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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7년(2007)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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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행문 : 카자흐스탄 미지의 세계에서 돌아본 인생

카자흐스탄 미지의 세계에서 돌아본 인생

 

 

鄭 大 珍

(대순진리회 중앙종의회 의장·학교법인 대진학원 이사장)

 

  2007년 8월 14일 카자흐스탄으로 떠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큰 공화국인 이 나라는 러시아는 물론 중국과도 국경을 접하고 있다. 세계 9위의 국토를 지닌 카자흐스탄은 면적이 서유럽 전체와 비슷할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원유와 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여 발전 가능성이 큰 나라이다. 멀고도 낯선 이 나라에 가게 된 것은 카자흐스탄 국립 크즐오르다 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오후 6시 10분 아시아나 비행기에 올라 창밖을 내다보니 장마로 인해 궂은 날씨가 미지의 세계를 향해 떠나는 설레는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았다. 사실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을 때 개인적으로 과분한 영광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종교인으로서 평생 상제님의 덕화를 입으며 살아온 터라 이렇게 박사학위를 받는 것 역시 상제님의 덕화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슬람 국가이기도 한 중앙아시아의 대국 카자흐스탄의 국립대학에서 굳이 먼 나라 한국의 종교인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것은 한 개인에 대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상제님의 사상이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박사학위는 상제님의 덕화와 함께 만수도인의 도움으로 받게 된 것이며 우리 도인들이 받아야 할 것을 내가 대표로 받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름 위로 솟구쳐 올라 운해의 창공을 내달리던 비행기는 무려 6시간이나 운항한 끝에 15일 12시 30분에 알마티 공항에 착륙했다. 그 긴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고 상제님의 덕화 속에 살아온 지난 날을 더듬게 되었다.

 

 

 

 

 

 

  나는 어려서 부모님을 따라 일본에 가서 8세에 교토[京都]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니다가 조부님의 뜻을 좇아 귀국하여 경남 고성군 영오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5학년 때에 일본인 스지카타[土方] 교장을 예리한 일본산 괭이로 내려쳐서 교장이 사경에 처하자 당일 정학이라고 하더니 3일 후에 퇴학이라고 하면서 학업을 중단케 하였다. 당시 스지카타 교장이 학생들에게 공부는 시키지 않고 전쟁준비에 골몰하며 솔방울을 따오라 쑥을 뜯어오라는 등 노동력을 동원하는 데만 신경 쓰는지라, 학생들에게 공부를 시키라고 주장하다가 격분해서 벌어진 일이었다. 그 후 조부님의 도움을 입어 한학 공부를 시작했고, 갑작스런 8.15 광복과 함께 뜻하지 않게 초남(草南) 김한국(金漢國) 선생의 문하생이 되어 한학 공부의 맛을 알고 열심히 공부하였다.

  13세 때 모친을 여읜 나는 17세에 처음 부산으로 와서 살게 되었다. 은하 비누공장에서 공원으로 취직한 뒤 곧 직원이 되어 6.25를 겪었다. 피난민이 집결한 부산 국제시장은 지금 생각해도 살벌하다는 기억이 생생할 정도로 살기 힘든 곳이었다. 나 역시 힘들게 살아가는 피난민들과 꼭 같다는 생각을 하며 각오를 다져 비누공장의 비누를 팔면서도 밤에는 동아중학교 야간에 다니는 학생이 되었다.

  다행히 21세에 동양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대학을 졸업할 나이인 24세에 겨우 졸업을 하였다. 23세에 결혼하여 조부님부터 동생들까지 10여 명을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다. 열심히 장사하면서 돈벌이에 취미가 생겼다. 31세에 국토건설단원에 자원하여 병역을 필하였다.

  그 후 상제님께 인연이 닿아 1957(壬午)년에 민족종단인 태극도에 입도했고, 수도에 열중했다. 1968(戊申)년에 태극도 분란으로 도전님께서 서울로 올라가셔서 다음 해인 1969(己酉)년에 서울시 성동구 중곡동에 만수도인이 염원하던 도장을 건설하셨다. 나는 입도한 지 22년 만에 도전님의 덕화로 부전방면 수임선감이 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 후에 재단법인 대순진리회 이사장에 임명되었고 도전님 화천하실 당시 장례위원장에 추대되어 소명의 임무를 다하였다.

  1996년 4월 28일 생각지도 않던 일이 일어났다. 모든 선감들의 추대로 대학교 이사장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평소에 학교 이사 또는 수석 감사로 일해온 나는 학교 발전에 더욱 헌신하면서 대순사상학술원을 창설하는 등 이론적 연구를 뒷받침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학술원 위원들과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어떤 일이든 속단하는 대신 좀 더 엄정하게 깊이 생각하여 필히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을 굳히고 매사에 열정을 갖고 임하게 되었다. 이제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상제님의 사상을 카자흐스탄까지 알릴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니 이는 상제님의 훈명(訓命)이자 만수도인의 채찍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더 열심히 수련에 매진해야겠다는 각오도 다지게 되었다.

