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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54년(2024)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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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첫 직장만 N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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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산문 장려상


첫 직장만 N번째



문정2 방면 선무 손예린



  대학 엠티를 갔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예린아, 고구마 좀 삶아줄 수 있어?”
  “그래.”(이정도야 식은 죽 먹기지!)
10분 뒤
  “음? 어디서 연기 나고 탄 냄새가 진동하는데? 설마?”
  서둘러 고구마를 담은 냄비를 확인해봤더니 고구마와 냄비 밑바닥이 까맣게 타 있었습니다.
  “너 물은 얼마나 넣었냐?”
  “(헉! 물을 넣어야 했던 건가?) 미안해, 모르고 물을 안 넣었어.”
  “(황당한 얼굴로)아이고, 내가 미치겠다!”


  저는 일을 할 때면 실수의 연속이고 일 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서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을 귀찮게 만들었습니다. 위와 비슷한 일이 일상이다 보니 특히 어머니께서 “니는 앞으로 우째 살라고 그라노. 내가 미치겠다 진짜! 이걸 뱃속에 다시 집어넣을 수도 없고”라는 걱정 섞인 말을 자주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일상과 다르게 대학에 입학해서 4.5점 만점에 4점으로 졸업하고 국가고시도 일주일 공부해서 합격할 정도로 성적은 잘 나왔습니다. 이래서 생긴 별명이 ‘이론 천재’와 ‘노래방 새우깡’입니다. 이론 천재란 이론은 빠삭한데 실전은 허술하다는 의미입니다. 새우깡은 광고에 “손이 가요 손이 가, 새우깡에 손이 가요~” 라는 가사처럼 제가 손이 많이 가는 사람인데 노래방에는 대용량 새우깡인 만큼 손이 아주아주 많이 가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라는 사람은 별명답게 대학 때 성적은 A 이상이었지만, 그것과 상반되게 어떤 것을 시키면 엉뚱하게 일 처리 해버리고, 간단한 일도 시간이 걸리고 일 처리를 한 번에 못 하고 꼭 몇 번은 더 하는 일은 기본이었습니다. 제 앞가림도 못해서 주변 사람들이 챙겨주는 일들도 허다했습니다. 주변에서는 “니는 앞으로 이 험난한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라노”라면서 다 저를 걱정했습니다.
  저도 그럴 때마다 ‘나 진짜 어떻게 살지?’라는 고민을 수도 없이 했는데, 친구를 통해 상제님의 도를 만난 덕에 덕화 속에 큰 사고 없이 대학을 졸업하고 국가고시도 붙었습니다. 하지만 수도하면서도 저의 허당스러움은 계속되었기에 선각분들이나 도우들이 저의 실수를 처리하는 일이 허다했고, 선각분께서는 저에게 “눈이 있어도 안보이고 귀가 있어도 안 들린다, 그쵸?”라고 자주 하셨습니다.
  이런 제가 직장을 구하게 될 시기가 되자 고민이 더 깊어졌습니다. 저도 저를 잘 알기에 생명을 다루고 꼼꼼한 확인이 필수인 간호사를 한다는 게 몹시 걱정되었지만, 다른 자격증도 없었고 취업이 잘 안되는 시국이기도 해서 찬밥 더운밥 따질새 없이 일을 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열심히 여러 병원에 지원했고 면접을 보러오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첫번째 직장은 개원한 지 얼마 안 된 한의원이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구직 면접을 보게 되었는데 원장님께서 제 인상을 보니까 일을 똑 부러지게 잘할 것 같다면서 그 자리에서 바로 채용했습니다. 합격이라 기쁘기도 했는데 ‘일 엄청나게 못하는데 어떻게 하지…’라는 마음도 동시에 들었습니다. 출근 당일 ‘에라 모르겠다. 배우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하면서 떨리는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역시나 걱정처럼 일 처리가 많이 늦고 비슷한 실수를 반복해서 동료 선생님이 많이 답답해했습니다. 그렇게 실수하고 혼나고 눈치 보면서 정신없이 일한 지 4주 가까이 되었을 때 원장님이 조심스럽게 저를 불렀습니다.
