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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4년(1994)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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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이야기 : 천일대(天一臺)

천일대(天一臺)

 

무착의 전설 어린 명승지(明勝地)
             

 

 


  기원6백년(백제 무왕 원년)에 백제의 중 관륵이 자기의 벗인 용운과 함께 금강산 도솔봉의 산허리에다 팔방구암을 짓고 절간 이름을 「정양」이라 하였다. 그 후 정양사의 중들은 도솔천에 태어나기 위하여 30년을 기한으로 하고 하루에 한끼씩만 먹으면서 계율을 지키고 정신을 집중하여 불교의 도를 닦기로 하였는데 여기에 1천명의 중이 참가하였다.
  그들 가운데 뒷바라지를 맡은 무착이라는 중이 있었는데 그는 매일 1천명의 중들에게 한끼씩 먹을 것을 마련해주어야 하였다. 그 일이 너무도 힘들기 때문에 그는 여러 중들에게 간곡히 말하였다.

  『나는 남을 위해 일하는 사람인데 하루 한끼만 먹어서는 정말 그 일을 감당해낼 수가 없소. 그러니 여느 때와 같이 하루 세끼를 꼭 먹어야만 하겠소. 여러 사람은 나를「하루 세끼수좌」라고 불러주오.』

  이때부터 여러 중들이 그더러 조롱 삼아「하루 세끼수좌」라고 불렀다.

  어느덧 30년 세월이 흘렀다. 하루는 맑고 개인 날씨였는데 갑자기 우뢰가 울고 번개가 치는 가운데 남쪽 언덕 위 하늘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하루 세끼수좌는 빨리 나오라.』

  여러 중들이 웬일인가 하여 서로 돌아다보면서『공양 맡은 중놈이 허위를 일삼는 수좌이기 때문에 그 죄가 커서 하늘이 이제 벌을 주려나 보다』라고 중얼거렸다. 모두 두려워 마지 않는데 공양 맡은 중 무착만은 함박웃음을 띄우며 나섰다. 그가 겨우 남쪽 언덕에 도착하자마자 머리 뒤의 골안에서 벼락치는 소리가 났다. 뒤를 돌아다보니 정양사의 반야보전과 약사여래전만이 남고 팔방구암자와 9백99명의 중은 간데온데 없었다. 

  무착은『허~세상에 이런 허망한 일도 있는가?』하면서 혼자 탄식하다가 문득 크게 깨닫는 바가 있어 즉시 자리를 잡고 사색을 거듭하였다. 그가 깊이 사유하는 경지에 이르러 하늘세계를 보니 9백99명의 중은 도솔천의 궁전에 가 있었고 팔방구암자와 정양사는 바닷속에 용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무착 한 사람만이 30년 동안 남들처럼 많은 공을 들이지 못해서 뒤늦게야 도리를 깨달은 것으로 된다. 그러나 공양 맡은 중 무착이 이 세상에 혼자 살아 남아 있으면서 좀 뒤늦게라도 도리를 깨닫지 못하였다면 정양사라는 절에 대해서도, 1천명이 수양한 사실에 대해서도 후세 사람은 아주 모르고 말 뻔하였다. 무착이 도를 깨달은 날에 봉우리 위에 초막을 짓고 14년 간이나 살다가 죽었기 때문에 그 후 다시 14년이 지나서 원효가 정양사를 다시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정양사 서남쪽에 있는「천일대」는 이렇게 1천명 가운데 오직 한 사람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하여「일천 천」자,「한 일」자를 써서「천일대」라고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본래 천일대는「하늘 천, 한 일」,「하늘 천, 날 일」,「하늘 천, 날랠 일」,「일천 천, 한 일」등 여러 가지로 씌었는데 그 뜻은 「하늘 아래 첫째가는 경치가 좋은 곳」,「하늘로 날아오르듯 경치가 좋은 곳」,「천에 하나만 있는 전망대」의 뜻으로 씌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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