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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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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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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상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잠실5 방면 선무 김현의




  어떤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제가 느꼈던 것들을 다른 사람들도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 용기를 내어 봅니다.
  저는 20살에 입도하고 포덕 사업에 집중하면서 선무가 되었습니다. 그 후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는 도를 떠나있었습니다. 문득문득 도장 생각이 나기도 했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우울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연락을 끊었던 저를 찾아 선각이 집 앞 놀이터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후 친구였던 선ㆍ후각도 만났지만 닫힌 제 마음의 문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습니다. 선각들의 저를 향한 정성에 포덕소에서 기도를 모시기 시작했습니다. 주문도 다 잊어버려 갓 입도한 내수처럼 다시 시작했습니다.
  수도를 다시 시작하면서 저는 선각분들을 집으로 모셔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예전에 포덕할 때 저를 이끌어주던 선각분과는 오랜만에 만났는데 서울에서 인천까지 저를 보러 와주셨습니다. 딸아이에게도 잘해주고 뭐든 제게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회사에 다니던 직계 선각은 저와 아침 7시 기도를 같이 모셨습니다. 당시 저는 허리디스크 때문에 한쪽 골반부터 다리까지 아픈데다 경제적 형편도 어려웠습니다. 살도 뺄 겸 차비도 아끼려고 한 시간씩 걸어서 포덕소에 갔습니다. 평일에는 낮에 기도를 매일 모셨고 포덕소에서 《대순회보》를 읽으면서 위로를 받곤 했습니다. 원고료를 준다기에 회보 뒷장에 있는 엽서에 깨알 같은 글씨로 수기를 적었습니다. 선각이 제 글을 읽었다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천천히 느리지만 조금씩 도가 제게 스며들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교화해주신 기억이 있습니다.
  저는 딸아이가 5살 때부터 회관에 가서 식사 당번에 참여하고 주일기도를 모셨던 것 같습니다. 봉심전에서 기도를 모시면 눈물이 나서 한 시간 내내 울기도 했지만 여러 목소리가 잘 어울려서 아름다운 주문 소리를 들으면 제 마음도 치유가 되는 듯했습니다. 시간을 내서 기도를 모시고 식사 당번, 치성 음식 준비, 뒷정리 등 열심히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라도 해야겠단 생각에 고용노동부에서 발급하는 ‘내일배움카드’를 만들었습니다. 컴퓨터학원에서 공부하고 필기시험에 붙었습니다. 실기시험은 합격을 못 했습니다. 합격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을까요? 그때부터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학원 선생님이 저를 스토킹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학원을 옮겼습니다. 옮긴 학원에서는 문을 쾅쾅 닫는 수강생의 행동에 신경이 쓰여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어딜 가든 누가 문을 세게 닫으면 저를 괴롭히려고 사람들이 쫓아온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집에 와서도 분노 조절이 안 되었고 폭력적인 행동과 말 때문에 정신과 치료도 받았습니다.
  저는 너무 괴로워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리려다 가슴을 치며 펑펑 울고, 차도에 뛰어들기도 하고 미친 사람처럼 혼잣말하면서 욕했습니다. 미운 사람 이름을 크게 부르며 죽여버리겠다고 길에서 소리를 지르고 심지어 바쁘다는 핑계로 무단횡단을 하다가 큰 사고가 나기도 했습니다. 누가 저를 스토킹한다는 생각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한번은 어떤 할머니가 저를 미행한다는 느낌이 들어 말다툼하는 바람에 합의금을 문 적도 있었습니다.



  도를 닦는데 왜 내게 이런 시련이 왔을까 원망했습니다. 포덕소에서 기도 모시면서 제발 이 상황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울면서 심고 들였습니다. 남편과 아이는 저 때문에 힘들어했고 잠시 친정에서 지내기도 했습니다. 선각은 뇌에 좋다는 비싼 영양제도 사주며 저의 병을 낫게 하려고 애써주셨습니다.
