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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 성구 :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교무부 이은희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을 어찌 알리오”라고 말씀하셨도다. (권지 1장 4절)


  위 성구는 천ㆍ지ㆍ인 삼계(三界) 대권(大權)을 지니신 상제님께서 이미 천지를 돌려놓으셨음을 밝히는 구절이다. 또한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하는데, 그 근본 원인이 상제님의 공사에 있음을 알려준다. 하지만 어떤 공사가 천지를 돌려놓은 공사인지 알려진 바가 없으므로 이 글에서는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는 부분을 중심으로 서술하고자 한다. 여기서 ‘공부하는 자들이 말하는 방위가 바뀐다’라는 뜻이 무엇인지 당시 자료를 찾을 수 없어 현재로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대략적이나마 그 의미를 추정하여 이 성구의 의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한다.



새로운 방위도의 출현과 의미
  ‘방위(方位)’는 인간이 공간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의식의 한 형태로, 사전적 의미는 공간에서 한 방향이나 점이 기준점에 대해 위치하는 방향이다. 방위에는 문화와 지역에 따라 동서남북의 4방위, 5방위, 8방위, 24방위 등 다양한 기준이 있다. 상제님 당시 조선 말기의 지식인들은 유학의 경전 중 하나인 『역경(易經)』에 의한 방위 개념에 익숙해져 있었다. 역(易)의 방위 개념은 동아시아에서 수천 년 전에 발생하여 발전해 온 것으로, 현대의 우리가 지도에서 언급하는 평면상의 동서남북과 같은 단순한 방위와는 차이가 있다.
  변화의 이치라 일컫는 역(易)의 방위는 동양철학의 핵심 사상에 근거한 ‘상징적인 개념’이다.01 역에는 우주의 본체인 태극(太極)이 있는데, 태극에서 건(乾)ㆍ태(兌)ㆍ리(離)ㆍ진(震)ㆍ손(巽)ㆍ감(坎)ㆍ간(艮)ㆍ곤(坤)이라는 팔괘(八卦)가 나왔다.02 팔괘에 우주 만물의 모든 이치를 걸어놓았다고[掛] 해서 ‘괘(卦)’라고 하는데, 팔괘는 천지 만물이 끊임없이 생육하는 이치를 밝히는 가장 기본적인 도상(圖象)이며 우주의 모든 구성물을 표현한 것이다.03 이러한 팔괘를 8개의 방위에 배치한 그림이 ‘팔괘방위도’이다. 이렇게 팔괘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역의 방위는 단순한 공간분할의 차원을 넘어 우주의 질서화에 있어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한다.04 팔괘방위도에는 대표적으로 복희팔괘방위도, 문왕팔괘방위도, 정역팔괘방위도 등이 있다.


  이후 중국 고대 왕조인 하(夏)나라의 시조 우왕(禹王, 기원전 2100년경~2000년경)이 9년간의 대홍수를 다스리다가 낙수(洛水)라는 강에서 등에 45개의 신비한 점들이 있는 신령스러운 거북[神龜]을 발견했는데, 그 이치를 깨달아 치수(治水)에 성공했다고 한다. 이 그림은 ‘낙서(洛書)’라고 불린다. 후에 주(周)나라 문왕(文王, 기원전 1152~1056)이 낙서를 본체로 하여 팔괘를 재배열한 것이 ‘문왕팔괘방위도(文王八卦方位圖: 줄여서 문왕팔괘도)’인데 ‘후천팔괘도’라고도 한다.06
  세월이 흘러 조선 말엽에 이르러 충청도에 사는 김일부[金一夫, 1826 ~
