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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8년(1998)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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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성(誠)에 관한 논의(論議)

성(誠)에 관한 논의(論議) 

 

 

성(誠)은 만물의 시작ㆍ끝이며 하늘이 명(命)한 도(道)

정성은 하늘의 도(道)이며, 정성됨은 사람의 도(道)

뜻이 정성스럽게 된 후, 마음이 바르게 서

 

               

이후설 <교감ㆍ연구위원>

 

 

1. 머리말

  삼요체는 대순진리회를 수도하기 위해서 수도인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심신의 자세를 말하며 삼법언(三法言)으로서 성 · 경 · 신을 의미한다.

  상제님께서 오주를 지으시면서 「일월은 사사로움이 없이 만물을 다스리고, 강산은 도를 이어받아 백가지로 행한다(日月無私治萬物 江山有道受百行)」라 가르치고, 사람의 복록과 수명이 모두 성 · 경 · 신에 있음을 말씀하셨다.(福祿誠敬信 壽命誠敬信) (전경, 교운 1장 30절). 성(誠)에 관한 표현 양식은 정성(精誠), 지성(至誠), 성실(誠實), 성의(誠意), 성심(誠心) 등으로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으며, 성(誠)의 사전적인 의미는 「진실로」, 「참되게」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성(誠)자를 획으로 풀면 「말씀으로 이룬다」로서 사물 객체의 객관적인 성질의 뜻을 나타내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을 표현하는 것과 같은 다분히 추상적인 개념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본 논의에서는 「천지 안에 있는 말은 하나도 거짓말이 없느니라」(전경 예시 34절)라 말씀하신 상제님의 설법에 따라서 고금에 기록된 성에 관한 논의를 하고자 한다. 중국 유학계의 자료를 검토하고, 한국에 전래된 성에 관해 고찰했다. 그리고 전경을 비롯하여 대순사상 관련 학술자료를 기본으로 하여 성(誠)의 요체(要諦)를 고찰하고자 한다.

 

             

2. 유학에서의 성(誠)에 관한 논의

  중국 유학에서의 성(誠)의 대의를 살펴본다. <중용>에서 성이 사물과 인간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이유임을 말하고 있다. 「성이란 스스로 이루는 것이요 도는 스스로 가게 되는 것이다(誠者自成也而道自道也). 성이란 만물의 시작이요 끝이다(誠者物之終始). 성이 없으면 만물도 없다(不誠無物). 그러므로 군자는 성을 귀하게 여긴다(時故君子誠之爲貴). 성은 자신을 이루게 하여줄 뿐만 아니라 만물을 이루게 하는 것이니(誠者非自 成己而巳也 所以成物也), 자신을 이루는 것은 인이요 만물을 이루는 것은 지로서 성(性)의 덕이니(成己仁也 成物之也 性之德也) 내 · 외를 합하는 도인 것이다(合內外之道也). 그러므로 수시로 조치함이 마땅하다(故時措之宜也)」라 했다. 자신을 이루는 것이 인이라 함은 인으로써 체(體)를 유지해야 됨을 의미하고, 사물을 이룸이라 함은 지로써 용(用)이 발현됨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늘이 명한 성(性)의 덕인 인과 지는 내부의 아(我)와 외부의 물(物)을 합하는 도이므로, 매사를 정성으로 살피면 자기 자신에게 체득된 모든 우주의 이치가 지식으로 나타나 사용되게 된다. <중용>에서 말하는 하늘의 의미는 상천하지의 상천과 만물의 주재자로서의 천신 또는 상제의 뜻을 포함하고 있는 최고신을 말한다. 정성은 하늘의 도이고 정성 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도이다(誠者天之道也 誠之者人之道也). 정성된 사람은 힘쓰지 않아도 알맞게 되며(誠者不勉而中), 생각하지 않아도 얻게 되어(不思而得), 종용이 알맞게 되니 성인인 것이다(從用中道聖人也). 정성 되게 하는 것은 선(善)을 가리어 굳게 잡는 것이다.(誠之者擇善而固執之者也). 이처럼 정성 됨으로써 밝아지는 것이 성(性)이며(自誠明謂之性), 밝아짐으로 말미암아 정성 되어짐을 교라 한다(自明誠謂之敎). 그리하여 정성 되면 곧 밝아지며 밝아지면 곧 정성 되어지는 것이다(誠則明矣明則誠矣).

