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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견수
사유결단연후 유변화지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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事有決斷然後   有變化之道也
사     유     결     단     연     후                유    변    화     지     도     야
 
 
    푸른 잎사귀의 색깔이 더욱 짙어져 가는 초여름에 토성수련도장 부전초소에서 엄병인(嚴秉仁) 선사를 만났다. 온화하고 차분해 보이는 첫인상을 가진 그는 자신처럼 부족한 사람이 왜 수호팀장의 추천을 받았는지 모를 일이라며 몹시 겸연쩍어 했다.

   강원도 영월 두메산골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엄 선사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또래들이 중학교를 다닐 나이부터 여기저기 일자리를 찾아다니며 돈을 벌어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정착한 부산에서 전도인(傳道人)인 지금의 부인을 만났는데,  결혼을 해서도 뚜렷한 직업이 없이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일을 하다가 친구의 소개로 절에서 주지스님의 운전기사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가족과 함께 절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1999년도에 입도한 후 몇 달 지나지 않아 도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수호를 서면서도 도장에서 생활하는 것이 별로 어색하지 않았다 한다.

   당시 수호를 서게 되면서 전경을 읽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러다가 “이제 천하 창생이 진멸할 지경에 닥쳤음에도 조금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재리에만 눈이 어두우니 어찌 애석하지 않으리오.”란 구절을 읽고 크게 느껴지는 바가 있어 상제님을 믿고 수도에 정진할 것을 다짐을 했다고 한다.

   그 후로 여주본부도장과 토성수련도장을 오고가면서 수호를 서고 방면 사업도 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하지만 수도의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아서 작년에는 둘째 자식을 유치원에도 못 보내는 현실을 보면서 가장으로서 역할을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함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심적인 고통을 많이 겪었다. 더 힘들었던 것은 그런 자신의 처지로 인해  선각 분들에게까지 서운한 마음을 가지게 된 것이었는데, 어느 날 남 탓만 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마음을 고쳐먹게 되었고 그 이후로 어려운 상황을 점차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한다.

   엄선사는 그전에 수호를 섰을 때하곤 다르게 이번엔 본인 스스로 장기로 서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하면서 “지금까지 선사로서 방면과 종단에 이바지 못하고 도움만 받았던 지난날을 후회하며, 앞으로는 상제님의 일꾼으로서 종단의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도인의 그릇을 만들고자 수호에 임하겠습니다.” 라는 말로 앞으로의 각오를 대신했다.

   대화를 마치면서 돌아오는 길에 ‘각오가 달라지면 자신이 말을 안 해도 먼저 주변에서 느끼게 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 뜻을 이루려면 자신의 각오부터 새롭게 해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홍보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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