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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4년(1994)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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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수 신명의 생애 : 등우(鄧禹) 神明열전

角 별을 관장하는

등우(鄧禹)신명 열전 

 

 

「요(堯) ∙ 순(舜) ∙ 우(禹)임금은 후덕(厚德)함으로 나라를 일으켰다.」
  등우는 명철한 지혜와 깊고 원대한 생각으로 왕을 보필
  광무제는 등우의 덕으로 천하(天下)경륜


         

       
  등우(鄧禹)의 자(字)는 중화(仲華)로, 남양(南陽) 신야(新野)사람이다. 열세 살에 시경(詩經)을 암송했고, 장안(長安)에서 공부했다. 그때에 광무(光武) 또한 장안에 유학와 있었는데, 비록 우(禹)가 나이는 어렸으나 광무가 범인(凡人)이 아님을 알아보고 그와 가깝게 지냈다. 그 후 몇 년이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한(漢)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경시(更始)가 즉위했는데, 호걸들이 대부분 등우를 천거했으나 우는 경시를 좇지 않았다. 그 후 광무가 하북(下北)에 군사를 모아 정돈시켜 놓았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 책략을 품고 하수(河水)를 건너 복(僕) 땅에 이르렀다. 

  광무가 그를 보고 매우 기뻐하여 말하기를『나는 마음대로 벼슬을 줄 수가 있습니다, 선생께서 멀리서 오셨으니, 정녕 벼슬하기를 원하십니까?』 우가 답하길『원치 않습니다.』 광무가 말하길『그렇다면 무얼 원하십니까?』 우가 답하길『공께서 훌륭하신 덕(德)을 사해(四海)에 펼치심에 제가 미력이나마 보태어 공명을 죽백에 드리우기를 바랄 따름입니다.』 광무가 웃으며 함께 머물면서 담소를 나누었다. 우가 책략을 바쳐 말하길『경시가 비록 관서에 도읍을 정하였지만, 지금 산동지역은 아직 불안하고, 적미(赤眉)와 청독(靑犢)의 무리는 한번 모였다하면 수만 명이 움직이고, 삼보(三輔)는 명분을 빌어 자주 군중을 모으고 있습니다. 경시는 이제껏 싸움에 져 본 적이 없어 교만하여 정책을 스스로 듣고 결정치 아니하고, 장수들은 모두가 용렬한 이들이 군사를 일으킨 것이라 뜻은 재물에 있으면서 위력 사용하기를 다투어 조석(朝夕)으로 스스로 좋아할 따름이오, 진실 되고 명철한 지혜나 깊고 원대한 생각을 가지고 임금을 보필하고 백성을 편안케 하고자 하는 이들은 없습니다.
  지금 천하는 분열되어 흩어져 그 형세를 가히 짐작할 수 있나니, 때문에 공께서 비록 제후로써 천자(天子)를 보좌하는 공을 세우신다해도 그 공이 오히려 성립되지 않을까 두렵나이다. 지금의 계책으로는 영웅들을 맞아들여 민심을 편하게 함에 힘쓰시어 고조(高祖:始祖)의 업적을 세우셔서 백성들의 목숨을 구하시는 것이 제일입니다. 현재 공의 신분으로서는 천하를 염려하신다해도 평정할 수가 없습니다.』광무가 듣고 크게 기뻐하여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등우를 등장군(鄧將軍)이라 부르게 하고, 항상 그를 막사에 머물게 하여 그와 더불어 계책을 의논하고 결정했다.
  왕랑(王郞)이 군사를 일으켰다. 광무는 계땅으로부터 신도(信都)로 와서 등우로 하여금 결사대 수천 명을 뽑아 직접 그들을 거느리고 별도로 낙양을 공략하도록 했다. 그 후 우가 광무를 좇아 광아에 이르렀는데, 광무가 성의 누곽에서 머물면서 지도를 펼쳐놓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우에게 말하길『천하에 제후국들의 형세가 이와 같으니, 나는 이제야 그 중의 한 모퉁이를 얻었오. 일전에 그대께서 나의 신분으로 천하를 도모하면 평정하기에 부족할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이제 어찌해야 되겠오?』우가 답하길 『오늘날 세상이 소란하니 백성들이 훌륭한 임금을 고대하는 것이 마치 어린아이가 자애로운 어머니를 그리워하듯 합니다. 옛날의 요·순·우(堯·舜·禹)나 탕·무(湯·武)께서 나라를 일으키실 때는 덕이 두터운가 아닌가에 그 성패가 달려 있었지 차지한 땅이 큰가 작은가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이 말을 들은 광무가 기뻐했다. 때로 광무는 우를 찾아가 장수들을 임명토록 했는데, 우가 천거하는 자들은 매번 그 재주가 직분에 꼭 맞았으므로 광무는 우가 사람을 볼 줄 안다고 여겼다. 한번은 우로 하여금 별도로 기병(騎兵)을 거느리고 합연 등과 더불어 청양땅에서 동마를 치도록 했는데, 합연 등이 먼저 갔다가 전세가 불리하자 성을 지키려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 적들에게 포위 당했다. 마침내 우가 진격하여 적들을 격파하고 그 대장을 생포했다. 광무를 좇아 적을 추격하여 포양(浦陽)땅에 이르러서 연이어 크게 승리하여, 이에 북주가 평정되었다.