  성인은 성(誠)으로써 하늘이 부여한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며(唯天下之誠爲能盡其性), 그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능히 사람의 성(性)을 다할 수 있고(能盡其性則能盡人之性), 사람의 성(性)을 다할 수 있으면 물의 성을 다할 수 있을 것이고(能盡人之性則 能盡物之性), 물의 성을 다할 수 있으면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을 것이며(能盡物之性則可以贊天地之化育), 천지의 화육을 도울 수 있으면 천지와 함께 참여(參與)할 수 있게 된다(可以贊天地之化育則 可以與天地參矣). 결과적으로 지성은 앞일을 예지할 수 있고(至誠之道可以前知), 국가가 흥하려 할 때 상서(祥瑞)가 나타나며(國家將與必有禎祥), 국가가 망하려 할 때 흉조가 있어 시초(蓍草)점과 거북점에 나타나며 사체에 움직여지는 것이다(國家將亡必有妖孼 見乎蓍龜動乎四體). 그리고 화 · 복이 닥쳐오려 할 때에는 선함을 반드시 먼저 알아보고(禍福將至 善必先知之), 선하지 않음을 반드시 먼저 알아보는 것이다(不善必先知之). 지성은 신과 같은 것이다(故至誠如神). 그러므로 성인은 지성을 통해서 총명 예지가 있어 넉넉히 임할 수 있고(爲能聰明睿知 足以有臨也), 너그럽고 부드러움은 포용이 있어 족하고(寬裕溫柔 足以有容也), 강하고 굳셈은 고집함이 있어 족하고(發强剛毅 足以有執也), 장중하고 중정함은 공경함이 있기에 족하고(齊莊中正 足以有敬也), 조리있고 세밀이 관찰함으로써 분별이 있어 족하게 된다(文理密察 足以有別也). 그러므로 진실로 총명 성지(聖知)하여 천덕에 도달한 사람은 정성스럽고 심연(深淵)한 어짐(仁)을 겸비하여 춘추나 오륜과 같은 대경을 경륜 할 수 있으며(爲能經綸天下之大經), 천하의 대본을 세울 수 있다(立天下之大本). 이런 것들은 대덕을 기본으로 하여 교화를 통해 덕을 확장 시킴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중용>은 민중들이 성(誠)을 실현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거론하고 있다. 즉, 세세한 일편들에도 성이 있으니(其次致曲 有能有誠), 성하면 나타나며 나타나면 곧 뚜렷해지고(誠則形 形則著), 뚜렷해지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게 되며(著則明 明則動), 움직이면 변하게 되고 변하게 되면 곧 화하게 된다(動則變 變則化). 오직 천하의 지성이고서야 화하게 할 수 있다(唯天下至誠爲能化). 그리고 성(誠)의 실천방법을 설명하기를, 하늘의 운행이 그침이 없듯이 지성도 그침이 없고(至誠無息), 그침이 없으면 오랫동안 가게 되고(不息則久), 오랜 동안 가게 되면 징후를 경험하게 된다(久則徵). 징험 되면 곧 멀어지고(徵則悠遠), 멀어지면 넓고 두터워진다(悠遠則博厚). 넓고 두터워지면 높고 밝아진다(博厚則高明), 넓고 두터워짐은 만물을 싣는 것이요(博厚所以載物也), 높고 밝음은 만물을 덮는 것이요(高明所以覆物也), 멀고 오래됨은 만물을 이루어가는 것이다(悠久所以成物也). 넓고 두터움은 땅에 짝이 되고(博厚配地) 높고 밝음은 하늘에 짝이 되며(高明配天) 멀고 오래됨은 끝이 없는 것이다(悠久無疆). 이와 같은 사람은 보지 않아도 창명해지고(如此者不見以彰) 움직이지 않아도 변화시키며(不動而變) 작위 없이 이루게 한다(無爲而成).

