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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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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문 :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



교무부 신상미



  어린 시절 촉촉하게 비가 온 다음 날, 학교 화원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었던 달팽이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관찰하곤 했다. 달팽이는 더듬이를 쏙 넣었다가 다시 길게 내미는 것을 반복하면서 느릿느릿 움직였다. 달팽이의 더듬이는 위쪽에 한 쌍, 아래쪽에 한 쌍으로 두 쌍이다. 위쪽의 긴 더듬이 한 쌍 끝에 까만 점처럼 보이는 눈은 밝고 어둠을 구분할 수 있다. 그 아래 작고 짧은 더듬이 한 쌍은 먹이, 냄새, 기온, 바람 등을 인지할 수 있다고 한다. 위쪽의 긴 더듬이 모양이 뾰족해 보여서 ‘달팽이 뿔’이라고도 하는데 이와 관련된 우화가 있다.


  전국 시대 위(魏)나라 혜왕(惠王)이 제(齊)나라 위왕(威王)과 동맹을 맺었으나 위왕이 배반하자, 혜왕은 자객을 보내 죽이려고 했다. 이에 대해 한 신하는 필부를 보내 원수를 갚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므로 차라리 군사를 일으켜 정당하게 공격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다른 신하는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무고한 백성들만 괴롭히는 것이라며 그의 의견에 반대했다. 그 외의 신하도 의견을 개진하며 논쟁이 계속되었으나 결말이 나지 않았다. 혜왕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자 혜자(惠子)가 대진인(戴晋人)을 천거하여 혜왕과 만나게 했다.
  대진인이 혜왕에게 말하였다.
  “전하께선 달팽이란 미물을 아시지요?”
  “그렇소.”
  “그 달팽이의 왼쪽 뿔에 촉씨(觸氏)라는 나라가 있고 오른쪽 뿔에 만씨(蠻氏)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양쪽이 영토 분쟁을 일으켜 격하게 싸우는 바람에 전사자가 수만 명에 이르렀고, 도망가는 적을 추격한 지 15일이나 지난 뒤에야 돌아왔습니다.”
  “아. 그것은 거짓말이군요.”
  “그러면 제가 전하를 위하여 사실을 예로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전하께서는 이 사방 위아래의 공간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끝이 없소.”
  “그러면 정신을 무한한 공간에서 노닐게 하여, 이 유한한 땅덩이를 돌이켜 보면 이 나라 따위는 있을까 말까 한 아주 하찮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소.”
  “유한한 이 땅에 위나라가 있고, 위나라 안에 양(梁)이라는 도성이 있으며, 그 도성 안에 전하가 계십니다. 그렇다면 전하의 나라와 달팽이 뿔 위의 만씨가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다른 것이 없소.”
  대진인이 나가자 혜왕은 멍하니 자신도 잊은 듯이 있었다. 이후 혜왕은 대진인을 위대한 인물이라 여기며 제나라와 전쟁할 생각을 버렸다.
01



  이 우화에서 대진인은 혜왕에게 위나라와 제나라를 각각 달팽이 뿔 위에서 싸우는 만씨와 촉씨의 나라에 비유하였다. 우주라는 넓은 시야에서 내려다본다면 위나라와 제나라는 작고 미미할 뿐임을 혜왕에게 자각하게 한 것이다. 대진인의 설득에 혜왕은 동맹을 깬 위왕을 응징하려는 생각을 버렸다. 대진인은 아마도 의미 없는 싸움으로부터 무고한 백성들의 희생을 막고자 한 것으로 짐작된다.
  우리는 주변에서 ‘네가 틀리고 내가 옳다’라며 시비를 벌이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당시에는 심각한 다툼으로 서로 감정이 상해 있다가도 얼마 후에는 ‘내가 왜 그랬지?’하고 후회하기도 한다. 당시의 감정이 가라앉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위나라 혜왕은 동맹을 깬 제나라에 대한 분노로 감정이 격한 상태였지만 넓은 시야를 가지고 현실을 보라는 대진인의 충언을 즉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우리도 혜왕처럼 넓은 시야로 상황을 객관적으로 본다면 후회를 남기는 일이 적어질 것이다.
  이 우화에서 비롯된 ‘와각지쟁(蝸角之爭)’은 ‘달팽이 뿔 위에서의 싸움’이란 말로 쓸데없는 싸움을 할 때 주로 쓴다. 우리는 살면서 넓게 생각하지 못하고 이런 시비에 빠지곤 한다. 우주라는 넓은 시야에서 삶을 바라보는 대진인의 지혜처럼 우리도 해원상생의 지혜로 ‘화목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면 쓸데없는 시비로 얼굴을 붉히는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화목한 관계’를 소중히 여길 때 나만을 생각하는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01  김원중, 『고사성어 백과사전』 (서울: 을유문화사, 2003), pp.498-499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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