저의 주변 사람들이 상제님의 덕화로 어려움을 극복한 몇 가지의 일을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저는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가 절에 가서 정성을 드리면 좋다고 하기에, 19살 때부터 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 다니던 절의 주지스님은 앞으로 미륵불 세상이 온다고 하며 저에게 미륵불(彌勒佛)을 찾아가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저는 미륵불을 찾으라는 말을 듣고 대구와 부산, 원주 등지의 암자를 돌며 미륵불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습니다. 어떤 절에 가니 이미 이 세상에 생불(生佛)이 출현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 저는 ‘미륵이 무엇인가?’하고 항상 고민을 하고 다녔습니다.

  저는 나이 서른세 살 때 결혼 전부터 일하던 화장품 회사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저는 왠지 모르게 항상 초조하고 불안하여 매사에 근심을 달고 살았습니다. 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직장 선배는 가끔씩 도담(道談)을 하면서 연락소에 교화(敎化)를 들으러 가자고 했습니다. 당시 선배의 도담은 무척 신기하고 재미가 있었지만, 저는 그 말에 의심을 풀지 못했습니다. 선배의 권유로 정성을 드리기로 결심했지만 마음과는 달리 행동은 따라 주지 못했습니다. 선각이신 선배의 말을 반신반의 하던 저는 어느 날 입도치성을 올렸습니다.

  하루는 초등학교에 다니던 선각의 아들이 다리가 아파서 조퇴계를 내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했습니다. 선각은 어린 아들을 업고 병원으로 갔고, 급성종양이 생겨 다리를 절단해야 한다는 청천벽력과 같은 진단을 받았습니다. 이 일로 근심에 잠겨있던 선각에게 저는 무심코 “기도 모시고 법수 먹으면 다 낫는다.” 며 지나가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선각은 혼란했던 정신을 추스른 다음 수술 날짜를 기다리는 동안 정성을 다해 기도를 모시고, 아들에게 법수를 먹였습니다. 예정된 수술날짜에 맞춰 저는 선각을 위로하기 위해 병원에 따라 갔습니다. 병원에서 수술을 하기 위해 정밀 검사를 하니 종양이 제거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의사는 오진이라고 사과를 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참으로 신기하고 놀랍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일을 경험한 후로 교화를 들으면 그렇게 마음이 평안할 수 없었습니다. 당시 방면선감께서 저녁마다 저의 집에 오셔서 법수를 올리고 기도를 같이 모셨는데,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정성을 다하셨습니다. 선감께서 포덕하면 좋다고 하여 포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직장일을 마친 뒤 교화를 들으면 조는 일이 다반사였습니다. 새벽 4시 30분까지 교화를 듣고 5시에 출근하게 되면 정성을 드린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손님들에게 저도 모르게 교화를 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놀랍고 신기했습니다. 그렇게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일들을 이제 제 스스로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에 많은 선각분들께서 찾아오시고 도와주셔서 포덕 사업이 너무나 잘 되었습니다.

  포덕사업을 한창 바쁘게 하던 때에 안면이 있어 친하게 지내던 아주머니가 저의 말을 듣고 입도치성을 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입도치성을 올리기 위해 치성비를 모시러 갔는데, 집안에 인기척이 없어 되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집에 오는 길가에서 이웃 사람들이 제 아들이 교통사고를 당했다고 했습니다. 사고 지점으로 달려가니 아이는 도로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너무 놀란 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황급히 달려가 병원 문을 두드렸습니다. 병원에서 X-ray촬영을 하니깐 ‘장파열’이라며 내일 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파하는 어린 자식을 보자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 자신이 너무나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때 저는 문뜩 입도치성에 대한 정성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그 집을 찾아갔습니다. 마치 그분은 기다렸다는 듯 제게 치성비를 모셨고, 그제야 입도치성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기 위해 금식을 하라고 했지만 저는 간절한 마음으로 아들에게 치성을 모신 바나나 한 조각과 법수를 먹였습니다. 다음날 수술을 하기위해 다시 X-ray촬영을 한 필름을 보시던 의사선생님은 “참 이상하다.”라며 연거푸 말했습니다. 검사 결과는 배안에 가득 찼던 출혈이 모두 사라지고 괜찮아졌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시 한번 제 눈으로 믿을 수 없는 체험을 한 것입니다. 이 일은 저에게 있어 상제님의 덕화와 권능을 확신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 후 교감 임명을 모시고 새로운 직장을 구하게 되면서 포덕사업과 직장 일을 병행하는 과욕을 부렸습니다. 당시 선각께서는 도장의 수호근무를 권했지만 저는 근무 조건이 좋은 직장을 잃을까 걱정하여 수호를 뒤로 미루고 직장에 전념하다시피 했습니다. 하루는 버스를 타고 출근을 하던 중에 입이 한쪽으로 돌아가는 불길한 느낌이 들어 침을 맞으러 한방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때 의사선생님께서 큰 병원 응급실로 빨리 가라고 했습니다. 대학병원에서는 뇌경색(腦硬塞)과 심근경색(心筋梗塞)으로 왼쪽 몸에 풍이 왔다고 하기에 저는 곧바로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불초한 저는 상제님께 살려달라는 심고만 드렸습니다. 뇌경색환자들이 보통 몇 달에 걸쳐 투병을 하는 것과 달리 저의 몸은 빨리 호전되어 한 달 분량의 약을 타서는 일주일 만에 퇴원을 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저를 담당했던 의사선생님은 현대의학으로는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하면서 “혹시 무슨 종교를 신앙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를 한다고 밝히자 그분께서는 아마 그 종교가 저에게 잘 맞는 것 같다며 쾌유를 빌어주었습니다. 저는 다시 한번 상제님의 덕화에 감사를 드리며 병원 문을 나왔습니다.

  후일 저는 선각을 비롯하여 방면의 임원들께서 제가 입원한 동안 수련을 계속 돌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직장을 다닌다고 선각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던 저를 위해 많은 분들께서 정성을 드린 것을 생각하니 고마움과 더불어 옹졸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이처럼 빠르게 퇴원할 수 있었던 것은 저의 육신을 열심히 쓰라는 상제님의 뜻으로 알고, 자청하여 곧바로 도장의 수호를 서게 되었습니다.

  2003년 태풍 ‘매미’로 인해 금강산 도장의 연못에 쌓인 토사를 청소하는 작업을 자원해서 하게 되었고, 그 후로는 가쁘게 쉬던 숨도 회복되었습니다. 요사이에 다시 병원에 가서 진찰하니 심장과 더불어 건강이 많이 좋아졌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극한 정성이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몸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무엇이든 성급하게 이루려고 했지만, 이제는 “모든 일이 욕속부달(欲速不達)이라.”고 하신 상제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안심(安心)ㆍ안신(安身)을 이루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가 입도하기 전에 그토록 궁금했던 미륵이 우주를 주재하시는 상제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상제님의 무량하신 덕화를 받은 저는 오늘도 감사한 마음으로 수호에 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까지 부족한 저를 위해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시는 선각과 후각, 그리고 방면 임원분들께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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