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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2년(1992)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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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후 신명이야기 : 입춘절후 관장하는 위징(魏徵)

입춘절후 관장하는 위징(魏徵)

            

           

  문덕왕후(文德王后)를 장사지낸 후에 황제는 동산 가운데에 층으로 된 누대를 지어서 소릉을 바라볼 수 있게 만들었다. 위징을 데리고 함께 올랐는데 위징이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다보면서『저는 눈이 어두워 보이지를 않습니다.』왕이 손으로 가리켜 주었다. 위징이 말하길『저곳이 소릉입니까?』황제 답하길『그렇다.』위징이 말하길『저는 폐하께서 헌릉(獻陵)을 바라보시는 줄 알았습니다. 소릉은 이미 보았습니다.』이 말을 듣고 황제가 눈물을 흘리며 누대를 허물도록 명령했다.

  얼마 후에 오례(五禮)를 정하는데 아들 한 명이 현남(縣男)으로 봉해야만 했다. 그런데 위징이 형의 아들인 위숙자(魏叔慈)를 봉할 것을 청했다. 황제가 놀라면서 말하길『이렇게 하면 풍속을 권면 할 수 있겠다.』그리하여 곧바로 허락했다.

  임금이 낙양(洛陽)에 행차하여 소인궁(昭仁宮)에 머물렀는데, 꾸짖는 일이 많았다. 위징이 말하길『수나라는 오직 음식을 헌납치 않고 받들어 봉양함이 정성스럽지 않은 것만을 꾸짖었는데도 이것만도 끝이 없어 망하는데 이르렀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이 폐하께 수나라를 대신 하라는 천명(天命)을 내리셨으니, 바로 삼가 두려워하며 경계하고 검약해야 하거늘 어찌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사치롭지 않은 것을 후회케 하십니까 만일 족하게 여기신다면 지금으로도 비단 족할 뿐만이 아닐 것이요, 부족하게 여기신다면 지금의 만 배라고 어찌 족함이 있겠습니까?』임금이 놀라서 말하기를『공이 아니면 이러한 말을 듣지 못했을 것이오.』라고 했다. 위징이 물러나서 또 상소를 올렸다. 이르기를

  「서경(書經)」에서는「덕을 밝히고 벌 내림을 신중히 하라」「오직 형벌을 아낀다」라고 하였고,「예기」에서는「윗사람이 되어 섬기기가 쉽고 아랫사람이 되어 알기가 쉬우면 형벌이 번거로워지지 않게 된다」「윗사람이 의심이 많으면 백성은 미혹하게 되고, 아랫사람이 알기 어려우면 임금이 수고스럽게 된다」라고 하였습니다. 무릇 윗사람이 섬기기가 쉽고 아랫사람이 알기가 쉬우며, 임금이 수고롭지 않고 백성이 미혹하지 않은 까닭에, 임금에게는 온전한 덕이 있게 되고 백성에게는 두 마음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무릇 벌을 주고 상을 내리는 근본은 권선징악에 있는 것입니다. 제왕이 내리시는 바는 천하에 한결 같으셔야 하며, 친하거나 소원하거나 귀하거나 천하다고 하여 혹자에게는 벌을 가볍게 혹자에게는 벌을 무겁게 내리셔서는 아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상과 벌은 혹은 즐거울 때와 화날 때에 따라 달라지고, 혹은 좋아하거나 싫어함에 따라 달라집니다.

  즐거울 때면 법에 저촉되었음에도 형벌을 아끼고 화날 때에는 법률 바깥에서도 죄를 찾습니다. 좋아하면 가죽을 뚫어 터럭만한 것을 찾아내고, 싫어하면 때를 벗겨내어 흠집을 찾습니다.

  무릇 형벌이 지나치면 소인의 도가 생겨나게 되고 상이 잘못 내려지면 군자의 도가 소멸됩니다. 소인의 악을 징계하지도 않고 군자의 선을 장려하지도 않으면서 다스림이 편안하여지고 형법이 잘 시행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또한 한가로이 말할 때는 모두 공자, 노자를 돈독히 숭상하고 위태롭고 화날 때에는 오로지 신불해(申不害), 한비자(韓非子)등의 법가를 본받습니다. 그러므로 도덕의 지취(旨趣)가 넓혀지기도 전에 각박한 풍속이 먼저 요동 칩니다.

  옛날에 주려(州黎)가 자기 손을 올리고 내리는데 따라서 제멋대로 상벌을 내리니 초(楚)나라의 법이 이 때문에 피폐해졌습니다. 장탕(張湯)이 자기 마음 내키는 대로 형벌의 경중(輕重)을 달리하니 한(漢)나라의 형벌이 이로써 잘못 되었습니다.

