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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4년(1994)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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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절후 신명의 생애 : 울지경덕(尉遲敬德)

春分절후 관장하는

 

울지경덕(尉遲敬德)

 

 

하늘이 주는데 받지 않으면 허물이 된다. 울지경덕은 지혜와 용맹으로 忠心을 지킴.

                

               

  울지경덕은 이름이 공(恭)이고 자(字)는 이행이다. 삭주(朔州) 선양(善陽) 현 사람이다. 수(隋) 나라 대업(大業) 말년에 고양(高揚)으로 종군하는 등 공적을 쌓아 조사대부(朝사大夫)가 되었다. 유무주(劉武周)가 난을 일으키자, 그를 부 장군으로 삼았다. 송금강(宋金剛)과 함께 남쪽으로 공략하여 진주(晋州), 회주(會主) 등을 얻고 영안왕(永安王) 효기(孝基)를 격파하고 독고회은(獨孤懷恩) 등을 사로잡았다.
  무덕(武德) 2년에 진왕이 배벽(柏璧)을 치자 금강(金剛)을 패하여 돌궐(突厥)지방으로 달아나자, 울지경덕은 잔여 군사들을 모아 개휴(介休)를 지켰다. 진왕(秦王)이 임성왕(任城王) 도종(道宗)과 우문사급(宇文士及)을 보내서 항복을 종용하니 심상(尋相)현 전 지역에 항복하였다. 당조에 끌어들여 우일부통군(右一府統軍)에 삼고 왕세충(王世充)을 치게 하였다.
  심상(尋相)이 반란을 일으키자, 장수들은 경덕이 다시 난을 일으킬까 의심하여 그를 가두었다. 행대좌복야 굴돌통(屈突通)과 상서(尙書) 은개산(殷開山)이 말하길 『경덕은 용맹스러운데 지금 그를 잡아 신임을 나타내었으니 당장 죽이지 않으면 후에 후회막급하게 될 것입니다.』 왕이 말하길 『그렇지 않소 그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다면 어찌 심상(尋相)에 있는 자들보다 늦게 하겠소?』 그를 석방하고 침실 안으로 불러 말하였다. 『대장부는 의기를 투합하며 작은 의심은 흉중에 두어선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소. 나는 끝내 타인의 참소로 어진 이를 해하지 않겠소.』 그에게 금을 하사하고 말했다. 『그대는 반드시 떠날 것인데 노자(路資)로 쓰시오.』
  이날 유소(楡巢)에서 유렵 하다가 마침 왕세충이 몸소 수만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싸움하려 왔는데 그 중에 단웅신(單雄信)이라는 장수가 말을 몰고 왕을 좇아오자 경덕이 말을 타고 뛰어 올라 큰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크게 베니 단웅신이 떨어졌다. 왕을 보호하며 빠져 나와 병사를 인솔하여 다시 돌아가 싸워 그들을 대패 시키고 그들의 장수 진지략(陣智略)을 사로잡고 또 병사 육천 명을 포획하였다.
  왕이 신하들을 돌아보며 말하길 『근자에 뭇 사람들은 그대가 틀림없이 배반하리라 생각했는데 나만이 그렇게 여기지 않았다. 나의 이러한 생각에 보답함이 어찌 이렇게 빠른가?』 상으로 금은 한 상자를 주었다. 두건덕(竇建德)이 판저(板渚)를 포위하자 왕은 이적(李勣)등에게 명하여 매복하고 자신은 활을 지니고 경덕(敬德)에게 창을 들게 하고 그들의 보루를 공격하면서 크게 소리지르며 자신은 도전하였다. 건덕(健德)의 병사가 나오자 그들을 점점 유인퇴각하면서 수십 명을 죽이자, 적병들이 더욱 앞으로 나왔는데 이때 왕세충 형의 아들 왕완이 두건덕에게 사신으로 가 있었는데 수 나라 임금의 말을 타고 화려한 갑옷을 입고 군중(軍中)을 출입하면서 군사들에게 뽐내 보이고 있었다.