  “예린씨, 열심히 하려는 건 잘 알겠는데 우리 병원이랑 안 맞는 것 같아요. 저희 직원이랑도 잘 안 맞는 것 같고요. 내일부터 안 나오셔도 돼요. 수습 기간이 남긴 했지만 다른 사람 고용해야 할 것 같아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청천벽력. 그렇게 생각지도 못해 직장에서 잘렸습니다.
  다시 직장을 찾아보기 시작한 저는 곧바로 한 안과로부터 면접 문자를 받았습니다. 한의원에서 한 달 일한 경력이 너무 짧기도 하고 부끄러워 신입으로 지원하고는 이번에는 꼭 다녀야겠다는 마음으로 패기 있게 면접을 봤습니다. 저의 기세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별다른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면접에 붙었습니다.
  대망의 첫 출근날, ‘그래! 이번에는 오래 일해보자!’라는 다짐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병원에 갔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저를 교육해주시는 간호사 선생님께서는 굉장히 예민한 성격이었고 실수해도 용서해주는 기간은 한 달이라고 그 안에 일을 다 익히라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저는 ‘아, 한 달이 안 지났으면 좋겠다’하는 긴장된 마음으로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가 얼마나 빨리 가는지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수술실 일도 해야 하니까 수술 전 환자 처치를 어떻게 하는지 며칠 동안 알려주셨습니다. 그다음 주, 환자를 수술할 상태로 준비하게 시키신 상황에서 정확히 한 달하고 이틀째 되던 날. 제가 환자분께 마취 안약을 넣고 눈 안에 소독제 희석액을 골고루 넣어드려야 하는데 제가 일회용 인공눈물을 넣고 소독 희석액을 넣어버렸습니다. 마취되지 않은 눈에 소독제가 들어갔으니 환자가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다른 직원이 발견하고 얼른 마취 안약을 넣었습니다. 그나마 수술 전에 알아서 천만다행이었지 그대로 수술이 진행되었다면….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평소에 잘하던 일인데 왜 하필이면 그때 실수를 했을까? 처치 순서를 기억하고 싶은데 그 순간이 되면 왜 이렇게 머리가 새하얘질까? 일부러 안 하려는 건 아닌데 할 때면 자꾸 깜빡하는 것을 어떻게 해? 억울한 마음도 들고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습니다. 이 일을 원장님이 알게 되고 저를 방으로 부르시더니 “나 손 간호사랑 같이 일하기 힘들 것 같아요. 일단 이번 달 말까지만 일하면 돼요”라며 그렇게 두 달 만에 직장에서 또 잘렸습니다.



  그 후 다시 직장을 알아보았고 이번에도 무경력 신입으로 일을 구했습니다. 거의 넉 달 만에 다이어트 한방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직원 중 한 사람이 곧 그만둘 예정인데 제가 인상도 밝고 일을 싹싹하게 잘할 것 같다고 바로 채용해주셨습니다.
  곧 그만둘 직원분이 저에게 어떤 것을 해야 하는지 알려주셨는데 인원은 적은데 해야 할 일은 너무 많아서 벅찼습니다. 특히 다이어트 한약 상담이 저의 전담 업무였는데, 제가 상담에 서투르니 한약을 신청하는 사람들이 줄었습니다. 다이어트 시술 때는 손이 느리니 손님분들을 기다리게 하는 경우가 너무 많아서 저도 그렇지만 저와 손발을 맞춰서 일해야 하는 실장님도, 저에게 일을 인수인계하는 직원분도 힘들어하는 나날이 지속되었습니다. 은근히 자기들끼리 제 얘기를 하거나 저를 무시하는 일들이 잦았습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속상하니 일 끝나고 울 때도 많았지만 그만두면 당장 일자리 구하는 게 쉽지 않기도 하고 다시 다른 일을 구하더라도 비슷하게 겪을 것 같아서 어떻게든 버티고 버텨 하루하루 해나갔습니다.
