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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8년(1998)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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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속 역사인물 : 이태백(李太白)

이태백(李太白)

 

       

<연구소 제공>

        

  우리나라의 옛 노래에 『달아 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든 달아!』라는 가사가 있다. 달을 노래하며 낭만과 이상을 꿈꾸었고 술에 취해 현실을 아름답게 포장할 수 있었으며 인생의 무상함을 일찍이 알았던 문장가이자 시선(詩仙)이 바로 이태백이다. 그는 중국의 가장 위대한 낭만시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 분방한 낭만주의와 격렬한 현실주의를 동시에 지녔으며 속된 세상을 벗어난 도가(道家)사상과 아울러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유가사상에 투철하였다.

  그는 즉천무후(則天武后) 장안(長安) 원년(701)에 태어났다. 그가 태어날 때 그의 어머니는 꿈에 태백성(太白星)을 보았기 때문에 이름을 백이라고 하고 자를 태백이라고 했다고 한다. 그가 청련거사(靑蓮居士)라고 스스로 호를 지은 것은 다섯 살 때부터 정착하고 성장했던 촉의 창명현(彰明縣) 청련향(靑蓮鄕)에 대한 애착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덕으로 젊었을 때에는 오로지 공부에만 마음을 쏟아 한부(漢賦)와 제자백가를 읽었고, 검술도 배워서 강한 의협심을 길렀다. 동시에 그는 자연의 경치를 좋아하여 사천의 각 지방을 유람하여 많은 것을 느끼었으니 젊은 날의 이러한 경험들은 그가 자란 후의 이상과 기호가 되었으며, 대부분 시작(詩作)의 재료가 되었다.

  또한 줄곧 유랑을 통하여 특수한 생명의 정조(情調)를 표현하였고, 풍부한 상상력과 달관한 몽환적(夢幻的) 성격이 배합되어, 수많은 시작품 속에 독특하고 기이한 문학의 매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개원(開元)과 천보(天寶)시대의 흥망성쇠를 겪었고, 유리되어 벼슬길과 포부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나, 현실생활의 고통이나 정치적 비리 등을 말한 적이 없다. 그는 모든 구속이나 억압에서 벗어나 자유와 생명의 낭만 정신이 훨훨 높이 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현실은 너무나 어둡고 힘들었다. 그는 노상 패배하고 실망하고 곤궁에 몰려야만 했다.

  그는 인생의 고통이나 비애까지도 그것을 혼동화하여 그곳으로부터 비상하려 했다. 술이 그 혼동화와 비상의 실천 수단이었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백의 시를 밑바탕에서부터 지탱하고 있는 것은 임협(任俠)과 신선과 술이다.

  그래서 자신을 이러한 복잡하고 무상한 인간의 현실에서 뛰쳐나오게 하여 선계(仙界)의 높은 곳에 서서 속세를 굽어보듯 자유롭게 기분에 따라 마음껏 술을 마시고 밝은 달을 바라보기도 하고 정(情)을 산과 강에 기탁하기도 하였고 때와 장소에 연연하지 않고 마음껏 지내면서 자신의 본래 성품을 잃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후세 사람들이 그를 일러 시선(詩仙)이라 일컫는 것이다.

  이백의 시는 흘러나오는 말이 바로 시가 되는 시풍(詩風)이다.

  두보의 오언율시(五言律詩)에 대하여 악부(樂府) 칠언절구(七言絶句)를 장기로 한다.

  그가 우주의 광활한 공간에서 고독과 낭만, 현실과 이상을 넘나들었듯이 그의 시도 하늘과 땅을 넘나들었으며 신과 인간계를 두루 유람하였고 시속에서는 달과 별이 반짝였고 바람과 물소리가 끊임없이 들려 나왔다.

  어떠한 규율과 격식에도 얽매이지 않았고 붓을 크게 휘두르면 거칠 것이 없었다. 질풍노도와 같이 파괴력을 지니기도 하였고 진한 먹향은 천지를 가득 채워 나갔다. 그의 시에서는 현실적인 것과 초탈한 면, 농후한 면과 담백한 면, 웅장호방한 면과 섬세한 면들이 복합적으로 농축되어 있다.

  그의 유명한 산중문답(山中問答) 시를 감상해 보자.

『問餘何意樓碧山 (문여하의루벽산) - 어째서 푸른 산중에 사느냐 물어 봐도

  笑而不答心自閑 (소이불답심자한) - 대답도 없이 빙그레, 마음이 한가롭다.

