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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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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어룡헌과 뿌리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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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상


어룡헌과 뿌리공원



성산 방면 선감 김홍석


  저는 대진대학교에서 근무했습니다. 1992년 3월 개교 때 물리학과 교수로 부임하여 2016년 9월에 퇴직했습니다. 대진대학교 부임 전에는 국방과학연구소에서 오래 근무하였고 대순진리회를 접할 기회가 없었으나, 대진대학교에서 근무하면서 많은 도인을 만나게 되어 1992년 6월에 입도식을 했습니다. 교수로서 도인으로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하여 1995년 음력 12월에 선감 임명을 모시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처음 몇 년간은 서울에서 출퇴근했습니다. 그러나 서울 포천 간 교통량이 많아지고 출퇴근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포천으로 이사를 결정했습니다. 모시고 살던 부모님께도 상의드려 대진대학교 근처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습니다. 1995년 연말에 집이 완공되어 이사했는데, 1층은 부모님께서 거주하시고 2층은 저희 부부와 아이들이 사용했습니다. 마당에는 꽃과 나무도 심어 부모님께서 소일하시고, 큰길에 접한 공터에는 작은 상가를 지었습니다. 임대 수입은 부모님께서 용돈으로 쓰시고 세입자와 대화도 하면서 노후 무료함을 달래실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이사하고 나니 출퇴근에 5분이면 충분하여 학생 교육과 수도에 더욱 노력했습니다. 도전님께서 교수진에게 학생들을 내 자녀라고 생각하고 교육하라고 여러 차례 말씀하신 뜻을 따라 주말에도 방학에도 출근하여 학생 지도에 힘을 쏟았습니다. 특히 우리 연구실에서 지도받은 학생들은 졸업 후 전원 취업에 성공하여 물리학과가 취업 우수 학과로 여러 차례 선정되기도 했습니다. 물리학의 학문 특성이 취업에 불리하다는 점을 생각하면 당시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평가되었습니다.
  이사하면서 두 아들도 서울에서 포천중학교와 포천초등학교로 전학하였습니다. 큰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도전님 훈시 말씀을 접했습니다.


도인 자녀들 대진대 보내야 한다. 도인들 자녀가 다 들어왔으면 좋겠다. (91. 7. 27)


이번에 도인 학생들이 얼마 오지 않았다. 난 도인을 원한다. (92. 12. 28)