  돌아보면 포덕을 통해서 수도가 되고 깨달음이 생기는데 저는 기도만 모시고 생각과 말은 마음대로 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도를 하면 업과 척이 더 드러나는데 반성은 전혀 안 하고 남 원망만 하다가 스스로 안 좋은 상황으로 몰고 간 것 같습니다. 이후 기도도 더 잘 모시고 병원도 꼬박꼬박 가서 상담하며 이겨내려고 애를 썼습니다.
  자신을 미워하고 부정적인 제게 선각들은 감사일기를 권유하셔서 오랫동안 감사일기를 썼습니다. 그래서인지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이 습관처럼 나옵니다. 교법을 많이 읽으라셔서 읽고 많이 써서 인간관계도 상제님 말씀처럼 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는 선각들이 제게 쏟아주신 정성을 힘들어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제가 죽을 만큼 힘들었을 때 상제님께 살려달라 심고 들였고 다시 산 나머지 인생은 도를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약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안 났습니다. 요리학원에 다녀서 한식 조리사 자격증을 따고 지금 직장에 1년 가까이 다니고 있습니다. 도에서도 책임 있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런 저에게 기회를 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어느 날 친척 여동생을 우연히 병원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연락처도 없었는데 메신저로 연락이 와서 신기했습니다. 요리학원에서 새로 사귄 친구는 말을 정말 이쁘게 한다며 저에게 밥 먹자고 먼저 다가온 친구인데 1년 넘게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하늘이 제게 보내주신 인연 같습니다.
  거의 매일 반찬을 해서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께 찾아갑니다. 입도하신 지 오래된 어머니는 일요일마다 기도 모시고 보이지 않게 저를 많이 도와주십니다. 어머니는 20년 넘게 아버지와 따로 혼자 사시니 외로움에 약을 많이 사셔서 약값이 많이 나갑니다. 옷 가게 하는 분이랑 친해서 외상으로 옷을 많이 사는 등 돈 관리가 안 됩니다. 이제는 제가 어머니 돈을 관리하면서 월성을 모시게 합니다. 어머니가 제사를 걱정하시기에 치성금도 모시게 하고, 도의 일에 참여하도록 해드렸습니다. 그래서인지 가족 모두의 도움으로 어머니는 편안히 지내십니다. 나 몰라라 하던 아버지도 매일 어머니를 살펴주러 오시고 식사도 챙겨주시고 먹을 것을 사다 주십니다. 다들 어머니를 부러워합니다. 무슨 복을 지었길래 그리 편히 사냐고….
  저는 아버지를 죽어도 안 보고 산다며 오랫동안 증오하며 원망하고 연락도 끊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3살 때까지 키워주신 부모님 은혜에 보답해야 한다는 교화를 듣고 아버지가 저처럼 도를 알면 좀 더 잘 사실 수 있을 텐데 생각이 들어 아버지를 포덕했습니다.
  아직 가화도 다 못하고 포덕도 잘하는 건 아니지만 정성껏 기도 모십니다. 직장에 다니느라 정시에 기도를 못 모셔도 심고를 들입니다. 기도 모시는 분들을 위해 포덕소도 청소하고 납폐지를 찍습니다. 바쁜 선ㆍ후각을 생각해서 제가 잘할 수 있는 반찬을 만들면서 설레고, 나누면서 기쁨을 느낍니다. 평소 생각이 막힌 부분이 있는데 기도를 잘 모시면 떠오르는 게 있어 많은 도움이 됩니다. 또 간절히 심고 들이면 이루어집니다.
  지금은 아르바이트가 아닌 정직원이 되었습니다. 덥고 좁은 데서 일하며 존재감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스스로 번 돈으로 성을 모실 수 있고 세상에 쓰임이 되고 매일 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며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정말 정신개벽, 환골탈태로 마치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이 사람도 수도를 통해서 도통 할 수 있겠구나 싶습니다. 남은 인생도 남을 위해 살 것이며 전 그것이 소중한 제 가족과 제가 잘되는 길이라 믿고 열심히 수도할 것입니다. 부족한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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