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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39년(2009)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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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코너 : 지구 반대편의 그곳, 에티오피아를 다녀와서

지구 반대편의 그곳, 에티오피아를 다녀와서

 

 

영월5 방면 김연실(부경대 화상정보공학 4)

 

 

 

  모두들 기대하고, 오랜 시간 준비하였던 해외봉사를 위해 에티오피아로 떠나게 된 우리는 출발에 앞서 제1기 해외봉사단의 발대식을 가졌다. 모두들 사고 없이 다녀오겠다는 심고와 함께 읍배를 드리고 난 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공항으로 가는 동안, 난생처음 우리나라를 벗어난다는 생각에 잠시 설레기도 했지만, ‘14일 여정의 봉사활동과 종교답사를 무사히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먼저 앞섰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어느새 버스는 인천공항에 도착해 있었다. 대순해외봉사단이 세계로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 다가왔다.

  10시간이 넘는 긴 비행 끝에 에티오피아의 수도인 아디스아바바에 도착하였다. 공항에 도착하였을 때, KVO(Korean Volunteer Organization) 직원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의 환영에 장시간 비행의 피로가 순식간에 가시는 듯했다. 공항에서 KVO 직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우리가 일주일 동안 봉사할 KVO 에티오피아 지부로 향했다. 그곳까지는 차로 50분 정도가 소요된다고 했다. 가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내가 내가 상상하고 있던 아프리카와는 다른 모습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곳에는 수많은 자동차들과 현대식의 세련된 건물들, 사람들의 옷차림, 그리고 무엇보다도 에티오피아의 기후에 더욱 놀라웠다. 낮에는 햇빛이 좀 강렬하긴 했지만, 우리나라의 여름과 거의 비슷한 느낌이었다. 아침과 저녁은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처럼 쌀쌀해서 비가 자주 내리는 지금과 같은 우기에는 긴 소매 옷을 꼭 입어야 했다. 덥기로 소문난 아프리카에서 추위에 떨다니, 참으로 우습고도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에티오피아는 4계절이 거의 지금과 같은 날씨라고 들었고 6~8월이 우기이며, 그 외는 거의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가 지부에 도착했을 때 아이들은 이미 집으로 돌아간 후였지만, 그들이 뛰어노는 소리가 귓가에 생생히 들리는 듯했다. 이곳에는 두 분의 수녀와 한 분의 스님이 계셨다. 종교를 초월해서 남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에 봉사의 참의미가 있다는 것을 실감케 했다. 천천히 급식장과 사무실, 그리고 직원들과 수녀들이 직접 일군 밭 등 주변 환경을 둘러보았다. 그러면서 ‘여기가 내일부터 아이들과 함께 지내게 될 곳이구나. …’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 아이들을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아침 일찍 저절로 눈이 떠졌다.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모든 준비를 마치고, KVO 지부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하자, 수백 명의 아이들이 정문 앞에서 환영의 노래와 장미꽃 한 송이로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그 순간의 감격은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아이들과 가슴 벅찬 첫인사를 하고 나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봉사단원 모두가 동심의 세계로 돌아간 듯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놀고 있었다. 그쪽 아이들이 하는 놀이를 우리가 배우고, 우리들의 놀이를 그들에게 가르쳐 함께 어우러지는 동안 우리는 점점 하나가 되어 감을 느낄 수 있었다. 서로 다른 문화, 환경, 언어, 피부색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셋째 날부터는 준비해 온 매뉴얼을 토대로 실내와 실외에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에 따라 A, B팀으로 나누었다. 아이들도 2개조로 나누어 각 팀에서 교육을 한 후, 조를 바꾸어 다시 교육하는 방법으로 진행하였다. 내가 속한 팀은 실내 교육을 맡은 ‘B팀’이었다. 그런데 예상보다 교육을 진행할 장소가 많이 협소하였다. 그래서 교육기간 내내 행여나 아이들이 다치지나 않을까 노심초사하면서 프로그램을 진행해야만 했다.