  그렇게 일을 해나간 지 한 달쯤 되던 날 원장님이 저를 불렀습니다. ‘설마 또 그 말을…?’ 원장님께서 뜸을 들이시더니 어렵게 말문을 여셨습니다. “수습 기간이 3개월이긴 한데 일하는 거 봤을 때는 우리 병원이랑 잘 안 맞는 것 같아요. 일단 수습 기간에 그만두는 거지만 월급은 그대로 드릴게요. 그동안 고생했어요.”
  저는 세 번째 일도 한 달 만에 잘렸습니다. 선각분들도 “어쩌노?” 하면서 안타까워하셨고 겪어서 풀리는 것도 있고 배우는 것도 있을 거라고 그나마 수도를 하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하셨습니다.
  일단 벌어놓은 돈으로 한 달 한 달 살아가고 돈이 떨어져 갈 때쯤 다시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신입으로 지원했습니다. 다행히 이력서를 넣자마자 바로 연락받았고 또 안과였습니다. 어떻게든 붙고자 하는 의지로 열심히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했더니 원장님도 마음에 든다고 잘해보자며 화기애애하게 면접이 마무리되었습니다.
  역시나 직장생활은 쉽지 않았습니다. 이 병원은 수습 기간이 한 달이라 그 이후에 정규직으로 전환되는데 실장님은 일단 제가 일하는 부분이 미숙한지 한 달만 더 지켜보자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일하는 속도나 정확성이 늘지 않아서 그때마다 실장님이나 연차가 있는 직원이 저에게 좀 빨리하면 좋겠다고 한마디씩 했습니다.
  실수하면서도 하루하루 성실하게 일해 나간 지 두 달이 지난 시점에 실장님이 저를 부르기에 ‘나 드디어 정직원이 되는 건가? 근데 이 익숙하고 불길한 느낌은 뭐지 설마?’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실장님은 한 달 더 지켜봤는데도 우리 병원이랑 맞지 않는 것 같다며 이달까지만 일해달라고 하셨습니다. 실장님 앞에서는 담담한 표정과 말투로 알겠다고 하고 돌아섰습니다. 이쯤 되니 저도 어이가 없어서 실소가 나왔습니다. ‘와, 언제까지 이렇게 일을 금방 잘리려나…’ 이렇게 또 두 달 만에 잘리게 되었습니다.



  저는 곧바로 직장을 구했고 이번에도 당연히 신입으로 지원했습니다. 또 한 안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자격증 있냐고 물어보길래 간호사 면허증 있다고 했더니 의원에는 보통 간호사 말고 간호조무사를 채용해서 쓰는데 지금 일하고 있는 담당 간호사가 임신해서 그만두니 당장 일하러 오라고 해서 그다음 날부터 바로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만두는 분이 오래 일하신 분이라서 그 몫을 해야 하니 부담이 물밀듯 밀려왔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나하나 배워가는데 마음은 의욕적이나 몸은 안 따라주니 버벅거리고 실수 연속이고, 시간은 빠르게 흘러 직원분이 그만두는 날짜가 성큼 다가왔습니다. 일을 열심히 배웠지만, 아직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그분이 나가고 나서 그 빈자리를 제가 채우긴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여기저기서 불만이 나오기 시작하더니 결국 한 달 만에 또 직장에서 잘렸습니다.
  ‘와, 이렇게까지 잘릴 수가 있구나’ 하면서 다시 직장을 구하기 시작했는데 이번엔 주 4일제인데다 진짜 사람 좋은 원장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직장에서도 처음 일하는 걸로 이력서를 냈습니다. 면접 때 간호사 면허 딴 지 꽤 되었는데 일을 왜 안 했냐고 묻기에 일하기 전에 여행도 다니고 세상 경험을 했다고 둘러댔는데 원장님께서 “그것도 참 좋은 경험이지” 하면서 좋게 봐주셨습니다.