  왕이 그를 바라보면서 묻기를 『누가 그를 잡겠는가?』하니, 경덕이 고증생(高甑生), 양건방(梁建方)과 더불어 갈 것을 청하여 왕완을 사로잡아 그 말을 이끌고 돌아오니, 적병은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였다. 왕을 따라 유흑달(劉黑達)을 토벌하던 중 정예병으로 이적(李勣)을 기습하였는데 왕은 병사들로 하여금 뒤를 막게 하였지만, 조금 후 적병에게 사방을 포위 당하였다. 이때 경덕이 장사(壯士)들을 거느리고 적진으로 뛰어들어 왕은 적진이 무너지는 틈을 타고 포위를 뚫고 나올 수 있었다. 또 서원랑(徐圓朗)을 대파하여 그 공으로 왕부좌이호군(王俯左二護軍) 벼슬을 받았다. 은태자(隱太子)가 일찍이 편지로 경덕을 불러 금 그릇을 수레 가득히 실어 주려 했는데 경덕이 사양하여 말하길 『저는 매우 미천한 곳에서 출신 하여 천하가 어지러운 때에 당해 오랫동안 몹쓸 땅에 빠져 있었는데 진왕께서 실로 저를 다시 살리셨습니다. 지금 바야흐로 목숨을 바쳐서라도 그 은혜를 보답하려 하는데, 지금 전하께 세운 공이 없거늘 어찌 하사품을 받겠습니까? 만약 제가 몰래 승낙하여 받는다면 이것은 두 마음을 품은 것일 진데 이같이 이익을 돌보며 충심(忠心)을 버리는 자를 전하께서는 또 어찌 중용하려 하십니까?』 태자가 노하여 그만 두었다.
  경덕이 이를 왕에게 알려 주니 왕이 말하였다. 『그대의 마음은 산악(山岳)이라도 같아 금을 한말로 쌓아 준들 어찌 그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겠으랴마는 그대의 그 같은 태도는 안전한 계책이 되지 못할까 두렵소.』 소왕(巢王)이 과연 장사(壯士)들을 보내어 그를 암살하려 하였다. 경덕은 대문을 활짝 열고 편안히 누워 있었는데 그들은 문 앞에 이르러서도 감히 들어오지 못하였다. 그래서 이번엔 고조에게 그를 참소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진왕이 굳게 변호하여 면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은태자와 소왕의 음모가 날로 더해져 경덕과 장손무기가 들어가 아뢰었다. 『대왕께서 먼저 결단을 내리시지 않으면 사직이 위험해집니다.』 왕이 말하길 『나도 그대들과 뜻이 같아 그들에 대해 참지 못하겠다. 그들은 먼저 움직이는 것을 봐서 그 후에 대의로 그들을 토벌하는 것이 어떠하겠느냐?』경덕이 아뢰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지 상정입니다. 병사들이 목숨을 걸고 왕을 받들어 모시는 것은 하늘이 준 기회입니다. 하늘이 주었는데 받지 않는다면 반대로 허물을 얻습니다. 이 기회를 얻으려다 죽을지언정 팔짱을 끼고 있다가 살육을 당할 수는 없습니다.』
  장손무기(長孫無忌)가 말하였다. 『왕께서 경덕의 말을 좇지 않으시면 경덕 또한 왕께 속하지 않아 실패하게 됩니다.』왕이 말하였다. 『과인의 생각을 모조리 버릴 수 없으니 그대가 더 계획해 보시오.』경덕이 말했다. 『일을 처리하는데 머뭇거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고 재난을 당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왕께서는 지금 계획을 어떻게 세우셨습니까? 용맹스러운 병사 팔백 명이 모두 궁에 들어와 화살을 차고 갑옷을 입고 있는데 또 무엇을 마다하십니까?』 후에 또 후군집(侯君集)등과 함께 간청하고 권고하니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그 당시 방현령(房玄齡), 두여회(杜如晦)가 폄척을 받고 재야에 있었는데 왕이 불러도 오지 않았다. 『나를 배반하려는 것이 아닌가?』 차고 있던 칼을 풀어 경덕에게 주면서 말했다. 『만약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의 목을 베어와도 좋다.』 경덕이 마침내 가서 그들을 설득하여 계획에 끌어 들였다. 은태자가 죽자 경덕은 기병 칠십 명을 거느리고 현무문으로 달려가니 왕의 말이 도망하다가 수풀 아래로 떨어졌다.
  원길이 활을 빼앗아 왕을 핍박하자 경덕이 말을 달려 그를 큰소리로 꾸짖으니 달아나다가 사살(射殺)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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