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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5년(2015)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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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칼럼 : 갑질의 청산과 상생 실천

갑질의 청산과 상생 실천
 
 
 
연구위원 박병만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무력 등을 비롯하여 인간이 가질 수 있는 힘이 상대적으로 우월한 개인이나 집단을 소위 ‘갑’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상대적으로 열등한 존재인 ‘을’에 대비하여 칭하는 말이다. 이 갑이 을에게 자신(들)이 가진 우월적 힘을 행사하여 합리적인 권리 이상의 것을 취하는 행위를 비하하여 ‘갑질’이라 한다. 근래에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했던 ‘땅콩회항’이나 ‘대학교수들의 제자 성추행’, 그리고 ‘군부대에서의 폭력’ 등 무수히 많은 사건이 모두 이러한 ‘갑질’에 의한 것이었다. 갑질은 개인이나 소규모 집단 간의 관계에서 그치지 않는다. 국가나 민족 간에도 인종 간에도 허다하게 행해졌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나 몽고의 세계 제국 건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등이 모두 이 갑질이었다.
  아메리카 대륙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콜럼버스라고 세계사 책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또 어떠한가? 대부분의 사람은 정말로 그렇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 수만 년 전부터 살아온 원주민은 사람이 아니란 말인가? 이러한 역사기록은 서구 중심적 역사인식의 전형이다. 곧, 역사관
[史觀]의 갑질이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갑질의 풍토 속에 살면서도 명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사는 것 같다. 이처럼 유사 이래로 자행되어 온 갑질에 의한 죄악과 그로 말미암은 갈등의 원인은 무엇일까? 상제님 말씀대로 선천의 인간사가 모두 상극에 지배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상극에 지배된 인간 정신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남을 해치는 일을 서슴지 않았다.
  “저 대자연에 피어나는 만물들을 보라! 저 만물들은 서로 같이 자라나면서도 서로를 해침이 없다. 저 대자연을 수놓은 무수한 길[道]들을 보라! 저들은 서로 같이 가면서도 서로 어긋남이 없다.”(『중용』 30장)01 들판의 이름 없는 풀포기도 크다고 작은 풀을 억누르지 않고, 작은 풀도 큰 풀을 시기하지 않는다. 동물들도 생존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잡아먹기는 하지만, 배  부르면 더 이상 약자를 잡아먹지 않는다. 반면에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다. 동물들도 동족은 포식(捕食)하지 않는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탐욕을 위해 동족을 해치며 살고 있다. 그렇다면 풀 한 포기나 금수만도 못한 삶을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 우주 공간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존재는 주변과의 관계 맺음 속에서 자신의 생명성을 보장받을 수 있다. 부모 없이 태어나는 생명이 있는가? 햇빛과 공기와 물 없이 살 수 있는 생명이 있는가? 천지 만물은 타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누릴 수 있다. 이러한 우주의 실존적 진리에 대한 깨달음이 동양의 세계관이다. 나와 타 존재는 둘이 아니라 결국 하나라는 인식이다. 이것은 인류사에 있어 대발견이요 대각(大覺)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서 그쳐서는 안 된다. 좀 더 적극적 세계관으로의 일대 혁명이 필요하다. 그것은 바로 대순사상의 핵심인 상생이다. 상생의 실천은 바로 새로운 세계관으로의 정신개벽인 것이다.
  상극에 의한 갖가지의 죄악과 갈등으로 점철된 인류는 이제 ‘남을 잘 되게 하여야만 한다’는 상생의 적극적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무엇보다 상극적 갑질을 청산해야만 한다. 그 전제가 인간을 비롯한 모든 타 존재는 나와 한몸이라는 인식의 선행이다. 그럼으로써 남을 잘 되게 하는 것이 진정 자신을 잘 되게 하는 것이라는 필연적 사실을 확신해야 한다. 인간의 삶 속에서 갑을 관계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 현실에서 가장(家長), 형, 상사, 선각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는 갑질을 하고 있는지 철저히 돌이켜보자. 그리고 그 우월적 힘을 타인을 잘 되게 하는데 쏟아야 할 것이다. 남을 잘 되게 함으로써 더불어 자신도 잘 된다는 이 상생의 진리는 바로 상제님께서 펼치신 진리이기 때문이다.  
 

01. 『중용』 30장의 한 구절은 원문이 “萬物並育而不相害, 道並行而不相悖”인데, 김용옥의 번역(『중용한글역주』, 통나무, 2011)을 인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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