  도전님 말씀을 따라 두 아들 모두 대진대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성적이 좋아서 성적장학금을 받으면서 대순장학금도 받았습니다. 4년 동안 남들이 등록금을 낼 때 아들들은 오히려 등록금을 벌었습니다. 또한 대진대에 해외 탐방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학생들이 조를 짜서 방학 중에 해외 탐방 계획서를 내면 학교에서 경비를 지원해 주었습니다. 큰아들도 지원하여 영국에 있는 저명 교수 연구실을 방문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대진대 졸업 후 그분을 지도교수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유학 자금은 모아둔 대순장학금으로 충당하였습니다. 박사 취득 후 귀국하여 국내와 해외의 국제적 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후 현재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있는 애플사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작은아들 역시 해외 탐방 프로그램, 디스플레이연계전공 등에 참여하여 폭넓은 교육을 받고, 모아둔 대순장학금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여 현재 삼성디스플레이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어느 원로 임원 말씀이 기억납니다.
  “대진대학교는 도전님께서 지상에 세우신 첫 번째 대학이다. 보이는 대학교도 믿지 못하면서 보이지 않는 후천을 어떻게 믿겠는가. 대진대에서 공부하면 후에 엄청난 복록을 받을 것이다.”
  저도 여기에 백 퍼센트 공감합니다. 많은 도인이 대진대에 자녀를 보내기를 권해드립니다.
  2016년이 되니 어느덧 개교한 지 24년이 지났고 진입로에 심었던 어린 은행나무가 큰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었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었으며, 학교 내외의 상황도 크게 변하여 2016년 9월에 정년을 1년 앞두고 퇴직했습니다. 제가 퇴직하자 많은 분이 “그동안의 경험이 아깝다. 한두 강좌라도 강의를 더 해라. 아니면 산학협동이라도 더 하라”며 걱정 겸 조언을 해주셨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수직을 떠난 이상 일반 도인으로 생활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다 92년 12월 28일에 하신 도전님 훈시를 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임직원들은 도인으로 종단에 원적이 있으며, 학교에 파견 나간 것이다. 임무가 다하면 돌아온다.” 제 생각이 도전님 뜻에 어긋난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학교 업무에 들이던 시간과 노력을 수도에 더욱 힘쓰고 싶었습니다.
  6개월 후인 2017년 3월에는 개교할 때부터 같이 물리학과 교수로 일했던 아내도 저의 뜻에 찬동하여 정년을 5년 앞서 퇴직하여 포덕에 동참했습니다. 참고로 아내도 제가 선감 임명을 모시는 날 보정 임명을 모셨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기에 집 2층을 포덕소로 활용하기로 했습니다. 2018년이 되니 집이 너무 낡았고 부모님이 계실 때와 달리 집 구조를 변경할 필요가 생겨 집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짓기로 했습니다. 건물은 2층으로 하고 아래층은 살림집, 위층은 포덕소로 면적과 구조도 용도에 맞게 저희 부부가 직접 설계했습니다.
  4개월의 건축 기간에 신명의 덕화가 있음을 여러 차례 느꼈습니다. 어느 날 콘크리트 타설 후 양생을 며칠 기다리며 건축업자는 가까운 곳에서 다른 집 공사를 하고 있었고 저희는 볼일로 멀리 있었습니다. 나중에 건축업자가 말하기를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자 부어둔 콘크리트가 걱정되어 저희 옆집에 전화하여 알아보니 저희 집 공사장에는 비가 전혀 안 온다고 하였답니다. 거리는 불과 1~2km인데 말입니다. 그 후에도 몇 차례 전화로 확인했는데도 역시 저희 집 공사장에는 비가 안 왔답니다.
  이리하여 공사가 4개월 만에 순조롭게 완공되었습니다. 주방 식탁 또한 마음에 드는 게 있었는데 가격이 너무 비싸서 저희 건축 예산으로는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할 수 없이 예산에 맞는 식탁으로 예약하고 왔는데, 얼마 후에 가구업체에서 연락이 오기를 매장 정리가 급하다며 가격이 비싸 엄두도 못 냈던 그 식탁을 가져가라고 재촉한 바람에 지금도 만족스럽게 잘 쓰고 있습니다.
  포덕소로 활용하려면 사람들이 와서 편하게 이용하고 좋은 인상을 남겼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집 현관에 어룡헌(魚龍軒)이라고 현판을 달았습니다. 집 주소가 어룡동(魚龍洞)인 것에 착안했습니다. 어룡(魚龍)은 어변성룡(魚變成龍), 즉 물고기가 용이 된다는 뜻입니다. 크게 성공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꿈꾸는 세계를 용화세계라고도 합니다. 상제님께서 “나의 형체는 사두용미(蛇頭龍尾)니라” 말씀하신 것과도 연관되어 용의 기운이 깃들기를 바라며 어룡헌이라는 현판을 달았습니다. 용의 기운과 함께 봉황의 기운도 함께 하면 더 좋겠다고 생각하니 봉황은 벽오동 가지에만 앉는다는 말이 생각났습니다. 봉황은 죽실, 즉 대나무 열매만 먹는다고 하여 마당에 작은 화단을 만들어 벽오동과 오죽을 심었습니다. 2021년 4월 29일에 촬영한 사진에는 대가 가는 여린 오죽과 막 잎이 움튼 벽오동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 사진3 금강산 갤러리



  그리고 금강산 기운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금강산 디지털 사진을 구해 확대 인쇄하여 액자 형태로 만들어 남쪽 담장에 걸었습니다. 중앙에 금강산 제1봉인 신선봉과 오음산을 걸고 좌우에 히말라야산맥 사진을 구해 걸었습니다. 지구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히말라야가 좌우에서 금강산을 보좌하도록 연출하였습니다. 제일 왼쪽이 안나푸르나이고, 다섯 번째 사진에서 뒤쪽 약간 어두운 산이 지구 최고봉인 에베레스트입니다. 오른쪽에 자리가 남아 세계 양대 폭포 중 하나인 빅토리아 폭포 사진을 걸었더니 산과 물이 어우러진 풍경이 되었습니다. 빅토리아 폭포는 길이와 폭이 나이아가라 폭포의 두 배입니다.
  다음으로 도전님 훈시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손들이 공부하면 조상님들도 같이 공부한다. 부모님 조상님들도 다 도인이다. 선대 조상님들까지 운수를 받으신다.”(1992. 2. 8) 우리가 치성 때나 매일 기도할 때 “직선조 하감지위, 외선조 응감지위” 합니다. 제 직선조는 경주 김씨, 외선조는 풍산 홍씨입니다. 집사람 직선조는 죽산 박씨, 외선조는 창원 황씨입니다. 네 문중 족보를 보고 저와 집사람까지의 직계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금강산 액자와 똑같이 제작하여 현관 앞쪽 담에 걸고, 뿌리방(榜)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뿌리는 조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소호금천씨는 삼황오제의 한 분이며 한국 김씨들의 공통 조상이라고 합니다. 저희는 매일 뿌리방을 보면서 조상님들을 생각합니다.


