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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광장 : 『전경』에 나타난 지혜(智慧)에 대하여

『전경』에 나타난 지혜(智慧)에 대하여



교무부 김성호




  『전경』 제생 43절에 “고견원려왈지(高見遠慮曰智)”라는 내용처럼 우리는 높이 보고 멀리 사려 깊게 생각하는 현명함과 슬기로움을 지혜라고 여긴다. 하지만 『전경』의 몇몇 구절에는 지혜가 현명한 도덕적 판단과 의지가 요구되는 윤리 관념으로 이해되지 않는 내용도 보인다. 관련 구절을 찾아보면 “강하고 부하고 귀하고 지혜로운 자는 다 스스로 깎일지라”(교법 2장 11절), “부하고 귀하고 지혜롭고 강권을 가진 자는 모두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교법 3장 4절)라는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경』에 나타난 지혜라는 단어의 긍정적 의미와 부정적 의미 중 부정적 의미로 쓰인 위 용례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위 성구에 따르면 부하고 귀하고 강권을 가진 자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자도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하고 스스로 깎여짐을 알 수 있다. 콩나물 뽑히듯 한다는 표현은 다 자란 콩나물을 콩나물시루에서 뽑을 때 한두 개를 솎아내듯 뽑지 않고 함지박을 가득 채울 정도의 많은 양을 뿌리째 쑥 뽑아내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보통 어떤 것을 ‘뿌리 뽑다’라는 뜻에는 어떤 것이 생겨나고 자랄 수 있는 근원을 없애는 척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아울러 『전경』에 “콩나물 뽑히듯 하리니”라는 표현 앞에는 ‘척에 걸려’라는 수식어가 있다.
  『대순진리회요람』에 따르면 척(慼)은 나에 대한 남의 원한이므로, 척에 걸려 콩나물 뽑히듯 한다는 표현은 잘못이나 죄로 인한 심판과 처벌의 의미에 가깝다. 교법 2장 11절의 “깎일지라”라는 내용 또한 긍정적인 의미로는 풀이되지 않는다. 깎이다는 사전적 의미로 “빼앗기거나 낮추어진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지혜로운 자가 스스로 깎인다는 것은 스스로 낮추어진다는 의미로 여겨진다.
  그런데 사전에서 지혜의 의미를 찾아보면, “사물의 이치를 빨리 깨닫고 사물을 정확하게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 “사물의 도리나 선악을 분별하는 마음의 작용”으로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위 『전경』 용례에서 지혜로운 자는 사물의 도리와 선악을 분별하여 옳고 그름을 바르게 판단하는 슬기를 가진 자로 비치지 않는다. 또 이는 많은 사람이 일반적으로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 가지는 인식과도 사뭇 다르다.
  대개 사람들은 지식이 있는 사람보다 지혜로운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삶의 경험이 풍부한 사람이나 나이가 많은 사람이 지혜가 많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이때 지혜는 경험에 의한 학습이나 삶의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깨달은 체험적 통찰에 가깝다. 아울러 보통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 관념에는 조직 및 사회가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여 바람직한 방안이나 해법을 내놓는 사람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때 지혜는 옳고 그름의 가치를 판단하는 능력에 가깝다. 이처럼 지혜는 개인과 사회를 위해 유익한 기능을 지니고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현명한 판단과 슬기로운 대응을 가능케 하는 정신적 능력으로도 여겨진다.




  그뿐만 아니라 지혜는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와 수많은 책 등에 녹아들어 자주 접하며 회자하는 개념이기도 하다. 일례로 우리는 지혜와 지혜로운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며 삶에서 지혜를 희구한다. 그런 까닭에 대부분의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누군가로부터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자라왔다. 그런데 막상 지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아는 이는 드물고, 암묵적인 의미로 지혜는 ‘이런 것이다’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이런 암묵적 인식에는 대개 지혜로운 사람이 현명하고 슬기로우며 삶에 대한 경험적 통찰과 자기성찰 등을 통해 인격적 성품과 덕을 갖춘 어진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경향은 우리가 삶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고민할 때 본받을 만한 성인과 현인들의 삶에서 그들의 지혜를 엿보기 위해 관련 고전과 서적들을 들추는 행위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능력으로 여겨지는 지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수많은 현자가 강조해온 덕목이기도 하다. 일례로 맹자가 제시한 인의예지(仁義禮智)의 사덕(四德) 즉, 사람이 마땅히 갖추어야 할 네 가지 성품에도 지혜가 포함되어 있다. 이때 지혜는 옳고 그른 것을 판단하는 마음의 근원으로 맹자는 인간의 선한 본성에서 지혜가 비롯한다고 보았다. 이처럼 지혜는 다양한 관점에서 정의될 수 있는 특성으로 말미암아 구체적으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지혜의 다양성을 인식하고 사람들이 지혜에 대해 가지는 관념을 연구한 바 있다. 그 결과, 사람들이 지혜로운 사람에 대해 가진 암묵적 관념에는 다음과 같은 특성들이 있었다.