  그러니 하물며 임금의 위치에서 높고 낮음을 제멋대로 함에랴! 근자에 사람들에게 벌을 내리시는데 혹자는 바치는 물건이 넉넉지 못하다고 해서, 혹자는 폐하의 하고자 하시는 바를 좇지 않는다고 해서 벌을 내리시니 이는 모두 다스림의 급선무는 아닌 것입니다.

  무릇 귀한 이는 더불어 사치함을 기약치 않아도 사치함이 저절로 이르른다 하는 것은 빈 말이 아닙니다.

  또한 제가 대신하는 바는 실제로는 수(隋)나라에 있습니다. 수나라의 창고를 오늘날의 저장량에 비교해 보고, 수나라의 병사를 오늘날의 군사에 비교해 보며, 또한 수나라의 백성을 오늘날의 백성에 비교해 보면, 그 규모의 많고 큼을 몇 등급이나 보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수나라는 부강한데도 나라를 잃었으니 이는 동요되었기 때문이요, 우리는 가난하고 수가 적은데도 편안하니 이는 안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안정되면 편안하고 동요되면 어지럽다는 것은 사람들이 모두 아는 사실이요, 숨겨져 있어 알기 어렵고 은미하여 관찰하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평탄하고 쉬운 길을 밟지 않고 수레가 뒤집혀지는 길을 따르는 것은 왜 입니까?

  편안할 때는 위태로움을 생각지 못하고, 다스려질 때는 어지러움을 염두에 두지 못하며, 존속되어질 때는 망하는 것을 고려치 못합니다. 바야흐로 수나라는 아직 어지러워지기 전에는 스스로 반드시 난리가 없을 것이라 생각했었고, 망하기 전에는 스스로 반드시 망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군사를 자주 동원하고 부역을 멈추지 않아 그로써 죽이고 욕보이는 데까지 이르렀어도 멸망의 원인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이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무릇 용모의 예쁨과 못남을 살펴보려면 반드시 고요한 물에 가서 비춰보아야 하고, 정치의 안녕과 위태로움을 살펴보려면 반드시 망한 나라를 본보기로 취해 보아야 합니다. 「서경」에 이르기를 은(殷)나라의 본보기는 멀리 있지 않다. 바로 하(夏)나라의 시대에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소신은 원하건데 오늘날의 동요와 안정을 수나라를 귀감으로 하여 본다면, 존속될 것인지 망할 것인지 다스려질 것인지 어지러울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위태로운 까닭을 생각하면 편안할 수 있고, 어지러워진 까닭을 생각하면 다스릴 수 있으며, 망한 까닭을 생각하면 존속되어질 수 있습니다.

  존속하느냐 망하느냐는 기호와 욕심을 절제하고 전렵을 삼가며, 사치한 것을 멈추고 급하지 않은 일을 그만두며, 한쪽의 말만을 치우쳐 듣는 것을 신중히 하고, 충성스러운 이를 가까이 하며 아첨하는 이를 멀리하는 데에 달려있을 따름입니다. 무릇 나라를 계속 지켜나가는 것은 쉽고 나라를 새로 얻는 것은 실로 어렵습니다. 지금 이미 그 어려운 바를 성취해 놓고 어찌 그 쉬운 바를 지켜나가지 못하십니까? 보존함이 견고치 않으면 교만과 사치와 방탕함이 나라를 동요시키게 됩니다.』

  임금이 여러 신하들과 적취지(積翠池)에서 연회를 베풀며 주흥이 올라 한참 흥겨울 때에 시를 지었다. 위징은「서한부(西漢賦)」를 지었는데, 그 끝장에 이르기를 「끝내 숙손통(淑孫通)의 의례를 빌려야만 비로소 황제의 존귀함을 알 수 있다네.」라고 하니, 임금이「위징의 말은 일찍이 예의로써 나를 제약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라고 말하였다. 다른 날 임금이 조용히 묻기를「근래의 정치가 어떠한가?」라고 했다.

  위징은 나라가 오랫동안 평안하여 임금의 뜻에 소홀한 바가 있음을 알아내고는, 인하여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정관(貞觀)초에는 사람들을 인도하여 하여금 간언(諫言)하게 하셨습니다. 3년 후에는 간언 하는 자를 보면 기꺼이 따르셨습니다. 근래 일 이년간에는 억지로 간언을 받아들이시고 끝내는 불평하십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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