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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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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믿음으로 정진할 때 구원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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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으로 정진할 때 구원의 길이…

 

도 후 4년간 수도인들의 도움으로 새 삶 찾아
「相生ㆍ和合의 정신」거울 삼아 포덕선양(布德宣揚)할 터


   

주상술 <선사ㆍ봉화2방면>


  1987년 12월 27일 오전 용상 아파트 7동 505호에 당시 윤교무와 김선사께서 저의 집에 오셨다. 나와 아내는 두분 손님을 반갑게 맞이 하였고 두 분의 도담이 시작되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말을 알아 들을 수 없었으나 조상 받든다는 말씀과 그 당시 지병인 신경우울증이 낳는다는 말씀에 나와 아내는 다른 두 분과 함께 그날 오후에 동문동 연락소에서 입도치성을 올리고 나의 수도 생활은 시작되었다.
  입도는 했으나 연락소에 나갈 마음이 안 생겨 망설이고 있는데 삼일 후 선각께서 연락소에서 생활해보자고 말씀하셔서 연락소에 갔으나 하룻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 후 며칠마다 선각과 윤교무 김선사외 많은 도인이 방문해 주셨으며 가끔 윤교무와 도인을 따라 연락소에 나가 주일기도도 모시고 수련도 했으며 여주 참배도 몇 번 갔었으나 큰 깨달음은 얻을 수 없었다. 연락소에 몇일 안나가면 윤교무와 선각과 다른 도인들께서 찾아 오셨으며 그 때마다 아내는 성의껏 음식대접도 하고 가끔 여비도 조금씩 드렸다.

  그 당시 나는 우울증을 고치기 위하여 조약병원 한약을 계속 복용하였고 많은 돈을 드려 점도 치고 굿도 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다.

  참배도 공휴일과 방학 때이면 참여 하였다. 그 당시 음식을 잘 먹지 못했으나 선각 윤 교무 심선사 외 도인이 오셔서 함께 음식을 먹으면 먹을 수 있었다.

  세월은 유수같이 흘러 3년 뒤 나와 아내는 35호를 포덕하여 90년 7월 23일자로 선무 임명을 모셨고 90년 9월에는 아내도 선무 임명을 모셨다.

  선무 임명을 모시고 나니 조금씩 알기 시작하였고 전경을 읽고 또 읽고 회보도 보고 윗분의 도담과 교화를 들을 때마다 조금씩 각이 열렸다.

  최고 포덕을 많이 한 달이 30호로 기억되며 선각과 윗 분이 시키는 대로 할려고 노력했으나 그렇지 못한 일도 가끔 있었다.

  도를 믿고 열심히 행하니 각도 열리고 병도 낳았으며 후천선경을 알고 행하려고 하니 척이들때도 여러 번 있었으며 마가 올 때도 많았다.

  다시 세월은 흘러 91년 7월 10일자 선사 임명을 모셨으며 처음 선각은 조정리로 윤 선사는 윤차선감으로 김교령은 김교감으로 함께 임명을 모셔 수도생활을 계속하고 있으나 날이 갈수록 내 자신이 많이 부족한 것을 알겠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수도생활을 통해 얻은 도에 대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극복할 수 있는 일심을 간직하며 대순진리를 세상에 밝히겠다고 다짐해본다.

  이제 밤 1시 양위 상제님 천지신명 조상 전에 기도를 올려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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