▲ 사진4 뿌리방(榜)



  대문을 만들지 않고 많은 사람의 출입이 편하도록 개방감을 살리기 위해 아치를 세웠습니다. 아치를 통과하면서 올려다보면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를 도와준 UN 16개국 국기가 보이도록 배치했습니다. ‘은혜를 저버리지 말라’는 가르침을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UN 16개국 병사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사라졌을 것입니다. 어룡헌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이 아치를 통과해야 하고 그때마다 이들의 고귀한 희생에 고마움을 되새길 것입니다.
  이 아치를 통과해서 마당으로 들어서면 현관 앞에 태극기가 보입니다. UN 16개국의 도움으로 대한민국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태극기는 비가 오지 않으면 매일 게양합니다.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이면서 또한 만물의 생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어룡헌에서 좋은 일이 많이 일어나기를, 즉 포덕이 번창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태극기를 통과하면 어룡헌 실내로 들어갑니다.
  어룡헌을 바라보며 오른쪽, 금강산 사진의 반대쪽에는 작은 화단이 있습니다. 벽오동과 오죽을 심은 곳입니다. 여기에 ‘상촌비’라는 비석을 세웠습니다. 저는 경주 김가 상촌공파인데 상촌공은 제가 어려서부터 어른들께 우리는 상촌 자손이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습니다. 장성하여 그분에 대해 알아보니 매우 훌륭한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의 직선조인 경주 김씨 가문을 대표하여 상촌비를 세우고 저희 마당을 뿌리공원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조상을 의미하는 뿌리방(榜)과 같은 의미입니다. 앞으로 저의 외선조인 풍산 홍씨, 아내의 직선조인 죽산 박씨, 외선조인 창원 황씨 중 한 분씩을 선정하여 비석을 세울 예정입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와 상응하도록 우리나라 꽃인 무궁화도 심었습니다. 사진7은 2023년 8월의 화단 모습인데, 그동안 잎이 풍성해진 오죽과 키가 훌쩍 자란 벽오동이 무궁화와 함께 생기를 발하고 있습니다.
  우리 대순진리회 도인들은 수도 과정에서 누구나 상제님의 덕화를 입은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출퇴근에 너무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포천으로 이사하려고 땅을 알아보러 다녔습니다. 학교에서 가깝고 상가를 지으려면 도로에 인접해야 하니, 가격도 고려하여 대지가 아닌 논을 사서 매립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여러 조건을 모두 갖춘 땅을 어렵게 구한 것이 그림1의 땅입니다.

  두 필지 모두 논인데 왼쪽 보라색으로 표시된 어룡동 190-18은 전 주인 소유이고, 오른쪽 주황색으로 표시된 어룡동 189-5는 재무부 땅으로 43번 국도에 인접해 있으며 전 주인이 임대료를 내고 수십 년째 경작하고 있어 그 권리를 넘겨받기로 했습니다. 전 주인 말은 왼쪽 땅에 주택과 상가를 짓고 오른쪽 땅을 주차장으로 사용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대진대 정문에서 3km 거리밖에 안 되고 가격도 저렴해서 매입했습니다.
  왼쪽 땅을 메워 주택과 상가를 짓고 오른쪽 땅도 메우려고 하니 땅 관리를 맡은 포천시청에서 제동을 걸어왔습니다. 제 소유지가 아니므로 형질 변경은 안 되고 논으로만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상가를 운영할 수 없습니다. 이 땅 가격이 싼 이유가 있었습니다. 제가 부동산에 대해 몰라서 잘못 산 것입니다. 황급히 백방으로 알아보아 논의 100배 임대료를 내기로 하고 오른쪽 땅을 주차장으로 변경하는 데는 성공했습니다. 그렇지만 제 명의로 변경할 수는 없었습니다.


▲ 사진8 어룡헌 전경



  그런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느 문중에서 오른쪽 땅이 잃어버린 자기 조상 땅이라고 재무부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습니다. 전 소유주는 물론이고 동네 누구도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소송은 대법원까지 가서 원고가 승소하여 저희는 다시 당황했습니다. 오른쪽 땅이 남의 땅이 되면 상가를 운영할 수 없어서 이 땅을 산 의미가 없어집니다. 그런데 다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 문중의 대리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문중 사람 일부의 인감증명서 등의 서류를 가지고 와서 저보고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계약금을 내면 나머지 다른 서류는 차차 준비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가격도 합리적이었습니다. 저희는 서둘러 계약금을 건넸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사기꾼이었습니다. 문중 사람 일부와 짜고 저희에게 돈만 받고 명의를 넘겨주지 않을 심산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침 법에 밝은 지인의 도움으로 무사히 땅을 매입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부동산을 몰라서 잘못 산 쓸모없는 땅이었는데 이제는 포천에서 제일 좋은 땅이 되었다고 주위에서들 말합니다. 오른쪽 땅이 제 명의로 되니 왼쪽 땅도 도로에 인접한 땅이 되어 땅값이 많이 올랐다고 합니다.
  포덕소를 겸한 저희 집 이름은 어룡헌이고, 마당인 뿌리공원은 UN 아치, 태극기, 금강산 갤러리, 뿌리방, 상촌비, 벽오동ㆍ오죽ㆍ무궁화 등이 가꾸어진 화단으로 구성했습니다. 사진8는 현재 저희 어룡헌의 전경입니다. 추후 도인들이 많아져서 현재의 어룡헌 2층이 협소할 경우 이 상가를 증축하여 한 층을 회실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금강산, 용, 봉황의 기운이 서린 어룡헌에서 조상님들의 음덕이 더해져 포덕이 활발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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