  이국만리 카자흐스탄에서 광복절 국경일을 맞은 우리 일행은 알마티시의 명소를 찾아보기로 했다. 먼저 천산 아래 메데우란 곳으로 향했다. 메데우는 높은 산중에 위치한 스케이트장으로 1972년에 건설되었으며, 세계적으로 유명한 명소이다. 스피드스케이트, 아이스하키, 피겨스케이트 등이 가능하다. 여름 더위에 노천 빙상 경기장을 둘러보니 희한한 느낌이 들었다. 옆길로 올라가면 스케이트장 위에 있는 댐으로 올라갈 수 있다. 댐 위에 위치한 전망대에서 사방을 살펴보니 둑 옆에 산의 지하에서 빙하가 녹은 백색의 물기둥이 쏟아져 나오는 진풍경을 볼 수 있었다. 그 물을 수도 알마티 시민의 식수와 용수로 사용한다고 현지 가이드는 설명했다.

  천산은 만년설이 뒤덮여 있는데 그 아래 산들은 푸르른 산림이 잘 가꾸어져 있었다. 해발 1,900m의 고산은 이미 초겨울 기후를 보여 냉기가 몸을 휘감았다. 기념사진을 찍고 하산하여 ‘꼭주베’라 하는 산 정상에 케이블카를 타고 올랐다. 산 정상에서 차 한 잔을 마시면서 아래 시내를 살펴보니 천산에서 내려오는 산맥은 아주 유순하고 아름다웠으며, 그 아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광야가 아득히 펼쳐져 지평선이 보였다. 역시 땅이 큰 나라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곧바로 하산하여 4,500명을 수용한다는 극장을 보고 바로 앞에 있는 카자흐스탄의 영웅적인 선구자라 하는 ‘아바이’ 대선생의 동상을 보았다. 카자흐 문학의 아버지인 ‘아바이’는 시인이자 교육자로서 전 국민이 나아갈 이정표를 제시해 준 지도자라고 했다.

 

 

 

  점심 때가 되어 고려인이 운영하는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국립 중앙박물관을 돌아본 뒤 제2차 세계대전 때 알마티 시내를 지켜준 28명의 전사자를 모신 공원을 둘러보았다. 인근에 있는 ‘젠코프성당’은 목조건물인데 1911년에 일어난 알마티 대지진 때 다른 집들이 무너져도 혼자 버텨내 더욱 유명해졌다고 한다. 건축가 젠코프의 설계로 지어진 이 성당은 못 하나 사용하지 않은 조립식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이튿날 아침 크즐오르다 대학교로 떠나는 준비를 마친 뒤 공항으로 향했다. 일행은 이순이 선감, 신종호 선감, 김학선 선감, 김호봉 선감, 김필영 교수, 나와 내자 이복림까지 7명이었다. 알마티 공항에서 크즐오르다 공항으로 날아가는 동안 기내에서 창밖을 보니 광활한 평원이 끝없이 펼쳐졌다. 어제 산에서 본 광야로도 놀랄 만한데 공중에서 보니 더욱 장관이었다. 공항에는 크즐오르다 대학교 제1 부총장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8월 16일 아침 9시에 행사장으로 가기 위해 크즐오르다 대학교 부총장의 안내로 준비한 차에 올랐다. 우리 일행은 먼저 크즐오르다 대학교 박물관으로 안내를 받았다. 박물관에는 카자흐스탄 대통령 나자르바예프 누르술탄의 초상과 사진, 비세노프 클루슈바이 크즐오르다 대학교 총장의 사진, 그리고 철학자요 사상가요 음악가로서 코브스(우리나라 해금과 같은 활줄로 연주하는 악기)를 직접 제작하여 추앙을 받고 있는 ‘코르 아타’의 초상이 있었다. 싸을 르바예프 제1 부총장은 지난 70년 동안 학교가 배출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과학자, 예술가 등에 대해 설명했다.

  오후 1시에 크즐오르다 대학 총장실로 들어가 비세노프 총장과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식장에는 총장과 부총장 외에 학장, 처장 등 50여 명의 참석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총장은 대한민국의 대진학원 이사장 정대진 선생에게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식을 거행한다고 밝히고, 크즐오르다 대학의 약사와 세계 각국과의 협력관계 등에 대해 설명한 뒤 학위증서를 읽고 나에게 수여했다.