  이 병원에서는 계속 일했습니다. 물론 자잘한 실수를 많이 했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을 좋게 타일러주시고 대처해 주셨던 직원분도 감사하고, 연차 높으신 분은 원래 성격이 예민하고 깐깐해 일 처리에 대해서는 호락호락하지 않으니 저에게 일을 맡길 때면 항상 불안해하셨고 지적도 많이 했습니다. 이거 했는지 저거 했는지 하나하나 따져 묻고 그 일과는 관련 없는 예전 실수까지 들추면서 짜증 내는 적이 많았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까 일을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럴 때마다 선각분들은 예전처럼 안 잘리고 일을 계속해나가는 게 어디냐, 수도하면서 어떤 일을 겪더라도 다 풀리는 과정이고 배울 게 있고 겪을 게 있어서 그 병원에서 일하는 거니 힘들어도 버텨보자고 하시며 저의 겁액이 벗겨지는 과정이라고 다독여주셨습니다.
  과연 선각분들의 말씀대로 겪으면서 열심히 버텼더니 어느덧 2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직원들에게 제가 일을 잘하는 편은 아닌데 꾸준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은 분명하니 “너는 어디서 뭘 하든 잘할 거야!”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좋은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겪으면서 업이 풀렸는지 저에게 항상 큰소리로 성질내던 연차 높은 직원이 조금씩 화내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현재는 수도하는 지역이 바뀌어서 2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직장을 구하고 잘렸던 경험이 마냥 헛된 것이 아니라 저 자신이 한 단계 성장하는 계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그동안 계속 잘리면서 저에 대해 자괴감도 많이 들고 ‘나는 이것밖에 안 되는 사람인 건가’ 부정적인 생각도 하고 사람들은 열심히 하려는 마음을 보지 않고 일의 결과만 보고 판단한다며 답답한 마음도 들고 힘들 때가 참 많았습니다. 하지만 선각분들이 저의 실수를 겁액으로 보고 늘 이해해주시고, 열심히 하려는 마음만을 봐주시고 챙겨주시고 하는 부분을 늦게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말귀 잘 못 알아들어서 실수할 때마다 선각분들이 “아이고 상제님 아니시면 누가 손내수를 받아줘요”라고 하십니다. 사실 직장생활 하면서 수도 생활도 착실히 하는 부분이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힘이 들다 보니 도를 안 닦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했고 노는 게 좋다며 선각분들 말 안 듣기도 했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렇게 방황하던 저를 이 순간까지 아무 탈 없이 지낼 수 있도록 살펴주시는 것은 결국 상제님이셨습니다.
  정괴산은 집안이 가난하여 주막의 술장사를 하면서도 상제님을 지성껏 공양했고 김형렬은 상제님께 드리는 공궤가 소략함을 걱정하면서 마음은 지극하게 모시고자 했으나 현실은 마음만큼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지만, 상제님께서 그 마음을 훤히 아시고 대해주셨던 것처럼, 도 안에서는 일을 완벽하게 해내지 못해도 마음 쓰는 것은 다 공덕이 되고, 자신이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잘하는 사람의 힘을 빌려서 해낼 수 있습니다.
  투정 부려도 지금까지 제가 제 자리를 잘 지킬 수 있도록 교화도 해주시고 때로는 꾸짖기도 하시면서 이끌어주시는 선각분들과 이 험한 세상에 험한 일을 당하지 않게끔 지켜주시고 보호해주시는 신명과 직장에서 계속 잘려도 생활적인 부분에서도 문제가 생기지 않게 부모님께서 용돈도 간간이 보내주시고, 면접을 보면 바로 통과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던 조상님 덕분에 제가 지금 이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정말 덕화라고 밖에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 중에서도 저랑 비슷하게 마음은 하고자 하지만 행동이 안 따라줘서 실수하거나 사회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교법 3장 9절에 “호한신천유불사(呼寒信天猶不死)”라고 하듯이 호한과 신천이라는 새도 하늘이 살아갈 수 있게 살펴주시니, 하늘 아래 쓸모없는 존재가 없고 도 안에 들어온 저희는 당연히 상제님께서 살펴주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힘든 부분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회에서 욕도 많이 먹고 직장에서 여러 번 잘리더라도 도 안에서 열심히 쓰임이 되며 살아가고 있는 저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저 또한 이 글을 쓰면서 상제님께서 저를 쓰임이 될 수 있게 찾아주셔서 감사한 마음을 다시 한번 새길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상제님의 찾아주심과 살펴주심에 보은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상제님의 일을 열심히 해나가는 한층 더 성숙한 수도인이 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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