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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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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精誠, 五無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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精誠, 五無주의

 

정성으로 정혼을 뭉쳐야 도의 궁극에 이르러

道人의 나아갈 길은 지극한 『誠ㆍ敬ㆍ信』

               

  임현석 <선사ㆍ잠실1방면>

 

『정성(精誠)』

  내 주위에는 많은 단어들이 있었지만 특별한 감흥을 주는 단어는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런데 수도라는 과정이 생활에 새롭게 자리잡게 되면서 그 많은 언어들 중 점차로 싸여진 베일속에서 그 모습이 드러나며 과거 생각했었던 것 이상으로 나를 압도했던 단어가 『정성』이라는 두자이다.

  입도 후 나는 도(道)가 지난 매력 그리고 깨달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이런저런 생각들을 행(行)이라는 부분과 조금씩 접목시켜 나가 보았다.

  그 후 개개인의 삶에 대한 영역이 생각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서 그것에 대해서 여러가지 것들을 밝히고자 이리저리 노력하였다.

  그러던 중 어느날 우연히 잡힌 책 한권에서 마음에 드는 논설하나를 보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나라와 이웃 일본과의 관계 조망 차원에서 쓴 논설 중 하나였는데 일본의 문화적 형태가 우리나라에 유입되는 현상을 살펴보는 과정에서 가치관이라는 면에 중점을 두어 「오무주의(五無主義)」라는 색다른 개념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 글은 일본의 물질적 부흥으로 인해 신세대의 가치관이 기성세대의 그것과 다른 현상이 보여지고 그것이 점차 심화되다보니 신세대의 사고가 발전이라는 외형아래 나약화 되고 이기주의화 되어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지적에서 이를 현대화라는 부분에 문제점을 돌려 달갑지 않은 특성을 다섯 가지로 표현하고 있었다.

  이를 오무주의로 표현하여 구체적으로 「무관심ㆍ무감동ㆍ무책임ㆍ무례ㆍ무기력」이라는 다섯가지의 퇴화를 강한 우려와 함께 게재하면서 필자는 이러한 현상이 점차 우리의 모습에서도 나타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었다.

  그때 나는 이 다섯가지의 형태를 재미있게 보았고 나름대로 동감도 하면서 노트에 간단히 메모를 해서 기억할 수 있도록 해 놓았었다.

  그 후 점차 수도를 해가고 후각들이 하나둘씩 늘면서 상제님의 사상에 대한 이해도 점차 넓혀가며 중찰인의에 대한 것도 느껴가게 되었다. 그러던 중 문득 기록을 해 두었던 오무주의가 새삼 생각이 나면서 지금 수도를 하고 있는 내 모습과 선후각 수도인들에게 눈이 돌려지게 되었다.

  수도(修道)하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매듭, 상제(上帝)님께서 도를 펴시면서 천하(天下)를 광구 하고자 하신 현실의 모습에서 이것들이 무관하지 않음이 느껴졌다.

  수도는 지식을 쌓은 것이 아니라 지혜를 쌓는 과정이며 대순이라는 어구의 뜻과 같이 만상만유에 통함이 그 원칙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사람들 마음에 개인이라는 의식이 커가면서 상호간의 관심, 사람의 본성에서 느끼는 감동이 점차 사라져가고 물질적인 충족, 감각적인 환경, 가치관의 혼란에서 나오는 무기력이 개인적 사고만을 키워 윤리의 바탕이 되는 예법에 대한 성격이 도식적으로 되어가며 보이지 않는 무수한 장벽이 커져가고 있는 듯하다. 

  이것을 마음이 빠진 그리고 성에서 나오는 덕(德)이 빠져버린 것이며 진실로 대병(大病)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수도는 내 마음에서 정성을 끌어올리면서 시작된다고 본다.

  이는 내 정혼을 뭉치게 하고 뭉쳐진 정혼은 힘이 되어 도의 이치에 밝아지게 되는 것으로 발전을 하여 도의 궁극에까지 이를 수 있는 길이 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요즘의 수도는 이러한 정성을 밝혀내는 점에서 볼 때 이전의 어려웠던 시절보다 오히려 다른 점에서 어려움이 더 많은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마음을 가리는 요소들이 너무나 많고 그것을 이겨내는 의지력을 반감되고 있는 듯하다. 이러한 특성은 현실과 비교해 볼 때 도인들에게 무관하지 않은 점이 많이 보인다. 

  도는 지극함을 지녀야 한다. 

  성(誠)하는 것은 마음도 지극함을 지녀야 하고 경(敬)하는 마음도 지극하여야만 하고 믿음(信)도 지극함이 없이는 믿음 자체가 완성될 수 없다. 

  수도인의 취함이란 이것이 아닐까?

  다시 타인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리고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동을 되살리고 예에 대한 가치를 생각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통해 조목조목 크고 작은 것을 분별해 나가고 수도하는 자신에게 직접 조명하여 책임감으로 실행해 나아가 타인에 그 지극함이 이를 수 있다면 천하의 모든 것들이 바르게 되지 않겠는가?

  정성어린 수도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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