1898, 이름: 항(恒)]라는 시골 선비가 『주역(周易)』 연구를 깊이 하던 중 1879년 어느 날부터 이상한 괘의 그림이 눈을 감으나 뜨나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현상은 6년 동안이나 지속되었다고 한다. 그는 이 괘도를 그려놓고 체계화하여 1885년에 ‘정역(正易)’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이렇게 출현한 새로운 괘도가 ‘정역팔괘방위도(正易八卦方位圖: 정역팔괘도)’이다.07 이 괘도의 출현으로 인해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는 ‘선천역’으로 고쳐 불리고, 정역팔괘도는 ‘후천역’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복희팔괘도에서 아버지 건과 어머니 곤이 정위인 남북으로 양음의 짝을 이루고 있다. 소녀 태는 소남 간과 마주하고, 중녀 리는 중남 감과 마주하며, 장녀 손은 장남 진과 마주하므로 서로 마주 보는 네 쌍의 괘들이 모두 음양 조화가 잘 맞다. 하지만 건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모습은 하늘은 높고 땅은 낮다는 천존지비(天尊地卑)의 엄격한 질서를 보여준다. 그리고 장녀 손과 소녀 태라는 딸들이 아버지 건의 좌우에 있고, 장남 진과 소남 간인 아들들이 어머니 곤의 좌우에 있어서 부모가 자식들의 보필을 잘 받지 못하는 모습으로 이해된다.09




  팔괘에서 건과 곤은 ‘역(易)의 문(門)’이기 때문에10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하다. 문왕팔괘도를 보면 건과 곤이 동, 서, 남, 북의 정위에 있지 못하고 건은 북서쪽, 곤도 남서쪽에 물러나 위태하게 자리하여 부모가 이미 늙어 일을 거의 하지 않고, 대신 여섯 명의 자식이 일을 하는 모습이다.11 또한 남북에서 마주하는 중녀 리와 중남 감은 음양의 짝이 맞지만 나머지 여섯 괘는 그렇지 않다. 아버지 건과 장녀 손이 마주하고, 장남 진과 소녀 태가 마주하며, 소남 간과 어머니 곤이 마주하고 있어 음양의 조화가 맞지 않는다. 이런 이유 등을 들어 문왕팔괘도는 모순과 불안 속에 상극(相克)적인 세계의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12


  세 괘도의 의미에 관해 도전님께서는 “복희 선천시대와 문왕 후천시대가 있고, 복희는 봄시대이고 문왕은 여름시대다. 우리의 진리가 정역으로 가을이다.”15라고 하시고 “앞으로는 지천태의 정역”16이라고 말씀하셨다. 복희팔괘도가 만물이 생겨나는[生] 봄시대의 이치를 가리키고 문왕팔괘도가 만물을 길러 양성하는[長] 여름시대의 이치를 보여준다면, 정역팔괘도는 인간을 포함한 만물이 성숙하여 거두어지는[成] 가을시대의 이치를 나타내며 지천태의 세계를 가리킨다. 하지만 “우리의 진리가 정역으로 가을”이라는 뜻은 우리의 진리가 김일부의 정역과 같다는 의미라고 보기 어렵다. 하나의 예를 들자면 역리(易理)에는 수가 화를 이기고[水克火] 금이 목을 이긴다[金克木]는 상극(相克)의 이치가 있다. 김일부의 논리는 수 기운이 극(極)에 이르면 화를 생하고[水極生火], 금 기운이 극에 이르면 목을 생한다는 것으로[金極生木],17 한 기운이 극한에 이르러야 상극하지 않고 생할 수 있으며 이러한 생은 한 방향으로만 가능하다. 그러나 『전경』에서는 수가 화에서 생기고[水生於火] 화가 수에서 생기며[火生於水], 금이 목에서 생기고[金生於木] 목이 금에서 생기는[木生於金] 등18 극한에 이르지 않고도 서로 쌍방향으로 생을 할 수 있다. 이렇게 태극에서 나온 음양오행의 원리 자체에서도 대순진리는 김일부의 정역과 다른 점이 발견된다. 그러므로 위 도전님 훈시는 우리의 진리가 음양 조화의 원리와 가을에 만물이 성숙하는 이치를 담고 있고 지천태의 이상적인 세상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말씀하신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또 도전님께서는 “복희선천에는 건남(乾南) 곤북(坤北) 리동(離東) 감서(坎西)였고, 문왕후천에는 리남(離南) 감북(坎北) 진동(震東) 태서(兌西)였으며, 용화후천에는 곤남(坤南), 건북(乾北), 간동(艮東), 태서(兌西)가 된다. 그러므로 용화후천에는 지천태(地天泰)가 되고, 수명도 길어지는 것이다.”19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는 남북과 동서의 각 방위에서 팔괘의 위치가 바뀌어 복희팔괘, 문왕팔괘에서 정역팔괘가 되는 것을 가리킨다. 이 훈시에는 복희팔괘가 선천, 문왕팔괘가 후천이라는 기존의 개념을 그대로 두고, 상제님 공사에 의해 열리는 후천은 ‘용화후천’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다.20 그 용화후천은 지천태의 세상임을 알 수 있다. 