  아이들과 한 첫 번째 프로그램은 ‘청소년 체조’였는데, 처음에는 우리가 가르친 청소년 체조의 동작들이 평소 아이들이 접해보지 않았던 동작이라 그런지 어려워하는 듯했다. 100명이 넘는 아이들 앞에서 시범을 보여야 하는데, 평소 낯을 많이 가리고 수줍음을 많이 타는 나에게는 무척이나 힘든 과제였다. 하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힘든 내색 없이 열심히 하는 팀원들에게 누를 끼칠 순 없는 일이었다. 마음을 다잡은 나는 부끄럽다고 느낄 때마다 오히려 동작도 더 크게 하고, 익살스런 구령도 더 크게 내질렀다. 아이들이 이런 내 마음을 읽은 것일까? 처음에는 관심 없어 하던 아이들도 흥미를 느끼는 듯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특히, 우리가 청소년 체조 중간에 그들의 언어로 ‘최고!’라는 의미의 ‘꼰조! 꼰조!’를 구령으로 넣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시간가량 열심히 체조를 하고 난 후, 아이들도 우리들도 모두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아이들은 오히려 우리에게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얼굴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아주기도 하고, 흙먼지가 잔뜩 묻은 옷을 털어주기도 했다. 작은 것이지만, 우리를 배려해주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에 내 마음까지 맑아지는 것 같았다.

  교육 둘째 날, 오전에는 농가방문 일정이 있었다. KVO는 10여 곳의 농가를 선발하여 지원을 하고 있는데 그중 가장 성공적인 사례로 꼽히는 ‘골드맨’씨의 농장을 방문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곳으로 가는 길은 마치 우리나라 예전 시골길을 연상케 했다. 출렁출렁 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그 기분이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마침 그곳의 장날이라서 길에는 당나귀에 짐을 싣고 장터로 향하는 마을 주민들을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약 2시간 정도를 걸어야 장터에 도착한다고 했다.

  우리는 다시 발길을 재촉하여 골드맨씨의 농장에 다다를 수 있었다. 이 농부는 작년 KVO측으로부터 100kg의 씨앗을 지원 받아 농업교육을 받은 후, 올해 처음 지원받은 곡식의 18배에 달하는 1,800kg이라는 놀라운 수확성과를 거두었다. 최고의 수확성과를 거둔 부상으로 받은 염소를 우리들에게 보여주며 자랑스러워하였다. KVO의 지원을 받기 전에는 어려운 형편이었지만, 현재는 더 이상의 지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한순간 배를 채울 음식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도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그들이 자립하여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도 효율적인 교육을 해주는 것이었다. 그런 측면에서 KVO의 지원방식과 골드맨씨의 사례는 다른 NGO단체들과 가난에 시달리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 같았다. 농장을 구경하고 난 뒤, 골드맨씨의 집을 둘러보았다. 도착하니 그의 부인과 아이들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부인은 우리들에게 에티오피아의 전통음식인 ‘인젤라’를 대접해 주었다.

  골드맨 가족과의 짧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는 이 지역의 식수를 대주고 있는 그린 레이크(Green Lake)로 향하였다. 이곳은 마을 사람들이 식수로 이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가는 길이 무척 위험해서 기력이 쇠약한 노인들은 이곳까지 물을 뜨러 가지 못해 죽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했다. 길이 굉장히 가팔라서 젊은 사람들도 물을 뜨러가다가 죽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게다가 그 물도 사실 바로 식수로 이용할 수 없는 흙탕물이라고 했다.