 

  지혜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여러 조언을 비교할 줄 알며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다. 지혜로운 사람은 결정을 내리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으려고 하며 분명하게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이용할 뿐만 아니라 행간을 읽는다. 지혜로운 사람은 분명하고 분별 있으며 공정한 판단을 내리는 데 특히 뛰어나며 이렇게 내린 판단의 단기적 결과뿐 아니라 장기적 결과도 고려한다. 타인의 경험으로부터 도움을 얻고 자신의 실수뿐 아니라 타인의 실수에서도 배우고 지각한다. 이들은 경험이 지시하는 대로 생각을 바꾸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이들이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한 것은 올바른 해결책인 경향이 있다.01


  위 특성은 사람들이 지혜에 대해 갖는 관념적 특성일 뿐이지만 심리학 분야에서도 지혜는 여러 학자로부터 연구되어왔다. 하지만 다양한 지혜의 속성을 모두 하나로 묶어 정의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현대 심리학자는 지혜가 지능과는 다른 것으로서, 뛰어난 수준의 지식과 판단 및 조언 능력을 의미하며, 인생의 의미는 무엇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어렵고도 중요한 물음에 현명한 대답을 지니게 하고, 자신 또는 타인의 행복을 위해 유익하게 활용될 수 있는 덕목이라는 것에는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02 이렇듯 지혜는 대부분 긍정적인 개념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런데 조선의 공식적인 국가 기록인 ‘조선왕조실록’의 몇몇 기록 중에는 지혜[智]라는 용어 앞에 수식어가 붙어 지혜가 부정적 의미로 쓰인 용례도 보인다.


  자고로 소인이 간사한 지혜를 써서 술책을 행하려고 할 때는 반드시 언사(言事)를 써서 여러모로 꾸미되, 임금과 정승을 의혹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짓이고 못 하는 일이 없습니다. 공사를 전도하고 시비를 현란시켜 마음이 어지러워 무엇을 따라야 할지 모르게 만든 다음에 임금의 총명을 가리고 선량한 사람을 해칩니다.03


  『중종실록』에 기록된 위 내용에서 간사한 지혜는 지혜를 간교하고 바르지 않게 쓴 용례이다. 제시된 용례에 따르면 어떤 일을 꾸미기 위해 꾀를 내어 지혜를 간사하게 쓰면 옳고 그름에 대한 시비로 사람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선량한 사람까지 해하게 됨을 알 수 있다. 또 간사한 지혜는 만인의 삶에 유익하게 작용하지 않고 되레 온갖 의혹을 낳아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점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조선왕조실록’에는 지혜를 간교하게 씀으로써 일어나는 폐단도 찾을 수 있다. 관련 내용은 『선조실록』에서 찾을 수 있으며 기사 내용은 아래와 같다.  


  풍원 부원군(豐原府院君)은 간사한 자질에다 간교한 지혜로 명성과 벼슬을 도둑질하여 사람을 해쳐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세상을 속여도 세상이 깨닫지 못하였으니, 이것이 그 평생의 심술(心術)입니다.04


  위 용례에서 지혜를 간교하게 쓰는 사람은 명성과 벼슬을 도둑질하여 사람들을 해치고 세상을 속이며, 심술 즉, 남이 잘못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을 지닌 자로 비친다. 이 밖에도 ‘조선왕조실록’에서 관련 지혜의 용례를 더 찾아보면 사사로운 지혜에 대한 용례도 찾을 수 있다.


  대신은 마땅히 나라를 위한 떳떳하고 먼 생각을 해야 할 것이요, 목전의 마음 쾌(快)한 것을 취하여 사사로운 지혜를 고집하여서는 안 됩니다.05


  성인(聖人)의 희로(喜怒)는 지극히 공평하여 자연의 이치를 따르니 천리(天理)의 공(公)이며, 보통 사람의 희로는 자신을 위하여 지혜를 부리니 인욕(人欲)의 사(私)이다.06 