  <대학>에서도 성의 중요성을 논하고 있다. 먼저 천지에 있는 사물의 이치를 규명한 뒤에 앎에 이르고(物格而後知至) 앎에 이른 후에 뜻이 정성스럽게 되며(知至而後意誠), 뜻이 정성스럽게 된 후에 마음이 바르게 되고(意誠而後心正), 몸이 닦아지고(心正而後身修), 집안이 바로 잡히며(身修而後齊家), 나라가 다스려지며(齊家而後國治), 결국은 천하가 화평하게 된다(國治而後平天下). 더불어 뜻을 세우는 방법에 대해서, 이른바 그 뜻을 정성스럽게 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것이며(所謂誠其意者母自期也), 안으로 성실하면 밖으로 나타난다고 말하는 것이므로(此謂誠於中形於外) 고로 군자는 홀로 함을 삼가야 하는 것이다(故君子必愼其獨也). 소인은 자기 자신을 속이며 혼자 있을 때 한 일이니 남이 알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여, 옳지 못한 일을 감추고 거짓 선을 나타내 보이며 자신의 안(中)을 조심하지 않아, 심안을 가진 사람이 속을 훤히 들여다 보는 것을 모르고 있음을 말한 것이다.

  주희는 <태극도설해>에서, 태극에 동과 정이 있으며(太極之有動靜), 이것은 천명이 유행한 것이다(是天命之流行也). 소위 일음일양을 도라 한다(所謂一陰一陽之謂道). 성은 성인의 근본이며(誠者聖人之本), 만물의 끝과 시작이고(物之終始) 하늘이 명한 도이며(而命之道也), 만물의 움직임은 성이 통하여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其動也誠之通也). 이것을 이어가는 것이 선이라 함(繼之者善)은 만물이 그것을 이어받아 물로써 존재함이 시작되는 것이다(萬物之所育以始也). 물의 정은 성(誠)으로 복귀하고 있다(其靜也誠之復也). 이것을 이루는 것이 성(性)이라 함(成之者性)은 만물이 각각 부여받은 본성과 명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萬物名其性命也)」라하여 성(誠)을 만물의 본성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성과 경에 관한 논의는 권근에서 시작되어 정지운을 거쳐 이퇴계와 이율곡에 이르러 만개 된다. 권근은 <천인의 심성분석지도>에서 「하늘의 운행은 아무런 작위도 허망함도 가해지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작용이므로 이를 성(誠)이다」하고, 만화(萬化)의 근원과 만수(萬殊)의 근본을 연결해주는 것도 또한 성(誠)이라 했다. 권근은 성을 천도로서 천지의 존재 원리로 삼고, 경을 인도로서 실천원리로 삼았다. 퇴계는 <천명도설>에서 하늘의 사덕인 원 · 형 · 이 · 정이 실(實)하도록 작용하는 것이 성(誠)이라 했고, 마음이란 일신의 주재이고 경은 일심의 주재이므로(蓋心者一身之主宰也), 오직 마음이 하나가 되도록 하여 만가지 변화를 살필 수 있으며(惟事於斯是曰持敬). 즉, 마음의 뛰어난 작용에 의한 마음의 본성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지경 내지는 경이 요청되는 것이라 강조했다. 퇴계가 경으로서 수양론을 집약한 것과는 달리 율곡은 성을 중심으로 삼았다. 율곡은 <성약집요>에서 「성은 하늘의 실리요 마음의 본체이다(誠者天之實理心之本體). 사람이 본심을 회복하지 못한 것은(人不能復其本心者) 사사가 있어 그것을 가리우기 때문이다(由有私邪爲之蔽也). 경을 주로하여 사사를 모두 없애면(以敬爲主 盡去私邪) 본체가 온전해진다(則本體乃金). 경은 용공의 요법이요(敬是用功之要) 성은 수공의 경지이니(誠是收功之地) 경으로 말미암아 성에 이른다(由敬而至於誠矣)」라 하여 경을 공부의 요법으로 성을 공부의 효과로 보았다.

