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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순127년(1997)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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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제님의 일대기 : 장효순의 난

장효순의 난

                 

<출전: 증산의  생애와 사상>

                

  갑진년 정월초에 서울로부터 전주부의 부호 백남신을 체포하려는 전달이 전주부에 도달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백남신은 걱정이 태산 같았으나 믿고 상의할 사람이 없었다, 궁리 끝에 김병욱에게 의논하기로 했다.

  김병욱은 남신에게 지난해 八월에 자기가 도움을 받았던 일을 전하면서 상제님과 의논할 것을 종용했다. 그는 병욱을 통해서 도움을 간청했다.

  상제께서 『부자는 돈을 써야 하느니라. 돈 십만냥의 증서를 가져 오너라』고 병욱에게 일러 보내셨다. 병욱은 그 말을 남신에게 전하였다. 남신이 바로 십만냥의 증서를 써 올렸다. 그 후에 남신은 환란에서 풀리고, 삼도의 세리가 되었다. 그 후에 남신이 풀렸다는 소식을 듣고, 상제께서는 십만냥의 증서를 불사르셨다. 이 때 상제께서는 이직부의 집에 머물고 계셨다.

  상제께서는 이직부의 집에서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밤중에 장흥해의 부친 효순이 곤히 주무시는 상제께 급히 달려와서 손자가 급병이 나서 사경을 헤매고 있으니 보아달라고 애걸했다.

  상제께서 『냉수를 마시게 하라』고 일러 보내셨다. 효순은 달려가서 그대로 해 보았으나 손자는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효순은 전주부에서 천동(天動)으로 이름난 사나운 주먹꾼이었다. 그는 상제께서 자기가 미워서 처방을 하지 않고 손자를 죽인 것으로 판단하여 흥분했다.

  그는 날이 밝자마자 곤봉을 손에 들고 이직부의 집에 계시는 상제께 달려가서 『손으로 만져서 병자를 일으키고, 말 한마디로 중병을 고치는 것까지 보았는데, 고의가 아니면 무엇이랴. 물은 고사하고 흙을 먹였을 지라도 그 신묘한 도술로 능히 낫게 하였을 것이다.』고 말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곤봉으로 상제님을 마구 때렸다. 상제께서 몸이 터지고 유혈이 낭자하였다. 그러고도 분에 못이겨 효순은 상제님을 결박하여 장방청(長房廳)에 끌고갔다.

  도중에서 갑자기 결박을 풀면서 『이것이 다 나의 잘못입니다. 어린 것이 급한 병으로 죽었는데, 어찌 선생을 원망하겠습니까. 전대로 교제를 회복합시다. 그런 뜻에서 나의 집에 함께 갑시다』고 청했다. 상제께서 그청을 거절하고, 서원규의 집으로 가서 유숙하셨다. 다음 날 아침 상제님은 그 곳을 떠나 이직부의 집으로 향하셨다. 효순이 일찍이 서원규의 약방을 찾아 왔다. 상제께서 떠난 것을 알고 살인범으로 몰아쳤다. 이 때 상제께서는 이직부의 집에서 화정리(花亭里)에 사는 이경오 집의 협실로 옮기셨다. 효순의 가족들도 화정리에 몰려와서 행패를 부렸다.

  훗날에 장효순의 난을 당한 것에 대해서 종도들이 상제께 불만을 터뜨렸다.

  『어찌하여 하늘 사람의 큰 권능을 갖고, 난을 가라앉히거나 대항하시지 않고 피하여 다니기만 하셨습니까』고 아뢰니, 상제께서 『종도들 사이에서나 집안에 싸움이 일어나면 신정(神政)이 문란하여 진다. 싸움을 그대로 두면 따라서 세상에 큰 재앙이 일어나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내 자신이 곤욕을 겪는 것이 옳으리라』고 그 때의 상황을 이르고, 싸움으로 대항하면 천기(天氣)가 문란하여지는 것을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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