  제시된 용례에서 “목전의 마음 쾌(快)한 것을 취하여”라는 내용은 사사로움을 뜻한다. 여기서 사사로운 지혜는 대의(大義)를 위해 지혜를 써야 할 때 이를 저버리고 눈앞의 이익을 좇아 지혜를 쓰게 되는 경우를 이른 것이다. 또 “자신을 위하여 지혜를 부리니 인욕(人欲)의 사(私)이다.”라는 내용은 사람이 천리(天理)를 따르지 않고 지혜를 사사롭게 쓰는 것이 인간의 욕심에 기인한 것임을 밝히고 있다.
  눈앞의 사적 이익에 홀려 양심을 저버리고 물욕에 의해 발동하는 욕심인 사심에 빠지면 지혜도 어두워지고 흔들리게 되는데, 이를 지혼(智昏)이라고 한다. 이익은 지혜를 혼미하게 한다는 교훈을 담은 ‘이령지혼(利令智昏)’이라는 고사(古事)에도 이러한 뜻이 반영되어 있음을 눈여겨보면 지혜도 흔들리지 않는 참된 마음으로 올바르게 써야 함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해 도전님께서는 “사람으로서 자기 발견의 참된 지혜를 얻어야 질서를 정립하고 자구다복(自求多福)07의 도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바 있다.08 무릇 인간은 잘살기보다 참되게 살기가 더 어렵다고 표현하듯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를 얻는 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지혜의 사전적 의미에는 이치 즉, 정당한 도리라는 개념도 포함되어 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행하여야 할 바른길을 뜻한다. 하지만 위 용례에서도 알 수 있듯 간사하고 교활한 술책을 부려 남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리사욕을 일삼는 도구로서의 지혜는 참된 지혜가 아니다. 이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좇아 인간의 도리를 저버리고 삿된 방법을 감행하는 그릇된 행위이다.
  참된 지혜를 구하지 않고 지혜를 삿된 곳에 쓰게 되면 삿된 방법을 감행하게 되는데, 『대순지침』에 “삿된 방법은 욕심을 앞세우기 때문에 정기(正氣)는 물러가고 사기(邪氣)가 선동하여 허령(虛靈)이 되는 것이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따라서 지혜를 삿되게 쓰면 타인에게 해를 끼쳐 척을 불러일으키고 결국에는 좋지 않은 말로를 맞이하게 됨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다. 이처럼 지혜는 사람이 그것을 어떤 마음으로 쓰는가에 따라 참된 지혜가 될 수도 있고 삿된 지혜도 될 수 있다. 『전경』에 지혜로운 자가 스스로 깎이고, 콩나물 뽑히듯 한다는 용례 또한 도덕적 관념에서 보면 선(善)과 불선(不善)의 가치와 결부되어 있다. 선한 마음에서 비롯된 진실하고 올바른 지혜는 참된 지혜이지만, 사심(私心)에 사로잡혀 인욕(人慾)을 추구하는 지혜는 삿된 방법을 감행하는 불선한 지혜인 것이다.
  나아가 인간의 지혜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과도 관련이 있다. 사람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선한 가치를 좇아 그 덕을 펴고 실천하는데 지혜를 밝히지 않고 그것을 삿된 방향으로 작용시켜 탐욕을 이루기 위한 목적으로 삼으면 그에 대한 과보(果報)도 고스란히 자신이 받음은 인과응보(因果應報)이다. 따라서 참된 지혜로움은 도덕적이며 선한 의지를 지니고, 그것을 실천하기 위한 덕성(德性) 없이는 불가능하다. 잘못된 방향성에 목적을 둔 앎은 삿된 지혜이며 삿된 지혜를 행하는 자는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결과가 따르게 된다. 도전님께서도 우리에게 항상 참된 지혜를 얻어야 함을 강조하셨다. 아울러 우리 도(道)는 남에게 척을 짓지 말고 남을 잘되게 하는 진리이다. 따라서 우리는 사리사욕을 위해 남을 속이고 해치는 도구로서의 지혜를 경계하고 자기성찰을 통해 덕을 닦아 참된 지혜를 구하는 데 힘써야 할 것이다.






01 로버트 스텐버그 외, 『지혜의 탄생』, 최호영 옮김 (서울: 21세기북스, 2010), p.251.
02 권석만, 『인간의 긍정적 성품』 (서울: 학지사, 2011), p.145 참고.
03 『중종실록』, 31권, 중종 12년 12월 15일 병진 7번째 기사.
04 『선조실록』, 106권, 선조 31년 11월 16일 정유 1번째 기사.
05 『중종실록』, 12권, 중종 5년 9월 9일 임술 1번째 기사.
06 『효종실록』, 9권, 효종 3년 10월 22일 경신 1번째 기사.
07 스스로 많은 복을 구한다는 뜻으로 요행을 바라지 않고 평소 행동거지를 바르게 하면서 노력한다면 좋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 스스로 덕을 수양하고 자기성찰을 하여 행실이 천명의 이치에 어긋남이 없게 하면 성대한 복이 이르게 됨을 뜻한다. [「자구다복」, 『두산세계대백과사전』]
08 「도전님 훈시」 (1985.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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