  지천태는 팔괘가 사귀어 이루어진 64괘[8×8=64, 만물의 64가지 변화 패턴] 중의 하나다. 김일부는 『정역』 「십오일언(十五一言)」에서 “비왕태래(否往泰來)”라고 하였다. 즉 ‘천지비’의 운은 가고 ‘지천태’의 운이 온다는 것이다. 천지비[]는 위에 있는 하늘 기운은 양기라 가벼워 올라가고 아래에 있는 땅 기운은 음기라 무거워 내려가므로 중간에서 만날 수 없으므로 상하의 뜻이 맞지 않는 상이다. 외면[상괘]은 양으로 강건한데 내면[하괘]은 음으로 유하여 외강내유(外剛內柔)함을 나타낸다. 인간의 본성이 거부된 상태여서 사람들은 서로 마음이 통하지 않고 바른 도리를 지키려 하지만 잘되지 않으며 중요한 자리엔 소인들이 차지하고 군자들은 밀려난다고 설명된다.21 이 모습은 한 마디로 ‘막힐 비(否)’ 자로 상징된다.




  천지비에서 위아래가 도치된 ‘지천태[]’는 64괘 중 가장 이상적인 대길운(大吉運)을 뜻하는 괘이며 태평성대를 가리킨다.22 그 괘상을 보면 위에 있는 땅 기운은 음기라 무거워 내려가고 아래에 있는 하늘 기운은 양기라 가벼워 올라가기 때문에 중간에서 서로 만나 통하고 상하의 뜻이 잘 맞아 화합된다. 또 내면[하괘]은 양이라 강건하고 외면[상괘]은 음이라 유순하여 외유내강(外柔內剛)하고 군자의 도가 대세를 이루므로 ‘편안할 태(泰)’ 자로 상징된다.23 정역팔괘가 이런 지천태의 의미를 담고 있으므로 완전무결하여 우주의 이상이며 인류의 목표라고 이해되기도 한다.24 그래서 지천태는 후천의 상으로 불리는 것 같다.