 

 

 

3. 대순사상에서의 성(誠)의 요체

  요람에 의하면 성의 대의를 「도가 곧 나요, 내가 곧 도라는 경지에서 심령을 통일하여 만화도제에 이바지 할지니 마음은 일신을 주관하며 전체를 통솔 이용하나니, 그러므로 일신을 생각하고 염려하고 움직이고 가만히 있게 하는 것은 오직 마음에 있는 바라 모든 것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는 것이니 정성이란 늘 끊임이 없이 조밀하고 틈과 쉼이 없이 오직 부족함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이름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성이란 마음이 각자 일신의 주재이고, 사람의 마음에 신명으로 하여금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고 사람의 마음을 통하여 모든 공사를 처결하므로 먼저 정성스러운 마음을 항상 상제님께 향해야 하고,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거나 목적한 바를 실행하거나 포기하는 것 또는 모든 사고의 유 · 무도 모두 사람의 마음에서 유래하므로 수도자가 마음을 쉼 없이 연마해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도에 대한 깨달음과 수도생활의 닦음이 부족함을 항상 염려하여야 하고, 상제님에 대한 정성의 모자람을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을 성이라 할 수 있다.

  권능을 소유하신 상제님께서 천 · 지 · 인의 삼계공사를 행함에 있어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오.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오.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 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하시고 「너는 나를 믿고 힘을 다하라」』라 하시여 종도들이 성심으로 믿을 것을 말씀했다(전경, 공사 1장 2절). 원시의 모든 신성과 불보살이 선천 상극의 겁액을 구천에 하소연하므로, 상제께서 대법국 천계탑에 내려와 천하를 대순하시다가 갑자년에 천명(天命)과 신교(神敎)를 거두시고 이 동토에 강세하여 비겁에 쌓인 신명과 창생을 건지는 삼계공사를 행하신 것에 대해 진실된 믿음을 갖는 것이다.

  수도란 상제님에 대해 지성으로 받드는 것(侍天主)과 영원토록 잊지 않으려는(永世不忘) 마음과, 천지의 모든 신의 위치에 있는 신명(神明), 영(靈), 선(仙), 귀(鬼) 등의 신적인 존재들을 정성으로 받드는 마음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그 받드는 마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 성은 거짓 없고 꾸밈이 없이 한결같이 상제님을 받드는 일이므로 상제님의 말씀을 항상 마음에 새겨 언행과 처사가 일치되게 생활화하여 세립미진(細入微塵) 되고, 마음이 무욕청정(無慾淸淨)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다(대순지침 39쪽).

  상제님을 지성으로 모신 후에는 올바른 수도 생활을 수행해야 한다. 성이란 자신을 이루게 하여 주는 어짐(仁)이 되고 만물을 이루는 지식(智)이 되는 것이며, 지성이 수도자의 자신은 물론 도(道)를 이루는 근원이므로, 「불일이이(不一以二)의 본심인 인선(仁善)의 자성(自誠)이 되므로 성이 아니면 만물도 존재하지 않는다(대순지침 51쪽)」이다. 더불어 「물체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으며, 매사에는 끝과 시작이 있으므로 그것의 앞과 뒤를 알면 도에 가까워진다(物有本末 事有終始 知所先後 卽近道矣). 또한 일을 두텁게 하는 자가 박하고, 박하게 하는 자에게 두텁게 하는 일을 아직까지 본적이 없다(其所厚者薄 其所薄者厚 未之有也)」(전경, 교법 2장 51절) 이므로, 일이 바르게 처리한 후에야 그 평가가 옳게 나온다. 기존의 윤리 도덕의 규범을 통한 삶의 양식만으로도 세상은 잘 운행되어야 하나, 하늘이 부여한 인간의 본성(本誠)을 아직 감오하지 못한 인간들에게 그릇된 즉흥적인 효과나 조급한 성취욕을 경계하여, 『너희들이 항상 도술을 배우기를 원하나 지금 가르쳐 주어도 그것은 바위에 물주기와 같아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밖으로 흘러가니라. 필요한 때가 되면 열어주리니 마음을 부지런히 하여 힘 쓸지니라』(전경 교법 2장 12절)라 설법을 행하신 것이다. 성심의 예로써, 「추운 지방의 눈밭에 살았던 깃털이 하나도 없는 호한이라 불린 게으른 새와 물가에 살면서 부리가 머리 위에 달려 있어 제 스스로 머리를 쪼거나 고기를 잡아먹지 못하는 못난 신천 이라는 새도 오히려 죽지 않는다(呼寒信天猶不死)」가 있다. 이것은 상제님을 성심으로 믿고 따르면 상제님의 상생의 덕에 의해서 호한이나 신천이라는 미물도 살아갈 수 있는데, 사람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으므로 성심으로 경천할 것을 의미한다.

