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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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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예 : 『뿔 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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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뿔 뱀』01을 읽고

 

 

 동명7 방면 선사 윤성미

 

 

 

  조선 후기 대 문장가였던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 1737 ~ 1805)은 시대를 앞서간 문체의 글을 썼으며, 출세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았다. 그는 과거장에서 천편일률적인 문체에 맞춰 글을 쓸 수 없어 뿔 뱀을 그리고 나온 인물이다.
  “억지로 경전의 그럴듯한 말을 뒤지면서 그 뜻을 빌려와 근엄하게 꾸미고 매 글자마다 엄숙하게 보이도록 만드는 사람은 마치 화공을 불러 초상화를 그릴 때, 용모를 싹 고치고서 화공 앞에 앉아 있는 자와 같다”고 했다. 보통사람들은 과거급제를 못해 안달인데, 그는 당당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으며 조금 낮추고만 들어가면 출세의 길이 보장됐던 노론 명문 집안 출신임에도, 남들이 다 가고자 하는 길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가는 자신은 물론이고 그의 가족의 삶마저 궁핍에 허덕이게 했다. ‘된장에 고추 찍어 먹어보는 게 소원이다.’는 그의 장남의 말이 그 사정을 말해준다.
  하지만 그는 자유를 얻었고 쓰고 싶은 글을 써 세상을 흔들어놓았다. 그 여파로 문체반정의 중심인물이 되어 반성문을 써 올려야 했지만, 그는 쓰지 못했다. ‘정승을 시켜주겠으니 반성문을 지어 올리라.’는 정조의 청을 선뜻 받아주지 못한 연암이다. 글을 짓는 것은 사실적이고 진실해야 하기에 신하로서의 박지원과 작가로서의 연암을 고민하게 했다. 문체는 곧 자기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형식에 얽매인 글쓰기는 작가의 진솔함을 전달하기 어렵다. 보여지는 글만이 글이 아닌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는 동안 보여지는 글 외에 행간에서 더 많은 고민을 하고 진정한 독자는 행간의 의미를 곱씹으며 작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공자는 ‘글은 곧 그 사람이며 속이 빈 나무에선 속이 빈 소리가 나고 속이 찬 나무에서 속이 찬 소리가 나온다.’ 라고 했다. 세태와 격식에 따르는 글이 속이 찬 글이 될 수 있을까? 후세에 남을 역작이 될 수 있을까?
  사마천(司馬遷, 기원전 145 ? ~ 86 ?)은 이릉(李陵, ? ~ 기원전 74)을 변호하다 한 무제의 노여움을 사 궁형(宮刑)에 처해졌다. 죽음을 택하는 편이 나은 상황에서도 사마천은 태사령이었던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사기(史記)』를 완성하기 위해 궁형을 택한다. 그리하여 시대를 불문하고 성찰과 처세의 지침서가 될 『사기』를 남겼다. 또 하마터면 제자의 손에 의해 불구덩이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뻔한 연암의 『열하일기』도 후세엔 명작으로 남아 책을 좋아하는 서가에 편하게 놓여있다. 이렇듯 불후의 명작들은 작가의 고통 속에서 그의 소신과 함께 탄생하여 후세인들의 정신을 매료시키며 가다듬게 한다.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세상의 중심에 있는 듯 보이지만 실상 그들이 세상을 변화시키지는 못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봐도 세상을 바꾸는 운전대를 잡은 이들은 오히려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사람들이 많다. 권력의 중심에서 화려한 치장을 하며 산 사람치고 덕을 갖춘 이가 적었기 때문일 것이다.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파인 연암은 44세 때인 1780년(정조 5)에 삼종형 박명원(朴明源)이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칠순 잔치 진하사(進賀使)로 북경에 가게 되자 자제군관의 자격으로 함께 떠나 곳곳에서 보고 들은 기록인 열하일기를 썼다. 청나라의 발전된 문물을 접하면서 그의 눈은 더욱 실사구시(實事求是) 학문을 좇게 되었고, 그 경험은 안의 현감(安義縣監)으로 있는 4년 동안 그곳을 잘사는 고을로 만들어 놓았다. 그 지역의 기근을 없애고 물레방아를 돌려 디딜방아보다 수십 배 이상의 도정을 하게 했다. 조선에 면화가 들어온 지 3백여 년이 되었지만 면화재배와 솜을 타고 면포를 짜는 일련의 공정은 너무 힘들고 까다로운 상태를 답보하고 있었다. 이것만 봐도 정치인들의 행보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다. 자신들만 따뜻한 비단옷으로 감싸 안으면 그만이었다. 그 수많은 세월동안 백성들의 따뜻한 겨울나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연암은 청에서 본 비단공장에서 착안하여 길쌈에 필요한 기구들을 만들고 면화재배를 권장했다. 그에게 배운 기술은 그 고장 사람들의 것이 되었으며, 그는 기술이 있어야 잘 산다고 강조했다. 백성들의 기본생활인 의식주를 해결해주는 것, 그게 정치라는 것을 잘 아는 연암이었다.