  이 글 첫머리에 언급한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라는 구절에서 ‘공부(工夫)’의 의미는 학문이나 기술 등을 배우고 익히는 노력인데 마음을 수양하고 힘써 수행하는 뜻도 포함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공부하는 자들’은 방위 변동을 말하는 수행자나 종교인 혹은 역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일 수 있다. 이들이 말하는 방위가 바뀐다는 것은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역의 방위 개념은 팔괘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므로 정역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방위 변동은 표면상으로는 선천 문왕팔괘의 여름 운이 가고 후천 정역팔괘의 가을 운이 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하지만 천지만물의 이치를 상징하는 가장 기본적인 도상인 팔괘의 상징성과 ‘천지비의 운은 가고 지천태의 운이 온다’의 의미를 참작한다면, 그들이 말하는 방위 변동은 세계의 근본 질서의 변화, 세상의 총체적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공부하는 자들이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나”의 뜻은 세계의 근본 질서가 변화하여 지천태의 조화로운 세상이 와서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소원을 담은 말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방위 변동의 원인
  그렇다면 김일부는 방위도가 바뀌는 원인을 어떻게 설명했을까? 정역팔괘도를 얻게 된 사연을 통해 알아보면, 그는 어느 날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팔괘도가 전에 보지 못한 것이므로 처음에는 기력이 쇠한 탓에 헛것을 본 것으로 생각하여 음식으로 몸보신도 해보았으나 소용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주역』 책을 여러 차례 읽다가 문득 공자가 적었다고 하는 『주역』의 「설괘전(說卦傳)」 6장의 내용25이 눈앞에 나타난 괘도의 질서와 부합함을 발견하고, ‘성인이 이미 주역에 말씀하신 것이니 그릴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하면서 그렸다고 한다.26 그 내용은 “신(神)이라는 것은 만물을 신묘하게 함에 관해 말한 것이니 … 그러므로 물[감]과 불[리]이 서로 따르고 우레[진]와 바람[손]이 서로 거스르지 않고 산[간]과 못[태]이 기를 통한 연후에 능히 변화하여 이윽고 만물을 이룰 수 있다.”이다. 이 부분은 주자(朱子)조차도 『주역본의(周易本義)』에서 주석하면서 “그 뜻은 아직 상세하지 않다(未詳其義)”라며 의미를 확신하지 못했던 구절이다. 그래서 정역 연구자들은 대개 이 부분을 제3의 괘도 출현을 예고한 것으로 풀이한다.27
  이를 볼 때 그는 처음 보는 괘도를 스스로 인정할 수 있는 정당한 논리를 찾기 위해 무척 고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김일부가 눈앞의 팔괘도를 그림으로 그리자, 갑자기 공자가 나타나 자신이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었다며 장하다고 칭찬하고 ‘일부(一夫)’라는 호를 주었다고 한다.28 그래서 더더욱 그는 공자의 뜻을 자신이 체득하여 계승하고 있으며, 또 천지는 말이 없으니 자신을 통해 말한 것으로 생각했다고 한다.29 복희팔괘도와 문왕팔괘도는 선천역ㆍ후천역으로 영원히 변함없는 세상의 원리라는 게 당대 지식인들의 상식이었기에 일부 역시 팔괘방위도가 바뀐다는 건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새로운 괘도를 설명할 방법이 없자, 자신이 주역 내용에 부합하는 팔괘도를 얻게 된 것을 가을시대인 후천이 도래하는 증거로 이해한 것 같다. 그래서 『정역』의 「십오일언(十五一言)」에 “때가 이른 것이고 하늘의 명[時命]”이기 때문에 감히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팔괘도가 당시에 자신에게 출현한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 본 일부는 정역이 주역에서 그 출현이 예고된 것이므로 대자연의 순환 원리와 관련이 있다고 이해한 것 같다.30 이러한 김일부의 해석에 영향을 받은 정역 연구가 중에는 상극의 원리인 낙서[문왕팔괘]의 모순과 부조리 속에 있던 상생의 원리인 하도[복희팔괘]가 본연의 계획대로 조화와 평화의 세계를 이룰 수 있는 초석을 놓게 된 것이며, 질서정연한 하도의 완전한 구현을 보게 된 것으로 해석하는 사람들이 있다.31 그래서 봄시대의 이치가 가을시대가 되어 ‘자연히’ 실현되는 것으로 이해한다. 대표적인 정역 연구가 중의 한 사람인 이정호(李正浩, 1913~2004)도 문왕역에서 정역으로의 변화는 어디까지나 대자연의 변화에 의존하는 것이라 강조하였다.32
  그런데 앞에서 언급한 우주 계절의 기간을 계산해 보면, 복희씨 이후 문왕까지는 대략 1,800여 년이고, 문왕 이후 김일부까지 여름시대는 약 2,800여 년이다. 가을시대인 후천은 5만년이라 부른다. 이를 고려할 때 역학에서 말하는 봄시대, 여름시대, 가을시대는 우리가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규칙적으로 도래하는 계절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역의 방위처럼 위 계절 개념도 우주 질서의 변화를 표현하는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상징’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된다.