  적미(赤眉)가 서쪽에서 성문으로 진입해 오자 경시가 정국상공(定國上公) 직위에 있는 왕광(王匡)·양읍왕(襄邑王) 성단(成丹) 등과 항위장군(抗威將軍) 유균(劉均) 및 뭇 장수들로 하여금 하동·홍농 지역에 분산 주둔하여 그들을 막게 했다. 적미의 군사가 워낙 수가 많았으므로 왕광 등이 당해내질 못했다. 한편 광무는 적미가 틀림없이 장안을 함락시킬 것이라고 생각하여 틈을 타서 관주지역을 방어코자 했으나, 자신은 산동 지역을 지켜야 했으므로 누구를 대신 보내야 할지 모르다가, 우가 침착하고 도량이 컸으므로 우에게 서쪽을 토벌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리하여 그에게 전장군(前將軍)의 벼슬을 배수하고, 휘하의 정예병 이만 명을 나누어서 서쪽으로 파견하여 성안으로 들어오도록 지시하고, 또 우 스스로 보좌관 및 이하 함께 행동할 만한 자들을 선발토록 했다. 이때 군사(軍司 : 감독관)는 한흠(韓歆)이었고, 제주(祭主)로는 이문·이춘·정려(李文·李春·挺廬) 등 3인이었고, 적노장군(積弩將軍), 요기장군(堯騎將軍)은 번숭이었고 차기장군(車騎將軍)은 종흠(宗歆)이었고 건위장군(建威將軍)은 등심(鄧尋)이었고 적미장군(赤眉將軍)은 경흔였고 군사장군(軍師將軍)은 좌간이었으니, 이들을 거느리고 서쪽으로 갔다.
  건무 원년 정월 우가 기관으로부터 하동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하동도의가 성문을 지켜 열어주지 않자 우가 공략하여 열흘 만에 대파하고, 군중에 필요한 장비 및 물품을 천여 수레나 포획하였다. 이렇듯 포위를 뚫고 들어가 읍에 안착하려 하였는데 수개월이 지나도록 완전히 항복 받지는 못한 상태였다. 이때 경시의 대장군 번삼(樊參)이 군사 수만 명을 거느리고 대야현을 지나 우를 공격해 왔다. 우는 장수들을 보내어 해땅 남쪽에서 그들을 반격하여 크게 격파하고 그 대장인 삼의 목을 베었다. 이때에 다시 왕광·성단·유균 등이 합병하여 군사 십여 만을 거느리고 우를 공격하니, 우의 진영이 불리해졌고 요가장군 번숭도 전사했다. 저녁 무렵이 되어 싸움이 일단 끝나자 군사 한흠 및 이하 장군들이 병세(兵勢)가 이미 기운 것을 알고 모두 우에게 밤을 틈타 도주할 것을 권했으나 우는 듣지 않을 계획이었는데 광(匡) 등이 육갑을 따져 불길한 날이라 하여 출전치 않으니, 우가 이 때문에 군대를 정비할 수 있었다. 그 이튿날 아침 광이 군사를 총 동원하여 우를 공격하니, 우는 군중에 가벼이 움직이지 말라고 명령을 내리고는, 적군이 진영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진격 명령을 내리니, 장군들이 북을 치며 함께 진격해 적을 크게 무찔렀다. 광 등이 모두 병사를 버리고 도망가니, 우가 날쌘 기마병을 거느리고 급히 추격하여 유균 및 하동태수 양보·시절충랑장 미강을 잡아 목을 베었다.
  이 전투에서 사신들의 부절(符節)을 획득한 것이 여섯이요, 관리들의 도장과 끈을 획득한 것이 오백이요, 병기를 거둬들인 것은 셀 수 없었으며, 이로써 하동지역은 마침내 평정되었다. 옛 제도를 이어 이문(李文)을 하동 태수로 임명하고 나머지는 소속현의 우두머리들에게 맡겨 전쟁의 뒤처리를 하게 했다. 이 달에 광무는 효땅에서 즉위하여 고조가 되었다. 광무제는 사신을 보내어 우를 대사도에 임명하며 말하길『지금 임명하는 권장군 우는 사람됨이 매우 충효롭고 이전에는 짐과 더불어 진영 안에서 천리 밖 싸움의 승패를 도모하였었다. 공자께서도「내게 안회가 있은 뒤로 제자들이 서로 더욱 우애로와 졌다.」라고 하시지 않았던가. 더욱이 우는 적장들의 목을 베고 적군을 격파하여 산서 지방을 평정하였으니, 그 공이 더욱 뛰어나다. 지금 백성들은 서로 친하고, 아비는 의롭고 어미는 인자하고 형은 우애롭고 동생은 공손하고 자식은 효성스러워야 한다는 오품 또한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그대가 사가 되어 이 다섯가지 가르침을 받들어 널리 펼쳐 오교(五敎)는 실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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