  골드맨씨와 그곳 주민들은 과거 물 부족을 정부에 호소했지만 아무런 도움도 못 받았다고 했다. 현재까지도 이런 물 부족은 해결되고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들은 다른 것은 도움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만, 물 만큼은 절실하다고 말했다. 도시와 그리 멀지 않은 마을이었는데도 심한 물 부족에 고생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무척 의아스럽기도 했다. 사실 처음 에티오피아에 와서 마실 물도 부족하지 않고, 숙소의 수도꼭지에서는 물이 콸콸 잘 나와서 물 부족이라는 것을 체감할 수 없었는데, 이 마을을 방문하고 나서 이곳 사람들에게 물이 정말 절실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오전의 일정을 마치고, 오후에는 전날에 이어 다시 교육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날 프로그램은 앞서 있었던 프로그램과는 다르게 교육적인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저학년들은 세계지도 퍼즐 맞추기를, 고학년들에게는 만국기 그리기 시간이 있을 예정이다. 세계지도 퍼즐과 만국기 그리기는 세계 속의 에티오피아와 세계를 인지할 수 있는 넓은 시야와 사고방식을 가지게 하기 위한 아주 작은 선물이었는데, 그 작은 것에도 마냥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소박하고 순수한 모습을 보니 가슴이 벅차 올라왔다. 그리고 분명 미흡한 점도 있었고 따분한 면도 있었을 텐데 내색하지 않고 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에 참 뿌듯하고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왔다. 에티오피아에서는 하루 걸러 전기가 들어온다. 이날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날이었다. 전기제품은 물론, 전등조차 들어오지 않았다. 우리가 있는 숙소는 그나마 발전기를 돌려서 전등이라도 켤 수 있지만, 보통의 가정들은 그냥 어둠속에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머리를 감는 도중에 물이 갑자기 끊겨서 허둥지둥 생수로 머리를 헹구는 해프닝도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에티오피아의 불편한 실상을 직접 겪어보고 그린 레이크에서 느꼈던 물에 대한 절박함을 다시 한번 직접 체감할 수 있는 계기였다.

  교육의 마지막 날. 오전에는 극빈층 어린이들의 가정방문을 했다. 내가 방문한 곳은 KVO 지부에 오는 아이들 중 극빈층에 속하는 두 아이의 집이었다. 이곳 에티오피아에서는 몇 년 전 내전으로 인해 아버지가 없는 가정이 대부분이었고, 지부의 아이들 또한 거의가 그러했다.

  우리 팀이 방문하였던 곳 중 기억에 남는 곳은 축구선수가 꿈이라던 아이의 집이었는데, 그 아이는 부모님이 다 돌아가시고 누나와 함께 살고 있었다. 생계는 두 형이 노동을 해서 간신히 이어가고 있었는데 그때그때 버는 것에 따라 하루에 한 끼를 먹을 수도, 두 끼를 먹을 수도 있다고 했다. 집은 5명이 나란히 누워도 빽빽할 만큼 좁은 공간이었고,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대낮에도 집안은 어두웠다. 그리고 아이 할머니는 부엌에서 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생활이었다. 곧 더욱 충격적인 사실을 접했다. 이 아이의 가정환경이 다른 팀들이 방문한 가정보다 그나마 괜찮은 가정이었다는 것이다. 전날의 농장 방문과 오늘의 가정 방문을 통해서 지금 겉으로 보여 지고 있는 모습들이 에티오피아의 실상이 아니고, 오히려 그 이면에 힘들고 어려운 점이 더 많으며 지속적으로 우리가 할 일이 많구나 하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오후가 되어 우리는 다시 KVO 지부로 향했다. 아이들은 아침 일찍부터 와서 우리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예쁜 눈망울과 우리를 향해 환히 지어주는 미소를 보고 있으니 나도 덩달아 웃음 짓게 되었다. 하지만 이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서도 이렇게 밝게 웃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이내 다시 기분이 울적해졌다.

  이날은 프로그램을 진행함에 있어, 특히나 협소한 장소 때문에 교육 직전까지 회의가 끊이지 않았다. 결국 마지막 대안으로 명랑 운동회라는 주제에 걸맞지 않게 ‘주걱으로 축구공 릴레이’만 진행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질서 유지가 잘되고 정돈된 모습이었다. 계획하고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인원 속에서 질서가 잡혀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힘들긴 했었지만 그동안 해왔던 교육의 효과를 본 것 같아 뿌듯하기만 했다. 그리고 프로그램에 잘 따라주는 아이들이 마냥 대견스러웠다.