 

 

 

  나는 답사에서 이번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게 된 것이 개인적인 기쁨과 영예인 동시에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또 대순진리회의 기본 교리와 중요 사업을 간략히 설명한 뒤 대순진리가 전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한 생활을 향상시켜 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는 사상이며 생활 윤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번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은 카자흐스탄에 대한민국의 대순진리회와 그 기본교리를 알리고, 세계포덕을 위해 새로운 출발을 하였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명예박사 학위 수여식 뒤에는 선물교환과 함께 여담을 나눴고, 이어 간단한 인터뷰를 했다.

  식이 끝난 뒤 가까운 곳에 있는 홍범도 장군의 묘소와 계봉우 선생 묘소에 들러 참배를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 때 홍살문 성격의 대문을 세우고 주변을 단장했다고는 하지만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다가 돌아가신 분들의 묘역이 이국 만리 타국 땅에 초라하게 방치되어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애석하고 가슴 아팠다. 왜군과 싸워 크나큰 전공을 많이 세운 홍범도 장군과 계봉우 선생의 전과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선양도 되지 않고 있으니 부끄러운 일이라 할 수 있다. 저녁에는 환영 만찬이 예정돼 있었다. 만찬장은 영화에서나 보던 유목민족들의 둥근 원형집을 새로이 지어 마련했을 정도로 최고의 격식을 갖췄다. 비세노프 총장의 환영을 받으며 안에 들어가 정좌하니 총장이 환영사를 하기에 나 역시 답사로 예를 갖추었다. 음식을 먹고 건배주를 한 뒤 밤이 깊은 시간에 숙소로 돌아왔다.

  이튿날 크즐오르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다시 2시 30분에 알마티 공항에 도착했다. 18일에는 투르겐 마을에서 10km에 이르는 산길을 말을 타고 오른 뒤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60m 높이의 폭포를 구경했다. 알마티에서 90km 떨어진 국립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투르겐 계곡은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하고 있었다. 계곡 주변에는 연어농장과 폭포, 무성한 수풀이 있다. 투르겐 계곡의 유원지에서 숭어를 낚아 구워 먹고 라면과 햇반을 곁들이니 훌륭한 식사가 되었다.

  1,550m의 첩첩산중에서 천산의 설빙수가 녹아 흐르는 60m의 폭포수를 보고 승마하여 하산하였다. 산 이름도 투르겐산이요 폭포 이름도 투르겐폭포, 강 이름도 투르겐강, 마을 이름도 투르겐 마을, 사람들도 투르겐 사람들, 온통 천지가 투르겐이었다. 난생 처음으로 말을타고 산에 오르 내렸는데, 한 시간여에 걸쳐 말을 탈 때에는 어릴 적 소를 타보았던 그 때의 경험을 되살려 말의 앞가슴에 양발을 바짝 붙여 안정되게 말을 탔었다.

  하산하는 도중에 적석목곽분(積石木棺墳)에서 출품되었다는 황금 동상을 보았는데 높이가 15m나 되었다. 거대한 신상에 참배를 하고 내려와 이쓱크라 하는 곳에 오니 우리나라 경주의 신라 천마총(千馬塚)과 같은 적석목곽분총들이 나열되어 있었다. 그 중 한 곳의 총(塚)을 발굴한 것이 있어 안내자에게 물으니 바로 이 자리에서 황금청년(黃金靑年)이 발굴되었다고 했다. 이 청년상이 출토된 곳은 우리나라 경주의 천마총 부근처럼 봉분이 촘촘히 늘어서 있어, 알타이족의 후예인 흉노족(匈奴族)들이 경주에 와서 경주 김씨 왕가를 이루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던 기억을 되새기게 했다. 카자흐스탄의 이쓱크에 산재하여 있는 이 적석목곽분도 흉노족들의 묘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우리 한국인들의 흉노족 조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비약되었다.

  이튿날에는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석회가 굳어 절벽 양쪽 계곡에 성처럼 형성되어 있는 사론계곡을 둘러보고 만년설이 녹은 빙수가 흘러 거대한 강을 이룬 사론강에 발을 담근 뒤 경사진 계곡을 걸어서 올랐다. 날이 무더워서 숨이 찰 정도였는데 차로 왕복 9시간이나 걸리는 곳이어서 저녁때는 몸이 더욱 고되었다.

  8월 20일에는 느지막이 일어나, 3,400m 높이의 빙산에 올랐다. 산이 어찌나 높은지 리프트를 타고 또 타고 세 번이나 타야 했다. 산에는 키가 큰 사철나무가 울창하게 서 있고 2011년에 세계 동계 올림픽이 열리는 곳에는 선수들을 수용할 2층집들이 수십 채 서 있었다. 주변에는 민간인 숙소도 수백 채 있었다. 만년설로 뒤덮인 곳은 오를 수 없었고 대신 암산(巖山)으로 형성된 봉우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많은 산봉우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듯했다. 산 너머에 또 산이 있는 첩첩산중을 실감할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카자흐스탄을 가보고 산에 올라 천산의 영기를 받으면서 세상은 넓고도 넓다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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