  김일부는 『정역』 「십오일언」에서 이 같은 변동의 직접적인 원인은 지극히 신령스럽고 밝은 일월(日月)의 정사(政事: 법칙이나 질서)에 의해 지구의 썰물과 밀물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33 그런데 그가 일월의 정사와 더불어 “조화주이신 상제의 말씀[化无上帝言]”34을 강조한 뜻은 일월의 변화는 우주의 주재자이신 상제의 권능이 아니면 불가능하기에 상제의 조화가 앞으로 있을 것으로 기대한 듯하다. 이후 그의 기대대로 상제님의 조화가 실지로 이루어졌다.
  상제님께서는 ‘내가 천지를 돌려놓았음’이라 하시며 방위 변동의 근본 원인을 분명히 밝히시고 후천을 실제 이 땅 위에 이루기 위해 9년 동안 숱한 천지공사를 보셨다. ‘돌려놓다’는 단순히 ‘무엇을 원래와 다르게 방향을 바꾸어 놓는다’라는 뜻이지만, 권지 1장 21절의 “선천의 모든 도수를 뜯어고치고”나 교법 3장 1절의 “하늘도 뜯어고치고 땅도 뜯어고치고” 등의 표현을 볼 때, 위 구절 맥락에서는 상제님께서 천지의 낡았거나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아 고쳐서 바꾸어 놓는다는 의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제님의 공사가 운수에 있는 일이 아님은 아래 성구에 명확히 나타난다.


상제께서 이듬해 四월에 김 형렬의 집에서 삼계를 개벽하는 공사를 행하셨도다. 이때 상제께서 그에게 가라사대 “다른 사람이 만든 것을 따라서 행할 것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야 하느니라. 그것을 비유컨대 부모가 모은 재산이라 할지라도 자식이 얻어 쓰려면 쓸 때마다 얼굴이 쳐다보임과 같이 낡은 집에 그대로 살려면 엎어질 염려가 있으므로 불안하여 살기란 매우 괴로운 것이니라. 그러므로 우리는 개벽하여야 하나니 대개 나의 공사는 옛날에도 지금도 없으며 남의 것을 계승함도 아니요 운수에 있는 일도 아니요 오직 내가 지어 만드는 것이니라. 나는 삼계의 대권을 주재하여 선천의 도수를 뜯어고치고 후천의 무궁한 선운을 열어 낙원을 세우리라” … (공사 1장 2절)




  이에 따르면 삼계 개벽 공사 자체가 ‘운수에 있는 일’이 아니므로 우리 시대에 방위가 변동되는 진정한 원인은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만약 다가오는 가을시대가 과거의 가을과 마찬가지라면 상제님의 공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천하 창생이 진멸할 수 있는 지경에 닥친 것이다. 그래서 신성ㆍ불ㆍ보살들이 구천에 계신 상제님께 하소연하여 상제님께서는 이 세상을 구하시기 위해 천지를 뜯어고치는 공사를 보셨다. 기존의 낡은 천지를 그대로 둔다면 엎어질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 볼 때 우리가 말하는 후천선경은 때가 되어 자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선천의 모든 도수를 뜯어고쳐 새롭게 만드시는 상제님의 천지공사 덕분에 오는 것이라 할 수 있다.35



나가며