  교육 팀들이 이렇게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동안, 임원분들로 구성되어 있는 C팀은 아이들을 위해 건물 페인트칠, 우물펌프 수리, 그리고 지부 사람들이 그렇게 소망하던 축구 펜스를 멋지게 만들어 주셨다. 무더위 속에서도 직접 나서서 힘든 작업을 묵묵히 하신 C팀 임원분들. 순간순간 지쳐서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힘든 작업을 하시면서도 아이들에게 항상 환히 웃어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더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드디어 마지막 날, 모든 봉사단원들이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 놀 수 있도록 ‘스포츠의 날’을 열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손수 그렸던 만국기들을 운동장에 걸어 주었다. 한결 ‘스포츠의 날’ 분위기가 풍기는 것 같았다. 림보, 줄넘기, 미트차기, 제기차기, 수건돌리기, 캥거루 뛰기, 모여서 춤추며 놀기 등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진행하면서 아이들과 다 같이 어울리고 신나게 뛰어 놀면서 점점 동화되어 갔다. 그리고 오후에는 봉사단원과 아이들과의 축구 경기가 있었다. 아이들은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모두들 하나가 되어서 축구팀을 응원하고, 또 누가 골을 넣기라도 하면 모두들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기뻐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아이들과 이별해야 될 순간이 왔다. 그렇게 활기차고 떠들썩하던 분위기가 갑자기 숙연해졌다. 교무부장, 기획부장의 인사에 이어 아이들이 우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아이들과 헤어질 때, 봉사단원들과 아이들 모두 눈물을 흘렸다. 내일 돌아간다는 소리에 아이들 두 명이 나를 몰래 불러서는 아끼는 듯이 꽁꽁 싸놓은 귀걸이와 반지를 선물이라며 전해주었다. 그리고 아이들과 주소와 전화번호를 서로 교환하였다. 그런 아이들에게 나는 아무것도 줄 것이 없다는 생각에 그저 아이들의 손을 잡아주고 꼭 안아주기만 했다. 그러면서 아이들의 눈물을 보는 순간 아이들에게 좀 더 다가가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아쉽고 후회가 된다.

  상상속의 아프리카는 멀고 먼 다른 세계인 것 같았는데, 짧지만 7일 동안 에티오피아를 경험하면서 이 땅이 아주 가깝게 여겨졌다. 그리고 전혀 우리와 다른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지구 반대편의 대한민국이라 느낄 만큼 비슷한 점이 많았다. 오히려 그들이 우리들보다 순수하며 깨끗한 영혼을 지니고 있는 듯했다.

  에티오피아의 아이들은 항상 우리들을 에워싸고 우리들의 손을 꼭 잡고 곁에 붙어 있었다. 그리고 지부에서 제공되는 점심이 아이들이 하루에 먹는 단 한 끼의 식사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과 단 몇 분간의 시간을 더 보내기 위해서 급식을 포기하기도 하고, 아끼고 아끼던 꼬질꼬질 때 묻은 캐러멜을 우리에게 내밀기도 했다.

  이런 아이들의 모습을 뒤로 하고 조금은 무거운 마음으로 첫 해외봉사를 다녀왔다. 대학생활을 마무리하는 나에겐 이번 해외 봉사가 대학 4년 동안 한 일 중 가장 뜻 깊고 의미 있는 일이 아닌가 한다. 더욱이 책으로만 접하고 머리로만 생각하던 상제님의 진리를 실천하고 마음 깊이 되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더욱 의미가 깊다. 이번 봉사를 다녀오고 나서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에게 이제는 대순진리회에서 수도를 한다는 사실을 떳떳하게 밝힌다는 것이다. 상제님의 일이 어떤 것인지, 또 얼마나 자랑스러운 것인지 몸소 체험함으로써 그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부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아울러 제1기 대순해외봉사단으로서 참여할 수 있게 해 주신 종단의 배려에 감사드리고 무엇보다도 상제님의 크나큰 덕화에 무한히 감사드린다. 아울러 도(道) 안의 크고 작은 일에 쓰임이 되는 사람이 되어 그 덕화를 다른 사람에게 전해줄 수 있는 수도인이 될 것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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