  모든 일에 지성이면 성심의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천포창으로 고통을 받고 있던 김낙범이 지성으로 상제를 모셨으나 상제께서 진노 격책하심을 깨닫지 못하고 송구스럽게 여기고 있음에, 상제님의 꾸지람이 낙범의 지성에 대한 약이 되어 천포창이 나아진 일과(전경, 제생 33절), 선술을 얻고자 십년 동안 머슴살이를 하다가 마침내 그의 성의로 하늘의 올림을 받은 머슴의 이야기(전경, 예시 83절)는 성심의 발현 결과이다.

  인내심과 한 마음을 갖고 꾸준히 성을 다하여 수도를 하면, 중용에서 말한 것처럼 하늘의 도를 알게 되고 사람의 도를 얻게 됨으로서, 결국은 일부러 노력하거나 애써 골몰히 생각하지 않아도 삼계의 도에 이를 수 있어 성인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정성은 착함을 택하므로 굳게 지켜야 한다. 천도는 한 점 어김이 없이 운행되고 있으며, 그 닦은 바에 따라 각자를 호위하는 신명들이 감응하므로(전경, 교법 2장 17절), 성실한 마음과 성실한 뜻과 그리고 성실한 행동으로써 수도를 하면 되는 것이다(心不誠 意不誠, 意不誠 身不誠, 身不誠 道不誠) (대순지침 76쪽). 그러나 바르지 못하거나 허황된 수도자의 자세를 엄격히 경계한 내용이 있다. 즉, 『「자기가 자기를 속이는 것은 자신을 버리는 것이요(自欺自棄), 마음을 속이는 것은 신을 속임이다(心欺神棄)」고 하였으니 신을 속임이 되는 것이니 어느 곳에 용납되겠는가 깊이 생각하라』(대순지침 42쪽)라는 길잡이를 명심해야 한다. 더불어 남의 지위나 인물 됨에 시기와 질투를 금해야 하며 수련에 의한 가시적인 효과가 즉시 나타나지 않더라도 성은 그침이 없어야 한다.

 

 

 

4. 맺음말

  중용에서 말했듯이, 지성의 도는 앞일을 알 수 있으므로 나라의 흥 · 망에 길 · 흉조가 나타나고, 화 · 복이 오려 할 때에는 선 · 악을 먼저 알아보게 되므로 지성은 신과 같은 것이다. 후천 성인 시대는 선으로서 먹고 사는 시대이므로 후천 선경을 맞이하기 위한 수도자의 올바른 처사로는, 지성(至誠)이 진리의 여륜(如綸)이요, 불성(不誠)은 역리(逆理)니 망고(網罟)의 자화(自擭)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서신(西神)이 사명하여 만유를 제재하여 모든 이치를 모아 크게 이루므로 이후로는 천지가 성공하는 때이다. 참된 자는 큰 열매를 얻고 그 수명을 길이 창성할 것이고, 거짓된 자는 말라 떨어져 길이 멸망하게 된다. 그리고 신은 위엄을 떨쳐 불의를 숙청하기도 하며, 혹은 인애를 베풀어 의로운 사람을 돕게 되므로, 복을 구하는 자와 삶을 구하는 자는 정성으로 상제님을 영시(永侍) 해야 한다. 성은 남의 간여도, 증감도, 그리고 견제도 할 수 없고, 오직 스스로의 심정(心定)한 바에 따라 이루어진다. 성심이 없으면 각기 정한 운수를 받지 못하게 되고, 타인의 인망을 얻어야 신망(神望)에 오르게 되며, 상제님의 대순하신 큰 뜻을 심신으로 실천하는 사람만이 상제님의 천지 공정에 참여할 수 있게 된다. 성심의 결과는 수도과정에서 참됨이나 거짓됨의 여부와 지성으로 닦음과 불성실로 자신을 속이며 닦은 것과의 차이에 따라서 결정되며, 그 결정은 인간의 뜻이 아닌 상제님과 신명들의 뜻이므로, 수도자는 정심으로 정성을 다해 수련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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