  정역이 출현할 당시의 조선은 단순히 하나의 왕조가 망하는 시기가 아니라 종교와 정치, 사회적인 면에서 매우 심각한 도탄기에 있었다. 조선뿐만 아니라 세계 약소국들도 강대국의 군화에 짓밟혀 식민지로 전락하여 온갖 참혹한 침해를 입는 등 전 세계가 혼란의 도가니 속에 있었다. 이러한 극심한 혼돈 속에서 당시 고통에 빠져 있던 민중들은 세상의 원리가 극에 달하면 바뀐다고 하므로[極則反] 조만간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 조화로운 세계가 도래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염원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새 세상이 온다고 주장하는 도참사상이 더욱 유행하지 않았을까. 이러한 가운데 최제우는 1860년에 상제님의 계시를 받고 동학(東學)을 창시해서 개벽사상을 널리 펴고 있었고, 25년 후인 1885년에 김일부의 후천 정역이 세상에 나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공부하는 자들이 말하는 방위 변동’의 뜻은 후천 정역을 운운하는 사람들이 세계의 근본 질서의 변화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방위가 바뀐다고 말하며 어서 빨리 지천태의 조화로운 세상이 와서 태평성대가 이루어지길 바랐던 것 같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상제님께서는 1897년에 유불선음양참위를 통독하시고 이것이 ‘천하를 광구함에 한 도움이 되리라’ 생각하셨다고 한다.36 유불선, 음양 관련 서적뿐 아니라 좋은 세상을 염원하여 상징적인 언어로 미래 일을 예견하는 내용을 담은 참위서[비결서]까지 읽으신 것을 볼 때, 상제님께서는 대동세계, 용화세계, 선경 등 살기 좋은 세상이 열리길 희망하는 민중의 소망을 읽으신 것 같다. 얼마 후 몸소 민심과 속정을 살피러 팔도를 주유하시는 첫 길에 김일부를 만나 며칠간 머무르셨다. 이때 일부가 상제님께 호를 지어 드리면서 공경했던 것은 천상에 올라가 상제님을 뵈었던 꿈에서 천존(天尊)이 상제께 ‘광구천하’의 뜻을 칭송하고 극진히 우대하는 것을 보았기에37 상제님께서 천하를 바로잡아 구하실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정황을 보면 상제님께서는 조화롭고 살기 좋은 이상적인 세상을 바라는 민중들의 소원을 반영하여 천지공사를 행하신 듯하다. 하지만 일부는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보지 못한 채 상제님을 뵌 다음 해에 운명했기 때문에 자신이 알고 있던 지식에 근거하여 나타난 정역팔괘도를 최대한 추리하여 해석한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정역팔괘도의 출현을, 때가 되어 후천이 자연스레 도래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였지만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상제의 조화가 필수적이므로 상제께서 일월의 질서를 바꾸어 후천을 열어 주시길 기대한 것으로 추측된다. 상제님께서는 이러한 김일부의 정역을 반영하여 일부분을 공사에 쓰신 바가 있다. 대표적으로 공사 3장 28절에 있는 “기동북이 고수 이서남이 교통(氣東北而固守 理西南而交通)”이라는 구절인데, 이는 『정역』 「십오일언」에 나온다. 교운 2장 42절에는 도주님 당시에 주문으로 쓰인 운합주(運合呪)에 “건감간손곤이태진 팔위지정(乾坎艮巽坤离兌震八位之精)”이라는 정역팔괘 배열이 나온다. 하지만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상제님의 후천 공사는 정역과 다른 점이 다소 있으므로 정역 전체가 공사에 그대로 쓰였다고 보기 어렵다. 김일부가 꿈을 통해 상제님의 후천 공사가 있을 것을 알았는지는 잘 모르지만 만약 더 오래 살아서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가 『정역』의 「십오일언」에 “불초하게도 감히 어찌 이치와 수리를 헤아리오마는[不肖敢焉推理數]”이라고 겸손해하였지만, 공로는 결코 적지 않다. 