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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43년(2013)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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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고 싶은 이야기 : 할머니의 온정(溫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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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온정(溫情)

 

 

칠곡방면 교감 송상범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1년 가을 어느 날,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유원지 소풍의 일정에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때 어머니가 한동네 사는 친척집 누나의 소풍용 가방을 빌려 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집안 형편이 어려워 소풍 가방을 살 여력이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래도 신바람이 난 걸음으로 친척집에 가보니 고모가 내어주신 것은 다름 아닌 새빨간 바탕무늬에 새까만 줄이 있는 바둑판 모양의 가방이었습니다. 너무 당황하고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남자가 여자 소풍가방을 들고 다녀야 한다니…” 부끄러워 생각조차 하기 싫었습니다. 남자가 사용하기엔 좀 민망하다고 생각했지만, 누나가 사용하는 가방이고 집안 사정을 고려하여 꾹 참고 받아 들였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니 어머니께서 소풍에 가져갈 음식을 사오라고 돈을 주셨습니다. 저는 동네 가게에 가서 평소에 먹기 어려운 맛있는 것을 사왔습니다. 1, 2학년 때 어머니와 함께 가던 소풍을 이번엔 혼자 처음 가기 때문에 기대감으로 밤잠을 설쳤습니다. 이튿날 새벽부터 어머니는 김밥을 정성스레 싸서 가방에 넣어주시고 용돈 500원을 주셨습니다. 지금 기억으로는 차비가 100원 정도였던 것 같았습니다. 왕복차비를 빼면 얼음과자 한 두개 쯤 사면 남는 게 없는 그러한 금액이었습니다. 저는 유원지에서 재미있는 것도 타보고 마음에 끌리는 물건이 있으면 사려고 용돈을 더 달라고 생떼를 써 보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저 용돈 더 안주시면 소풍 안 갈 꺼예요!”라고 말한 뒤에 꾹 참고 있던 감정이 폭발하여 벽을 보고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울어도 어머니는 묵묵히 계셨습니다. 이윽고 저는 체념을 한 채 눈물을 흘리며 소풍가방을 들고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한참을 울면서 가는 데 누군가 뒤에서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 때 뒤를 돌아보니 머리카락이 백설 같으신 저희 할머니께서 황급히 저를 향해 쫓아오고 계셨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붙들어 세우시고, “애야 할머니도 네게 줄 돈이 없구나!”하시며 저의 손을 고이 잡으시고 동네 가게에 들어 가셨습니다. 할머니는 외상으로 빨간 망으로 포장된 풋사과 3개를 정성스럽게 소풍 가방에 넣어주시며 “조심해서 잘 다녀오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후 할머니는 저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 자리에서 우두커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계셨습니다. 이러한 할머니의 배려와 사랑 덕분에 눈물을 그치고 무사히 소풍을 다녀온 것 같습니다. 비록 어린 나이에 작은 위로라 할 수도 있지만, 이 작은 위로와 사랑이 제 마음 깊숙이 아름다운 생명의 씨앗처럼 길이 남아있습니다.
  이후에 할머니는 외상값을 갚으시려고 입 안의 침을 뱉어 모으는 부업을 하셨습니다. 당시엔 침을 모아 약으로 쓰기위해 업자가 껌 한 박스와 침을 모으는 통을 주고 통에 가득 모인 침을 회수해 갔습니다. 여기서 받은 품삯으로 할머니는 종종 얼음과자를 사주어 참으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납니다. 전 이때만 해도 철부지라 할머니의 사랑을 깊이 몰랐습니다. 무심하게도 그저 머리가 희고 주름 많은 연세가 지긋한 어른이 잘 해주는 것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어느덧 20살 청년이 되었습니다. 이제 철이 좀 들려 했는지, 한 번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일까?’ 하고 사색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생명의 소중함이 떠올랐습니다. 이후로는 잘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몇 달이 지나서 생각이 난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홀로 캄캄한 방에 누워 잠들기 전 문득 어릴 적 가을 소풍 때 용돈을 못 받아 슬픈 마음에 울고 있던 어린 제 모습이 뇌리에 스쳤습니다. 그 순간 세상에서 정말 혼자인 듯 외롭고, 삶에 싫증이 나고, 제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을 때, 갑자기 할머니가 나타나셔서 건네주신 풋사과 3개에 묻어나는 온정을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순간 무엇인가가 제 머리를 세게 내려치는 듯 경종이 울리면서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이 전해졌습니다. ‘아하! 바로 이것이구나!’하고,  스스로에게 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은 듯했습니다. 그 때를 떠올리면 지금도 눈가에 눈물이 맺힙니다.
  또 한 번은 할머니가 어릴적 제가 많이 아팠을 때 생사를 가늠하기 위해 저의 대변 맛을 보신 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당시에 대변 맛이 쓰면 살 것이고 달면 죽는다고 하였는데, 다행이도 그 맛이 써서 안심을 하셨다고 어머니는 회상하시듯 말씀해주셨습니다. 
  이처럼 할머니의 애잔한 사랑 앞에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감사와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이 저절로 우러나와서 마치 강력한 전기에 감전이 된 듯 온몸을 감쌌습니다. 전 비로소 작은 깨달음을 얻었답니다. 꽁꽁 얼어붙은 벙어리 냉가슴을 녹일 수 있을 정도로 할머니의 순수하고 따뜻한 정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란 것을…. 그 순간엔 이미 돌아가신 할머니가 너무도 애타게 뵙고 싶었고, 품에 안기고 싶었습니다. 진정으로 사랑에 대한 보답을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다짐했습니다. 할머니께서 주신 사랑을 교훈삼아서 앞으로 살아가면서 외롭고 슬퍼하고 마음 아파하는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서 살아가겠다고…. 이것이 할머니에 대한 보은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한편, 도에 입문한 얼마 뒤 버스를 타고 처음 가는 참배 길에 방면의 한 임원분이 “서가여래와 문수보살” 이야기를 교화 해주셨습니다.

 

“천상계에서 서가여래가 문수보살에게 주머니 하나를 주면서 인간 세상에 내려가서 가장 아름다운 것 세 가지를 찾아오라고 말씀하였습니다. 문수보살은 구름을 타고 인간계에 내려오면서 제일 먼저 들판에 아름답게 핀 꽃을 보고 한 송이를 주머니에 담았습니다. 다음으로 인가에 가서 보니 아기울음소리가 나서 가보았습니다. 아기의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운 얼굴의 모습을 주머니에 넣었습니다. 다시 나와 둘러보니 이번엔 나이든 여성의 울음소리가 들려 가보았습니다. 시집가는 딸을 보고 울고 있는 어머니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이 어머니의 모습을 담아 다시 천상으로 올라갔습니다.”

 

서가여래 앞에 가서 문수보살이 인세에 내려가서 주머니 속에 담아온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래, 주머니에 무엇들을 담아 오셨소?”
“예, 꽃과 아이의 얼굴과 어머니의 마음을 담아 왔습니다.”
“꽃은 필 때 아름답지만, 지고나면 추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때 묻지 아니한 아이의 얼굴은 아름답지만, 자라서 늙게 되면 추해집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자식을 생각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백 년 천 년 오랜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감동적인 교화를 듣고 옛 일을 다시금 회상하게 되었습니다. ‘할머니께서 내게 보여주신 온정이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구나!’ 다시 한 번 확인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전경』 교법 3장 47절에 상제님께서 말씀하신 “非人情不可近”의 성구(聖句)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추억의 한 장면이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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