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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15년(1985)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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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단 : 出世 街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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出世 街道


眞法이 출현하는 곳에 살길이 열린다



강근희<대진고 교사>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떠드는 出世란 과연 무엇일까. 出世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며 쟁취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사리 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장애물과 환경에의 도전을 받으며 그것을 克服하는 부단한 노력을 하게되는 것이다.

  우리는 먼저 出世라는 말의 진정한 뜻을 알아야 하며 또 그 길을 바로가야 된다고 생각한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처럼 물론 어찌하든 가기야 가겠지만 이런식의 사고방식은 현대사회에서는 실로 염려스럽기만 한 것이다. 지금길, 에움길 험한길등 수많은 길(道) 중에서 올바른 길을 택한자가 목적지에 먼저 안전하게 도달하듯이 출세하는 데는 반드시 正道와 正行이 따르게 마련이다. 속된 길로 접해 가다가는 出世는커녕 末世의 깊고 깊은 수렁으로 곤두박질하는 비극을 감수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出世란 문자 그대로 세상에 나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누구나 이세상에 나왔는데 (出生) 또 出世하라고 강조하고 달성하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天地間에 빈말이 없고 법이라 출생은 父母로부터 태어나는 것이요. 出世는 스스로 노력해서 새 세상을 움켜잡아 새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래서 출생은 두손만 불끈 쥐었을뿐 쥔 것이 없으니 – 出世 못했으니-인생길을 갈때는 그 두손을 펴고 가는 것이다.

  사람이면 모두 환경의 지배를 받고 적응하면서 나름대로의 삶을 創出하여 人生이라는 결실을 有形 無形으로 나타내게 된다. 환경은 자연의 구성이요 자연은 곧 天地의 所産이오 천지는 宇宙이니, 宇宙는 곧 마음(나)의 집이오 거울인고로 내가 바로 小宇宙다. 사람의 마음이 변하고 바뀌는 것은 자연 즉 우주의 변화에 의한 것이고 이 변화는 氣의 一定한 運行法則에 基因한 것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속은 모르고 사는 까닭은 자연 즉 우주의 본체를 모르기 때문이다. 「말은 마음의 외침이요, 행실은 마음의 자취로다 」-전경 교법1장 11절-에서 알수 있듯이 그의 言行을 보면 그 마음을 알수 있고 天地의 뜻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말이 곧 하늘의 뜻이라 民心이 天心이요, 天心이 民心이라고 했다.

  오늘날 모든 사람들이 末世다, 죽겠다, 미치겠다, 끝내준다, 막가는 인생이다 하고 서슴지 않고 외쳐대고 있는데 이 말들 속에 천지의 뜻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으니 참으로 말은 무섭고도 두려운 것이다. 말대로 모두 이루어지는 것이 세상사이다. 말의 뜻을 바로 알고 옳게 써야 한다. 末世다 하는 것은 세상이 끝이났다 라는 것이니 創世記가 있었기에 末世가 있고 시작이 있었으니 끝이 나야 하는 것이다. 또 이판 사판이란 세속말의 사판은 死判인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판국은 死判 즉 죽는 판국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모두가 죽겠다고 절규하는 것이오. 그래도 살려하니 미칠지경이오 윤회도 없는 막가는 人生이 되고만 것이다.-도인(道人)은 생판(生判) 딴일을 하고 있으니 우려 할 것은 없다- 그러하기에 出世하라 하고 출세해야 된다 출세하고 보자는 말이 나오는데 진정한 意味의 出世는 이 死判에서 저 生判을 얻는 것이다. 흔히 權勢와 名譽와 財富를 얻는 것을 出世라 하는데 그건 本意인 宇宙次元에서의 새로운 生을 모르기 때문에 작은 사회에서 작은 일에 盜用해 썼을 뿐이다. 宣言後行이라 하듯이 일이란 말로써 시작도 되고 이루기도 하는 法이 말들은 모두 제때가 되면 어김없이 無爲化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出世하며 그 길은 무엇인가? 길은 곧 道이니 得道하면 된다. 生한다. 나온다는 이 出字는 山이 山을 받치고(扶) 있는 모습이니 兩山이요 山이 山을 떠 받든 곳을 찾아야 되는데 出世는 人間이 하는 일이지 山川草木이나 짐승이 하는 일이 못되니 부질없이 깊은 산속을 千年을 헤매도 虛事요 出世의 兩山은 人山이라는 점을 깨달아야 함을 銘心할 일이다. 길은 먼데 있지 않고 가까운데 있는 것이 眞理가 아닌가. 또 時俗말에 줄을 잘 잡아야 출세한다고 하는데 줄, 사람줄(人脈) 씨줄 날줄에 이르기까지 많은 줄이 있다. 이 많은 줄 가운데 표준의 줄은 씨줄과 날줄을 일컫고 이것을 經度와 緯度라고 한다. 경도와 위도를 경위라고 하며 경위가 곧 道인 것이다. 이 경위에서부터 모든 환경이 決定되고 環境은 生活을 수도 지배하며 법도가 서게 되니 경위는 도요 법이요 법은 질서를 바로 잡는 것이다. 경위를 찾지 못하면 좌표를 잃게 되니 법체계는 어지러워지는 것이다. 