공자가 이루지 못한 것을 일부가 이루었다고 한 것을 생각해 보면 정역팔괘는 일부가 깊은 학문 연마와 수련을 통해 얻은 공부의 결정체로, 「설괘전」의 6장 내용에 부합하는 팔괘 배열을 찾은 것일 수 있다.38 마치 각 종교에서 이상적인 세계를 그림이나 글로 묘사하면서 천국ㆍ천당이라 하였듯이 김일부는 역학자이기에 팔괘도로 표현하고 그에 걸맞은 세상을 후천이라 명명한 것은 아닐까. 전봉준이 거사할 때 천한 사람을 귀하게 만들어 주려는 마음을 두었기 때문에 죽어서 잘 되어 조선명부가 된 것처럼,39 그가 사후에 상제님의 공사에서 이웃 나라의 청국명부(淸國冥府)를 맡게 된 것은 정역을 창시한 공로 때문일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한글 예언서 『채지가』 「초당(草堂)의 봄꿈」에는 “대성인의 행이신가 천지도수 바꿨으니 귀신도 난측인데 사람이야 뉘알소냐 아무리 안다한들 도인외에 뉘알소냐”라고 하면서 천지도수를 바꿀 대성인이 오신다고 하였다. 후천은 자연스레 오는 것이 아니라 상제님의 천지공사에 의해 열리게 되는 것이므로 귀신도 헤아리기 어려운데 도인 외에 세상 사람들이 어찌 알 수가 있을까. 그러므로 도인들은 세상에 상제님의 천지공사를 알리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아야겠다.






01 「방위(方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02 『주역(周易)』, 「계사전(繫辭傳) 上」, “易有太極, 是生兩儀, 兩儀生四象, 四象生八卦.”
03 윤상철, 『주역 입문』 (서울: 대유학당, 2019), p.34; 한장경, 『주역ㆍ정역』 (서울: 삶과 꿈, 2001), p.17 참고.
04 「방위(方位)」,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참고.
05 『주역』, 「계사전 下」 참고.
06 중산학회 편저, 『주역과 세계』 (서울: 동신출판사, 1991), pp.74-82 참고.
07 이정호, 『정역 연구』 (서울: 국제대학출판부, 1983), pp.201-203 참고.
08 주희, 『완역 역학계몽』, 김진근 옮김 (고양: 청계출판사, 2008), pp.214-215 참고.
09 복희팔괘를 위와 같이 해석한 것은 보이지 않으나 이정호는 정역팔괘도를 설명하면서 건괘와 곤괘의 좌우에 있는 괘가 부모를 보필(輔弼)하거나 옹위(擁衛)하는 역할이라고 한다. 그래서 필자는 위와 같이 해석 하였다. 이정호, 『정역과 일부』 (서울: 아세아문화사, 1987), pp.143-145 참고.
10 『주역』, 「계사전 下」, “乾坤其易之門邪.”
11 주희, 앞의 책, pp.201-221 참고.
12 이정호, 『제3의 역학』 (서울: 아세아문화사, 1992), p.61 참고.
13 이정호, 『정역과 일부』, pp.139-145 참고.
14 이선경, 「도원 류승국의 정역(正易)과 한국사상사의 상호 매개적 인식」, 『한국철학논집』 50 (2016), p.211.
15 「도전님 훈시」(1992. 4. 9).
16 「도전님 훈시」(1989. 4. 12).
17 『정역』, 「십오일언」, “土極生水 水極生火 火極生金 金極生木 木極生土”
18 제생 43절, “水生於火 火生於水 金生於木 木生於金”
19 「도전님 훈시」(1984. 12. 27).
20 교운 2장 33절의 각도문(覺道文)에서 “오만년용화선경(五萬年龍華仙境)”에도 나타나듯 ‘용화선경’은 ‘후천선경’ 대신 쓰이기도 한다.
21 유정기 감수, 『합본 사서삼경』 (서울: 학력개발사, 1985), p.648.
22 같은 책, p.647.
23 『주역』, 「단사(彖辭)」, “泰, 小往大來, 吉亨, 則是天地交而萬物通也. 上下交而其志同也. 內陽而外陰, 內健而外順, 內君子而外小人, 君子道長, 小人道消也.”
