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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8년(2008)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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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20) : 상제님의 주유천하 2

상제님의 주유천하 2
(2)김일부와 만나심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 연담 이운규가 낙향하여 살았던 띠울마을. 김일부가 살았던 당골과 이웃하고 있다. 이운규는 이곳에서 김일부를 제자로 삼아 가르쳤다.

 

 

  김일부는 대략 20세쯤에 3세 연하인 민씨(閔氏)와 결혼하여 슬하에 1녀를 두었다. 그는 글공부에만 열중한 나머지 살림에 도무지 관심이 없었으므로 이를 보다 못한 동생 김재훈(金在薰)이 집안을 대신 이끌었다.

  그 무렵 당대의 석학(碩學) 연담(蓮潭) 이운규(李運圭, 1809~?)가 서울에서 낙향하여 김일부가 살던 당골 바로 옆 동네인 띠울마을01에 은거하는 일이 있었다. 그는 본명이 수증(守曾)이었으나 대개는 운규로 불렸으며 세종대왕의 제18왕자인 담양군(潭陽君)의 13세손이라고 한다. 어려서 이서구(李書九, 1754~1825)에게서 학문을 배웠지만 정통 유학자라기보다는 이인(異人)의 풍모를 더 많이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다.

  1861년 당시 36세였던 김일부는 이운규의 명성을 전해 듣고 그의 제자가 되어 학문에 더욱 열중했으며, 얼마 후에는 김일부의 딸과 스승 이운규의 아들 이복래(李復來)가 결혼을 하여 두 사람은 사돈 관계까지 맺게 되었다.

  한편 일설에는 이운규가 김일부만이 아니라, 김광화(金光華 또는 金致寅), 최제우까지 제자로 길렀으며, 이들을 불러놓고 “최제우와 김광화는 선도와 불도를 대표하여 이 세상에 나왔다.”고 말하였다 한다. 그러나 최제우는 이 때 경주 용담에서 상제님께 제세대도를 계시 받아 동학을 펴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김일부와 더불어 이운규에게서 학문을 닦고 있었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김광화가 만든 ‘오방불교(五方佛敎)’는 이운규의 가르침을 근본으로 삼겠다고 한 종교이기 때문에 김광화가 이운규의 제자였을 가능성은 높다. 오방불교는 남학(南學)02의 한 계열로 분류되는데, 남학에는 이 외에 김일부의 ‘영가무도교(詠歌舞蹈敎)’도 있었다. 김광화는 이운규의 아들들과 함께 전북에서 활동했으며 그 자신을 미륵불의 강림이라 자칭하여 많은 민중들을 끌어 모으기는 했었다. 그러나 동학농민운동 때 5만 명에 달하는 남학군을 조직하여 남학운동을 하려다가 사전에 발각되어 관군의 습격으로 괴멸되고 그 자신은 교수형에 처해져버렸으며, 그 후 오방불교의 교세는 극히 위축되어 현재는 그 흔적을 찾기 어렵다. 이런 정황으로 보면, 김광화가 불도를 대표한다는 말은 이해하기 어렵고 이러한 설은 후대의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밖에는 생각할 수 없다. 참고로 영가무도교도 김일부가 죽은 후 김일부의 신격화 문제로 분열되어03 크게 세가 약해져 현재는 거의 멸실되었고, 학문적으로 정역을 연구하는 사람들만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어쨌든 어느 날 이운규는 김일부를 불러 “그대는 쇠하여 가는 공자의 도를 이어 장차 크게 천시(天時)를 받들 것이니 이런 장할 데가 있나. 이제까지 ‘너’라 하고 ‘해라’고 했으나 이제부터는 ‘자네’라고 부르고 ‘하소’라고 할 터이니 그리 알고 예서(禮書)만 너무 볼 것이 아니라 『서전(書傳)』을 많이 읽으소. 그러면 후일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책을 한 권 짓게 될 것이니 그때 이 글 한 수만 넣어주소.” 하면서 ‘觀淡莫如水(맑음을 보는 데는 물만한 것이 없고) 好德宜行仁(덕을 좋아하면 仁을 행함이 마땅하다) 影動天心月(달빛이 천심월에서 동하니) 勸君尋此眞(그대에게 권하노니 이 진리를 찾아보소)’라는 글을 전했다고 한다. 훗날 김일부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정역』을 저술할 때 「선후천주회도수(先后天周回度數)」편에 이 글귀를 넣었다.(계속)

 

 

 

 


01 現 충남 논산시 양촌면 모촌1리. 띠가 많이 있어서 띠울이라고 불렸다. 당골에서 서북쪽으로 약 1.5㎞ 떨어진 곳에 있다.
02 우리나라에는 동학(東學), 서학(西學: 서양 학문 혹은 천주교), 남학, 북학(北學: 실학)이 있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조선후기에 등장하고 있음은 자못 흥미로운 일이다.
03 1898년 김일부가 죽은 뒤, 제자 중 한 명인 하상역(河相易)이 김일부를 상제(上帝)로 신격화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삼자 이를 반대하는 다른 제자들이 ‘공맹의 도를 더 진전시킨 정역을 사도(邪道)로 타락시킨다’고 공박하여 내분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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