  이 세상에 경위는 있되 따져 밝히려 하지 않고 법은 있되 잘 지켜지지 않으니 난법이다. 따라서 질서가 바로 잡혀지지 않고 달이 갈수록 광폭해지는 범죄에 속수무택일 수 밖에 없다. 경위는 바로 하는 곳에 법이 있고 법 있는 곳에 질서가 잡히고 질서가 확립된 곳에 진법이 있고 진법이 출현하는 곳에 출세할 수-살수(생활)-있는 곳이다.
  전경 교운 1장 42절에 보면 「나의 일이 장차 초장봉기와 같이 각색이 혼란스럽게 일어나되 장차 진법이 나오리라」고 하셨으니 진법을 찾으면 출세한다. 경위를 말하면 수긍하고 고쳐나가면 상등인이요 반신반의하면 중증인이오 욕하고 미쳤다 하면 하등인이니 출세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상제께서 벽을 향하여 누우시더니 갑자기 종도들에게 가라사대「이제 온누리가 멸망하게 되었는데 모두 구출하기 어려우니 어찌 원통하지 않으리오 하시고 크게 슬퍼 하신 것」과 같이 많은 창생이 구출 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사람을 출세시켜 주는 것만큼 큰 덕이 어디에 있겠는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 주는 덕을 펴나가는 것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할 수 있는 가장 값지고 보람있는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모두들 귀가 막혀서 올바른 말, 사는 말은 들리지 않고, 입은 탁해서 남 잘되게 하는 말에는 궁색하고 욕하는 데는 후하며, 배가 탁해서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가슴은 탁해서 정의가 메말랐으니, 또한 서글픈 현실이 아닐 수 없다. 이는 인간의 도리와 본연의 자세를 망각하고 물질적인 욕구만을 추구하는 데서부터 마음이 탁해졌기 때문이다. 마음이 탁하니 바른 말은 귀에 거슬리고, 비위에 안맞으니 받아 들일 수 없는 일이다. 이제 밝은 세상이오니, 마음과 몸을 바르게 하고 출세가도를 힘껏 달려야 한다. 허영과 외식을 버리고 참된 삶의 출세를 위해 온갖 정성을 다 바쳐야 한다.

  사후에 무슨 일을 이루려 하는가? 영겁의 우주속에서 잠시 왔다가는 인생을 한시인을 헛되게 보내서는 안된다.
  이제 인간이 나고부터 꿈꿔 왔던 대망 낙원 신선의 세상이 이루어지게 되니 여기에 살아서 가는 것이 또한 진정한 출세이다. 「후천에는 사람마다 불노불사하는 장생을 얻으며 궤합을 열면 옷과 밥이 나오고 만국이 화평하여 시기, 질투와 전쟁이 끊어지리라」<예시 80절> 하셨으며 또한 「앞으로 오는 좋은 세상에서는 불을 때지 않고서도 밥을 지을 것이고 손에 흙을 묻히지 않고서도 농사를 지을 것이며 도인의 집집마다 등대한개씩 세워지리니 온 동리가 햇빛과 같이 밝아지리라 전등은 그 표본에 지나지 않도다. 문고리나 옷걸이도 황금으로 만들어질 것이고 금당혜를 신으리라」<공사 1장 31절> 하심과 같이 이렇게 좋은 세상이 도래하는데 굳이 사양할 이유가 무엇인가 「걱정도 팔자」라지만 이런 좋은 세상에서 사는 것이 반갑지 않고 싫다면 그걸 죄없는 팔자로 돌려 자책하지 말라. 자연은 말 없이 흘러 맥을 이루고 대의를 밝히니 자연에 역행하는 것이 바로 죄요 역천이요 사망의 길로 스스로 치닫게 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옛 성인 선각자들은 이 선경세계가 오는 것을 알았기에 모든 전경 문헌 비결 구전등으로 사는 길을 가르쳐 놓았으니 출세하고자 하는 자와 삶을 구하려는 자는 눈을 부릅뜨고 귀를 밝혀 마땅히 도를 찾을 일이며 정심수도하여 대명일월 밝은날 모두 출세하여 후천의 무궁한 영광과 복을 함께 누리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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