24 이정호, 『정역과 일부』, p.143 참고.
25 『주역』, 「설괘전(說卦傳)」, “神也者, 妙萬物而爲言者也. … 故水火相逮, 雷風不相悖, 山澤通氣, 然後能變化, 旣成萬物也.”
26 이정호, 『정역 연구』, pp.201-203 참고. 「설괘전」은 공자가 성인이 역을 짓게 된 큰 의미를 설명하고, 유형에 따른 팔괘의 상징적 의의를 설명해 놓은 곳으로, 3장은 복희팔괘, 5장은 문왕팔괘를 설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7 임병학, 「일부 김항: 정역사상과 한반도 평화」, 『‘평화와 종교’ 학술대회 자료집』 (2018), p.117.
28 이정호, 「일부선생전(一夫先生傳)」, 『정역사상 연구 선집』 (대전: 평화당, 1997), p.100.
29 김일부, 「대역서(大易序)」, “夫子親筆吾己藏”; 『정역』, 「십오일언(十五一言)」, “오호라 하늘이 어찌 말하며 땅이 어찌 말하겠는가, 일부가 능히 말할 수 있음이여(嗚呼, 天何言哉, 地何言哉, 一夫能言.)”
30 김일부는 우주의 정해져 있던 프로그램에 따라 주역시대에 뒤이어 정역시대가 도래한다고 주장했다. 차선근, 「대순진리회의 개벽과 지상선경」, 『신종교 연구』 29 (2013), p.232.
31 이정호, 『제3의 역학』, pp.60-61 참고.
32 이정호, 『정역과 일부』, p.149.
33 김일부, 『정역』, 「십오일언」, “日月之政, 至神至明. … 水潮南天, 水汐北地.”
34 김일부가 상제로부터 직접 계시를 받았다는 기록은 없다. 그럼에도 일부는 『정역』, 「십오일언」에 “… 日月大明乾坤宅, 天地壯觀雷風宮, 誰識先天復上月, 正明金火日生宮. 化无上帝言, 復上起月當天心, 皇中起月當皇心, … 普化一天化翁心, 丁寧分付皇中月.”이라고 하였다. 『정역집주보해(正易集註補解)』에 따르면 이 부분은 선후천 괘가 변함에 따라 달의 질서[月政]가 달라지는 이치를 말하고, 조화옹[상제]의 뜻에 따라 선후천이 전환되는 것이며, 후천 변혁은 모두 상제께서 친히 보시고 살펴서 조화하시는 것이므로 상제의 뜻을 받들어 밝힌다는 뜻으로 해석된다고 한다. 김주성 편저, 『정역집주보해』 (부천: 태훈출판사, 1999), pp.192-199.
35 기존의 천지도수가 상제님의 공사로 인해 바뀌는 것은 『전경』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공사 3장 1절의 “뒷날 변산 같은 큰 불덩이로 이 세계가 타 버릴까 하여 그 불을 묻었노라”라는 매화(埋火) 공사, 공사 1장 11절의 “묵은 하늘은 사람을 죽이는 공사만 보고 있었도다. 이후에 일용 백물이 모두 핍절하여 살아 나갈 수 없게 되리니 이제 뜯어고치지 못하면 안 되느니라” 하시고 사흘 동안 하신 공사 등이 있다.
36 행록 2장 1절.
37 행록 2장 2절 참고.
38 《논산군지》(논산군 발간, 1981)의 「놀뫼의 전통, 정역으로 성학을 밝힌 김항」에서 “정역은 … 공자의 진면목을 찾아내는 원리로써 제시되었다.”라고 평가받기도 한다. [『정역사상 연구 선집』 (1997), p.76] 또 같은 책(p.57)의 ‘종합결론’ 부분에서는 『정역』의 학문적 위치를 “복희 문왕에 이어 공자에 의하여 집대성한 역경의 완결서이다.”라고도 한다.
39 교법 1장 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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