 

 


  그렇게 4년 동안 안의 현감을 마친 연암은 처음에 빈손으로 왔듯, 떠날 때도 빈손으로 떠났다. 기본 살이도 안 되는 살림살이로 자기 잇속 하나 챙기지 않고 선정만을 베풀고 떠난 것이다. 떠나는 연암에게 안의 백성들은 ‘만인산[萬人傘: 고을 사람들이 선정을 베푼 지방관리의 공덕을 기리며 감사의 표시로 그 지방관리와 고을의 유지 이름 만 개를 새겨 바친 일산(日傘)]’을 만들어 주었다. 그의 입성은 여전히 초라했지만 안의 백성에게 그는 하늘이었기에 돌아가는 그의 길은 결코 빈손이라 말할 수 없다.
  인간의 본성은 본시 선하다. 그러던 것이 폭포수가 쏟아지듯 세차게 흐르는 기운에 의해 흐트러진다. 현대사회는 굳이 세상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TV와 인터넷을 통해 세상의 변화를 느끼고 소통한다. 세상은 유혹의 도가니다. 칼마르크스도 사람에게 집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지만 내 이웃에 더 큰 집이 생겼을 때는 달라질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거기에 좇아 살고 싶어 한다. 남들이 누리는 만큼, 아니 남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평생을 아등바등하며 살아간다. 세상이 변하고 발전해 나갈수록 상대적인 박탈감은 더 크다.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껍데기를 채우지 못해 괴로워한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을 짓밟고 올라가기 위해 자기 본성을 흐트려뜨리고 만다. 반대로 자기 본성을 잘 지켜나가고자 참[眞]을 좇는 사람들은 그만큼 세상에서 이단아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들의 삶은 늘 목마르고 고달프다. 그래도 그들은 자신의 천성을 바꾸지 못한다. 그 목마름에서 자신 나름의 샘물을 찾으며 살아갈 뿐이다. ‘배움이 지극하지 못한 것은 진실로 신의 잘못입니다. 그렇지만 천성이 다른 것은 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스승 연암과 더불어 문체반정을 비켜갈 수 없었던 박제가의 말이다. 결국 후세에 그 이름 하나, 희미하게나마 남겨지는 것은 현재의 삶이 다소 고달파도 올곧은 천성을 지키며 살아간 이단아들이다. 삶이란 게 그래서 아이러니다.
  대순진리회의 도는 어떠한가. 내가, 우리가 아무리 도가 좋다고 외쳐도 사람들은 우리의 말에 귀를 열어주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 도의 진실을 믿는다. 그 참 이치를 떠나서 살 수 없음을 안다. 하지만 때로 이단아, 이방인 취급을 받을 땐 나도 한없이 외롭다. 친구와 가족과 다른 길을 걸으며, 그들이 함께 걸어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지만 그들은 눈 흘기며 다른 곳을 응시할 뿐이다. 연암이 그랬듯이 우리는 쉬워 보이는 길을 마다하고 애써 힘든 길을 가고 있다. 끝이 잘 보이지도 않는 듯 느껴지는 막연해 보이는 길이기도 하다. 참 도를 알기에 다른 길을 걸을 수도 없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게 밟고 딛는 길이 우리에겐 늘 조심스럽다. 한 가지를 얻으면 한 가지를 잃을 수도 있다는 이치를 몸소 깨닫고 사는 우리는 가난하고 고달픈 삶과 쉽게 소통하기 어려운 현실이 아프게 가슴을 칠 때마다 때때로 헛헛한 외로움으로 속울음을 울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믿음과 목적 하나를 품에 안고 현재의 힘겨움을 이겨나간다. 물론 세상의 유혹들이 우리의 눈과 귀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한다. 그러기에 우리 자신들은 더 단단한 자신을 만들어야 한다. 연암이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것은 견문이 넓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리 견문이 넓다 해도 그 기국이 작으면 담아내지를 못한다. 우리도 막연히 도가 좋다고만 외칠 것이 아니라 견문을 넓히고 기국을 키워 그것을 가슴에 제대로 품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사소한 것, 작은 것에 얽매여 있으면 큰 것을 보지 못한다. 작은 시시비비를 가리며 서로 반목하는 것은 수도가 아니다.
  당나라의 한유는 성남으로 독서하러 가는 아들에게 “두 아이가 어릴 때는 서로 비슷하지만 나이 서른, 뼈대가 굵어질 때면 하나는 용이 되지만 하나는 돼지가 된다.”고 일렀다. 우리 모두는 아직 아이일 뿐이다. 도에 몸담은 시간들은 깊어 가는데 내면의 깊이가 느껴지는 도인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 진정한 기품은 겉이 아닌 속에서 품어 나온다. 똑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 같지만 어떤 생각으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그릇의 크기는 달라진다. 그래서 시간이란 참 정직하다. 나는 우리 도인들 하나하나가 누구에게나 귀함을 받는 이가 되기를 바란다. 그 사람을 떠올리면 누구에게나 흐뭇한 미소가 번지는 이가 되기를 소망한다. 이름은 곧 그 사람이다. 신경숙 작가의 『리진』에는 이름에 관한 참 적절한 글이 나온다.


 

 이름의 주인이
어떻게 사느냐에
그 이름의 느낌이 생기는 게다.
누가 네 이름을 부를 때면
은혜의 마음이 일도록
아름답게 살라.

 

 

 

  비록 작은 그릇이라도 잘 쓰여지는 그릇이 되자. 우리가 사는 세상, 쓸모없는 그릇은 없다. 다만 어떻게 쓰여지고 싶은지 고민하며 사는 일, 그것이 아름다운 삶이 아닐까? 아직은 초라하지만 우리도 뿔 뱀이 되어보자. 연암의 열하일기 중 「일야구도하기(一夜九渡河記)」의 한 대목을 소개하며 글을 맺는다.
 ‘마음을 차분히 다스리는 사람은 귀와 눈이 그에게 장애가 되지 않으나 귀와 눈만을 믿는 사람은 보고 듣는 것이 자세할수록 더욱 병이 된다.’

 

 

 


01 이 책은 표성흠씨가 지은 책으로 2011년에 출간되었다. 연암이 안의(함양)에서 현감으로 복무하며 보낸 날들을 그린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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