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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발자취를 찾아서(84) : 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
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布敎五十年工夫終畢)
글 대순종교문화연구소
1909[己酉]년 6월이 되었다. 모든 천지공사를 다 마치신 상제님께서는 ‘布敎五十年工夫終畢(포교 오십년 공부 종필)’이라 쓰신 종이를 불사르시고는, 모여 있는 종도들에게 “이윤(伊尹)이 오십이지사십구년지비(五十而知四十九年之非)를 깨닫고 성탕(成湯)을 도와 대업을 이루었나니, 이제 그 도수를 써서 물샐틈없이 굳게 짜 놓았으니 제 도수에 돌아 닿는 대로 새 기틀이 열리리라.”고 알려주셨다. 그리고 “9년간 행하여 온 개벽공사를 천지에 확증하리라. 그러므로 너희들이 참관하고 확증을 마음에 굳게 새겨 두라. 천지는 말이 없으니 뇌성과 지진으로 표명하리라.” 하시며 글을 써서 불사르시니, 갑자기 천둥이 치고 땅이 크게 흔들렸다.
稚子哭問母何之 어린아이가 울면서 어머니가 어디에 갔는지를 물으니
그리고 다시 남원(南原) 양진사(楊進士)의 만사(輓詞: 죽은 이를 슬퍼하여 지은 글)인 ‘만양상사(輓楊上舍01: 양진사를 애도하며)’를 외워 주셨다.
詩中李白酒中伶 시로 유명한 이태백도, 술로 유명한 유령(劉伶)02도
남원의 양진사란, 학문과 문장이 뛰어났으나 벼슬에 뜻을 두지 않고 가난을 즐기면서 후학 양성에만 전념했던 양석룡(楊錫龍, 1800∼1868)을 말한다. 본관이 남원이었던 그는 말년이 되어서야 제자들의 권유로 식년시(式年試)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어 서울에 올라와 살았다. 몇 년 뒤 다시 한강 이남에 있는 고향으로 내려가 머물다가 병을 얻어 세상을 뜨니 그의 제자들이 찾아와 장례를 올렸는데, ‘만양상사’는 그때 그의 제자 가운데 한 명인 영의정 김병학(金炳學, 1821∼1879)03이 쓴 애도의 시이다.04 상제님께서 류찬명에게 써 주신 두 편의 시는 모두 조만간 상제님께서 화천하실 것을 예시하시는 것이었으나, 그는 깨닫지 못하였다.
01 상사(上舍)란 진사(進士)와 같은 말이다. 02 유령(劉伶, 225?~280?). 자는 백륜(伯倫). 죽림칠현의 한 사람. 평소 술을 좋아한 나머지 ‘유령호주(劉伶好酒)’라는 말까지 생길 정도였다. 아내가 술을 너무 마시면 몸을 보전할 수 없으니 술을 끊으라고 울며 말하자, 그는 내 스스로 끊을 수 없고 귀신에게 빌고 맹세해야 비로소 끊을 수 있을 것이라 말하여 술과 고기를 준비하게 했다. 술과 고기가 준비되자 무릎 꿇고 빌기를 “한 번에 술 한 섬을 마시고, 해장술로는 닷 말만 마시게 해 주소서. 아녀자의 말은 들을 것이 아닙니다.”고 했다는 고사가 전한다. 03 김병학은 1864년에 이조판서, 1865년에 공조판서 및 좌찬성, 1866년에 좌의정이 되었으며, 1867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양석룡은 제자 김병학이 영의정이 된 그 다음 해에 죽었다. 04 김주우, 「남원(南原) 양진사(楊進士)에 대한 인물 고찰」, 『대순회보』 124 (2011), pp.108-121 참조. 05 「고부 화액」, 『대순회보』 125 (2011), pp.12-1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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