  挑花流水杳然去 (도화류수묘연거) - 복숭아꽃 흘러 물 따라 묘연히 갈 새

  別有天地非人間 (별유천지비인간) - 인간세상 아닌 별천지에 있네』

  자연에 묻혀 유유자적함을 별천지로 묘사하면서도 심자한(心自閑)한 경지는 체득할 것이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경지다. 이것을 이백은 아무런 기교도 안 쓴 듯한 수법으로 교묘하게 표현했다.

  이백이 봄 밤에 형제와 친족들과 함께 복숭아와 오얏꽃이 만발한 정원에서 연회를 열고 각자 시를 지으며 놀 적에 그 때의 감상과 일의 차제를 편 문장으로 이백의 「춘야연도리원서(春夜宴挑李園序)」가 있다.

『夫天地者萬物之逆旅 (부천지자만물지역려)

光陰者百代之過客(광음자백대지과객)

而浮生苦夢 (이부생고몽)

爲歡幾何 (위환기하)

古人秉燭夜遊 (고인병촉야유)

良有以也 (량유이야)

況陽春召我以煙景 (황양춘소아이연경)

大塊假我以文章 (대괴가아이문장)

會挑李之芳園 (회도리지방원)

序天倫之樂事 (서천륜지악사)

群季俊秀 (군계준수)

皆爲惠連 (개위혜련)

吾人詠歌 (오인영가)

獨 康樂 (독참강락)

 幽賞未已 (유상미이)

高談轉淸 (고담전청)

開瓊筵以坐花 (개경연이좌화)

飛羽觴而醉月 (비우상이취월)

不有佳作 (불유가작)

何伸雅懷 (하신아회)

如詩不成 (여시불성)

罰依金谷酒數 (벌의금곡주수)』

 「대체로 천지는 만물의 잠자리요, 세월은 영원히 쉬지 않고 천지의 사이를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은 것이다. 이 중에 인간의 생이라고 하는 것은 꿈같이 덧없고 짧은 것이니 이 세상에서 환락을 누린다 한들 그 몇 시간이나 계속될 것인가. 옛사람이 등불을 손에 잡고 밤놀이 즐겼다는 것은 참으로 까닭이 있는 일이니, 더욱이 때는 봄, 만물이 화창한 계절에 운애 낀 풍경으로 나를 불러 주고, 천지가 나에게 문장을 지을 수 있는 재주를 빌려주었으니 더욱이 이 봄밤을 즐기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도리화(桃李花) 만발한 동산에 모여서 형제들이 즐거운 놀이를 펼치니 많은 젊은 사람은 모두 송(宋)의 사혜련(謝惠連)과 같이 시재(詩才)가 있는 사람들이며, 그 중 나의 영가(詠歌)만이 홀로 시 잘하는 송(宋)의 강락(康樂)에 부끄러울 뿐이다.

  고요히 경치를 바라보는 즐거움이 아직 끝나지 않고 고상한 담화가 갈수록 많은 분위기를 더해가니, 훌륭한 연석(宴席)에 꽃을 대해 앉아서 새깃 모양의 잔을 주고받으며 달빛 속에 취한다. 이런 즐거운 분위기에서 좋은 시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아치(雅致)있는 마음을 펼 수 있겠는가. 만약에 시가 되지 않는다면 진(晋)의 석숭(石崇)이 금곡원(金谷園)에서 잔치를 열었을 때 시 못 지은 사람에게 벌주(罰酒) 석 잔을 주던 그 규칙을 따르리라.」

  이렇듯 이백은 언제나 자신의 생명을 응시하고 자연을 벗삼았으며 덧없는 인생을 노래불렀다. 현존하는 최고의 시문집은 송대(宋代)에 편집된 것이며, 주석으로는 원대(元代) 소사빈(蕭士賓)의 《분류보주이태백시(分類補註李太白詩)》, 청대(淸代) 왕기(王琦)의 《이태백전집》이 있다.

  『상제께서는 「동학가사에 세 기운이 밝혔으니 소·장(蘇泰·張儀)의 웅변이 있고 앎은 강절(康節)의 지식이 있고 글은 이·두(李太白·杜子美)의 문장이 있노라.」하셨다.』 (교법 2장 42절) 『상제께서는 김광찬의 조카 김병선(金炳善)에게 이백의 도리원서를 외우게 하셨다.』 (행록 5장 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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