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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8년(2008)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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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22) : 상제님의 주유천하 4 - 팔도대순(八道大巡)

상제님의 주유천하 4 
팔도대순(八道大巡)


대순종교문화연구소

 

▲ 오늘날의 함열의 모습. 행정구역은 전북 익산시 함열읍이다.

 

 

  상제님께서는 김일부와의 만남을 뒤로 하신 채 전라·충청·경기·황해·평안·함경·경상 등 전국 각지로 주유천하(周遊天下)를 계속하셨다. 인세에 강세하시기 전 천상계에서 구천대원조화주신으로 계실 때, 신성·불·보살의 하소연으로 천지인 삼계를 대순하신 적이 있으셨으나 그것은 영(靈)으로 시행하신 것이었다. 이에 비해 ‘팔도대순(八道大巡)’은 ‘사람의 몸’을 가지시고 직접 땅 하나하나를 밟으시며 인간세상의 속정(俗情)을 낱낱이 살피시는 것이었다.

 

▲ 내장산 단풍

 

 

  상제님의 만 삼년에 걸친 팔도대순에 대한 내용은 거의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전주에 가셨을 때는 그곳 사람들이 상제님을 신인(神人)으로 우러러 모셨다고 하고, 상제님께서 함열(咸悅)에 이르셔서는 ‘만인함열(萬人咸悅: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도다)’이라 하셨다고 한다. 이는 상제님의 광구천하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기뻐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또 내장산(內藏山)에 가셨을 때에는

 

 

世界有而此山出(세계가 있고 이 산이 나왔으며)
紀運金天藏物華(때는 가을의 운이라 화려한 경치를 간직하고 있네)
應須祖宗太昊伏(마땅히 조종은 태호복희씨인데)
道人何事多佛歌(도인이 부처를 많이 노래하는 것은 어인 일인가)
01

 

 

  라는 시를 읊기도 하셨다.

  약 5,500여 년 전 태호복희씨(太昊伏羲氏)는 희역(羲易)을 창시하고 신명을 하늘에 봉하였으며[神封於天], 숫자와 문자를 만들어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했고, 결혼 제도를 만들고 사냥과 가축 기르는 법을 가르친 고대의 성왕(聖王)이다. 이런 업적을 가진 태호복희씨는 가히 인류의 조종(祖宗)이라 불릴 만하지만, 도인들은 부처를 많이 노래하게 된다. 그것은 부처의 공덕이 이 세상에 많고, 또한 상제님께서 금산사의 미륵불을 거쳐서 이 세상에 오시고 천지대도를 여실 공부도 대원사에서 이루어지는 데서 알 수 있듯이, 불법(佛法)이 상제님의 제세대도(濟世大道)가 펼쳐질 밑바탕이 되었기 때문이다. 훗날 상제님께서는 당신의 말씀대로 도인들이 모실 15신위(神位)를 짜는 공사를 보실 때 세 번째 신위로 서가여래를 두셨으며, 이 법을 봉서(封書)의 형태로 도주님께 물려주셨다. 도주님께서는 이 법을 도전님께 전해주셨고, 이 법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져 도인들은 현재 상제님의 공사에 따라 진법주(眞法呪)로 부처를 노래하고 있다.

  한편 이 시절 상제님께서는 금강산에도 가셨으리라 짐작되며, 종도들에게 금강산과 관련된 다음과 같은 시를 외워주신 적이 있으셨다.

 

 

步拾金剛景(걸어서 금강산에 올라보니)
靑山皆骨餘(푸른 산에 모두 뼈만 남았더라)
其後騎驢客(그 뒤 찾아 온 나귀 탄 나그네는)
無興但躊躇(흥취가 없어 머뭇거리기만 하는구나)
02 

 

 

이 시는 조선 말기의 유명한 방랑시인 김삿갓03의 시와 단 두 글자만 다를 뿐이지만, 그 의미는 전혀 다르다.

 

 

若捨金剛景(만약 금강산의 경치를 빼놓는다면)
靑山皆骨餘(푸른 산은 모두 뼈만 남을 지니)
其後騎驢客(그 뒤 찾아 온 나귀 탄 나그네는)
無興但躊躇(흥취가 없어 머뭇거리기만 하는구나)

 

 

  이와 같이 김삿갓의 시는 금강산의 경치를 찬양하고 있는 것에 그치고 있다. 그러나 상제님께서는 이 시에 단 두 글자만 바꾸어놓으심으로 해서, 다른 뜻도 있겠지만 우선은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를 탄생시키기 위해 장차 도가 응기할 곳인 금강산04에 겁기(劫氣: 험한 산의 무시무시한 기운)가 붙어있음을 지적하신 것으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훗날 상제님께서 금강산의 겁기를 제거하는 공사를 보셨음은 물론이다.05(계속)

 

 

▲ 금강산 눈덮힌 모습

 

 

 

 


01 행록 2장 5절

02 행록 2장 6절.

03 본명은 김병연(金炳淵, 1807~1863)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성심(性深), 호는 난고(蘭皐)이다. 1811년 홍경래의 난이 일어났을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였기 때문에, 연좌제로 집안 전체가 조정으로부터 큰 화를 입게 되었다. 당시 6세였던 그는 하인에게 구해져서 황해도 곡산으로 숨을 수 있었다. 그의 집안은 곧 사면을 받았지만, 그는 집안의 내력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 채 자랐다. 훗날 김병연은 과거에 응시하였고, 김익순이 홍경래에 항복한 것에 대해 비난하는 내용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 크게 상심하여 벼슬을 버리고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스스로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녔기에 ‘김삿갓’이라는 별명이 생겼다고 한다.

04 도는 장차 금강산 일만 이천 봉을 응기하여 일만 이천의 도통군자로 창성하리라. 그러나 후천의 도통군자에는 여자가 많으리라.(예시 45절)

05 공사 2장 13절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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