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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4년(1994)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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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문단 : 제주도연수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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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연수를 다녀와서

           

                       

조은희 <평도인ㆍ잠실2 방면>

 

  늦여름에 도문에 들어와서 어느새 벌써 늦봄이다. 어느 때 보다도 시간이 빠르게 지나갔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면서 나름대로 수도생활을 한다고는 했지만 도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던 나에게 결과는 뻔한 것이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점차 의욕마저 잃어가 주춤하고 있었던 상태였다. 그런 나에게 생각지도 못했던 제주도연수는 대전환의 계기가 되었다.

  대순의 도만큼 확실한 진리가 없고 내가 마음을 열어서 수도를 해 나가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준 기회였다.
  오전에는 교화를 듣고 오후에는 제주도의 주요 명승지를 관람했다.

  제주도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보고 깨달은 것도 많지만 백 명이 넘는 개개인이 한 몸이 되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에서 연수생들의 도심(道心)을 발견할 수 있었다.

  30명 정도가 한조가 되어 인솔하시는 분의 뒤를 쫓아가며 하나라도 더 들을려고 하는 정성스런 태도에서 진리를 찾고자 하는 진솔하고 순수한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러한 분위기 속에 내가 끼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몸이 비록 목적지에 도달해 있지는 않지만 마음은 이미 가 있다는 것을 제주도를 가본 분들이라면 누구나 체험했으리라고 생각된다.
  제주도에서 인상 깊었던 장소는 항몽유적지, 성산일출봉과 목석원이었다. 항몽유적지는 삼별초가 최후까지 몽고에 대항하여 항쟁한 곳으로 의(義)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분들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그곳에 가니 갑자기 채지가 중에「무섭더라 무섭더라 의리 의자 무섭더라」란 구절이 떠올랐다. 그러자 의를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리신 분들께 고개가 절로 숙여질 수 밖에 없었다. 그 분들께 그 의리를 여기에 와 있는 사람들에게 깨닫게 해주고 행으로 옮길 수 있게 해 달라고 마음속으로 빌며 자리를 떠나왔다. 

  성산일출봉을 올라가다 보면 동물의 형태를 하고 있는 여러가지 바위를 볼 수 있는데 양의 형상을 하고 있는 두 바위만을 빼면 모두가 하늘로 승천하려는 모양임을 알 수 있다.

  양위 상제님께서 양띠로 이 세상에 강세하신다는 것을 자연은 오래 전부터 밝혀 놓고 있는 것이다.

  몇천 몇백년전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자연에서 대순의 도를 펼쳐놓았다는 것을 발견하면 이 도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히 알 수 있게 된다.
  제주도는 동서로 72Km이고 남북으로는 36Km 전체는 2백 40Km로서 72는 72둔법을 36은 후천 3백 60일을 의미하고 2백 40은 하늘의 24방위 땅의 24절후와 일치된다.

  한라산의 높이는 해발 일천구백오십미터이다. 1950이란 숫자를 합쳐보면 15라는 숫자가 나오는데 15진법을 나타내 주는 것이고 이를 한글로 풀이해 보면 "한번 구경오십시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제주도에 있는 천제연 폭포, 천지연 폭포, 정방 폭포가 모두 서귀포에 위치하고 있다. 서귀포는 서방 후천선경으로 갈려면 물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뜻이다. 서귀포 이외에는 폭포가 없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것이 너무나 당연한 이치로 받아들여질 수 밖에 없었다.
  목석원에 가면 갑돌이와 석순이 부부얘기가 쓰여져 있다. 바로 도안에서의 선각과 후각의 관계에서 서로 어떻게 지내야 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듯 했다.

  내용을 간단히 요약해 보면 갑돌이와 석순이가 결혼을 해서 서로를 위해주며 살다가 삶이라는 현실에 부딪히고 게다가 아이까지 얻게 되자 의지력이 약한 갑돌이가 먼저 마음을 뒤로하고 자신만을 돌보는 사람으로 변해 버렸다. 그러나 석순이는 그런 갑돌이의 태도 변화를 원망하지 않고 그를 이해하고 포용하려고 노력한 정성 끝에 비로소 갑돌이는 예전의 착한 사람으로 돌아와 행복하게 살았다는 얘기다.
  여기서 볼 때 석순이는 바로 선각자 분들이 후각을 대하는 마음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보여진다. 선각자 분들은 상생의 이치로 항상 베풀어 주시고 기다려 주신다. 참으로 고마우신 분들인데 후각은 이를 망각하고 내가 서운하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만 생각하게 된다. 가끔 잘못하는 행동이 있으면 꾸중을 듣는데 그것이 나를 위해 해주시는 말씀인데 꾸중 자체만으로 서운한 마음이 앞서게 된다. 나를 올바른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인줄 모르고… 꾸중이 나를 변화시켜 모난 부분을 많이 깎아 내리게 만들었다.
  실제로 제주도에 와서 많은 사람들과 생활해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 정도 둥글어져 있는 것을 발견하자 예전에 들었던 야단이 갑자기 듣고 싶어졌다. 선각 분들이 하시는 꾸중은 위하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할 수 없는 것이다. 

  길고도 짧았던 시간 동안에 서로 모르는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보는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행동할까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잘못된 나의 생각이었다.
  저녁에 주어진 자유시간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마음을 열고 대화를 해 보니 낮에 본 그 사람은 온데 간데가 없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을 보고 내 임의대로 잘못된 판단을 내렸던 것이다.『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고 배울 점이 있다는 말이다.

  나의 사고방식에 맞으면 옳고 맞지 않으면 그르다는 식의 생각이 얼마나 큰 오해를 부를 수 있는 것인가를 깨닫게 되었다. 

  상제님의 천지대도(天地大道)를 행한다고 하는 내가 자기소도(自己小道)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남을 대면하거나 어떤 사물을 볼 때 한 단편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넓은 마음을 가지고 광범위하게 볼 줄 아는 시야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제주도의 자연경관 관람과 사람들과의 어울림에서 얻어지는 경험적 깨달음도 많았던 반면에 시간시간에 들었던 교화도 그에 못지않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중에서 가정 기억에 남는 것은 대순진리는 해원상생(解寃相生)이라고 한자한자 강조하신 말씀이었다.

  해원상생이란 천지 안의 모든 사람들이 화평스러이 서로서로 잘 살고 공경하고 평등하게 살자는 뜻이다.

  수도를 해나가는 과정에서 해원상생이라는 진리를 자신의 몸이 피곤하다던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맞지 않는다고 하여 피해버리고 행하지 않는 것을 스스로가 많이 겪어왔다.

  상생이 아닌 상극의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상생이란 것은 타인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서 시작된다고 본다. 앞으로는 이러한 깨달음이 단지 깨달음으로 그치지 않고 실천될 수 있도록 나 자신 스스로가 노력해야겠다.

  마지막으로 제주도를 가보지 못한 분들이 계시다면 도(道)가 살아 숨쉬고 생동하고 있는 곳의 공기를 마셔보고 함께 생활을 해 보며 느껴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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